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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빙백산맥(11)
역시 이 세상에 쉽게 해결되는 일 은 아무것도 없었다·
“끄으으응〜!”
“좀 더 힘줘봐요·”
“주 주고 있어!”
백유설은 팔짱을 낀 채로 거리를
조금 두고서 페르소나 게이트의 장
막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천황정팔 월을 지켜보았다·
핏줄도 없는 주제에 얼굴이 시뻘겋 게 물들 때까지 힘을 주고 있는 천 황정팔월이었으나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보아도 페르소나의 장막에는 아 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방법도 소용이 없는 걸까요?”
꽃서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천황 정팔월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제아무리 수백 년 만에 마 음을 굳게 다잡고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해보겠답시고 결심했다지 만 의지와 의욕만으로 세상만사 모 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뭐 사실 예상했습니다·”
백유설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 였다· 이미 천황정팔월에게는 남아 있는 기운이 거의 없기도 하고 심지 어 회공시월에게 당해서 색깔 자체 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결계에 기운을 주입했다면 그건 그 거대로 말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죠···r
“누님도 같이 도와야 할 거 같은데 요·”
“네에? 저는 세계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거기까지 말하려던 꽃서린은 입을 다물었다·
백유설은 마나가 없는 신체로 태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해냈 는데 자신은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 서 풍부한 자연의 마나를 지니고 태 어났음에도 세계수가 없으면 아무것 도 못하는 신세라니·
새삼 그의 앞에 서 있는 게 부끄 러워져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백유설은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
다·
“아무래도 저는 마나가 없다 보니 결계 장막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거든요· 저와는 달리 누님은 세계 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풍부한 마나 를 지니고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도···:
“세계수가 없어서 걱정이라면 그건 염려 안 해도 좋습니다·”
“네에?!”
속마음을 정곡으로 찔린 꽃서린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서 당황하였다·
그런 꽃서린을 보며 백유설은 씨익
웃었다·
“누님은 세계수가 없더라도 충분히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무언가 충격을 받은 듯 꽃서린이 입술을 살짝 벌리고서 멍하니 서 있 자 백유설은 박수를 짝짝 쳐서 두 여인을 불러 보았다·
“헤엑 헥· 미안! 아무래도 안 되겠 어···! 어떻게 노력해도 아무런 힘 이 나오지 않아!”
“예상했습니다·”
“···에?”
“작전을 변경해 보죠· 사실 페르소 나 게이트라는 게 단순무식하게 마 나를 주입한다고 결계를 부술 수 있 었으면 지금까지 모든 마법사들이 그렇게 해결했겠죠?”
“뭐 이 너 너어··· 그럼 설마 다 알고서 일부러···!”
“일부러라뇨· 진짜 장막에 마나를 쏟아부었더니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지 누가 압니까? 무려 십이신월인데 말이죠·”
“마 맞아· 나는 십이신월이니까····”
“근데 아무런 일도 없었네요·”
“이···! 야! 너 진짜 놀리려고 그러
는 거지?”
“그럴 리가요· 제가 얼마나 진지하 게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은지는 당 신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어··· 그건 그렇지···
그녀는 비록 연홍춘삼월과는 달리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자애롭게 포용하고 치유하는 능력은 없어도 최소한 상대방이 진심인지 아닌지 정도는 가늠하는 게 가능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정신장악계 능력 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천황정팔월 이니 그 정도도 못하면 섭섭하다·
“백령고원 요새로 돌아갑시다·”
백유설은 두 여인을 이끌고서 한참 을 걸어 페르소나 게이트의 중심부 에 위치한 백령고원 요새로 돌아왔 다· 여전히 거리에는 미친 듯이 웃 어대는 광인들이 흐느적흐느적 거닐 며 돌아다녔고 그 사이로 웃음꽃이 만개한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을 보내 고 있었다·
몇몇 광인들을 제외하고 보자면 참 으로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근심 걱 정 하나도 없이 매일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삶·
과연 낙원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고작 페르소나 게이트 주제에 그렇 게 완성도 있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곳에는 허점이 있다·
억지로 행복을 뒤집어씌우고 강제 로 웃게 만드는 거대한 족쇄가 사람 들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이곳에는 감정을 다루는 데에 최고···까지는 아니고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천황정팔월이 함께 있지 않 은가?
“2 인자??
“감정을 다스리는 건 연홍춘삼월님
이 최고니까요·”
“나도 잘하는데···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건 잘 하시죠· 인정합니다·”
“그치?”
“그마저도 지금은 못하지만·”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꽃서 린은 그제야 백유설이 말했던 의미 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감정····’
연홍춘삼월의 가호를 진하게 이어 받았던 꽃서린은 감정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비록 지금은 대부분의 힘을 백유설에게 넘겨주었고 남아있 는 능력이라고 해봐야 약화된 [연정 흡인지체]밖에 없지만 상관없다·
아주 오랜 세월 연홍춘삼월의 능력 을 지닌 채 살아왔기에 능력이 없어 도 감정을 다스리는 것쯤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하면 돼?”
“사람들을 깨워봅시다·”
“···뭐어? 너 제정신이야?”
“제정신 맞고 농담 아닙니다·”
“아 아니· 그게 아무리 그래도··· 후우 그래· 만약 깨운다 쳐· 그러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제가 원했던 상황이 현실에 그대 로 재현되겠죠·”
천황정팔월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 해가 가지 않았다· 마지못해 백유설 은 한숨을 내쉬고서 설명했다·
“페르소나 게이트는 이 공간에 속 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공간 을 제어하고 있잖아요· 아마 정신 지배에 꽤 많은 힘을 썼을 겁니다· 그런데 그 힘을 일순간 차단해 버 리면 어떻게 될까요?”
«··丁
“···갈 곳이 없어진 에너지는 다 른 방향으로 향하겠죠· 아마도 저 결계의 장막 같은 곳으로·”
“아하?”
“하지만 이곳은 평범한 페르소나 게이트가 아닙니다· 현실과 이면 세 계를 구분 짓는 경계의 크기에는 한 계가 있게 마련· 그곳으로 에너지가 몰리게 되면··· 볼 것도 없이 팽창 해 버리겠죠?”
그렇게 되면 백유설이 원했던 상황 이 그대로 완성된다·
“그···렇구나······r
그제야 백유설의 계획을 이해한 천
황정팔월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어·’
솔직히 여태까지는 백유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구 체적인 계획도 설명해 주지 않아서 무얼 해야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 다· 그래서 솔직히 백유설이 하자는 일을 반신반의하면서 제대로 따르는 둥 마는 둥 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회공시월의 계획을 번번이 방해하 던 그 백유설이 정말 맞구나 싶을 정도로 그는 ‘현실과 동화된 페르
소나 게이트’라는 낯선 마법을 보고 서도 철저하게 분석해 낸 뒤 믿고 따를 만한 해결법을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제어하 라고··?”
그건 불가능하다·
수십 년 동안 힘을 끌어모으고 버 티고 버텨야 간신히 어린아이 한 명 을 세뇌시키는 정도가 천황정팔월의 한계이다·
어째서 자신의 능력은 이렇게나 약 하게 만들었는지 수백 년 동안이나 시조 마법사를 원망하지 않았는가·
“나 난 못 해···
“아뇨· 할 수 있습니다·”
백유설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듯 이 말을 툭 내던졌다·
“십이신월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뭐 그렇게 겁 이 많습니까?”
“뭐···?”
“공간과 시간을 제어하는 십이신월 을 창조한 것도 다름아닌 인간입니 다· 그런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능 력을 지닌 사람은 당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구요·”
“그건 그렇지···
“당신의 능력은 세상에서 가장 위 험하고 무섭고 강력합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이 그 능력을 좋은 곳에 사용했으면 좋겠네요·”
천황정팔월은 고개를 숙였다· 기다 리다 지친 백유설은 또 뭐가 문제냐 고 표정을 찡그리고서 말하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자 당황하고 말았다·
“ O·흐·”
—1 •
“뭐 뭡니까?”
“어흐흑··· 아무것도··· 아니야· 한번 해볼게··· 흑····”
«··?,,
이미 훌쩍거리는 소리가 온 동네방 네 퍼지고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울 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은 것인지 얼굴을 보이지 않고서 뒤돌아 터벅터벅 걸었다·
‘이게 뭐야아···
그녀의 머리는 지금 잔뜩 뜨거워진 상태였다· 어린 인간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데에서 나오는 창피함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했던 자의 유일한 대적자가 자신을 인정
해주는 데에서 나오는 감격과 뿌듯 함 그러면서도 애써 그것을 무시하 려는 연약한 자존심·
그러나 그녀의 나약한 자존감은 백 유설의 그 따뜻한 한마디를 단 하나 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받아들여서 가슴으로 수용해 버리고 말았다·
쿵쾅쿵쾅!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 고 있다는 사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심장이 뛰는 듯하다·
‘그래 이 정도도 못 하면 십이신 월이 아니지!’
눈물을 옷소매로 닦고서 주먹을 불 끈 쥔 천황정팔월은 고개를 들어 올
렸다· 가장 높은 첨탑· 저곳은 언제 나 설파람 대공이 가장 애용하던 장 소였으나 이제는 그녀가 마음을 쉬 고 싶을 때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저기에서··· 내 능력을 최대한 넓게 퍼뜨리는 거야·’
무언가를 결심한 듯 천황정팔월이 첨탑을 향해 나아가자 그 모습을 뒤 에서 지켜보던 백유설이 말했다·
“꽃서린 누님· 이제부터 누님은 가 장 힘든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제 가요···r
“예· 주변에 광인들 보이죠?”
꽃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정체는 일전에 백유설이 상 대했던 흰색 아지랑이의 괴생명체·
하나하나가 7리스크에 맞먹는 무시 무시한 놈들이지만 지금은 그저 웃 는 것밖에 못 하는 바보가 되었다·
“저들을 모조리 정신계로 제압한 9 클래스의 흑마법사의 능력은 대단하 지만··· 아마 천황정팔월의 능력이 그 마법사보다 강할 겁니다· 순식간 에 모든 정신 장악을 풀어버릴 거예 요·”
“···그렇게 둘 수는 없어요·”
천황정팔월과는 달리 꽃서린은 일 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천황정팔월님께서 이 공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부여할 때··· 제가 저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아보 겠어요·”
페르소나 게이트 내에 존재하는 광 인의 숫자만 언뜻 보아도 최소 수십 만 이상·
그들을 모두 억제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필요없다·
십이신월의 능력조차 없이 번번찮 은 마법조차 배운 적도 없이·
아무런 능력도 기술도 힘도 마법도 없는 그녀였지만·
최소한 단 하나·
감정을 다스리는 것만큼은 자신 있 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백유설의 앞에 서 있었기에 더더욱 배가 되었다·
지금의 백유설은 페르소나 게이트 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자신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겨주었 으니 여태 그에게 받았던 사랑과 도 움만큼 그대로 보답할 차례다·
‘반드시 해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