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69· 동해(5)
쩌저적-!!
먹구름까지 솟구쳤던 반경 수백 미 터의 거대 용오름이 삽시간에 얼어 붙기 시작하자 천청해오월로서도 당 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广
예상했다·
전부 다 예상한 일이다·
그가 생각했던 계획 속에는 백유 설이 그 어떤 선택조차 하지 않은 채 청동십이월의 힘을 빌려서 용오 름을 얼리는 일조차 이미 예견된 상 태였다·
천청해오월은 알고 있었다·
백유설의 그릇이 아직 부족하여 만 약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경 우 반드시 에이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천청해오월은 알고 있었다·
할리스베일 제독은 반드시 풀레임 과 접촉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에 이젤과 만날 것이라고·
천청해오월은 알고 있었다·
결국 에이젤이 먼저 동해에서 벌 어진 용오름 사태를 듣고 이곳에 먼 저 도착하리라고·
천청해오월은 알고 있었다·
백유설은··· 에이젤보다 한 발자 국 늦게 도착할 것이란 사실을·
그래서 에이젤이 용오름에 도착한 즉시 상황을 조성하였다·
기묘하게 기상 변화를 유도하여 신
비로운 환경을 만들고 에이젤이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천청해오월은··· 알고 있었다·
에이젤의 선택은 결국 희생뿐이라 는 것을·
‘예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용오름에 접근한 순간 먹 구름을 꿰뚫고 백유설이 등장하는 장면 역시도 전부 천청해오월의 예 측 범위 내였다·
백유설이 현재 발휘할 수 있는 능 력치 정도는 완벽히 파악했다·
7클래스의 마법사를 능히 상대할 수 있으며 어떠한 특정 조건을 달
성하면 그 힘이 강력해져 점멸을 연 달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백유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함정 을 사방에 설치해 두었다·
먹구름은 천청해오월이 설치해 두 었던 무수히 많은 함정 중 하나였으 며 가장 강력한 함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사방에서 닥쳐오는 천둥벼락을 어 떻게 벗어날 것인가?
불가능하다·
그간 백유설의 전투는 몇 번이나 지켜보았다· 그의 능력치는 이미 완 벽히 파악했다·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몇백 번 이고 몇천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 레이션을 돌려보았다·
‘백유설이 살아남을 확률은 0%’
백유설의 생존을 결코 허락하지 않 는 완벽한 위치에 촘촘하게 벼락을 설치해 두었건만·
쩌저저저적-!
···쨍그랑!!
산산히 부서지는 저 용오름은 대
체 어떻게 설명해야만 하는 걸까·
천청해오월은 용오름의 중심에 위 치한 허공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백유설을 바라보았다·
에이젤을 와락 끌어안고서 바다로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그 모습은 아 주 로맨틱하기까지 했으나 천청해 오월에게 있어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콰콰콰콰···!!
‘이런 바다를···!’
천청해오월의 시야에 파고 100m 에 달하는 가히 재앙이라 불리울 만한 거대한 파도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파도의 꼭대기에는··· 할리스베일 제독의 가장 위대한 함 선 용오름승천 호가 용오름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용오름이 산산조각 부서 지고 깨져 바다에 떨어졌으나 용오 름의 중심에 있던 용오름 함대는 무 사하다·
빙하만 한 크기의 얼음 덩어리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7클래스 마 법사의 마법에도 버텨내는데 고작
이 정도에 상처 입을 함대가 아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빙하가 떨어 져 내리는 여파로 바다가 뒤집힐지 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할리스베일 제독은 바 다의 해류 그 자체를 손으로 움켜쥐 고 있었다·
말 그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파동 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 근방의 모든 바다를 단단히 꽉 붙들어 메고 있다 는 것이다·
동해 바다에서 항해하던 또다른 배 의 선원들은 크게 당황하여 기겁하 고 말았다·
“이 이게 뭐야?!”
“바다가··· 바다가 거울처럼 비추 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r
모든 물결이 사라졌다·
동해 바다의 표면이 평평해져서 마 치 거울처럼 하늘과 땅의 구분조차 애매해지고 말았다·
‘인간에게 이런 힘이 가능하다니·’
천청해오월은 감탄하면서도 식은땀 을 홀렸다·
거래는 실패다·
그렇다면 십이신월로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줘야만 한다·
대가는 인질·
그들을 모두 수장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거래를 거부한 인간들 이 치러야 할 마땅한 대가였다·
하지만····
‘···꿈쩍도 안 하는군·’
먼 옛날 전설적인 해적왕이 보유 했다고 알려진 위대한 특성 [해신의 축복]· 할리스베일 제독은 현세대에 유일하게 해신의 축복을 보유한 남 자였다·
그는 마법을 배우지 않더라도 능히
바다를 조종했을 것이며 자신이 원 하는 대로 파도를 일으키거나 소용돌 이를 만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할리스베일 제독이 9클래스의 마법까지 완성했으니····
그 힘은 가히 천청해오월의 바다를 다루는 권능과 맞먹을 정도·
용오름이라는 위협이 사라져 할리 스베일 제독이 모든 힘을 발휘하자 천청해오월로서도 도무지 바다를 움 직일 수가 없었다·
물론 천청해오월이 가진 또 다른 모든 권능을 동원한다면 할리스베일 제독을 쓰러뜨리는 것은 문제도 아
니겠지만 지금 당장 인질을 두고 겨 루는 상황에서 누가 불리한지는 굳 이 재보지 않아도 뻔했다·
···나의 패배다·’
천청해오월은 힘을 풀고서 눈을 감 았다· 그러고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애당초 ‘그릇’ 없이 발휘할 수 있 는 권능은 한정되어 있다·
회공시월로부터 그리 많은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여받은 귀중한 권한조차 제멋대로 휘둘러서 망쳐 버렸으니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
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고개를 내려 에이젤과 백유설 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쏟아지는 햇살빛을 독점하고 있는 그들을 향 해 수십 척의 배가 몰려들고 있다·
어떻게든 백유설과 에이젤을 자신 들의 배에 태우고 싶은 것이다·
*···그래 백유설도 알고 있었군·’
인간이 가진 ‘그릇’으로서의 가능 성은 온전히 십이신월만이 판단할 수 있다· 에이젤은 아주 훌륭한 그 릇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는
데 그 잠재력이 어마어마하게 뛰어 나서 십이신월이 탐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번개와 물 그리고 얼음까지·
무려 세 가지의 속성을 극한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그녀는 가히 하늘 의 기상기후를 조종할 수 있는 유일 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기상 변화를 다루는 그런 일은··· 십 이 신월에 게도 불가능하다·
천청해오월조차 지극히 한정된 공 간에 먹구름을 소환하는 게 고작이 었으니까·
-돌아와라 천청해오월·
“예· 그러지요·”
귓가에 울리는 회공시월의 고요한 목소리·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 다· 지금도 결코 화난 것 같은 낌새 는 없었다· 어쩌면 그의 실패를 처음 부터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무너지는 용오름을 내버려 둔 채 천청해오월의 몸이 점점 푸른 빛으 로 희미해졌다·
마지막으로 백유설에게 시선을 두 었다·
‘이번에도 네가 이겼구나·’
도대체 뭘까·
지상이 생긴 이래에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 열두 존재 십이신월 중에서도 계략에 능한 천 청해오월이 ‘완벽하다’라고 자부했던 계획이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건 백유설의 계략이 천청해오월 보다 뛰어났기 때문일까?
아니· 그는 오히려 자신의 계략에 말려들었다· 그럼에도 백유설은 그 상황을··· 십이신월로서는 감히 상 상할 수조차 없는 변수 즉 ‘기적’으 로 해내고 말았다·
벼락조차 얼려 버리는 천청해오월 로서는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크나
큰 변수·
그러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 한 인간이 바로 백유설이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자신은 패배했다·
깔끔하게 그것을 인정한다·
아마 앞으로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
만약 그가··· 회공시월과 정면으 로 맞붙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천청해오월은 그날이 오기를 고대 하며 이공간 속으로 몸을 맡겼다·
* * *
동해 바다에서 벌어진 대사건은 현 재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 다· 만약 모르는 인간이 있다면 그 는 외계인일 것이다·
[신화 속 십이신월의 등장 용오름 함대를 인질로 삼다!]
[그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유는 무엇인가?]
[십이신월의 실존 여부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동해 바다에 솟아난 용오름· 신월 교의 이들은 이를 두고 하늘이 내리 는 천벌이라며····]
[십이신월을 악으로 묘사한 신문사 의 앞에 신월교도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고····]
십이신월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처 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에도 모자 라 심지어 세계 바다의 경찰이라고 불리는 용오름함대를 인질로 삼아서 에이젤을 요구하다니·
그곳에서 보여준 십이신월의 권능
은 가히 신의 능력이라 칭할만 하여 신월교도들이 흥분하여 날뛰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배신자 아이작의 딸 에이젤 모르 프· 희생을 선택하다····]
[스스로의 목숨을 바치려고 했던 그녀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배신자의 자식이라고 해서 자식 조차 배신자 취급할 수는 없다며 그 녀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여론 이 나오는····]
당연히 에이젤의 이야기 역시 온갖
신문에 도배되었다·
수백 척의 배· 그리고 수만 명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설임 없이 용오름을 향해 날아가던 그녀의 모 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앞뒤왼오위아래 사방팔방 삼십육계 아주 다양한 방향에서 찍힌 그녀의 날아가는 사진은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먹구름과 용오름으로 뒤덮인 세상 에서 한 줄기 햇살을 받으며 얼음의 날개를 펼친 채 날아가는 미녀의 사 진은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을 테니 희소성도 높았다·
그리고····
“아주 큰 일을 내셨어요·”
병실 침대에서 상체를 반쯤 일으킨 에이젤이 신문을 읽으며 그리 말하 자 백유설이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 의 손을 꽉 쥐었다·
“···아파요·”
“열기를 주입해야 돼·”
그렇다·
청동십이월의 가호를 아주 강력한 단계로 에이젤에게 억지로 주입하는 바람에 이제 그녀는 평생 추위를 느끼며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오한을 애교 수준이고 손발이 차갑 게 얼어붙는 감각도 항상 느끼게 될 것이다·
하여 백유설은 십이신월들이 잠시 맡아두고 있던 [적하유월의 가히를 자신이 받아들였다·
본래는 흥비연에게 모조리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당장 적하유월의 가 호를 제대로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에이젤이 죽게 생겼는데 어 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홍비연이 적하유월의 가 호를 각성했다면 에이젤과 주기적 으로····
*···그건 좀 그런가?’
서로 상성이 잘 맞아서 꽤 괜찮은 치료법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마 그 런 방법을 택할 바에 홍비연과 에이 젤은 혀를 깨물고 죽어버릴 것이다·
백유설이 키스에 대해 생각하는지는 어떻게 또 귀신같이 알았는지 에이젤 이 붙잡은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래요· 저한테는 그거 안 하 나요? 홍비연 공주한테는 아예 입맞 춤까지 하시던데요·”
“그 그건··· 원해?”
“정말 센스없으시네· 됐어요· 여자 가 먼저 말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요?”
”··그런 거야?”
에이젤은 거기까지 말한 뒤 고개를 돌려 한 손으로 신문지를 넘겼다·
앞장에도 뒷장에도·
모조리 얼어붙은 용오름이 무너지 는 광경이 포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부서지는 얼음 날개가 찬란한 빛가 루가 되어 흩날리며 에이젤과 백유 설이 포옹하는 장면 역시····
모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 었다·
에이젤은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 다· 자신이 살아난 데에 기뻐하면서 도 영 불편한 표정을 짓던 홍비연이 떠오른 것이다·
“후후·”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 어?”
“아니에요· 조금 좋은 일이 있었거 든요·”
“조금 좋은 일? 살아난 건 많이 좋은 일 아냐?”
“그건 많이 좋은 일이 맞구요· 그 거 말고··· 정말 아주 조금· 기분 좋은 일이 있어요·”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 르게 육감이 위잉위잉 울려대는 것 을 보아하니 영 자신에게는 ‘조금 좋은 일’이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완전히 나쁜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대체 뭔지 알 수가 없는데 육감으로만 느껴져서 백유설로서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