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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십이신월(5)
신입생 입학 심사가 끝나고 백유설 이 아돌레비트로 응급 후송된 흥비 연을 찾으러 급히 뛰쳐나갔을 무렵·
입학 심사와 전혀 관계가 없는 다 른 생도들은 평소와는 달리 휴무일 을 만끽하고 있었다·
비록 주말은 아니었지만 신입생 심
사에 힘을 쏟는 터에 덩달아 선배들 도 쉬게 된 것·
정규 수업은 없었지만 스텔라 대부 분의 생도들은 각자 기숙사에서 자 습을 하거나 독서실에서 스터디그룹 모임을 갖는 등 꽤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풀레임 역시도 알뜰하게 공부를 하 며 시간을 보내는 학생 중 한 명이 었는데 본래는 홍비연과의 약속이 잡혀 있었으나 그녀가 실려 가는 바 람에 취소되고 말았다·
자존심 강한 홍비연과의 공부 약속 은 정말 잡기가 어려웠기에 상당히 아쉬웠으나 아프다고 실려 간 마당
에 뭐라고 나무랄 수도 없다·
‘쓰읍 아쉽네· 불꽃 마법 좀 제대 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풀레임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미 성인의 두뇌와 신에게 축복받은 듯 한 재능으로 학습하여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홍비연과 에이젤은 그녀와 달리 성인의 두뇌 를 가지지 못했음에도 높은 이해력 으로 현재의 수준에 도달했다·
최근에는 에이젤과 붙어 다니면서 그녀의 천재성에 깜짝깜짝 놀라고는 하는데 성인의 지식을 응용하는 자 신과는 달리 그녀는 정말 순수한 창 의적인 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홍비연에게는 그런 창의성을 기대할 수는 없겠으나 세상의 모든 공식과 법칙을 암기하여 조합하는 그 실력만큼은 자신보다 한 수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로 실려 간 거지···
원작 로판에서도 홍비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부 암울한 것들 뿐이어 서 영 불안하기만 하다·
겉으로는 왕족이나 내부에서는 불 우한 가정환경 영원히 고통이 뒤따 르는 불치병에 파탄 난 인간관계·
초기의 ‘캐릭터 에이젤’보다도 더
욱 불행에 불행을 뒤집어쓰게 되는 인물이 바로 후반부의 홍비연이다·
비록 현재 시점은 고등학교 2학년 이고 아직 후반부는 아니었지만····
‘백유설의 개입이 생긴 이후로 이 야기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어·’
즉 언제 홍비연의 불행이 폭탄처 럼 터져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 내년이면 졸업인데 어디로 취직할지 생각은 해봤어?”
“글쎄··· 옆반에 걔는 마탑에서 인턴 제의왔다고 자랑하던데 나는 그런 것도 없어서 원·”
“에휴〜 스텔라면 뭐 하냐· 결국 취
직 걱정은 다 똑같은데·”
“솔직히 눈만 낮추면 그럭저럭 괜 찮은데 들어갈 수는 있잖아?”
“미쳤어? 그럴 거면 스텔라에 왜 왔 는데? 나는 무조건 대마탑에 들어갈 거야· 마법 전사는 죽어도 안 해·”
자연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야외 독서실에서 전공책을 읽는데 멀찍 이 떨어진 산책로에서 3학년 선배들 이 떠드는 잡담 소리가 들려온다·
꽤 멀리 떨어진 거리였기에 다른 학생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일전에 천사강림을 사용한 이후 부 쩍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였다·
‘취직이라···
그러고 보면 미래에 대해 진지하 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장 스텔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 도 풀레임의 목적은 에이젤의 주변 을 겉돌면서 그녀가 행복해지는 엔 딩을 기다리는 것이었으니까·
‘해피엔딩·’
이제 그것에 대한 고민은 무의미해 진 듯싶다·
에이젤은 지금 충분히 행복해 보였 고 풀레임이 생각했던 ‘해피엔딩’은 진정한 엔딩이 아니었으니까·
열둘의 신월과 예견된 멸망·
그것을 막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 하는 한 명의 소년·
그런 것을 떠올리니 장래 따위를 걱정하는 게 자꾸만 우스워졌다·
게다가 최근 풀레임의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풀레임· 지금 뭐 해?
“···아무것도·”
머릿속에 울려오는 목소리들·
저 하늘 높이 떠다니는 구름 너머 천상계에서 살아가는 한 쌍의 날개
를 가진 금발 금안의 미남자들·
사람들은 그들을 두고서 ‘천사’라 고 칭한다·
풀레임 역시 그 단어에 여태 의심 한 번 했던 적이 없다· 원작 로판에 서도 천사의 존재가 간혹 언급되기 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직 접 두 눈으로 그들의 존재를 몇 번 이나 봤으니까·
그런데 ‘직접 보았다’라는 부분에 서 의구심이 생긴다·
그녀는 여태 정신만을 그곳에 보냈 을 뿐 실제의 눈으로 그들과 마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않던가·
‘잘 들어 풀레임· 네가 믿고 있는 천사는 모두 허상이야·’
백유설의 그 한마디가 자꾸만 귓가 에 울려댄다·
이제는 꿈에서마저 백유설이 나타 나 나에게 경고한다·
‘너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건··· 밤하 늘에 무수히 펼쳐진 별자리야·’
그들에게 속지 마·
너에게 보이는 그 아름다운 모습은 모두 거짓이니까·
-그래? 그럼 우리 이야기 좀 들어 주지 않을래?
“이 야기···r
-응·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 거든· 그동안은 못했던 얘기야·
듣기 싫다·
솔직히 이제는 천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도 힘겹고 벅차다·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때로는 백유설이 원망스럽지만 그 래도 그가 진실을 밝혀줘서 다행이 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게 약? 그따위 말은 필요 없다· 영원히 속을 바에야 차라리 많이 아프더라도 아는 게 낫다·
풀레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야외 독서실에서 빠져나왔다·
인적 드문 산책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에 매달려 있 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그네에 엉덩이를 걸친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영 거슬리지만 괜찮다· 한때 어쩌면 천상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하늘을 바 라보며 그녀는 물었다·
“어떤··· 이야기인데···r
-그게····
천사들도 이번 이야기는 꺼내기가 쉽지 않았는지 잠시 망설인다·
혹시 숨겨왔던 비밀이라도 말해주 려는 것일까· 잠자코 기다리고 있자 니 마침내 그들이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너에게 말을 건····
“어머나· 풀레임 학생?”
그러나 그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는 순간 누군가가 말을 거는 바람 에 대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누구···신가요?”
낯선 여인이었다·
황금보다는 노란색에 가까운 머리 카락을 가진 그 여인은 스텔라의 교 수님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복장 또한 마법사보다는 차라리 개 성 넘치는 파티 드레스복에 가까웠 는데 어디에서 공주님 행세 좀 했을 법한 아름다운 외모였기에 전혀 어 울리지 않는 상황과 장소였음에도 꽤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나? 내 이름 들으면 알려나? 인
간 사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 는데 말이야·”
“꼭 인간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 시네요·”
“응 맞아· 나는 인간 같은 게 아 니야· 그보다도 훨씬 뛰어난 종족이 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여인을 바라보았다· 확실흐] 인간 특유의 마 나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여인은 풀레임이 바라보던 허공을 향해 잠시 시선을 돌리더니 턱을 매 만지며 눈읏음을 쳤다·
“혹시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니?”
천사와의 소통을 들킨 적은 거의 없었기에 풀레임은 순간 온몸에 소 름이 돋았다·
“놀랄 필요는 없어〜 나 정도 되면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는 게 가능하 니까·”
“당신은··· 대체 뭐죠?”
“왜? 명함이라도 줘야겠어? 지금은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점 양해 부 탁해〜 우리의 이름에는 힘이 담겨 있어서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 이 새어 나가거든· 내가 지금은 들 키면 조금 곤란하단 말이지?”
“교수님들을 부르겠어요· 당장 학 교에서 나가세요·”
“정말? 내가 돌아가 버리면 손해 보는 건 내가 아니라 너라면··· 믿 을 수 있겠니?”
“아뇨· 전혀 못믿겠어요·”
“네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왔는데도?”
····
풀레임의 숨이 순간이지만 잠시 멈추고 말았다· 최대한 포커페이스 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이번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어머나 정말인가 보네?’
여인 천황정팔월은 풀레임의 귀여 운 반응을 보고서 재미있다는 듯 입 꼬리를 올렸다·
처음 회공시월에게 이야기를 들었 을 때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가·
아이테르 월드가 아닌 또다른 세 계 출신의 인물이라니·
이 세상이 곧 우주이고 전부라고 생각했던 천황정팔월에게는 도저히 믿기 힘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였으나 회공시월이 허투루 거짓말을 칠 사내는 아니였다·
“얘 풀레임·”
말씀하세요·”
“나는 우리는 네가 특별하다는 사 실을 알고 있어· 너는 본디 다른 세 계의 사람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지·”
천황정팔월은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여기서 문제 하나· 왜일까?”
그건 풀레임도 궁금하다· 평생을 고민해왔으나 도저히 답이 도출되지 않았으니까·
“너도 고민은 많이 해봤겠지· 하지 만 답을 내지는 못했어· 봐 너는
누구보다 특별한데 이런 칙칙한 학 교 구석에 앉아서 다른 평범한 인간 들처럼 책이나 읽고 있잖아·”
그리 말하며 천황정팔월은 풀레임 에게 슬며시 다가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백유설’의 운명이 특별 하다고 생각하니?”
흠칫·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풀 레임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맞아· 백유설은 특별해· 십이신월 의 하나로서··· 나도 인정하고 있 어· 그렇다면 너는 어떨까?”
몰라요·”
“아니야· 너는 알고 있어· 너 또한 그 소년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에서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불려오게 되었 スI· 과연 아무런 이유도 없었을까?”
“저는··· 백유설과는 달라요·”
“정말? 어떻게 다른데?”
“그건····”
말할 수 없다·
백유설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할 정 도로 풀레임은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애당초 백유설의 비밀이나 듣자고 찾아온 게 아니었기에 천황정 팔월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말했다·
“세계에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건 은 존재하지 않아· 백유설에게도 운 명이 존재하는 것처럼 너 또한 마 찬가지·”
풀레임은 입술을 닫았다·
모르겠다·
정말 그녀의 말이 맞는 걸까·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평생을 고민해왔지만 답을 도출하 지 못했던 문제· 그 어떤 마법 공식 보다도 어렵고 복잡하다· 고민할수 록 정답은 멀어져만 가니까·
솔직히 말해서 최근 저 문제를 고
민하는 데에 소홀했다·
백유설이 등장하고 그가 세상에 발 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 한 이후로 그에게 의지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주 만약에·
“백유설 혼자의 힘으로··· 이 모 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가 실패한다면?”
“세상이··· 운명의 순리대로 멸망 한다면?”
바보 같은 소리다·
그런데 왜 맞는 말처럼 들리는 걸 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근거가 있 는 이야기였다·
백유설 그는 수천 번의 시간을 반 복해왔지만 동시에 그것은 수천 번 이나 세상을 구하는 데에 실패했다 는 의미였다·
“그에게는 네 도움이 필요할 거야· 이건 장담할 수 있어· 네 특별한 운 명의 힘이 그를 지탱해 줘야만 해·”
“나는····”
“이제 알겠니? 너는 말이야-”
“그쯤하지·”
쐐액- 툭!
여인의 말을 끊어내는 소년의 목소 리· 그러나 그 앳된 목소리에는 수 백 년의 삶과 위엄이 담겨 있다·
풀레임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 어났다· 자신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여인의 오른팔이 잘려 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그녀는 잘려 나간 자신의 팔을 보 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새하얀 백발을 휘날리는 소년 마법人卜 엘트먼 엘트윈이 표정 을 잔뜩 찡그린 채 떠 있었다·
“내 학생에게 허튼 수작을 부리는
가 천황정팔월·”
‘천황정팔월···?!
그제야 여인의 이름을 알게된 풀레 임은 경악하고 말았다·
원작 로판에서도 언급만 있었을 뿐 등장한 적은 없지만 그 능력에 대 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왜에? 내가 저 꼬맹이를 홀리기라 도 할까 봐?”
천황정팔월이 장난스레 애교를 부 리자 엘트먼이 표정을 찡그렸다·
“구역질이 치솟는구나· 쳐다보는 것조차 버겁다· 당장 사라지도록·”
“쳇 숙녀한테 그렇게 말하면 실례 인 거 모르니?”
“네 본체를 찾아서 소멸시켜 버리 기 전에 얌전히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십이신월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군·”
“어쭈 날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말 하네?”
그에 엘트먼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 으로 말한다·
“죽일 수 있다· 당장에라도· 그렇지 않고 놔두는 건 대의를 위해서다·”
“···어이가 없는 꼬맹이네·”
천황정팔월은 당장에라도 엘트먼의 정신을 홀리고 싶었으나 불가능하다 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그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여 태까지 그녀가 공들여서 흘려놓은 수많은 꼭두각시를 모두 포기해야만 했으니까· 게다가 공간 계열 9클래 스 마법사답게 영혼을 다차원에 걸 쳐두고 있어 침입조차 쉽지 않다·
‘마치··· 나에 대해 미리 알고 대 응책을 세워둔 듯한 모습인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으나 어쨌 뜬 엘트먼이 등장했으니 지금은 물 러날 차례였다·
“그래그래 알았다구!”
여인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하 반신부터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 작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풀레 임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풀레임 내가 했던 말··· 진지하 게 고민해 보도록 해·”
이윽고 완전히 천황정팔월이 모습 을 감추자 엘트먼은 바닥에 착지하 여 풀레임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네· 괜찮아요·”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했건 모두
거짓이다· 그 사실만을 명심해라· 너 는 똑똑하니 잘할 수 있을 거다·”
“물론이에요 교장 선생님·”
풀레임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천황정팔월은 타인의 감정을 흘리 는 여우 같은 여자다· 그녀가 했던 모든 말은 나를 속여 넘기기 위해 주워 삼킨 거짓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왜일까 가슴 언저리에 찝찝한 기 분이 남은 것은·
풀레임은 의문 모를 답답한 감정을 속으로 삼키고서 재빨리 자리를 벗 어났다· 오늘만큼은 이에 대해 더
이상은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