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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변화(5)
할리스베일 제독·
그는 50년 전 해적들에게 아내를 살해당했으나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귀족과 해군에게 싫증이 나서 직접 바다로 뛰어들어 해적을 소탕 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제독은 장장 50년간 육지를 밟지
않는 그 지독한 신념으로 유명했는 데 그 이유가 귀족들에게 환멸이 났 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홍 비연이 그를 자신의 천화빙궁으로 초대한 일은 굉장히 이례적인 대사 건이었다·
그러나 홍비연은 자신이 대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전혀 기쁘지 않 았다·
오히려 긴장해야만 할 것이다·
할리스베일 제독·
9클래스의 대마법사이자 동해의 지 배자였던 그가 굳이 머나먼 타지라 고도 할 수 있는 이곳에 찾아올 이
유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이곳의 해적들을 털어보려는 것이 겠지·’
바다가 없던 시절이면 모를까 바 다가 생긴 이상 리스본드의 해적들 은 할리스베일의 표적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서 고맙소·”
”응당한 대우입니다·”
“대륙의 다과를 먹는 건 참으로 오 래간만이군·”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이죠·”
그리 말하며 홍비연이 속으로 긴장
한 낌새를 넣어두려는데 대뜸 그가 먼저 주제를 꺼냈다·
“실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소·”
“···부탁입니까?”
해적들을 물리라는 부탁일까?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동해 바다에··· 조금 골치 아픈 손님이 찾아왔소·”
“손님···?”
할리스베일 제독이 해적 따위를 손 님이라고 칭할 리는 없다·
즉 굉장히 귀한 신분을 가진 누군 가라는 의미
“그렇소· 그자의 이름은··· 천청 해오월 (天靑海五月)·”
····
십이신월이라니· 너무 갑작스레 치 고 들어오는 그 말에 심장이 덜컥 울린 홍비연은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그자는 십이신월 그중에서 바다 를 관장하는 신월이오·”
“···그분이 당신을 찾아갔다는 말 씀이 신가요?”
“후우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됐소·”
이쯤에서 드는 의문·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
그렇다·
할리스베일 제독이 홍비연을 만나 고자 했던 것은 한 달 전의 일이다· 즉 그가 저 머나먼 타지의 동해에 서 한창 해적을 소탕하고 있던 도중 천청해오월과 만났다는 의미일 터·
그런데 왜 여기까지 찾아오는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질문을 건 네고 말았으나 왠지 모르게 정답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흥비연 공주께서는 십이신월 에 대해 꽤 지식을 쌓고 있다고 들 었소· 실제로 만난 사례도 있다지·”
“그건··· 그렇긴 하지만 십이신 월은 제 전문분야가 아니에요·”
십이신월에 대해 정말 궁금했다면 차라리 세간에 잘 알려진 백유설을 찾아가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건···
“예상하시는 대로 맞소· 그는 백유 설이 자신들의 사이에 개입하기를 꺼 려하더군· 일종의··· 협박이었지·”
“협박···?”
할리스베일 제독은 눈을 감았다·
9클래스의 대마도사이면서 어린 외 모가 아니라 주름진 외형을 고집하
는 것은 품격 때문이겠으나 그 주 름에서 어째서인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듯했다·
“십이신월의 능력은··· 실로 자 연재해라 부를 만하더군· 갑작스러 운 일이었소· 바다에서 거대한 소용 돌이의 용오름이 솟아나 나의 모든 함선들을 집어삼킨 것은·”
홍비연이 두 눈을 부릅떴다·
‘바다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라고?’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게 천 년 전·
바로 눈앞에 있는 저 바다 레비앙 해안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아니던가? 당시에는 소용돌이가 배를 집어삼키 던 와중 천 년의 저주로 인해 얼어붙 는 바람에 용오름은 발생하지 않았지 만····
“그 함선들은 모두 어떻게 됐죠?”
“후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마법으로 어떻게든 뚫어보려 고 시도했으나 도저히 진입하는 게 불가능했지· 하지만 연락은 간신히 닿았소· 다행스럽게도 모두 살아 있 더군· ···나의 딸을 포함해서·”
“딸이라면···
유명한 일화였기에 알고 있다·
해적에게 납치당했던 병든 어린 소 녀를 구해내서 양딸로 받아들인 이 야기는· 그 딸은 현재 20대가 되어 함대를 지휘하는 한 명의 당당한 선 장이 되었다고 했던가·
그 어마어마한 재능은 실로 놀라울 정도라 젊은 나이에 6클래스를 마 스터하고 7클래스의 경지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모두를 그리고 나의 딸을 그곳에서 꺼내고 싶소·”
그렇군요·”
“소용돌이를 일으킨 천청해오월이 말하더군· 거래를 하고 싶다고· 나의 선원들을 구하고 싶다면 그 거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이 거래지 사실상 협박이군요·”
“후우 내가 어쩌겠나· 받아들이겠 다고 했지· 유예 기간은 석 달· 벌 써 한 달의 시간이 지났으니 2개월 밖에 남지 않았군·”
“거래 내용은··· 무엇을 원하던가 요?”
할리스베일 제독은 침묵했다·
쉬이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홍비연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여기까지 찾아온 마당에 결국 입 을 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으니 까· 그렇게 30분쯤이 지나자 마침 내 할리스베일 제독은 무거운 입술 을 떼어냈다·
“시조 마법사의 열두 제자· 그 위 대한 혈족 중 한 명 모르프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에이젤 모르프 그녀를 원하고 있소·”
“뭐···!”
홍비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분노로 물들었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그녀를 제물 로 바치겠다고 이야기하다니·
제아무리 9클래스의 마도사라고 할 지라도 이는 홍비연 아돌레비트의 인격 자체를 무시하는 일이었기에 결코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잠깐 공주· 진정하시오·”
하지만 오해였다는 듯 할리스베일 제독은 서둘러 말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제물로 바칠 생 각이었다면 그럴 자격도 없고 자신 도 없지만 정말 그랬다면 굳이 홍비 연 공주를 찾아올 이유가 있겠소?”
“···정말 그녀를 건드릴 생각이
없다는 겁니까?”
“나를 믿어주시오· 나는 그저 신월 께서 ‘백유설과 접촉하지 말 것’이 라는 조건을 내세웠기에··· 그 다 음으로 신월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흥비연 공주를 찾아온 것 이오· 내 어떻게든 조언을 듣고자 하여·”
“그런··· 것이었군요···「
순식간에 달아올랐던 홍비연의 머 리가 차갑게 식어내렸다· 그러고선 냉정하게 생각한다·
‘에이젤을 데려가려는 건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일 거야·’
홍비연은 적하유월이 탐낼 정도로 불꽃의 화신으로서 그릇이 되기에 충분했다·
반면에 에이젤은 얼음 마법으로 재 능이 출중했는데 아마 그쪽 방면으 로 그들이 원하는 ‘그릇’이 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음 계열로는 이미 청동 십이월님이 계시는데····’
무언가를 얼리는 빙속성과 물을 조 작하는 수속성은 엄연히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니 홍비연의 머리가 살짝 복잡해졌다·
생각해 보면 에이젤의 마법은 남들
보다 특별하다· 무언가를 얼리기 이 전에 그녀는 반드시 물을 소환하는 과정을 거쳤으니까·
그래서 에이젤은 같은 3클래스의 마법이라고 할지라도 남들이 소환한 얼음보다 더욱 커다랗고 튼튼하고 정교한 얼음을 조각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고작 1학년의 나이에 고위 마법사들조차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 운 예술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순수하게 ‘얼리는 마법’만을 부릴 수 있었다면 그런 기적은 불가능했 을 것이다·
다른 빙계 마법사들이 소환하는 마 법이 마구잡이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형태였다는 것을 떠올린 홍비연은 천청해오월이 에이젤을 탐내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인가·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던 간에 결 국 십이신월이 그녀를 노리고 있다 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천청해오월께서는 사회의 인식에 대해 빠삭하게 파악하고 계시더군· 내게 말했소· 배신자 모르프의 자식 한 명을 제물로 바치는데 거리낄 게 무어가 있겠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 아· 에이젤 모르프의 배경이 어떻든 내 딸과 선원들을 살리기 위해 애꿎 은 목숨을 제물로 바치기는 싫소·”
홍비연은 눈을 지긋이 감았다·
백유설에게 이 이야기가 홀러 들어 가서는 안 된다· 그가 움직이는 순 간 곧바로 천청해오월이 그것을 감 지하고서 인질들을 바다에 담가버릴 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에이젤을 불러오겠어요·”
“···그래· 그편이 나도 마음은 편 하겠군·”
“아마 본인이 희생하겠다며 나서
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알기로 에 이젤은 누구보다도 삶에 집착이 강 하니까·”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지 전까 지는 결코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는 등의 선택을 할 만한 위인이 아니다·
홍비연은 그렇게 믿었다·
부디 에이젤이 그런 극단적인 생 각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 * *
-백유설! 일어나봐! 급한 일이야!
난데없이 천황정팔월의 의식이 백 유설을 찾아와서 울려댄 건 새벽 3 시의 아주 늦은 시각이었다·
장소는 하월평원에 위치한 젤리엘 의 별장·
당연흐】 젤리엘과 같은 방에서 잠 을 청하는 건 아니었기에 백유설을 시끄럽게 불러대는 저 목소리는 온 전히 혼자서 들을 수 있었다·
“···뭡니까? 이 오밤중에?”
부스스한 눈을 뜨고서 일어나자 천 황정팔월이 그 노란색 머리칼을 사 방으로 휘날리며 안절부절한 표정을 지었다·
-새 새벽이었어? 미안! 내가 있던 곳은 아침이었거든!
“그렇겠죠· 지구는 둥그니까·”
-지구?
“아이테르· 뭐 암튼 그건 됐고 뭔 일입니까?”
백유설이 잠옷 바람으로 하품을 쩍 쩍 내뱉으며 말하자 천황정팔월은 순식간에 급 우울해져서는 말한다·
-그게··· 사실 네게 말하지 않았 던 것들이 몇몇 있거든?
“알죠·”
-나 알다시피 회공시월과 함께했
었잖아· 지금은 그만두고 너와 함께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쪽에서 활동하던 덕분에 알게 된 게 몇 가 지 있거든·
“놈들이 뭐라도 꾸미고 있습니까?”
-홍비연 납치라든가 북부를 페르 소나 사태로 뒤덮는다든가····
그건 다 아는 사건이다·
-그리고 에이젤을 그릇으로 삼는 것까지 회공시월의 계획에 있었어·
“···에이 젤을?”
-응· 알고 있었어?
“뭐···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죠·”
대부분의 십이신월은 ‘그릇’을 원 한다·
적하유월이 그토록 홍비연을 원했 던 이유는 힘의 제약을 받지 않고 세상에서 날뛰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조 마법사가 걸어둔 제약으로 인 해 마음대로 세상에 나와 힘을 사용 하지 못하는 그들은 그릇을 통해 힘 을 발현하고는 했는데 대표적인 예 가 꼭두각시를 이용하여 활동하던 천황정팔월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도 따로 활동하느라 에이젤을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잘 몰랐 는데··· 얼마 전에 확인해 보니까
동해에 거대한 용오름을 세워뒀더라 고·
“용오름을?”
-응· 그 용오름함대의 대부분을 그 안에 가둬두고 할리스베일 제독을 협박하고 있다나 봐· 아마 에이젤의 납치를 주도하지 않을까 싶은데·
“허·”
할리스베일 제독이라면 지독하기로 유명한 등장인물 중 한 명이지 않던 가· 자신의 사람을 위해서라면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원작 게임에서는 ‘주인공 풀레임’이 졸업한 뒤에 꼬이는 하렘
의 멤버 중 한 명이 되기도 하는데 할리스베일 루트를 타게 되면 과도 한 집착을 받게 된다는 말이 언뜻언 뜻 기억이 난다·
“확실히 그 사람이라면 에이젤을 낼름 납치해다가 갈지도 모르겠는 데···
피곤해서 그런가 머리가 잘 돌아 가지 않는다· 어제 하루 종일 젤리 엘이 이끄는 대로 이 도시 저 도시 를 들쑤시며 놀러다닌 터라 몸이 굉 장히 무겁다·
그것도 하필이면 대부분의 시간 중 에서 쇼핑을 해버리는 바람에 정신 력이 어마어마하게 소모되었다·
‘쇼핑은 힘들었지·’
육체 단련보다도 힘든 게 있을 줄 은 상상도 못 했다·
다행스럽게도 옷가게에 한 번 들 어갈 때마다 젤리엘의 옷이 바뀌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훌륭했다·
어지간한 모델 뺨따귀를 수백 번은 후려칠 수 있는 빼어난 몸매의 젤리 엘이 오로지 백유설에게만 보여주기 위해서 패션쇼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 였으니 즐겁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떻게 하지? 어떡하면 좋을까?
백유설은 고개를 들어 안절부절하 는 천황정팔월을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에이젤을 걱정해 주는 건 좋은데···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신월이 인간에게 의지하려는 꼴을 보고 있자니 뭔가 귀엽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하고·’
그는 하품을 쩍쩍 내뱉으며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러고서 은세십일월과 청동십이월을 동시에 부르니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고통이 동반되었다·
– 오호라 천황정팔월도 있었구먼·
– 음! 무슨 일인가·
“끄응···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백유설은 천
황정팔월에게 들은 이야기를 설명했 다· 에이젤이 납치당할 위기이며 실 제로 용오름함대의 대부분이 납치당 했다고·
9클래스의 마도사가 움직이면 제아 무리 에이젤이라도 납치를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간략하게 설명하니·
은세십일월과 청동십이월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 허 그렇군· 상황이 상황이니 만 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우선 자네의 의견을 듣도록 하지·
– 그래· 나와 은색을 소환했다는 건
우리 둘을 이용하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다는 뜻이 틀림없겠어·
전혀 아니다·
머리가 영 돌아가질 않아서 조언을 듣고자 가장 먼저 떠오른 신월들을 부른 것이다·
*···연홍춘삼월님이나 연두림사월 님을 부를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들었으나 이미 정 신력은 한계·
백유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청동
십이월님이 가서 용오름을 죄다 얼 려 버리죠?”
귀찮은 티가 팍팍 나는 대충 세운 계획· 그러나 청동십이월은 긍정적 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주 마음에 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