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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빙백산맥(7)
백유설의 우려와는 다르게 빙결정 폐광을 통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 웠다· 폐광에 남아 있는 몬스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흰색 아지랑이 때문이겠지·’
과연 이것을 좋아해도 되는 걸까·
7리스크의 괴수가 어디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낙엽도 아니고 이렇게 흔하게 등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일종의 작은 재해로 분류 되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 개체 수가 반드시 적을 필요가 있다·
처음 한 마리가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래 저런 게 있을 수 있지’ 라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개체의 7리스크 괴수 가 두 마리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결코 쉽사리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 었다·
‘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 고 있는 거지?’
이제는 원작 게임의 지식조차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믿을 만하던 직박구리 안경조차도 그 괴 생명체의 분석에는 실패했다·
마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처 럼····
“저쪽이 나가는 길이에요·”
백유설은 애써 심각한 표정을 숨기 고서 밝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이미 꽃서린도 알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굴러가는 상황이 뭔 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밖에 나가면 추워지니 로브를 다 시 입죠·”
“네·,,
상황이 어떻든 일단은 목적지인 백 령고원 요새에 가서 설파람 대공을 만나야 한다·
로브를 머리에 뒤집어쓴 뒤 눈앞 에 보이는 빙결정 폐광의 출구를 향 해 한 발자국 내디딘 백유설은 곧이 어 몰아치는 혹한의 추위에 대비하 였다·
···그리고·
[페르소나 게이트 ‘만개한 생명의 백 령고원에 진입하였습니다·]
따스하게 쏟아지는 햇살과 선선하 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어··?”
백유설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놀 람을 표출하고 말았다· 그것은 뒤이 어 따라온 꽃서린 역시 마찬가지·
“이게 어떻게 된··· 거죠···T
365일 눈보라가 몰아치는 극한의 환경 백청산맥은 생명이 살아가기 에 적절하지 않은 장소였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빙결정 폐광에서 빠져나온 뒤 보이 는 세상은··· 온통 꽃밭이었다·
분홍색 초록색으로 알록달록 피어 난 꽃들과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
저 멀리 펼쳐진 숲과 들판은 따스 한 햇살을 받아 청명하게 빛났고 흐 르는 개울 근처에는 야생 동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꽃밭 위로 날아다니는 나비와 창공 을 질주하는 눈부신 새·
백유설이 한 걸음 나아가려고 하자 꽃서린이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여긴··· 가짜예요·”
“···그렇겠죠·”
백유설은 허공에 떠 있는 [페르소 나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분명 페르소나 게이트 입구를 통과 한 적도 없을 터인데 어느 순간 그 에게 이면 세계가 씌워졌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인데·’
페르소나 게이트가 특정 누군가를 강제로 가둘 수가 있던가?
본 적은 없지만 가능은 할 것이다·
실제로 마녀왕 스칼렛이 비슷한 방 식으로 페르소나 게이트를 다루고는
했으니까·
“가 보죠·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 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해결되지 않 을 테니까요·”
“···잠시만요·”
꽃서린은 백유설을 꽉 부여잡고 있 던 손을 놓고서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서 눈을 감더니 짧게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놀랍게도 꽃이 열 배 이상 형체를 부풀리더니 꽃가루를 사방에 흩날렸다·
“어라?”
그에 백유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 다· 이곳은 틀림없이 페르소나 게이 트· 그렇다면 저 꽃들 역시 가짜라 고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데 왜 꽃서린의 능력에 반응하 는가? 그녀의 능력은 진짜 생명을 가진 꽃에게만 작용할 텐데·
“어떻게 한 거예요? 가짜 꽃을 피 워낸 겁니까?”
“아뇨··· 이건 진짜 꽃이에요·”
“예?”
그녀는 사방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 연의 장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실 재하고 있어요· 거짓이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다·
이곳은 백청산맥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얼어붙은 대지·
그러니 이곳에 씌워진 페르소나 게 이트는 모두 거짓이어야만 하는데····
“···일단은 가 보죠·”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우선은 백령고원 요새로 향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흉흉한 몬스터 대신 초식동물이 가득했기에 전투가
벌어질 일도 없었다·
‘이게 정말 페르소나 게이트?’
페르소나 게이트에는 무언가 하나 씩 문제점이 있다· 그 과제를 해결 해야만 빠져나갈 수 있으니 분명히 어떠한 시련이 존재할 터·
백유설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사방 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툭툭 건드리 면서 다녔다·
한국인으로 살면서 K-RPG를 접 해왔던 경험상 지나친 평화는 오히 려 무언가 더러운 구석이 있음을 암 시하고 있다·
“저기에 마을이 있어요·”
”··그러게요·”
원래 이런 곳에 마을이 있던가?
그럴 리가·
백령고원 요새의 반경 몇 키로미터 이내에는 마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곳에 떡하니 존재하는 마 을은 대체 뭔가?
백유설과 꽃서린은 입을 꾹 다물고 서 마을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아하하핫!”
“후후 후후후·”
“히힛!”
마을에는 인간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이 웃으 며 춤을 추고 있었는데 백유설이 바 로 옆을 지나가고 있음에도 시선 하 나 주지 않았다·
‘완전 정신병동이군·’
백유설의 눈에 그들은 단순히 정신 이상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 지만 단순한 정신병자가 페르소나 게이트에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뻔하다·
저 정신병자들이 이 페르소나 게이 트의 해결에 큰 열쇠가 되어줄 무언 가라는 의미
백유설은 즉시 직박구리 안경을 가 져다 대어 그들을 분석하였고·
[에러 발생!]
[Error code: ???]
[상세 확인 결과 분석할 수 없는 차원의 코드입니다·]
···꽤 충격적인 결과를 받고 말았 다·
“뭐야···T
일전에 본 적 있는 문구다·
며칠 전 도시 트칼란타에서 싸웠 던 7리스크의 괴생명체에게서 보았 던 문구와 완전히 똑같지 않은가?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백유설은 마 을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직박구 리 안경을 가져다 대었으나·
[에러 발생!]
[에러 발생!]
[에러 발생!]
그럴 때마다 직박구리 안경이 비명 을 내지를 뿐 그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는건 설마···「
이 마을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인 간들이 설마 현실에서의 그 흰색 아 지랑이라는 말인가?
지금은 페르소나 게이트가 띄워져 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다 시 현실이 되는 순간 모조리 흰색 아지랑이로 되돌아올 터·
“괜찮으세요? 무언가 알아내신 건 가요···r
꽃서린의 물음에도 백유설은 대답 할 수 없었다·
정신이상자로 추정되는 인간은 어 림잡아도 수백 명 이상·
게다가 이런 마을이 이곳에만 있 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수천 혹은 수만 명 이상의 아지랑이가 이 빙백산맥을 덮쳤을지 도 모르는 일·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 작했다·
스텔라에 돌아가기 위해 페르소나 게이트를 클리어한다면 저 아지랑이 가 모조리 현실에 풀려난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영영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그에게 선택의 기로가 놓였다·
그 무엇 하나··· 희망적인 선택지 는 보이지 않았다·
백유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꽃서 린을 바라보았다·
걱정 한가득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 선택지를 이야기해 주는 게 쉽지 않았다·
꽃서린은 엘프의 왕·
그녀에게는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 는 장소가 있다·
하지만 과연 위의 사실을 알아도
그녀가 쉽사리 페르소나 게이트에서 나가자고 말할까?
“왜 그러세요···r
“저기 꽃서린 누님·”
“말씀하세요·”
백유설은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닫 았다· 역시나 말하기가 껄끄럽다·
”그게····”
한참을 머뭇거리던 백유설은 결국 실없는 농담으로 얼버무렸다·
“그냥 우리 여기서 영원히 살래요?”
“···네에?”
“농담입니다·”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니 아 무래도 농담조차 실패한 모양·
오늘 하루는 정말 최악이다·
‘방법을 떠올려야 해·’
눈을 질끈 감은 백유설은 필사적으 로 머리를 굴렸다·
‘여기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어·’
그에게는 거대한 책무가 있다·
세상의 멸망을 막아내는 것·
고작 여기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생각해야 해·’
백유설의 손이 저절로 허리춤의 테 리폰 소드에 다가갔다·
‘전부 여기서 베어내면?’
저것들은 하나하나가 7리스크의 위 험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런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인지 꽃서린이 뒤에서 백유설 의 손을 잡았다·
“그러지 마세요·”
뒤를 돌아보니 꽃서린이 슬픈 눈으
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저 사람들을 베어낼 생각이잖아요·”
“···그렇죠·”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놈들은 사실 엄청 위험한 놈들이라서····”
“알아요· 위험한 거·”
그럼에도 그녀는 거부했다·
꽃서린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나 그는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 에 없었다·
저렇게나 간절한 눈으로 바라고 있 는데 그 어떤 남자가 거절할 수 있 을까
“···알겠습니다·”
결국 테리폰에서 손을 뗀 백유설은 아무런 수확 없이 마을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핫!”
“히힛! 히히히힛!”
이제는 기괴하게만 들리는 웃음 소 리를 뒤로한 채 그들은 백청산맥을 한참이나 올랐다·
가는 길에 똑같은 마을을 무려 일 곱 개나 보았고 그곳에는 모두 수백 명의 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아니 저것들에게 과연 ‘살다’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좋은 것일까·
그렇게 마을들을 지나치며 마침내 도착한 백령고원 요새·
다른 장소와 마찬가지로 백령고원 요새는 더 이상 요새가 아니었다·
전쟁을 치른 적이나 있는지 의심스 러울 정도로 성벽에는 상처 하나 없 이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고 성문 은 위기 의식조차 없는 것인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고 가는 사람은 없다·
백유설과 꽃서린은 서로 눈을 마주 치고서 요새의 성문으로 천천히 발 걸음을 옮겼다·
요새 내부에는··· 아름다운 도시 가 세워져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 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함박웃음이 만개해 있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지나오면서 봤던 다른 마을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마을의 인간들이 모두 정신병자처 럼 웃어대기만 했다면 이곳에는 말 을 하기도 하고 의지를 가지고서 움
직이는 인간들도 있었으니까·
“하하 오늘도 기분이 좋지 않나!”
“저기요·”
“응? 무슨 일인가!”
백유설은 바로 옆을 지나가던 사내 한 명을 붙잡았다·
“여기 백령고원 요새가 맞습니까?”
“요새? 백령고원 청성이라면 여기 가 맞네만! 청성이라는 이름에 걸맞 게 아름다운 곳이지!”
“그럼··· 저 사람들은 뭡니까?”
백유설은 근처의 남자 한 명을 가 리켰다· 허공에 대고 쉴 새 없이 폭
소하는 그 남자는 폐활량이 걱정스 러울 정도였는데 목울대에 실핏줄이 터져 나갈 정도로 위험해 보였음에 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하 저분은 행복의 축복을 받으 신 게지! 얼마나 부러운가? 죽을 때 까지 웃으며 행복할 수 있다니! 나 도 가끔은 슬플 때가 있는데 말이 야· 자네도 꼭 축복을 받을 수 있으 면 좋겠군!”
“예·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게나!”
사내가 떠나가자 백유설은 즉시 꽃 서린의 손을 붙잡고서 도시의 안쪽
으로 향했다·
“설파람 대공··· 성주를 만나봐야 되겠군요·”
“그 그런가요?”
,,예·,,
방금의 그 사내 덕분에 백유설은 이 페르소나 게이트의 컨셉을 대략 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지도 어느 정도 감이 잡혔고·
[페르소나 게이트의 분석이 완료되 었습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모두 영원히 행 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웃음 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낙원!]
[모두가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행복을 정녕 무너 뜨려야만 하겠습니까?]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여태 수많은 페르소나 게이트의 가 이드 라인을 보면서 저런 방식으로 설명하는 건 또 처음 보았다·
마치 페르소나 게이트에 들어온 마
법사를 꾸짖는 듯한 말투지 않은가?
[우리의 행복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면 주의하십시오·]
[저희 또한 당신의 행복을 망가뜨 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협박성 문구까지 날아왔으 나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에게 정말로 무서운 것은··· 따 로 존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