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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무도회(2)
붉은 매 동아리 부실은 이제 아돌 레비트의 학생만이 왕래하지 않는 다·
홍비연은 타국의 학생들은 물론 평 민 학생들에게도 마음을 열어서 차 별 없이 지내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 에 놀러오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요즘 공주님 분위기 바뀐 것 같지 않아?”
“학교 내에서는 공주님이라고 부르 지 말랬어· 정 불편하면 뒤에 아가 씨를 붙이래·”
“그래? 1학년 때랑 진짜 느낌 너 무 다르다·”
작년의 홍비연은··· 그야말로 누 가 봐도 ‘공주’라는 느낌이었다·
가시 돋힌 장미꽃·
만지면 따끔하니 다가가지 말 것!
그녀에게는 무언가 거대한 벽이 느 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는데 항
상 남들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혼 자만 잘났다는 듯 위에 서 있는 느 낌이 었다·
하지만 2학년 2학기가 되어 동급 생들이 바라보는 홍비연의 이미지는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
지금도 성격은 여전히 냉랭하고 독 하지만 작년에는 절벽에 핀 꽃처럼 위태로웠다면 지금은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정도 는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홍비연은 어떻던가·
“공주님·”
“아가씨라고 불러·”
“아가씨!”
“···자꾸 왜 부르는데·”
평민들이 말을 걸어도 표정을 구기 기는커녕 약간 귀찮다는 내색을 하 더라도 무시하지 않고 대답을 전부 받아주었다·
“저기 혹시····”
말을 걸어온 평민들은 별 시답잖은 주제로 홍비연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녀는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 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항상 제왕학을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정말 집중하고 싶었다면 이곳이 아니라
독서실을 갔을 것이다·
그녀가 오늘 이곳에 잠깐 들른 이 유는 하나· 가끔가다 찾아오는 에이 젤과 풀레임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어쩌지·’
서랍에서 초대장 두 장을 꺼낸 홍 비연은 잠시 고민하였다·
공주로서 자신의 측근으로 사람 몇 명을 더 초대할 수 있는 그녀였으나 그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자신의 최측근으로 데려가 는 인원들이 전부 평민이라면?
아돌레비트 왕가의 공주로서의 품 격을 의심하는 귀족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홍비연은 더 이상 평민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왕국의 귀족들은 그 렇지 않다·
그들은 철저히 계급사회에서 자라 나 귀족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어 평 민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알았으니까·
친구들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이야 기지만 홍비연이 자신의 세력을 확 실하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백유설을 포함하여 세력 있는 귀족들을 데려 가야만 할 것이다·
무도회는 여왕이 되기 위한 발판·
홍시화 또한 참석할 것이 분명한데
결코 무른 마음으로 가서는 안 된 다·
“엥? 너 독서실 가는 거 아니었 냐? 아씨 몰래 네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 빼먹으러 왔는데·”
“그러게요· 저는 아이스크림에 관 심은 없지만요·”
“어 응···?”
멍하니 초대장을 바라보며 고민하 던 홍비연은 갑작스레 들리는 풀레 임과 에이젤의 목소리에 황급히 그 것들을 책상 아래로 숨겼다·
다행히도 그녀들은 그것을 눈치채 지 못했다·
“아아〜 나 바로 30분 뒤에 또 실 습 나가야 돼· 수업 일정을 왜 이렇 게 빡빡하게 짜는 거야? 짜증 나 죽겠어 진짜·”
“저는 오늘 괴수학 관련 수업밖에 없어서··· 못생긴 얼굴만 하루종일 보려니 눈이 썩는 거 같아요·”
“어머나 너 이 새끼 은근 얼굴 보 는 편이었구나?”
“제가 얼굴로 사람의 인성을 평가 하지는 않지만 컬트 고블린의 얼굴 만 하루 종일 바라보는 건 별로 내 키지 않는 일이네요·”
“그렇지? 이왕이면 몬스터도 잘생
긴 게 낫다니까·”
그녀들은 다음 수업 전까지 잠깐 쉬려고 들른 것인지 홍비연이 뭘 하 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값비싼 소파에 몸을 던져서 쉬고 있었다·
잠깐의 망설임·
방금까지는 꽤 이성적이고 합리적 인 판단이 가능했으나 정작 얼굴을 직접 보고 있으니 그게 힘들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홍비연은 소 파에서 뒹굴거리는 풀레임과 에이젤 의 얼굴에 초대장을 툭 올려놓았다·
“컥 뭐야 이게?”
“받아· 왕실 무도회 초대장이야·”
“왕실 무도회요···T
“왕가의 귀족이 스텔라에서 친분을 쌓은 마법사를 무도회에 초대하는 일은 흔한 이야기야·”
초대장을 받아 든 에이젤과 풀레임 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홍비연을 바라보았다·
흥비연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평민이 스텔라에 입학하여 귀족과 친해지고 무도회에까지 초대받아 출 세하는 이야기는 왕왕 들려오곤 했 으니까·
그래서 평민들이 어떻게 해서든 스 텔라의 귀족들과 친해지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들과 연줄이 닿는 것만으 로도 인생이 활짝 펴니까·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도 출셋길이 널려 있는 풀레임과 에이젤에게는 그런 의미보다는··· 오히려 홍비 연이라는 인물이 이런 초대장을 자 신들에게 건네줄 정도로 가까운 사 이가 되었다는 것이 퍽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게 앞으로 왕이 되어야 만 하는 홍비연이 무도회의 초대장 을 별다른 권력도 없는 자신들에게 주었다는 것은 무도회장에서 상당한 손해를 보면서까지 자신들과 함께하
고 싶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야 홍비연··· 너·”
“거절하면 죽여 버릴 거야·”
풀레임이 무어라 말하려 하자 홍비 연이 말을 잘라 버렸다· 본인도 상 당히 머쓱한 것인지 얼굴조차 쳐다 보지 않고서 자리로 돌아갔다·
에이젤과 풀레임은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홍비연의 얼굴을 더욱더 새 빨갛게 물들이게 만들었으나 그녀 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냥··· 기분이 좋았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저 웃었다·
“어머나 잘 어울리시네요〜”
백유설은 전신 거울 속 낯선 자신 의 모습을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 다· 꽤 고급진 턱시도를 빼입고 머 리까지 왁스 칠을 촥촥 해두니 완전 히 다른 사람 같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 지적인 분위기 가 풍기고 안경을 벗고 있으면 날 카로운 분위기가 풍긴다·
1 년 사이에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게 놀라울 정도·
“역시 옷걸이가 멋있으니까 뭘 입 어도 금방 소화하시는군요!”
“이거 말고 다른 것도 보실래요?”
“아뇨··· 이걸로 살게요·”
“탁월한 선택이세요!”
가격표를 힐끔 보니 어마어마한 금 액이 적혀 있다· 고작 턱시도 한 벌 이 뭐 이리 비싸단 말인가·
‘다이아몬드라도 박았나?’
하긴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마정석 이 박혀 있긴 할 것 같다·
턱시도 자체에 방어 마법은 물론 온도 유지 및 변질 저항 등등 수십 가지의 편의성 마법이 걸려 있었으 니까
턱시도를 구매해서 테일려샵을 나 온 백유설은 급격히 현자타임을 느 끼고 말았다·
여자에게 잘 보이겠다고 자신을 꾸 미는 건 남자의 본능이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이제 곧 서른이잖아·’
겉으로는 10대일지언정 어쨌든 머
리로는 성인이다·
열여덟 여고생에게 호감을 느끼고 심지어 잘 보이겠다고 수천만을 호 가하는 돈을 마구잡이로 써대는 꼴 이라니·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긴 한 데····’
백유설의 실제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풀레임밖에 는 없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예전의 백유설은 주변의 여자들을 여자가 아닌 그저 어린애들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
언가 내면에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 작했다·
더 이상 그녀들을 단순한 어린애로 보지 않게 된 것이다·
10대로 살다 보니 정신까지 10대 가 되어버린 걸까·
젤리엘은 정말 한 살 나이가 많은 누나처럼 느껴지고 동급생들은 정 말 동갑내기의 친구처럼 느껴질 때 가 있다·
‘다른 애들한테는 이런 느낌이 전 혀 없단 말이지····’
어쩌면 그녀들이 10대치고 지나치 게 높은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홀로 고된 삶을 살아오며 스텔라에 입학한 에이젤 어린 시절부터 아버 지를 따라 회사를 경영한 젤리엘 철이 들 무렵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왕위 경쟁을 해온 흥비연····
심지어 풀레임은 전생까지 합하면 실제로도 백유설과 나이가 비슷하지 않던가?
그녀들이 곧 30대가 되는 백유설 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정신을 가지 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조금은 양심 없게 굴어도 되 는 걸까?’
그런 작은 의문을 가슴에 품고서 백유설은 터덜터덜 스텔라로 돌아갔 다·
당장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사 건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 고작 연애 문제 따위로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이 퍽 한심스러워졌다·
“에효 국밥이나 먹어야지·”
이런 고급 테일러샵이 있는 곳에는 싸구려 국밥을 파는 식당이 없다·
학생들이 자주 왕래하는 로데오 거 리로 터덜터덜 향하는데 백유설의
시야에 익숙한 사람이 포착됐다·
마유성· 그가 골목 사이로 몰래 숨 어들어 가는 것이다·
‘응?’
주변 눈치까지 살펴가며 저렇게 몰 래 골목으로 향하는 건 뭔가 꿍꿍이 가 있다는 의미
‘뭐··· 흑마인 연락책들이랑 만나 려나 보지·’
마유성은 주기적으로 흑마도왕의 수하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흑마인 들의 동향을 체크하고는 했다·
제 딴에는 흑마인의 사회를 계속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밝혔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저들이 무언가 사고를 치려고 하면 자신이 나서서 막으려는 것이다·
실제로도 마유성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몇 번이나 흑마인들 을 저지했을 것이다·
그것을 사회적으로 알릴 수는 없었 기에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알려지면 아주 큰일이지·’
아버지가 흑마도왕인데 아들놈이 흑마인 죽이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 려지면 배신자라며 흑마인들이 길길 이 날뛸 것이다·
아무튼 별일 아니겠거니 싶었던
백유설은 마유성을 무시하고서 걸음 을 옮겼다·
···옮기려고 했다·
콰쾅!!
골목에서 폭발음이 들려오기 전까 지는 말이다·
“에효····”
하루도 쉴 날이 없다·
흑마인이 또 아르카니움에 숨어들 거나 했겠지· 마유성이 패배했을 리 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테리폰 소드를 빼 들고서 골목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그리고 보인 광경은 백유설도 전 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끄륵··· 컥!”
마유성이 상대하고 있던 적은 흑마 인이 아니었다·
스텔라의 생도 그것도 1학년 생도 였다·
“어 마유성··· 너 지금 뭐 하냐?”
“··?,,
백유설이 당황하여 물어보니 마유 성이 살벌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 았다가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유설이구나·”
그러면서 예의 그 밝은 미소를 짓 는데 얼굴이 피범벅이라 솔직히 소 름이 끼쳤다·
“아니· 인사는 됐고 지금 걔 때린 거야?”
“응· 아버지를 모욕했거든·”
“네 아버지를···?”
마유성의 아버지를 아는 존재라면 혹마인밖에 없다·
그런데·
생도 중에··· 흑마인이 있던가?
···없을 텐데?’
교수진은 흑마인으로 잔뜩 잠입해
있었으나 작년 여름에 엘트먼 엘트 윈이 대부분을 깡그리 청소했다·
학생들 중에는··· 흑마인이 없다·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다·
원작에서도 흑마인 생도는 나온 적 이 없었으니까·
‘나도 모르는 새에 또 뭐가 달라 진 건가····’
우선 큰 소리가 나기도 했고 후배 를 폭력했다는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큰일이라 백유설은 그를 말 렸다·
“일단은 내려놔 봐·”
“알았어,,
마유성은 순순히 1학년 후배를 내 려놓···지는 않고 냅다 바닥에 집 어 던졌다·
“쿨럭 큭···
“야· 괜찮냐?”
흑마인에게 괜찮냐고 묻는 꼬라지 도 우스웠지만 백유설은 본능적으 로 그리 말했다·
상대가 한 살 어린 인간의 외모를 띠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타세론?’
처음 듣는 이름이다·
역시나 모르는 인물·
그는 피범벅이 된 채로 고개를 들 어 올리더니 대뜸 웃는다·
“안녕하세요 백유설 선배· 평소에 도 존경하고 있었어요·”
“어 그러냐···T
너1· 선배는 ‘진짜’ 재능을 타고났 잖아요· 그건 당신이 스스로 일궈낸 아주 멋진 일이죠·”
”아니· 잠깐 뭔 소리야···? 나한 테 재능이 있다고?”
“그래요· 백유설 선배에게는 마법 의 재능이 없지만 대신 점멸과 검
을 누구보다도 잘 다루잖아요· 그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에요·”
“칭찬이지···r
“물론이죠·”
“고맙다만 재능을 타고났는데 스 스로 일궈냈다는 건 무슨 소리야?”
이상한 후배다· 그리 생각하며 묻 자 타세론은 마유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태어날 때 재능을 쥐고 태어나는 건 당신들이 뛰어났기 때문이에요· 그걸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건 아주 아주 멍청한 짓이죠·”
마유성은 입을 다문 채 별다른 말 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재능을 받 아서 진짜 천재들의 위에서 군림하 는 건 아주 비겁한 짓이죠·”
“후천적인 재능?”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 가 가질 않는다· 타세론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옷에 묻은 먼 지를 털었다·
그래봐야 피로 범벅된 교복이 깨끗 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마유성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백유설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
했다·
“저는 먼저 가 볼게요·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어· 그래····”
방금까지 폭행당하던 후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깍듯하다·
타세론이 돌아가자 백유설은 마유 성에게 질문하려고 했으나 그는 그 럴 생각이 없는 듯 벌써 골목 저만 치로 걸어가고 있었다·
“···타세론이 라·”
이름도 낯설고 하는 말도 낯설다·
‘후천적 재능?’
그러고 보니 원작 게임에서 마유성 에 대해 완벽히 밝혀진 게 있던가?
없다·
마유성은 원작 로판이든 원작 게임 이든 끝날 때까지 신비롭고 미스테 리한 존재였다·
그러니 즉·
타세론은 그런 마유성의 비밀을 알 고 있는 인물 중 하나라는 의미·
,흐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나중에 내가 쥐어 패서 정보를 캐 내야겠군·’
어차피 마유성도 실컷 때리던 샌드 백인데 내가 한 번 더 때린다고 크 게 달라질 것도 없지 않은가?
제아무리 가식으로 위장하고 인간 인 척 굴어도 상대는 인간이 아닌 흑마인이다·
그따위 표정 연기에 속아 넘어가서 는 안 된다·
그리 생각한 백유설은 마유성을 쫓 지 않고 타세론이 돌아간 방향으로 향했다·
‘요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잘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