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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맛집 동아리(2)
괴수 모의전 이후로 에이젤은 가슴 을 쫙 펴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 다· 이제는 무시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세간에 모르프 가문이 배신자 가문 이라고 알려져 있는 건 아무래도 좋 다·
결국 마법 사회는 마법 하나로 모 든 게 증명되는 곳·
누구보다 뛰어난 마법을 선보인 에 이젤이었기에 순수 마법 실력으로는 그 어떤 이도 감히 그녀를 까 내릴 수 없으리라·
그래서 이제는 이런 내용도 당당 히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마법 학교라고 해서 꼭 마법 수업 만 있는 건 아니다· 정신 심리 체
력 예술 문화 활동 등 다양한 부 분을 가르치는 학교답게 여러 가지 로 학생들을 신경 써주는 편이었다·
특히 심리 부분에서는 마법을 배우 게 된 계기라든가 흑마인에게 맞서 는 마음가짐 혹은 가정환경 등을 자주 다루고는 했었는데 이번의 과 제는 바로 ‘나의 성장환경에 대하 여였다·
에이젤의 성장환경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그녀의 아버지밖에 없었다·
예전 같았다면 아버지에 대해 당당 히 적더라도 눈치가 보이고 두려웠 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거리낄 게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마법사이 고 너희보다 더욱 현명한 통찰안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말한다·
나의 아버지는 배신자가 아니다·
나의 아버ス] 아이작 모르프는 마 지막 순간까지도 위대한 마법사였 다·
그녀는 자신의 과제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 았다·
물론 아직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
다· 자신의 과제물이 심하게 자극적 인 내용이라는 것쯤은 잘 안다· 분 명 다른 교수들이 돌려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기 위한 첫걸 음·
그것을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다·
···그나저나·’
에이젤은 슬그머니 저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는 백유설을 바라보았다·
남들 다 과제물을 책상 위에 올려
놓은 반면에 그는 아무것도 챙겨오 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는 수 없다· 그에게 받은 게 많 은데 살짝 일러주는 정도는 해야겠 지·
“이봐요·”
“···으응?”
퀭한 눈을 부스스 뜨며 백유설이 고개를 돌렸다· 스텔라가 아니었다 면 좀비라고 착각했을 정도의 몰골 이었다·
“과제는 해오셨나요?”
“어··· 뭔 과제?”
“오늘 안 해오시면 F라고 하던데 요·”
“그러든가···
그러고선 푹 엎드린 백유설·
그리고 잠시 뒤·
······ 라고?”
갑작스레 고개를 벌떡 들어 올린 그는 이를 악물고서 머리를 부여잡 았다·
“아오 진짜 바빠 죽겠는데 과제를 왜 이렇게 많이 내는 거야· 내가 지 수업만 듣는 줄 아나 보지?”
“아 아무튼 저는 얘기 했어요?”
그러고 보니 백유설이 과제를 제대 로 하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슬슬 학사 경고라도 받지 않 을까 걱정됐는데 역시 이야기해 주 길 잘한 듯싶다·
에이젤이 자리로 돌아가자 백유설 은 허겁지겁 종이를 꺼냈다·
‘과제가 뭐였더라?’
다행스럽게도 이런 사소한 부분까 지 안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성장환경에 대해 적으라고···?
글쎄다· 기억도 안 난다·
,에휴···
하는 수 없이 뭐라도 끄적이기는 해야겠는데 마땅히 쓸 것도 없고 곧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하는 수 없이 백유설은 급한 대로 생각나 는 글을 끄적였다·
그건 다름 아닌 한국에 살던 시절 듣던 노래였다·
‘지오디 어머님께·’
20세기 대한민국을 울음바다로 만 들었던 바로 그 노래· 제목에 [어머 님께]를 달랑 기입한 뒤 곧바로 노 래 가사를 적어 넣었다·
“다들 과제는 완성해 왔나?”
““네!,,,,
학생들의 우렁찬 대답· 거기에 마 음이 다급해진 백유설은 땀을 뚝뚝 흘리며 가사를 빠르게 휘갈겨 넣었 고,간신히 제출하기 직전 완성할 수 있었다·
“휴우····”
그래도 글자 수는 꽤 많이 채웠으 니 F는 면하겠지· 그제야 간신히 마 음에 안도가 생긴 백유설은 다시 책 상에 엎드렸다·
과제를 제출했다고 해서 딱히 수 업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 * *
강의가 끝난 뒤 공교롭게도 나와 에이젤과 복귀 루트가 겹쳤다·
“왜 따라오냐·”
바로 옆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는 그녀에게 묻자 눈에 쌍심지를 켠다·
“저도 이쪽에 볼일이 있거든요?”
“그러냐·”
그렇게 그녀를 옆에 달고서 이리저 리 꺾이는 복도를 지나 간이 워프 홀을 타고서 도착한 장소는 학급 게 이 트
공교롭게도 목적지가 똑같았다·
심지어 그녀와 내가 살펴보려던 게 시판마저도 겹쳤다·
[동아리 홍보 게시판]
“너도 동아리 고민하냐? 아직도 가 입 못 했어?”
“왜요· 뭐요· 그럴 수 있잖아요·”
“하긴· 너도 친구 없었지·”
“아 아니라니까요? 며칠 전에는 동아리 가입 제의도 받았었거든요?”
그 말에 나는 어떤 사건이 떠올라 서 에이젤을 빤히 바라보았다·
‘흐음 제레미?’
그러나 제레미의 동아리에 가입하 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다른 동아리 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야 뭐 상관없다·
[마법사의 전통 스포츠! 소울 체스 동아리 모집! 머리 회전에는 이만한 게 없다고!]
[룬어 작문 동아리를 모집한다· 공 부해서 대학 가자·]
[원서 동아리다· 와라·]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여러분! 독 서 동아리를 모집합니다····]
스텔라에는 정말 많은 동아리가 존 재하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수 외부 활동’이 허가된 동아리는 그리 많지 않았고 가입에도 여러 쓸데없 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일전에 카시프 데릭을 가만히 놔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그 는 비록 머저리였지만 그래도 가문 의 입김이 꽤 강한 편이었고 무려 사냥 및 던전 출입이 가능한 ‘특수
외출’을 허가받은 동아리를 창설했 으니까
그를 살살 다그쳐서 동아리를 슬쩍 빼앗아온다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건 보류· 다짜고짜 선배 의 동아리를 빼앗는 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시선이 굉장히 따가울 것이 다· 이건 정말 최후의 방법으로 미 뤄둬야 한다·
,우선····’
나는 메인 등장인물들이 속한 동아 리를 확인했다·
홍비연 붉은 매 동아리·
제레미 스칼벤 동아리·
해원량 하나반 연구 동아리·
풀레임 힐링캠프 동아리·
에이젤 무소속·
대부분이 2〜3학년이 부장으로 있 는 거대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 유일하게 제레미는 스칼벤 동아리의 소속이 되어 스스로가 부장의 직책 을 따냈을 테고·
마땅히 끌리는 동아리가 없다·
1학년도 동아리를 창설해도 되지만 뒤늦게 창설해 봐야 가입해 줄 사람 도 없을 거고 특수 외출 허가를 받
는 건 더더욱 힘들다·
“야· 너는 뭐 엄청 빵빵한 인맥 같 은 거 없냐?”
그러자 그녀는 진심으로 황당하다 는 표정을 지었다·
“···저 누군지 모르세요?”
“에 이젤이잖아·”
“그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러고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그래도 최근에는 너 인기 많던데·” “크흠 그런가요?”
빈말이 아니었다· 워낙 아름다운 마법을 시연한 덕분일까 다르게 행 동한 것도 없는데 그녀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평민 중에서는 에이젤을 존경하는 학생도 있었고·
“그래도 뭐··· 제가 동아리를 창 설할 정도는 아니라서요· 그 그리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
“그건 그렇지·”
쓰읍 어쩐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가만히 고민하 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다가오 는 기척이 느껴졌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보니 마유성
이 다정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 다· 그는 증저음 목소리로 차분히 말을 걸어왔다·
“유설아· 수업 끝난 거야?”
“어· 왜·”
“이번 모의전 잘 봤어· 대단하더라· 게다가 나랑 동갑인데 벌써 네크로 맨서 사냥을 지휘하기도 했다면서?”
“내가 좀 대단하지·”
“보니까 너는 뭔가···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거든·”
움찔
생각지도 못했던 예리한 질문에 나
는 살짝 입술을 떨었다·
“평소에도 그런 깊은 생각을 자주 하는 거야?”
“···주말에 할 게 없기도 하고 알다시피 나는 평민이라 내가 조금 더 잘나게 될 방법을 항상 생각하는 편이거든·”
“그렇구나· 되게 보람차게 시간을 쓰는구나· 나랑은 다르네·”
그리 말하며 어쩐지 마유성은 씁쓸 하게 웃었다·
“내가 주말을 조금 알차게 보내긴 하지·”
그러면서 나는 은근슬쩍 여태까지
의문으로만 남았던 부분을 물어봤 다·
“네가 물어봐서 나도 형식상 물어 보는 건데 너는 주말에 보통 뭐 하 고 지내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공부·”
“형식상 물어봤다고 형식적으로 대 답하는구나· 고맙다·”
그러자 마유성이 당황하여 손을 허 공에 휘저었다· 저런 모습은 나도 처음 본다·
“아니야· 진짜 했어· 공부랑··· 또 수련도 했지·”
뭐? 수련?
그 말에 나는 표정을 싹 굳히고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넌··· 그런 거 잘 안 하잖아?”
“응· 그런데 최근에는 하게 되더 라·”
그러고 보니 방과 후만 되면 여기 저기 싸돌아다니던 마유성의 모습이 유난히 안 보이기는 했다·
“나도 몰랐는데 나는 지는 걸 상 당히 싫어하는 성격이더라고·”
역시 뭔가 있다· 마유성이 수련을 시작하는 건 한참 뒤의 일이었을 텐
데 벌써부터 변수가 생겼다·
‘그 변수가 대체 뭐지?’
그러한 내 고민은 생각보다도 더 빨리 에이젤이 풀어주었다·
“던전 실습· 그때 이후로 유독 그 러던데 승부욕이 상당히 강하신가 보군요?”
”맞아· 그때 형편 좋게 아가씨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다시는 해원량 앞에서 고개를 못 들고 다녔겠지· 내가 맨날 놀렸거든·”
허· 이제야 이해가 갔다·
원래대로였다면 던전 실습에서 마 유성이 해원량과 단독으로 싸우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마유성은 도중에 풀레임과 합류하 게 되어 혹여나 해원량과 싸우게 되 더라도 2 대 1로 가볍게 승리를 쟁 취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아예 싸우 지 않는 분기도 있었으니까·
한데 백유설이 던전 실습에 끼어드 는 바람에 풀레임이 묶여 버렸고 마유성은 혼자서 해원량과 조우해 버린 것·
‘해원량의 상태가 좀 이상하더라 니 이런 거였나?’
2 대 1이라면 모를까 당시 철저하 게 준비했던 해원량이 1 대 1로 깨
져버렸으니 어지간히 멘탈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아니 상당히 좋은 징조였다·
해원량도 그 성격상 호승심에 스스 로를 더욱 가혹하게 단련할 것이고 심지어 마유성이 예정보다 몇 년이 나 일찍 수련을 시작했다는 건 조금 더 해피엔딩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는 의미였으니까·
‘나 같은 반쪽짜리와는 달리 마유 성과 해원량은 미래의 구심점이 될 인재들이야·’
그러한 두 명이 예정보다 더욱 빨
리 강해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홍비연도 에이젤도· 원작 게임에서보다 훨씬 더 빠른 폭 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건 정말로 긍정적인 일이었기에 그는 정말 드 물게도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설이 너한테도 제대로 져버렸고· 그래서 최근에는 꽤 노력 하고 있어·”
“뭐? 나한테 언제 졌는데?”
“응? 이번 모의전 때 네가 우리 팀 점수 앞섰잖아·”
그랬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어서 몰랐 다·
“덕분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여 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고 있거든·”
“그러냐··」
당최 저 꼬맹이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반도 못 알아듣겠다·
“수련하는 동기가 정말 특이하네 요· 보통 한 번 패배했다고 고개를 못 드는 사람은 없어요·”
“나는 못 들어· 아가씨는 다른 것 같지만·”
“상당히 재수 없으시네요·”
“그런 얘기 많이 들어·”
“그리고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세 요·”
에이젤은 그리 말한 뒤 한 발자국 떨어졌다·
“근데 유설아· 동아리 가입하려는 거야? 아직도 가입 안 했어?”
그는 창밖을 가리켰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었다·
연분홍빛 벚꽃이 만개하여 청춘의 사랑 이야기가 흩날리는 계절·
나에게는 예외지만·
슬슬 신입생들도 제각각 동아리를
찾아가는 시기인 만큼 아직까지도 가입하지 않은 나나 에이젤 같은 경 우가 정말 특이 케이스였다·
늦게 가입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어차피 ‘동아리 성과제’까지는 한참 이나 남아 있으니까·
빠르게 가입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목 도모를 위해 혹은 외부 활동 을 하며 상점을 벌기 위함일 것이 다·
“그렇지·”
“그럼 나랑 같은 동아리 들어갈래? 나도 아직 가입 안 했거든·”
“뭔 동아리?”
뜬금없네· 원작 게임에서도 거의 맨날 혼자 활동하던 놈인데·
마유성은 몇몇 게시판을 손가락으 로 가리키며 말했다·
“마법사들의 두뇌 스포츠 소울 체 스는 어때? 나 머리 쓰는 오락 좋 아하는데· 로직 동아리도 있고 퍼즐 동아리도 있어·”
소울 체스라· 나도 한때 죽어라 열 심히 해서 나름대로 챔피언까지 했 었다· 시조 마법사가 남긴 몇몇 던 전의 최종관문을 돌파하기 위해 소 울 체스로 적을 이겨야만 하는 경우 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밖에 들지 못하는 동아 리를 그런 데에 들었다가는 특수 외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변 명을 늘어놓았다·
“앉아서 머리 쓰는 거 싫어해·”
“예? 당신이요?”
어쩐지 에이젤이 뜨악한 표정을 하 였다·
“그래? 그러면 스포츠는 어때? 축 구나 농구도 있고···· 아니면 ‘리그 오브 스피릿’는?”
리그 오브 스피릿· 마법계를 대표 하는 스포츠이スト 전투계에서 떠난 마법사들이 꿈꾸는 최고의 스포츠···
였지만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
리그 오브 스피릿 동아리에서 발생 하는 [에피소드]를 막기 위해서는 나중에 이곳에 가입하는 것도 고려 하긴 해봐야 하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
“글쎄· 나는 조금 더 생산적인 동 아리에 가입하려고 생각 중이라·”
“흐음····”
이거저거 다 싫다는데 이쯤 되면 슬슬 질려서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유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동아리를 원하는데? 네가 원 하는 동아리에 내가 맞춰줄게·”
뭐든 다 들어주겠다는 듯 자신만만 한 그의 말투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사람 없어서 조용하고 사적 모임 없고 사대보험 보장되고 점심마다 치즈 돈까스 꼬박꼬박 챙겨주고 외 부 활동 자유롭고 개인 활동 존중해 주고 특수 외출까지 되는 동아리·”
“그런 동아리가 세상에 어디에 있 어요?”
당연히 없겠지· 나도 그냥 농담으 로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래? 그럼··· 내가 그런 동아리 하나 만들어줄까?”
“뭐?,,
농담이었던 나와는 달리 진담이 섞 인 마유성의 그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