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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빙백산맥(10)
마법의 본고장 도시 카멜른·
이곳은 마법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을 수백 년 전에 내려놓았으나 그 위용과 권력은 여전하다·
왜냐 아주 특별한 모임이 하나 있 었기 때문·
‘마법원로회·’
마법에 너무나도 깊게 빠져 버려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게 된 늙 은이들의 이 모임은 수년에 한 번 전원이 모일까 말까 할 정도로 정기 소집이 드물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 에 그러한 일이 잦아졌다·
이미 속세의 일에 손을 뗀 늙은이 들이지만 흑마인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데다가 ‘십이신월까지 움직이 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원로회의 회장이 자 9클래스의 마법사 ‘사엘 리’는 세간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기
로 유명했는데 최근 며칠 그가 원 로회장에 눌러앉아서 떠나가질 않고 있었다·
“조금은 쉬는 게 어떻겠습니다·”
“허허 이미 충분히 쉬었スI· 아랫것 들이 불편해하나?”
**그래도 눈치는 있군요·”
“당연하지·”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 여타의 9클 래스 마법사와는 달리 가슴까지 수 염을 기른 노인 마법사 사엘 리·
그는 고깔모자를 슬쩍 올리며 맞은 편에 앉은 상대를 향해 눈을 빛냈
“그래·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오랜만 이군 아류문 블르슌·”
“12년 정도 됐나요· 그렇게 오래되 지도 않았습니다·”
“자네는 시간 감각이 남다르군그래·”
“제가 당신보다 오래 살았으니까요·”
20대의 청년과 90대의 노인이 나 눌만한 대화는 아니었으나 실제로 아류문 블르슌이 사엘 리보다 오래 살기는 했다·
정확히 하루 먼저 태어났으니까·
“···나이를 따지는 건 됐고· 그래 서 알아보았나?”
사엘 리가 눈빛을 내리깔며 말하자 아류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요새 혹마인 쪽도 아주 난리랍니다· 법규도 없고 도덕도 없 는 놈들이 뭔 ‘왕위 쟁탈전에 그렇 게까지 진심인지·”
“그곳에서는 왕이 곧 법이니까· 법 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이겠지·”
“저들끼리 다투면 뭐 저도 그러려 니 하겠습니다만··· 그 문제가 우리 한테도 영향이 끼치니 문제겠지요·”
“흑마탑이 움직였나?”
“뭐 한번 보시죠·”
아류문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 속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 는 마을 하나가 있었는데 갑작스레 허공이 비틀리며 공간이 장악되더니 난데없이 소나기가 멎어버리고서 폭 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기는··· 우렌 지역이로군·”
“예· 일 년 중 절반 이상이 소나기 만 쏟아지는 그 지역이죠· 근데 저 날 이후로 저 마을의 계절만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페르소나 게이트에 잠식당한 것인가?”
“그렇죠· 이제 저곳은 겨울이 아닌 데도 일년 내내 폭설이 쏟아지는 기 형적인 마을이 되었습니다·”
“현실이 오염되다니··· 협회는 그 동안 대체 무얼 했나?”
페르소나 게이트가 감지되면 중앙 마법사 협회에서 즉각적으로 마법사 를 파견하여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임무가 여러 기관에게 나누어지게 되는데 마탑이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고는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전혀 몰랐 습니다· 페르소나 게이트가 현실을 오염시키기 직전까지 저게 발생했다
는 사실조차··· 감지되지 않았죠·”
“···공간의 비틀림을 전혀 감지하 지 못했다고?”
그제야 사엘 리의 표정이 굳었다·
페르소나 게이트는 굉장히 위험하 다·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현실이 이면 세계의 환경으로 완전히 물들 어버리기 때문·
단순히 우렌 마을처럼 계절만 바뀌 는 경우라면 상관없겠지만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치명적인 환경으로 바뀌 어 주변 지형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면··· 아주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또다시 대륙 절개를 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 울일 수는 없겠나?”
대륙 절개라는 단어에 아류문은 골 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서 짙은 다 크서클을 매만졌다·
안 그래도 병세 때문에 아파 죽겠 는데 약을 억지로 먹어가면서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앞의 하 루 어린 노인네가 알고는 있을까·
“나도 대륙 절개는 하고 싶지 않아· 우리들의 터전을 억지로 잘라내서 버리는 행위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전에 페르소나 게이트로 인하여
중앙 대륙의 반도 일부가 완전히 오 염된 적이 있다·
그곳의 탁한 기운은 주변의 모든 생명을 정지시키는 독한 마나를 품 고 있었는데 당시에 그것을 정화할 기술이 도저히 나오지 않아 마법사 들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륙을 아예 잘라서 소멸시켜 버리 는 것·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페르소나에 오염될 때마 다 살아갈 땅을 조금씩 소멸시키면 먼 미래에는 이 대륙에 바다밖에 남 지 않을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 페르소나 게 이트를 99%의 적중률로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흑마인 놈들의 기술도 더욱 발전 했다는 뜻이겠지·”
“예· 흑마신교주인지 뭔지 하는 이 상한 놈이 나타난 이후로 기술이 이 상하리만치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 다·”
흑마신교주· 그가 마법계에 끼친 영향은 굉장히 크다·
흑마력을 아예 숨기고서 흑마인이 마법사 사이에 숨어들 수 있도록 만 들었고 페르소나 게이트를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크기만큼 열어버리는 기술마저도 개발했으니까·
거기에 더불어 이제는 마법사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서 게이트를 열어 버린다니·
“알면 알수록 두려운 자로군·”
“더 무서운 건 우리가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죠·”
흑마신교주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심지어 그가 어떤 마법을 구사하는지 어떻게 어디에서 마법을 연구하는지도····
아무것도 모른다·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원로회장 문밖에서 인 기척이 들려왔다· 아류문이 손가락 을 튕기자 눈앞에 떠 있던 마을의 홀로그램이 바뀌며 어떤 마법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어? 아 협회장님!
갑작스레 홀로그램으로 영상이 연 결되자 마법사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잠시 뒤·
심상치 않은 내용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엘 리와 아류문의 표정이 차
갑게 굳어버렸다·
“초대형 페르소나가··· 현실에 간 섭하기 시작했다고?”
-그렇습니다····
“이런 젠장! 위치는 어디지?”
-북부 최단부의··· 빙백산맥입니다·
“빙 백산맥이라고?”
그곳이라면 최강의 기사 중 한 명 인 설파람 대공이 수호하고 있다·
그가 요새의 성주가 된 이후로 몇 십 년간 단 한 번도 중앙 협회에 경보가 들려오지 않아서 완전히 안 심하고 있었거늘 갑자기 이런 초대
형 사건이 터져 버리다니·
아류문은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흑마인 놈들 대체 뭘 하려는 거 지?”
페르소나 게이트를 자꾸만 만들어 대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자꾸만 저러는 것일까·
“이봐 사엘··· 허·”
그는 다급히 사엘 리에게 지시를 내 리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로브자락을 휘날리며 저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휘이이잉···!!
분명 굳건하게 닫혀 있던 지붕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다· 주문 도 없고 기척도 없이 발동된 신비로 운 마법·
“저 양반이··· 자기는 건강하다고 아주 활동적이군· 우리는 비행정으 로 이동한다· 워프 흘 게이트를 준 비하라고 지시해 둬·”
■•알겠습니다!
아류문은 서둘러 겉옷을 걸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험도 측정 불가의 초거대 페르소 나 게이트의 현실 동기하·
‘어떻게든 반드시 막아야 해·’
서둘러 원로회장을 나서서 비행정
으로 향하려는데 그를 뒤쫓아서 따 라붙은 마법사들이 뒤이어 보고를 올렸다·
“협회장님· 이건 별로 상관없는 소 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상관없는 소식은 없어· 전부 말해·”
여]· 극비리에 감춰져 있기는 하나 현재 엘프의 왕 꽃서린과 스텔라의 백유설 학생이 북부 빙백산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스텔라의 교장 엘 트먼 엘트윈에게서 들어온 소식이니 확실합니다·”
“그 둘이? 무슨 일인데?”
“설파람 대공과 사회적으로 알리지
않고 몰래 만날 필요가 있었다더군 요·”
“···그런데 그걸 왜 우리한테 말 한 거지? 비밀이라면서·”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흐음····”
발은 바삐 걷는 와중에도 아류문의 머릿속은 초고속으로 회전하였다·
‘흑마쟁탈전 페르소나 게이트 북 부 설파람 대공 꽃서린 십이신월 엘트먼 백유설·’
수많은 키워드가 어지럽게 떠오르 며 하나로 차곡차곡 조합되며 그에 게 수십만 가지의 가능성이 제시되
었다·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내용 의 가능성과 꽤 근거있는 그럴싸한 가능성까지·
그중에서 몇 가지의 가능성을 추려 낸 아류문은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갑작스레 터진 초대형 페르소나의 현실 동기화가 발생한 장소에 백유 설이라····”
“왜 그러십니까?”
“아니 별거 아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냥 일이 쉽게 해결될 수도 있 을 것 같아서 말이지·”
* * *
대륙 북서쪽 바랑카 절벽·
끝없이 펼쳐진 바랑카 해안의 상공 수십 키로미터 높이에서·
세 명의 소녀가 각자 붉은색 푸른 색 흰색의 날개를 펼친 채 비행하 고 있었다·
단순한 비행 마법과는 달리 그녀들 은 특이하게도 머리카락이 흩날리지 도 않았고 바람과 중력의 영향을 거 의 받지 않았는데 덕분에 대화를 나
누는 데에도 큰 지장이 없었다·
“···저 꼭대기까지 가야 하는 거야?”
홍비연이 묻자 풀레임은 고개를 끄 덕였다·
“아마도·”
구름조차 뚫을 정도로 높게 뻗어 있는 거대한 황금색의 기둥·
바다 한가운데에 떡하니 놓인 이 황금 기둥을 어째서 여태 아무도 발 견하지 못했을까·
인지 저하 마법을 둘러놓았을까?
아니 인지 저하 마법에도 한계는 명확하다· 이렇게까지 커다란 물체
를 숨길 수는 없다·
아마도··· 공간과 시간 그 자체를 격리시켜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 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구름 위까지 생으로 비 행해야 한다니····”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결코 시도조 차 못할 것이다· 평범한 비행 마법 으로는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는 순 간 풍속을 이겨낼 수 없어서 그대로 휘말리거나 추락할 테니까·
“응· 그리고 단순히 비행만이 필요 한 게 아니야· 미묘하게 결계가 쳐 져 있어·”
“아··· 정말이네요·”
화악
마침내는 구름을 꿰뚫고 드높은 상 공으로 진입한 순간 소녀들은 미묘 하게 자신들을 거부하려다 멈춰 버 린 결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자격 없는 자들이 왔다면 거부하여 튕겨냈을 터·
“어째서 저희는 들여보내 준 걸까요?”
“···글쎄· 아마도 너 때문이겠지·”
“에 저요?”
어리둥절하여 되묻는 에이젤을 향 해 풀레임은 옅게 웃었다·
“너는 주인공이었거든·”
···이제는 아닐수도 있겠지만·
“경치 하나는 끝내주네·”
그들의 의미심장한 대화에도 홍비 연은 별 관심도 없다는 듯 건조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응 그러게·”
그녀의 말마따나 과연 아름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황금색 기둥의 꼭대기에는 거대한 황금 궁전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는 데 자세히 보니 황금 궁전이 아니라 새하얀 거울로 만들어진 궁전에 태
양 빛이 반사되어 황금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저곳이····”
“한때는 시간의 십이신월을 섬겼던 신전· 은색의 신월교가 모여서 시간 의 힘으로 세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신전 ‘시간의 성좌야·”
“시 시간의 힘으로 세웠다구요?”
믿을 수 없는 말에 에이젤은 얼떨 떨한 눈으로 성을 바라보았다·
“뭐어 사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그들은 시간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어· 은세십일월님의 능력을 일 부나마 받았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다룬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해·”
“그런데도 이런 어마어마한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건가요···?”
“그게 시간의 신비로움이겠지·”
“쓸데없는 잡설은 됐어·”
홍비연은 다시금 두통이 몰려오는 것인지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시간 의 성좌를 향해 날개를 펼쳐서 날아 가 버렸다·
“가 같이 가요!”
에이젤 역시 푸른 날개를 펼쳐서 홍비연을 쫓았으나 풀레임은 그 자 리에 남아서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맞는 선택이겠지?’
사실 원작 로판 ‘공녀 사랑 1-1_’ 에서 에이젤은 이 시간 여행을 통해 아주 치명적인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자신이 함께 하고 있기에 에 이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두지 는 않겠지만 걱정되는 부분은 그녀 가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 그곳으로 향한다 는 또 다른 변수가 문제였다·
‘정말로 내가 시간 여행을 해도 괜찮은 거겠지?’
눈을 질끈 감고 고민해 보았으나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래 결심했잖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의 운명 을 스스로 알아내겠다고·
’···그러니까 가는 거야·’
과거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