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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호랑이처럼(4)
“완성,,
백유설이 막대 두 개가 꽂혀 있는 머리띠를 들어 올리자 바닥에 늘어 져서 쉬고 있던 스칼렛이 고개만을 빼꼼 들었다·
“버 벅써?”
백유설은 머리띠의 끝부분을 별모 양으로 구부린 뒤 스칼렛의 머리 위 에 푹 씌웠다·
그러자 안테나라는 느낌보다는 오 히려 놀이공원에 놀러 온 중학생쯤 되는 여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오! 이번엔 뭔가 느껴지는 것 같아·”
,,아직 작동 안 했어·”
머리띠의 버튼을 조작하여 수신기 를 발동시키자 스칼렛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이름하야 ‘빙글빙글 마력 수신 머 리띠’· 이것을 즉석으로 만들기까지 에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밖에 걸 리지 않았다·
배터리 충전기도 없어서 1회용인 데다가 내구도도 낮아서 오늘 하루 만 쓰고 버리게 되겠지만 최근에 알테리샤로부터 ‘간이 연성 키트’를 받은 덕분에 이런 아이템쯤은 이제 즉석에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연성 키트는 온라인 게임을 플 레이하던 시절에도 백유설이 즐겨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상황에 맞춰 즉석으로 1회용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이점이었다·
방어력이 낮고 공격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으며 원거리 공격 능력 이 거의 없었기에 이런 부분에 의 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이제 좀 어때?”
“으음··· 대충 4클래스 정도까지 는 될 거 같은데 이 정도로 충분하 겠어?”
물론 평범하게 생각했을 때는 터 무니없이 부족하다·
백유설의 연습 상대가 되려면 지금 에 와서는 최소 7클래스 이상이 아 니라면 곤란하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괜찮아· 나는 점멸을 봉인하고 대 련할 거니까·”
“···뭐? 어째서?”
“나는 그 옛날 마력누설지체로 9클 래스의 마법사와 대적했던 전설 속 검객 하태령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해· 그의 검술과 전략에 대해 이 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가 지고 있는 이점 하나를 포기하는 수 밖에 없어·”
하태령과 동등한 시선이 되어 세상 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일까·
마력을 전혀 가지지 못한 삶?
그건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다·
거기에 더해 점멸마저 없었던 하 태령은 과연··· 마법사들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또 싸웠을까· 백유설은 그것이 너무나 도 궁금했다·
‘대체 왜 어떻게· 그런 신체로 마 법사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걸까·’
백유설은 거기서부터 시작할 생각 이었다· 하태령의 마음가짐과 전략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습득한 뒤 차근차근 점멸을 섞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는 것·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들은 이제 바라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
도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십이신월과 흑마인의 숨겨진 세력·
그리고 흑야십삼월까지·
하지만 그들을 상대하겠답시고 조 급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직 기초조차 제대로 다지 지 못한 상태니까·’
하태령의 책은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됐지만 일기장 형식으로 되는대로 쓴 것들이라 내용이 세밀하지 못했다·
백유설은 지금부터 그것을 스스로 의 힘으로 완성시켜볼 생각이었다·
“···우음 잘은 모르겠지만·”
“몰라도 괜찮아·”
“그래 응··· 그렇겠지·”
스칼렛은 백유설의 눈을 잠시 바라 보았다· 고요하지만 반짝이는 그 검 은색 눈동자· 하태령과는 성격도 외 모도 그 어떤 점도 닮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꾸만 저 미묘한 느낌 에 이끌리는 것일까·
이것은 하태령 때와는 달랐다·
백유설과 함께하고 있다 보니 서로 다른 감정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서히 깨우치기 시작했다·
‘이 감정은···
먼 과거 빛나는 재능을 갖추고서 마녀로 태어난 그녀는 강자지존 사 회에 있어서 그야말로 온 세상의 모 든 축복이란 축복은 다 받았다고 봐 도 무방했다·
힘이 곧 법이자 권력이던 그 당시 에는 마녀든 뭐든 일단 힘이 강력 한 게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스칼렛은 삶이 조금 지루 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마법의 끝에 도달해 버린 데 다가 영생에 가까운 삶을 약속받아 버리니 어찌 재미있겠는가·
재능이 없는 멍청이들이 마법을 배 우겠답시고 몸을 뒤트는 꼴이 우습 기도 했고 또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 뿐· 그 이상의 감정은 들지 않았다·
···하태령을 만나기 전까지는·
‘마력누설지체·’
참으로 이질적이고 특이한 체질이 었다· 마치 세상에 버림받은 듯한 그 의 신체는 마나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어 아예 팔다리 없는 장애인보다 도 더한 병신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의 성격은 더럽기로 유명했기에 그럴 때마다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 들고는 했으나 번번이 저지당했다·
주먹 따위로는 마법을 이기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하태령은 마법을 누구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마법진이 발동되는 그 찰나의 틈에 마나의 움직임과 흐름을 읽고서 어 떤 마법인지 분석해 내는 능력이 생 긴 것이다·
그것이 하태령이 발견한 마력누설 지체의 첫 번째 장점·
마력이 없으나 그 덕분에 마력의 움직임에 누구보다 예민하다·
마법사들은 할 수 없는 어떠한 장 점을 찾아내자 그 이후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하태령은 자신의 조막만 한··· 어 찌 보면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장점을 끊임없이 갈고닦아서 빛나는 재능을 가진 마법사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마법사들은 점점 더 하태령을 상대하기가 벅차 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마침내 맨주먹으로 마법사를
쓰러뜨리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 운 성과였다· 태어날 때부터 마법을 깨우쳐 약관의 나이에는 정점에 도 달했던 스칼렛이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흥미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가진 100에서 시작했던 자신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는 0에 서부터 시작해 1이 되어가는 하태령 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구나· 이건 동경이었어·’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격렬하게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
았다· 마녀는 이 감정을 첫사랑이라 고 착각하였다· 아니 어쩌면 첫사랑 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누군 가를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동경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그 착각으로 인해 스칼렛은 마녀로 서 천벌을 받게 되었으나·
지금도··· 그를 동경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완벽했던 내 앞에 아무 것도 없이 보잘것없던 하태령이 동 등하게 서게 되었을 때에는··· 그
보다도 자신이 더욱 더 감격했을 지 경이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가 인 생의 황금기였을지도 모른다·
하태령의 명은 짧았고 끝내 죽음 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가 사라진 뒤로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신은 무얼 했는가·
’···아무것도·’
참으로 지루한 삶이었다·
그간 큼지막한 역사의 흐름에 가끔 씩 관여하며 지내왔으나 그 어떤 것을 이뤄내도 보람은 없었다·
처음으로 9클래스를 달성했을 때?
그때도 솔직흐] ‘아 언젠가 할 것
을 지금 벌써 해버렸구나’ 하는 마 음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백유설을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정말 아주 오랜만에 기쁨이 라는 감각을 느꼈고·
그가 하태령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자신의 마음에 파고들고 있다는 사 실을 깨닫게 되スト 행복을 느꼈다·
“···백유설·”
“어·,,
“네가 진심으로 하고 있으니 나도 진심으로 할 거야·”
그녀의 말에 백유설은 씨익 웃는 다·
“그렇다면야 나야 고맙지·”
스칼렛은 그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 었다·
지팡이 계승식 때 그녀가 고른 지 팡이는 ‘메이트 메탈’이라는 중상급 의 스태프로 순간적으로 마법의 위 력을 강화해 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즉 점멸이 없는 백유설로서는 그녀 의 강력한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점 멸 없이 회피하거나 그것을 베어내 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목검?”
백유설은 테리폰 소드와 같은 마법 검이 아닌 목검을 꺼냈다·
평범한 나무에는 마력이 잘 흐르지 않아서 결코 마법을 잘라낼 정도의 예리함이 나오지 않을 터·
“이 정도는 돼야 재미있지 않겠어?”
“···맞는 말이네·”
화르륵!
스칼렛의 지팡이 끝에 불꽃이 휘감 긴다· 마법진이 완성되고 그곳에서 마법이 발동되는 여타의 마법사와는 무언가 다른 느낌·
“···영혼불·”
조용히 스칼렛이 주문을 외우는 것 과 동시에 불꽃이 발사되자 백유설은 눈빛을 반짝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두근!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임 이라는 감정에 스칼렛은 절로 미소 를 짓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유설은 한 번 도 스칼렛을 이기지 못했다·
아니 애당초 단 한 번조차 유효타
격을 먹이지 못했다·
비록 4클래스의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한다지만 그녀의 매지컬 테크닉이 9클래스 수준이었다는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점멸이 없는 백유설은··· 정말 형편없다는 말도 아까울 정도 로 약하디약했다·
하지만 먼저 지쳐 쓰러진 것은 백 유설이 아닌 스칼렛·
“헤엑 헥 나 죽어어어···
“벌써 지쳤어?”
“내 내가 계속 이겼잖아! 이제 그 만해에 에···
“평소에 체력 좀 키우지 그랬어?”
움찔 백유설의 말에 뜨끔한 스칼 렛은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천 년의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뭐 든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집구석에 봉인된 채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리던 그녀가 체력이 좋 을 리는 만무·
심지어 분신체로 왔으니 더욱 더 허약해져 3층 높이의 계단을 뛰어서 올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나 나는 마녀라 체력 따위는 전 혀 필요가 없거든?”
틀린 말은 아니다·
손가락 한 번 튕기면 모든 적이 쓰러지는데 굳이 귀찮게 체력 관리 를 할 이유가 없다·
“뭐··· 그래도 충분히 도움이 되 기는 했어·”
확실히 스칼렛의 마법은 느낌이 확 연히 달랐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백 유설에게 하태령의 전략을 알려주기 위한 마법을 사용하여 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장치로 작용되었다·
•···느낌을 알 거 같아·’
백유설은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며 방금 전의 느낌을 상기하였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천기지체]까 지 사용하여 목검에 마나를 둘렀으 나 그것은 스칼렛의 촘촘한 마법진 을 간신히 베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만약 테리폰 소드라도 들고 있었다 면 그깟 마법쯤은 천기지체를 사용 하지 않고서도 베어낼 수 있었으나 그건 장비의 능력이지 자신의 능력 이 아니다·
최고의 장비가 갖춰졌을 때 그것을 최고로 다루는 법은 사용자의 능력 이 최고로 발달되어 있을 때만 가능 하다·
‘나는··· 아직 청풍명월을 사용하
기에 역부족이다·’
실제로도 천기지체를 사용할 때만 간혹 들 수 있을 뿐이고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스칼렛을 상대하며 확실히 실감했 다·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약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파지 직!
“으윽
골똘이 명상에 잠겨서 방금 전의 전투를 되뇌는데 스칼렛의 머리띠가 정전기를 튀기며 정지해 버렸다·
1회용치고 오래 버텼다지만 드디어
기능이 끝나버린 것·
“아··· 고장 나버렸다· 이제 훈련 못 하겠네?”
스칼렛이 눈동자를 굴리며 은근슬 쩍 그리 말하자 백유설은 피식 웃었 다·
“응·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흐卜자· 덕분이 도움 많이 됐어 고맙다·”
“후후 물론···「
“오늘은 급히 만드느라 머리띠의 내구도를 신경 쓰지 못했는데 내일 은 최고의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제 대로 만들어야겠어· 무슨 일이 있어 도 안 부서지도록·”
“···엑·”
스칼렛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 졌다·
“아 안 부서진다고?”
・コ럼 더 오래 훈련할 수 있잖아·”
“머리띠의 내구도 말고 내 몸의 내 구도 먼저 생각해 주는 건 어때?”
확실히 찢어진 신문지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스칼렛의 몰골은 안쓰럽기 까지 했다·
”그래 조금은 생각해 줄게·”
“어어 어?”
그는 스칼렛에게 다가가 가볍게 번
쩍 들어서 업었다·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들고 다니기에 휴대성(?)이 용이하다·
“잠깐 뭐 하는 건데···r
“걸을 힘도 없어 보이길래 기숙사 까지 데려다주려고·”
어이가 없어진 스칼렛은 입을 헤 벌린 채 무어라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챙겨달란 건 아니었는데···
“내려줘?”
잠시 고민해 보았으나 이것도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스칼렛은 백유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서 고개를 저었다·
“가끔은 대접받는 것도 나쁘지 않 ス]· 기숙사까지 잘 모시도록 해·”
“하핫·”
가끔 느끼는 거지만 스칼렛은 분 명 마녀왕인데 저런 말을 할 때에도 품위가 있기는커녕 귀엽기만 하다·
없던 여동생이 생긴 것만 같은 느 낌에 백유설은 피식 웃으며 체육관 을 나섰다·
그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스칼렛이 그 잠깐을 버티
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는 것·
기숙사에 도착한 백유설은 막막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어 새근새근 숨소 리를 내고 있는데 굳이 깨우고 싶 지는 않았기 때문·
···이걸 여자 기숙사에 갖다 놔 야 한단 말이지·’
막막하지만 별수 있나·
지금까지 이것보다도 더 막막한 상 황을 잘 헤쳐나왔던 백유설에게 있 어서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