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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무도회(3)
스텔라 아카데미를 비롯하여 명문 마법학교는 귀족 생도의 공적인 시 간을 존중해 준다·
비록 학교에 다니고 있다지만 귀족 은 어려서부터 많은 모임에 참가하 여 귀족 교육을 받거나 인맥을 쌓아 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귀족은 충분한 사유 가 있다면 결석을 하면서도 출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간혹가다 평 민에게도 적용되는 사안이었다·
귀족들의 모임에 평민들이 왕왕 초 대되어 신분 상승을 하기도 했으니 스텔라는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추 진하는 것·
귀족도 아니고 평민이 페널티를 받 지 않고서 결석할 수 있는 건 스텔 라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으로서 재 능있는 평민들이 유독 스텔라에 많 이 지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이었다·
“수업 쉬고 좋네·”
“그러게요·”
아돌레비트로 향하는 마차에서 에 이젤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이 초대에 응했을 때만 해도 별생각은 없었으나 생각해 보면 아 돌레비트의 무도회에는 전 세계적으 로 정계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들이 참석하지 않겠는가·
또한 아돌레비트는 아버지 아이작 모르프의 원수·
···흥비연도 그 사실을 알고 있
다·
‘그녀는 내 원수가 아니야·’
홍비연의 핏줄이 무슨 짓을 저질렀 을지언정 그건 흥비연의 짓이 아니 다· 그렇기에 에이젤은 그녀를 원망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아돌레비트 왕가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에이젤의 철천지원수·
아마도 그렇기에··· 흥비연이 그 녀를 이곳에 초대하지 않았을까·
‘자 네가 죽여야 하는 원수들이야· 그리고 내가 치워 버려야 하는 쓰레
기들이 ス]· 잘 보고 기억하고 파악해 두도록 해·’
홍비연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나 어쩐지 그 말이 생생히 들리는 듯하 다· 실제로 그녀라면 저런 의도를 다분히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친구에 대한 배려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목적에도 교묘히 도움이 되 도록 그렇게 길을 깔아둔 것이다·
그러니·
에이젤은 이번 무도회에서····
“조용히 있을 거지?”
풀레임의 물음에 에이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아직 힘이 충분하지 않다·
저들의 눈에 띄는 것은 오히려 앞 으로의 계획에 방해가 될 수도 있 다· 그러니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서 조용히 흥비연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파악하고 분석한다·
‘나는 아직 그놈들의 얼굴도 제대 로 몰라·’
그 사건은 홍시화 혼자서 저지른 일이 아니다·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동조한 사건이었다·
에이젤은 그 작자들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처벌할 생각이다·
덜커덩!
잠시 뒤 마차가 멈추더니 운전기 사가 다가와 운전석의 문을 열어주 었다·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전용 마차를 탑승해야 합니다·”
‘보안 때문이겠지····’
에이젤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차 에서 내렸다· 눈앞에 펼쳐진 어마어 마한 크기의 숲· 저게 단순히 아돌 레비트 왕실의 앞마당일 뿐이라는 사실에 기겁하였으나 에이젤은 크게 숨을 몰아쉬며 진정했다·
이 정도의 숲 어린 시절의 아버지 도 가지고 있었다·
기죽지 말자·
“와 저게 그 성인가···r
그러나 다음 순간 들려온 풀레임의 말에 에이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돌레비트의 수도 테할란·
그 중심에 우뚝 선 서리궁전·
붉은색 불꽃을 상징하는 아돌레비 트의 분위기와는 달리 차갑게 얼어 붙은 듯한 저 거대한 궁전은··· 에 이젤의 본가보다도 훨씬 더 거대하 고 웅장하였다·
가히 외견만으로도 모든 이를 압도 하려는 생각인지 고고하고 외로우며 싸늘하게 서 있는 서리궁전은 에이 젤의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드레스 자락을 붙 잡고서 걸었다·
홍비연 공주의 손님이라는 명령을 들은 것일까 그녀들을 맞이하기 위 해 찾아온 기사들이 양옆에 죽 늘어 져서 대기하고 있다·
“홍비연의 영향력이 꽤 늘었나 본 데····”
원작 로판에서의 흥비연은 이 정도 로 수준 높은 기사들을 왕실 내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대 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명령했다면 기사들 이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네?”
“아무것도·”
풀레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서 는 씨익 웃으며 에이젤의 팔뚝을 팔 꿈치로 툭툭 쳤다·
“너 드레스 잘 어울린다?”
“···어렸을 때 그래도 몇 번 입어 본 적은 있어서요·”
“에이· 겸손 떨기는· 그냥 ‘내가 이
쁘니까 잘 어울리는 거야’라고 당당 히 말하면 안 돼?”
“그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나요?”
“응? 난 예쁘니까 드레스 잘 어울 리는데?”
“얼굴이 엄청 두꺼우시네요···
에이젤은 한숨을 폭 내쉬며 자신의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풀레임과 에이젤은 그렇게 돈이 많 지 않은 편이다· 방학 동안 던전 및 괴수 처치 임무를 하며 모은 돈이 꽤 되기는 했지만 귀족들이 가진 어 마어마한 재산에 비하면 새 발의 피·
하여 그녀들의 드레스는 홍비연이 준비해 주었다·
에이젤의 드레스는 하늘색과 하얀 색이 뒤섞인 드레스로서 몸에 달라 붙어 은연중에 몸매가 드러나고는 했는데 풀레임은 이를 보고서 ‘겨울 의 왕국에 나오는 여왕님’이라며 꺄 르르 웃었으나 무슨 소리인지 이해 하지 못했다·
풀레임이 웃든 어쨌든 이 드레스 는 에이젤로서도 상당히 마음에 드 는 디자인이었다·
그녀의 속성과 머리 색에 아주 잘 어울렸으니까·
게다가 풀레임의 드레스는 또 어떠 한가· 마치 밤하늘에 별빛이 떠 있 는 듯 검은색 바탕에 금색 빛이 수 놓아져 있는 저 드레스는 척 보아도 수많은 귀족 영애들이 군침을 흘리 며 탐낼 만큼 굉장한 물건이 틀림없 다·
아마 가격도 상상을 초월하겠지·
‘그 망할 공주는 왜 이런 비싼 옷 을 준 걸까요····’
풀레임은 드레스의 가격을 감히 상 상하지도 못해서 마구 굴리고 있었 지만 에이젤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 기에 함부로 움직이는 것조차도 부
담스러웠다·
“이쪽입니다·”
기사의 안내를 받아 자동마차를 갈 아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서리궁 전의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홍비연은 아마 지금쯤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터· 왕족은 미리 무 도회장에 참석해 있을 테니 그녀들 은 이 낯선 무도회장에 단둘이서 입 장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줄 알았다·
“어 이제 왔냐?”
“뭐야· 너도 왔어?”
“당신이 왜 여기에····”
무도회장의 입구에 도착하자 무수 히 많은 귀족들이 아돌레비트의 전 용 마차에서 하차하여 계단을 오르 는 광경이 보였다·
귀족들이 바삐 무도회장으로 향하 는 와중 계단의 기둥에서 기다리고 있는 청년 아니 소년 한 명·
백유설이었다·
그는 값비싼 턱시도까지 빼입고서 꽤 훌륭하게 꾸민 상태였는데 다른 귀족들처럼 액세서리를 착용하지는 않았지만 안경만큼은 쓰고 있었다·
그와 그녀들을 알아본 귀족들이 무
도회장으로 향하며 이쪽을 힐끗거렸 다·
‘명예 마도사 백유설·’
‘배신자 모르프···의 자식 에이 젤·’
에이젤의 최근 이미지는 상당히 바 뀌었다· 일전의 천청해오월 사건으 로 인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이들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아돌 레비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돌레비트의 첫째 공주 홍시화는 아이작 모르프의 배반 당시 사건 현 장에 있었고 그를 직접 처치하려다 가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
고 알려졌으니까·
그것이 고스란히 아돌레비트의 손 실로 돌아왔다고 대부분의 많은 귀 족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즉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에이젤이 저들을 원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저 멍청한 귀족들도 모르프 가문을 원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아돌레비트의 무도회에 모르 프 가문을 데려왔으니 홍비연의 이 미지가 얼마나 깎여나갈지는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
유설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와서 참 다행이다· 혹시나 안 오면 어쩌나 싶었거든·”
“네···? 어째서죠?”
“어째서냐니 그야···「
백유설은 ‘혼자 이런 무도회에 입 장하는 게 무서워서’라고 대답하려 다가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자존심이 그런 구차한 변명 따위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음· 그런 이유가 있어·”
하지만 에이젤은 그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백유설은 수천 번의 회귀를 거쳐서 이 상황 또한 무수히 많이 겪어보았 을 것이다·
자신이 아돌레비트의 무도회에 참 여했을 때의 미래와 참여하지 않았 을 때의 미래·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백유설이 자신이 왔다는 사실 에 다행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그 공주는 물론 나에게도 좋 은 일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야· 틀 림없어·’
에이젤은 그 사실을 확신하고서 주
먹을 불끈 쥐었다·
“어서 가요· 그 잘난 아돌레비트의 무도회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 네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백유설이 씨익 웃으며 무도회장으 로 앞장서スト 몇몇 귀족들이 눈치를 보며 옆으로 비켜섰다·
새삼 최근 몇 달간 그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체 감하게 해주는 모습이었으나 뒤따 르는 두 소녀는 그런 것을 크게 신 경 쓰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무도회장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 * *
한편 무도회장의 뒤편·
궁전 내부의 관계자가 아니라면 귀 족들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이 장소에서 홍비연은 지긋지긋한 얼 굴을 마주하였다·
“어머나 동생····”
흥시화 아돌레비트·
짜증 나다 못해 아예 뭉개버리고 싶은 저 얼굴은 어째서인ス]·
미소 짓지 않고 있었다·
“왜,,
“응?”
“왜··· 그런 표정이야?”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소리니?”
아니다· 홍시화는 웃고 있었다·
겉으로는 틀림없이 예전의 그 가식 적인 여우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홍비연은 알 수 있었다·
저건 예전의 그 웃음이 아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무수히 많은 가 면들이 모조리 벗겨져서 지금은 억 지로 가면을 연기하는 듯한··· 그 런 모습이었다·
“···됐어· 무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얼굴 한번 봐두고 싶었을 뿐이야·”
홍비연은 더 이상 흥시화를 앞에 두고서 어린애처럼 분노하거나 벌벌 떨지 않았다· 홍분하여 말을 마구잡 이로 내뱉어봐야 그건 자신에게 피 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이렇게 반응해도 홍시화는 굳이 그녀의 속을 긁기 위해 꼭 한 마디를 덧붙일 것이다·
왕위에 적법하지도 못한 주제에 뻔 뻔하다든지 언니를 아직도 그리워 하냐든지····
“정마알!? 동생이 내 얼굴을 보고 싶었다니〜 이 언니는 너어~무 기쁜 거 있지!”
홍시화가 호들갑을 떨든 말든 홍비 연이 무시하고서 뒤돌아 반대로 걸 어갔으나 그녀는 마지막까지 굳이 홍비연의 속을 긁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멍청한 말만 내 뱉기만 해서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대체 뭐지?’
홍시화의 시야에서 벗어난 홍비연 은 조심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미 반대쪽으로 향해버린 것인지 그곳에 없다·
‘이상해·’
오늘의 홍시화는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홍비연은 그것을 알 수 있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이럴 때 역시 조언을 받을 수 있 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무도회장에 도착했겠지·’
그가 이곳에 와서 다행이다·
홍비연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 며 무도회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여러모로 그녀에게 정말 기대가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