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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빙백산맥(8)
빙백산맥의 모든 도시와 마을이 페 르소나 게이트로 뒤덮인 다음에야 마란칼츠는 주문을 멈추고서 천황정 팔월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신월이시여· 만족스러 우십니까?”
만족스럽냐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너 때문에 상황이 완전히 망가졌 다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다· 그녀는 파들파들 떨리는 주먹 을 숨기기 위해 애써 로브 속으로 양팔을 집어넣었다·
“그럼 이야기해 주시지요·”
“뭐를?”
“···저에게 거짓을 고하시지는 않 으셨겠지요· 신월에게 근접한 인간 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시지 않았
습니다·”
“아 어 응· 그랬었지·”
이따위로 상황을 망쳐놓은 주제에 대가를 바라는 것도 괘씸했지만 약 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 인간 말이야 백유설이라는 놈 인데··· 너희 기준으로는 20년도 살 지 못했단 말이지·”
“호오 그렇습니까? 스무 살이라··· 제가 그 나이 때에는 이제 막 마법 이라는 학문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때였지요· 그렇다면···
마란칼츠는 조심스레 묻는다·
“그 마법사에게 대체··· 저와 어
떤 차이점이 있기에 신월에게 한 발 자국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까?”
차이점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눈앞의 너는 더럽게 못생겼고 그 소년은 꽤 봐줄 만하게 생겼다 정도? 그거 외에는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런 걸 신경 쓰면서 사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특징 하나·
“아 그래· 걔는 마법사이면서도 마 법을 아예 사용하지 못했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응? 말 그대로야· 마력누설지체랬 나?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조금 특이한 체질인데 보통은 몇 년 살 지 못하고 자연과 동화되어 죽는 게 정상이라고 하더라고·”
“마력 누설지체···?”
별 대수롭지 않게 꺼낸 말이다·
마력누설지체는 일반인 사이에서는 낯선 단어일지 몰라도 마법사들에게 는 간혹 들려오는 이야기였으니까·
‘마력을 가지지 못한 생명·’
세상의 모든 것이 마력으로 구성되
어있는 이 세계에서 마력누설지체라 는 존재는 참으로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연구해봐야 더 좋을 것도 없었기에 현 시대에 와서는 그에 대 해 파고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최근 백유설이 마력누설지체로 워 낙 큰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 슬금슬 금 그것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이 나 타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의미가 있나?’
마법사라는 동물을 이해할 수 없는 천황정팔월로서는 왜 그런 의미없는 행위에 시간을 쏟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후우 모르겠고· 페르소나 게이트 를 돌려달라고 말해야겠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어떻게든 설득시켜야 한 다· 저 광범위한 페르소나 게이트를 어떻게 하는 건 자신의 힘으로는 불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쿠르릉···!!
갑작스레 붉은 하늘이 암전되더니·
콰콰쾅-!!
한 줄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윽···?!”
천황정팔월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 으며 넘어졌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 가 다름 아닌 그녀의 바로 코앞 마 란칼츠가 서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 었다·
‘어 어떻게?!’
이곳은 구름보다도 위쪽에 있어서 벼락이 칠 리가 없을 터인데· 도대 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마란칼츠 를 바라보니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 그렇군···
“뭐야··· 너 왜 그래?”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그가 신월에게 저보다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
“뭐···?”
그의 신체에서 기묘한 변화가 나타 나기 시작했다· 천황정팔월은 온몸 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뭐야 이 기운···?
자신의 것보다는 한참이나 부족했 지만 그에게는 틀림없이 별의 기운 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또다른 이질적인 감각
이 천황정팔월을 깨운다·
“너··· 몸이 사라지고 있잖아···?”
마란칼츠의 신체가 모조리 가루로 산화하여 허공으로 홑어지고 있었 다· 또한 바다와도 같았던 그의 방 대한 마나가 빠져나와 공중에 흩뿌 려졌는데 그 폭풍의 여파로 인해 그 녀의 머리카락과 치맛자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끌끌 그렇습니까···? 제 몸이 사라지고 있군요···
“야 이봐! 정신 차려! 네가 여기 서 죽으면 안 된다고!”
가더라도 페르소나 게이트는 해체
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마란 칼츠는 고개를 저었다·
“되었습니다· 이제 육신에 대한 미 련 따위는 없습니다·”
어느덧 몸통이 전부 사라지고 머 리밖에 남지 않은 마란칼츠는 고요 한 눈빛으로 하늘을 웅시하였다·
“그렇군요··· 세상의 구조에 속박 되어 있는 이상 저는 별이 될 수 없던 것입니다····”
“마 마란칼츠?”
그는 고개를 돌려 천황정팔월을 바 라보며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아니야 제발 그런 말 하지 마! 왜 당장에라도 죽을 사람처럼 말하 는데!”
아예 천황정팔월이 애원하기 시작 하자 노인은 부드럽게 웃었다·
“기쁘군요· 저의 여행길에 슬퍼해 주는 이가 있다니·”
“그게 아니라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네가 떠나면 내가 큰일 난단 말이다! 천황정팔월 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으나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마침내는 노인의 눈코잎까지 모조 리 소멸되어 허공으로 흩뿌려진다·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저는 비록 신월이 되지 못한 채 이렇게 사라져가지만 이는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여정의 시작· 저는 지 금부터 오랜 시간 동안 별이 되지 못한 별빛이 되어 여행을 떠날 터이 니 부디 지켜봐 주십시오····
노인은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뒤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고·
“아····”
털썩!
흘로 남은 천황정팔월은 무릎을 꿇 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없으면 저 페르소나 게이트는 어떻게 하라는 건데에에에···!!”
쿵! 바닥에 이마를 처박고서 양손 으로 정수리를 부여잡은 채 한참이 나 끙끙대던 천황정팔월은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야에 한가득 들어오는 거 대한 보랏빛 페르소나 게이트·
현실에 이면 세계를 그대로 덧씌우는 그의 말도 안 되는 마법 기술을 보고 서도 감탄사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지금부터 그녀가 저 페르소나 게이 트를 해체해야만 했으니까·
“으윽···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봐 야 해결되는 건 없겠지····”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힘겹게 터덜터덜 걸어서 흑마탑 아래로 뛰 어내 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페르 소나 게이트로 가 봐야 뭐든 되지 않겠는가?
출렁···!!
가볍게 페르소나 게이트의 장막을 꿰뚫고서 진입하자 거칠고 차가웠던 날카로운 바람이 순식간에 멎어들고
어디에선가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뺨을 간지럽혔다·
‘윽··· 장난이 지독하군·’
혹한의 환경을 이런 생명이 만개한 장소로 바꿔 버리다니·
마란칼츠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가볍게 상공을 날아서 백령고원 요 새에 도달한 그녀는 가장 높은 첨탑 위에 안착하였다·
“허 참·”
이전의 살벌한 군사 기지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 이곳은 활기 넘치는 대 도시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에 젖어서 웃음 꽃이 만개하였고 하루하루가 즐거 운 것인지 단 1분 1초라도 헛되이 보낼 생각이 없는 듯 바삐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보이는 특이한 것들·
“흐흐흐흐·”
“히히헛! 히히!”
“하흐]하흐]하!”
가만히 멈춰 선 채 웃어대기만 하 는 저놈들의 정체는····
‘그 역겨운 생명체로군·’
회공시월이 자신을 물들여서 만들
어낸 괴생명체들·
“끄응···
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 다 대었다· 여전히 회색으로 물든 자신의 피부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머지 않아서 완전히 회색으로 물들어버릴 테ス]·
···끝이군·’
하아 한숨을 내쉬며 첨탑의 기둥 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시조 마법사께서는 왜 나 같은 멍 청한 년을 신월로 창조하신 거지····”
천 년 전부터 그랬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십이신월들은 모두 강력한 힘을 특별하게 다루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제각각 성 격은 달랐으나 모두 현명하고 뛰어 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천황정팔월은 그렇지 못했 다· 다른 신월보다도 멍청했고 하는 일마다 항상 실수만 해댔으며 능력 조차도 가장 볼품없었으니까·
하다 못해 가장 비슷한 능력을 가 진 연홍춘삼월의 능력은 한번에 전 세계의 모든 지성체를 홀려 버리는 힘을 가졌는데 당시의 천황정팔월은 한 명의 인간을 조종하는 게 고작이 지 않았는가?
나는 정말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 까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그들과 똑같아지고 싶었다·
같은 십이신월이라는 칭호에 걸맞 게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꿈을 크게 잡았다·
다른 신월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서 그들에게 존경과 존중을 받 고 싶었다·
세계 정복?
신월은 속세에 간섭할 수 없었기에 오로지 천황정팔월만이 할 수 있었 던 일·
그래서 천 년 동안 지금까지 무엇 을 해냈는가?
지금만 해도 보아라·
눈앞의 백령고원 요새가 고작해야 인간 한 명(9클래스의 마법사였지 만)의 장난질에 무력화되スト 아무것 도 할 수 없는 얼간이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치지지직···!
부정적인 생각을 할수록 그녀를 물 들이는 회색의 기운이 점점 더 강렬 해진다· 존재감으로 살아가는 자신 이 자존감을 잃어버리면 끝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떡하란 말인가· 살아 있는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데 이런 생각이 드 는 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나는 바보야·”
무릎을 양팔로 끌어안고서 머리통 을 처박는다· 이마로 무릎을 콩콩 찍으며 그 말을 되풀이하는 것 외에 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없다·
“나는 바보야·”
콩!
“말미잘·”
콩!
“해파리·”
콩!
“개불·”
코
“미 더덕·”
콩!
“버러····”
“불꽃 치즈 돈까스·”
“·어?”
흠칫·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천 황정팔월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 는 감각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
어 났다·
“뭐 뭐 뭐야?”
그곳에는 익숙한 인상의 소년이 서 있었다· 흑색 머리칼에 흑색 눈동자 스텔라 교복을 입은 마법사”·
백유설이·
“뭐가요· 먹고 싶은 거 얘기하는 중 아니었습니까? 저는 불꽃 치즈 돈까스가 먹고 싶습니다만·”
“아 아아아니 그게 아니라··· 네 가 왜 여기에 있냐고?”
“몰랐습니까? 십이신월이라면 근엄 하고 위풍당당하게 ‘하 네가 여기 에 도달할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하기를 기대했습니다만·”
그 말에 또다시 시무룩해지는 천황 정팔월·
“맞아··· 나는 십이신월의 자격조 차 없는 바보니까····”
“···아뇨 그런 얘기로 한 말은 아니 었는데·”
백유설은 눈썹을 꿈틀 떨고서 오른 손에 감춰두었던 테리폰을 수납하였 다·
‘이 여スト 상태가 왜 이래?’
그는 개인적으로 천황정팔월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전에 쓰러진 홍비연을 습격했던 두 마리의 트롤을 천황정팔월이 조 종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페르소나 게이트 내부에 서 그녀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백 유설은 곧바로 전투 태세에 돌입하 였으나 꽃서린이 말려준 덕분에 침 착하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설· 그녀의 힘을 이용한다면 이 상황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꽃서린의 말이 백 번 맞았다·
지금 자신들의 힘으로는 주어진 선
택지에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백유설은 분노를 꾹꾹 짓눌 렀고 천황정팔월과 대화를 시도하였 으며··· 그 결과는 꽤 성공적인 것 으로 보였다·
‘설마하니 회공시월에게 배신당했 을 줄이야·’
직박구리 안경을 굳이 쓰지 않아도 백유설의 눈에도 천황정팔월의 상태 가 선명하게 비쳤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서 쪼그려 앉아 천황정팔월과 눈을 마주하였다·
“먹고 싶은 음식 늘어놓기 놀이도 끝났으니··· 슬슬 대화 좀 해보실
까요? 십이신월 천황정팔월·”
그녀는 울상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 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백유설이 아닌 바로 천황 정팔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