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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뒤바뀐 이야기(2)
···딴생각을 하느라 수업에 집중 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애당초 과 거의 시간대에서 수업에 집중할 필 요가 있을까?
풀레임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책 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긴··· 대체 어디야·’
분명히 그녀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을 시도했고 이렇게 성공적으로 안 착했다· 그런데 왜 과거의 시간대에 백유설이 존재하지 않는가?
‘설마··· 시간여행이라는 게 정말 로 이런 식이었어?’
이곳으로 오면서 시간학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던 에이젤이 시간여행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을 줄줄이 늘어 놓았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저희가 현재 살아가는 시간대를 A2라고 쳐봅시 다· 그리고 저희가 여태 지나온 과
거의 시간은 Al에요·’
에이젤의 말에 따르면 시간의 흐 름은 이러하다고 한다·
과거 (A1)-현재 (A2) -미래 (A3)
거기에서 에이젤이 자신이 이해하 고 있는 이론을 말했다·
‘하지만 시간여행은 달라요· A2에 서 과거로 이동한다고 해도 A1가 아니라 B1 로 가게 된다는 거죠·’
‘Bl···? 다른 세계?’
,네· 저희가 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 이를테면 평행우주라고 도 할 수 있죠·’
运!•지만 우리는 과거를 엿보다가 시간여행을 했던 백유설을 만났잖 아·’
‘그렇죠· 저도 그래서 의문이었는 데 생각을 해봤거든요·’
우리가 과거에서 봤던 백유설은 사 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백유설 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또 다른 백 유설’이다· ···라는 느낌의 가설·
물론 우리 세계의 백유설도 시간여 행을 했을 것이다· 다만 그 역시 우리 세계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다 녀왔을 가능성이 높다·
‘너무 비약적인데···
‘그렇죠· 어디까지나 가설이에요· 증명되지 않았으니까요·’
에이젤도 그렇게 심각한 느낌으로 말하지는 않았고 풀레임도 믿지는 않았다· 시간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차원여행’이 된다니·
너무 복잡해지지 않는가?
그런데·
“백유설? 처음 들어보는데·”
“누구야 그게?”
“모른다니까·”
“풀레임 양 왜 그러시죠? 어딘가 아프신 게 아닌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백유설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흔적 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가 있느 냔 말이다·
口 학년 전교생 1140 명]
연금술 수업이 끝난 뒤 학급 게시 판으로 서둘러 달려간 풀레임은 원 래의 전교생 1,141 명에서 한 명이 줄어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확신 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는 백유설이 없구나···
즉 그녀는 백유설이 없는 또다른 세계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고 말 았다는 의미·
···침착해· 돌아가면 되잖아·’
시간여행이 실패해도 괜찮다·
언제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끔 주문을 준비해 뒀으니까·
어차피 에이젤과 홍비연이 함께 있 어야 주문을 외울 수 있겠지만 우선 은 생각을 정리하려던 풀레임은 순 간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 라···?’
주문이·
뭐였더라?
‘왜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시간여행을 하기 직전에 홍비연 에이젤과 함께 모여서 주문을 외우 던 것까지는 기억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직후 우리 들의 입모양이 ‘회색’으로 칠해져 있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절망 스러웠으나 애써 정신을 차렸다·
’···내가 아니더라도 홍비연과 에 이젤이 기억하고 있을 거야·’
덜덜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쥐고서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이야· 혼자가 아니라서·’
본래는 그녀들 없이 혼자서 시간여 행을 시도하려고 했었다·
우연찮게도 그 둘과 마주쳐서 함께하 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란 말인가·
‘우선은 에이젤을··· 찾아가야겠어·’
* * *
“누구시죠?”
“·어?”
에이젤! 간신히 찾았잖아!
그렇게 외치는 순간 들려오는 싸늘 한 대답· 2학년의 에이젤과는 상당 히 다른 분위기의 1학년 에이젤은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저는 당신같은 사람 모릅니다· 가 세요·”
그러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뒤 돌아 복도를 걸어가려는 그녀를 황 급히 붙잡았다·
“자 잠깐만! 나야 풀레임· 우리 같 이 이곳에··· 왔잖아· 정말 기억 안 나? 연기하는 거라면 재미없어····”
“제발 좀 놓으세요· 시간 없어 죽 겠는데 진짜····”
에이젤은 풀레임의 팔을 홱 뿌리치 고서 말한다·
“제 가문의 옛 영광을 기억하고서 친 한 척을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꽝을
고르셨네요· 혹은 놀리려고 접근하셨 나요? 뒤에서 지금쯤 당신의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 지만 저에게는 통하지 않아요·”
매몰차게 말한 뒤 에이젤은 저 멀 리 사라졌다·
확실하게 그어진 마음의 벽·
모두에게 미움받았으나 마음에 커 다란 벽을 세워서 스스로를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으로 버티고 버텨온 1 학년의 그 에이젤····
틀림없이 그녀였다·
‘이럴 수가·’
풀레임은 떨리는 눈으로 에이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기억못하고 있어···
과거를 통해 이곳으로 그녀들과 함 께 온 것은 분명히 틀림없다·
그런데 에이젤이 원래의 세계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설마 홍비연도?’
그녀는 서둘러 복도를 뛰어서 홍비 연을 찾아나섰다· 그리 어렵지는 않 았다· 수업이 끝난 홍비연은 언제나 동아리 부실에 돌아갔으니까·
[붉은 매 동아리]
아돌레비트 왕국의 귀족 자재들이 모여 있는 이 동아리는 홍비연의 안 식처나 다름없는 곳이지만 그녀는 이곳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백유설이 바꾼 미래에서는 아주 자기 집 안방마냥 편하게 드러누워 있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지만·
풀레임도 자주 놀러와서 고급 쇼파 의 한 자리를 매번 차지하고 있었기 에 위치는 익숙하다·
다만·
분위기는 익숙하지 않았다·
“···공주님을 만나겠다구요?”
“어 응· 그래서 그런데 좀 들어가 봐도 될까?”
동아리에 노크를 하니 홍비연 대 신 웬 1학년 동급생 소녀 두 명이 나와서 반겨준다· 아마도 홍비연을 졸졸 따라다니는 소녀들이리라·
소녀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한 명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니 소녀가 말 한다·
“평민을 만날 이유는 없으니 돌아 가랍니다·”
“어··· 내가 풀레임이라고는 말 했어?”
“안 했습니다만 공주님이 평민의 이름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군요·”
“하 한 번만 말해주면 안 될까? 부탁이야· 공주님에게 꼭 전하고 싶 은 말이 있어서 그래·”
마지못해 그녀는 다시 안으로 들어 갔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때?”
“전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지? 그렇지?”
풀레임은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 로 간절히 말했으나·
“공주님께서 전하십니다· 귀찮게 굴지 말고 꺼지라고·”
“아····”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울 뿐이었다·
* * ♦
오후 강의가 완전히 끝난 뒤 저녁 을 먹는 둥 마는 둥 챙겨먹고서 풀 레임은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 풀 썩 드러누웠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을까·
주문을 잊어버리다니·
회색으로 가려진 기억 속에서 아무 리 떠올리려 애써보아도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다·
‘설마 영영 여기서 살아야 되는 건 아니겠지···?’
이곳은 거짓된 세계가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다· 이곳에서 살아간다 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것이 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녀가 아는 세
계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백유설도 없고 여태 그녀가 맺어 왔던 수많은 인연도 없다·
무엇보다도 훙비연과 에이젤·
그 둘이 나에게 싸늘하게 대하는 것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녀들에게 기억이 없다는 것 정도 는 어떻게든 노력해서 납득할 수 있 었다· 기억이 없는 그녀들이 자신에 게 싸늘하게 대하는 것도··· 당연 하다· 그 둘은 타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어버리고서 철저하게 고 립된 채로 살아왔으니까·
어찌 보면 나 같은 이상한 사람이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는 말이다·
그런데·
다 이해하는데·
‘···아파·’
나를 보던 에이젤의 차가운 시선이 인간 취급도 안 해주며 얼굴조차 내 비치지 않았던 흥비연의 반응이·
모두 칼날이 되어 그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만약 정말로 여기에서 계속 살아 가게 된다면····’
그녀들과의 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
까? 여태까지 해왔던 그 모든 순간 의 추억을 다시금 만들어가는 게 가 능할까?
그녀들에게는 처음 겪지만 설레이 고 즐거운 일·
···그러나 나에게는 이미 한 번씩 겪었던 그 모든 순간을·
다시 반복하는 게 과연····
‘아·’
문득 백유설이 떠올랐다·
그러고서는 허탈감에 웃음이 나왔 다· 스텔라에 입학했던 첫날 그녀는 백유설의 존재를 의심하고 경계했다·
그녀의 기억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지팡이 계승식 날이었다·
그날 백유설은 처음으로 나에게 다 가와 말을 걸었다·
‘너는 무슨 지팡이 고르려고?’
그때 어떻게 대답했더라·
‘네가 그게 왜 궁금해?’
그는 의심스러웠으니까·
원작에 존재하지도 않던 인물이었 으니까 경계하는 게 당연했다·
‘어? 아니 그냥 혼자 헤매고 있길 래 도와주려고·’
‘신경 끄고 네 지팡이나 고르지?’
‘지팡이 고르는 거 도와주고 싶어 서 그런 건데···
‘참견 말고 네 지팡이나 골라·’
그래서 그렇게 차갑게 굴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었고 백유설과 친한 사이가 된 훗날에도 때때로 떠
올리기는 했으나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그 상황을 직접 당해보니·
그제야 백유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내 차가운 말을 듣고서··· 백유설은 얼마나 아팠을까·
나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 과 인연을 맺어왔을 텐데 모든 게 리셋되어 백지로 돌아갔을 것이다·
에이젤도 홍비연도 알테리샤도
그 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 모두·
백유설을 처음 보는 사람으로 대했 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상황을 수백 수천 번이 넘도록 반복했다·
‘미쳤어·’
고작 한 번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견뎌온 것인가·
어쩌면 그의 가슴은 이미 찢어질 수도 없이 잔뜩 난도질당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돌아가고 싶어·’
스스로의 운명을 찾겠답시고 시간 여행을 했던 주제에 과거의 시간대 에 영영 갇혀서 돌아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
베개에 처박고 있던 얼굴을 들었 다·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 있지만 침으로 추정된다· 그럴 것이다·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해·’
회색으로 물들어버린 기억 속에서 주 문을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야만 한다·
‘홍비연과 에이젤도 나처럼 기억을
잃은 거야· 틀림없어·’
나는 주문의 일부만을 잃어버렸지 만 그녀들은 미래에서의 기억을 통 째로 잃었다·
즉 그녀들에게 기억을 되찾아줄 수만 있다면····
‘돌아갈 수 있어·’
기억을 되찾는 방법·
너무나 막연해서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풀레임은 자신이 해야 할 일 을 이미 정해두었다·
‘미래에서 벌어질 참사들을 어떻 게든 막아보는 거야·’
백유설이 그러했던 것처럼·
즉시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날짜 를 확인했다·
‘곧 메이젠 티렌 교수의 연금술 실 험이 있을 테니···
그날 에이젤에게 닥치는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 저 할 일은 아르카니움 어딘가에 존재하는 낡은 서점에 찾아가서 ‘마 엘라의 마공학 필기노트,를 에이젤 보다 먼저 선점하는 것·
즉시 외출 준비를 끝마친 풀레임은 밤늦은 시각이었지만 외출을 강행했
쉴 시간은 없다· 궁상떨겠답시고 침대에 누워있던 시간조차 아깝다·
‘나는 백유설이 될 수 없어·’
그러니 백유설처럼 하기 위해서 는··· 그보다도 더 바쁘게 움직여 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