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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흑마인들(2)
백유설은 어디를 가든 항상 버릇 적으로 공간을 파악하고는 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방어 마법이 부족하고 공간을 활 용하여 싸우는 점멸 마법사였던 탓 에 지형지물을 늘 파악하여 유사시 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스칼벤의 유티나 학당에 들어갔을 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유티나 학당은 꽤 넓은 편이야·’
과연 제국은 제국인 것인지 공간을 굉장히 넓게 활용했는데 이는 백유 설에게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단 한 번의 점멸에 15m를 넘는 거리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혹마인 한 놈의 머리통을 순식간에 썰어버린다·
서걱!
“무· 스···!”
보통의 인간보다 반응속도가 빠른
흑마인이지만 백유설의 점멸에 완 벽히 반응하지 못했다·
이만큼이나 먼 거리를 단번에 줄여 서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
여태까지 고작 12m 안팎의 거리를 간신히 이동했던 것을 생각하면 점 멸의 거리가 상당히 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은세십일월의 기운을 단련 하기 시작하면서 부쩍 점멸의 활용 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음은···
놈들이 뒤로 점프하여 거리를 둔 다·
거리에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지
만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 위나 다름없었다·
‘···부드러운데·’
은세십일월의 기운을 본격적으로 수련하기 시작한 이후로 실전에서 제대로 점멸을 써본 건 이번이 오랜 만이었기에 새삼 달라진 느낌을 체 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점멸을 컨트롤하 기 위해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미세 한 집중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디로 이동하고 싶다 그렇 게 마음을 먹으면 어느 사이엔가 그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이전보다 더 멀리 그리고 더 신속 하고 정확하게·
[점멸]
백유설이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흑 마인들의 신체에 칼자국이 남는다·
셋을 한꺼번에 상대했다면 몰랐겠 지만 하나를 시작하자마자 썰어버 렸기 때문에 상황은 백유설에게 명 백히 유리했다·
본디 주변의 모든 것을 인질로 삼 고서 파괴적인 행위를 할 예정이었
던 흑마인들이었으나 숫자의 우위가 줄어들어 버린 이상 결코 마음대로 날뛸 수가 없게 된 것·
거기에 더해 백유설이 정말로 약 해지지 않은 채 오히려 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힘으로 달려들자 ‘정말 백유설이 우리를 사냥하기 위해 유 인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길 수 없다·
그런 공포심에 의해 흑마인들은 제 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그저 도망치 고 또 도망쳤다·
청풍명월은 꺼내지도 않았다·
마치 느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백유설은 흑마인이 도주하는 경로에 느긋하게 검을 가져다 대었 다·
서걱-!
“크아아아악!”
흑마인 하나의 다리를 썰어내자 도 약하려던 자세 그대로 추하게 나자 빠진다· 7리스크의 흑마인이라면 잘 려 나간 신체도 금방 재생하겠지만 백유설의 검에 썰린 상처는 이상하 게도 재생이 잘 되지 않았다·
‘대체 왜 재생이 안 되는 거야
··r
그들은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이
는 자연의 마나를 사용했기 때문이 다·
신성한 영혼을 통하며 순환하는 자 연 에너지는 흑마인들의 흑마력과 상충되는 기운을 품게 되고 그들이 힘을 내는 것을 방해하는 것·
백유설이 의도한 결과는 결코 아니 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흑마인들 에게 있어서 완전히 상극이 되는 존 재가 되었다·
푹!
“컥····”
흑마인 하나의 심장을 검으로 꿰뚫 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마지막 흑
마인이 학당 바깥으로 도주했다·
백유설은 충분히 쫓을 수 있었음에 도 그러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이제 저 흑마인은 본진으로 돌아가 서 이런 소문을 낼 것이다·
‘흑마도왕의 오른팔 블랙킹던이 백유설과 손을 잡았다!’
믿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애당초 블랙킹던이 그럴 이유가 없 었으니까· 그래서 백유설은 소문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 만한 증거
를 고민하였다·
‘나를 엿 먹이려고 했으니 그에 응당한 대가를 돌려줘야지·’
테리폰 소드에 묻은 검은 피를 탁 탁 털어낸 뒤 허리춤에 납검하자 근 처에 쓰러져 있던 마법사가 덜덜덜 떨면서 일어났다·
“응? 뭐야 교수님· 살아 있었네·”
“배 백유설····”
그는 다름 아닌 브레이 번 교수·
백유설에게 논쟁으로 갈기갈기 찢 겨 버린 뒤 자존심이 잔뜩 상해서 학당에서 그대로 도망치다가 흑마인 들의 습격에 휩쓸렸는데 아주 비싼
로브를 입고 있던 것인지 그 폭발에 도 살아남았다·
“좀 다치신 거 같은데 일어나셔 요·”
백유설이 손을 뻗자 브레이 번 교 수는 손을 빤히 쳐다보다가 마주 잡 았다·
“고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 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어·”
“뭘요· 전투 마법사의 의무죠·”
그렇다·
그것이 전투 마법사와 학자 마법사
의 차이점·
전투 마법사는 마법이라는 학문을 갈구하지 않고 그저 생명을 살해하 기 위한 도구쯤으로 여긴다·
반대로 학자 마법사는 마법이라는 학문을 갈고닦아서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하는 철학자에 가깝다·
성향이 서로 다르다 보니 그 옛날 학자 마법사와 전투 마법사가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던 데에는 다 이유 가 있었다·
‘사실 마법사가 이렇게 많은데 싸 울 수 있는 병력이 이렇게나 적은 게 더 신기하긴 하다만····’
마법 전사로서 세상을 바라보던 백 유설이었기에 그의 입장에서는 학 자 마법사라는 존재가 더 특이했다·
그 뒤로·
흑마인들의 죽음을 확인한 마법사 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상황을 파 악하고는 백유설에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실 이 모든 습격 사태가 백유설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그는 굳 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고맙다고 빵이라도 하나 더 챙겨줄 텐데 바보 도 아니고 그런 걸 뭐 하러 말하는
가?
그렇게 유티나 제17차 회의는 흑 마인의 습격을 저지하는 것으로 흐 지부지 마무리되었으나 백유설로서 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보고 계십니까?’
i음·
백유설의 텔레파시에 은세 십일 월이 짧게 응답하였다·
– 과연 은색 의 기 운을 사용하는 데 에 익숙해졌어· 어쩌면 머지않아서 나를 능가할지도 모르겠군·
이 그럴 리가요 은세 십 일 월 님 의 기운인데 제가 어 떻 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예?’
눈앞에서 은색 빛이 일렁이더니 은 세십일월의 형상이 반투명하게 나타 났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은색 시간의 기운은 내가 주인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기운인 거죠?’
-우리는 각자의 속성을 극한까지 다룰 수 있을 뿐 결국 이 자연에 퍼져 있는 기운을 빌려다 쓸 뿐이 지· 자네는 숲의 기운을 두고서 주 인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군요···
그렇다·
애당초 은색 시간의 기운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 또한 다른 마나와 마찬가지로 자연계에 퍼져 있는 무수히 많은 기 운 중 하나일 뿐이다·
단지 인간들의 감각으로는 은색의 시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나의 기운을 다룬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인 간은 없다· 1분 1초를 셀 수는 있 어도 흐름 그 자체를 감지하는 건 불가능하지· 너는 그것이 가능한 유 일한 인간이다·
어려운 말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한다니·
그에게는 여전히 낯선 말이었다·
-그러니 네가 은색의 기운을 나보 다도 더 잘 다루게 된다고 해서 이 상할 것은 없다· 우리는··· 그저 시조 마법사님에 의해 이렇게 되었 을 뿐이니까·
멀거니 서서 고민하던 백유설은 뒤 처리를 알아서 하겠다는 유티나 학 당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서야 움직 일 수 있었다·
보답으로 흑마인 처치 보상금은 물 론 별도의 포상을 주겠다는 이야기 를 들었으나 고민이 많아진 지금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스텔라로 돌아가는 길·
스칼벤에서 지원해 준 전용기에 탑 승한 백유설에게 은세십일월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여기는 보는 눈이 없군·
,,예·,,
-그럼 손바닥을 펼쳐보겠나?
“손바닥이요?”
갑자기 왜 그런 지시를 하는진 모 르겠으나 다 뜻이 있겠거니 싶은 생 각에 손바닥을 펼쳤다·
-거기에 연홍춘삼월의 기운을 홀 려보내 보거라·
“어··· 그건 별로 연습 안 해봐서 잘 못하는데····”
– 어서·
하는 수 없이 눈을 감고서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연홍색의 기 운을 끌어올리スト 백유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금세 손바닥이 분홍색으 로 빛나기 시작하였다·
“어 어라? 이게 이렇게 쉬웠나?”
-과연····
연홍춘삼월의 기운은 전투에 실용 적이지 못해서 가끔 명상할 때를 제 외하면 거의 연습하지 않았다·
그런데 은세십일월의 기운을 다루 는 것처럼 아주 손쉽게 끌어올려지 지 않는가?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네 안에서 십이신월의 기운이 완
전히 동화된 것이겠지·
“그렇다면···
-축하한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 군·
“오···
여태까지는 십이신월의 기운을 다 루기 위해 각각 따로따로 연습을 해 야만 했다· 청동십이월은 청동십이 월대로 은세십일월은 은세십일월대 로·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십이신월의 기운이 체내에 완전히 섞여버려서 원할 때 속성을 뽑아내 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오오
손바닥 위에 붉은색과 푸른색 은 색과 연두색의 기운을 마구 만들며 좋아하는 백유설을 바라보며 은세십 일월은 입을 꾹 다문 채 생각했다·
‘조만간이 겠군·’
사실 ‘기운이 동화되었다’라는 단 어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 겠다· 저건··· 십이신월의 기운들 이 각각 조화롭게 섞이기 시작해서 발생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저런 게 가능한 인간은 아마도 세 상에서 백유설밖에 없을 것이다·
십이신월조차 두 가지 이상의 기운
을 엮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명 더·
가능한 인물이 존재한다·
···회공시월· 그놈의 목표가 이 런 것이었겠지·’
그는 여태까지는 유일하게 십이신 월의 모든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존 재였다·
그런 능력이 있음에도 회공시월은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이나 다른 십이신월에게 간섭하지 않고서 조용 히 지내왔는데 최근 어째서 저렇게 활동하기 시작했는가·
‘멸망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의 목표는 무엇인가·
멸망을 막는 것인가?
혹은 멸망을 바라는 것일까?
만약 멸망을 막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백유설을 방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돕는다면 또 모를까·
‘멸망을 바라는 것이겠지·’
제아무리 십이신월이라고 해서 죽 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세상의 멸망을 바라는 십이신월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회공시월은 세상을 점점 더 멸망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듯·
은세십일월은 그런 그의 행동이 전 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아이가 모든 십이신 월을 조율해야만 해·’
그는 손바닥 위에 모든 기운을 소 환하여 올려놓은 백유설을 바라보았 다·
언젠가 그가 십이신월의 기운을 자신들만큼이나 익숙하게 다루는 날 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세상이 멸망을 비껴가 게 되는 기적적인 날이 될 것이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음? 말해보거라·
“이거 기운을 모두 섞어서 써도 되 는 겁니까?”
-그래· 우리도 해본 적은 없지만 모든 색상의 기운을 조화롭게 만들 면 놀라운 기적이 펼쳐진다고 알고 있다·
“그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뭐가 이상하지?
“이만한 색상이 모이면 결국 회색 이 될 테고 거기서 더 많이 모이면 검은색이 될 텐데·”
그 말에 은세십일월은 눈을 크게 뜨고서 입을 다물었다·
“이게 회색이랑 검은색이라고 하니 까 영 불안하단 말···
-잠시 기다리거라·
“예? 어라 어디 가셨지?”
백유설은 질문을 이어나가려고 했 으나 은세십일월은 이미 모습을 감 춘 뒤였다·
“···내가 뭐 물어보면 안 될 걸 물어봤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발상
이었기에 것도 아닌 질문이라고 생 각했거늘·
뺨을 긁적이던 백유설은 의자에 몸 을 뉘었다·
“모르겠다·”
피곤한데 낮잠이라도 조금 자야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