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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입생(9)
적하유월이 회공시월을 따라 이동 한 장소는 이 세계와는 완전히 격 리된 또다른 아공간이었다·
“오호라· 신기한 곳이구만· 네가 만 들었어?”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쳇 싱겁긴·”
온통 보랏빛의 신비로운 공간·
허공에는 제단이 떠 있었는데 그 위에 벌써 세 명의 남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자력일월(紫靂一月)·
절대적인 관통력으로 적을 반드시 찔러버리는 번개의 창을 권능으로 소유한 십이신월(ト二神月)·
겉보기엔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로 보라색의 머리칼과 눈 동자가 특징이었다· 적하유월이 손 을 크게 흔들자 소녀는 짜증 난다는 듯 표정을 와락 구겼다·
“저딴 멍청이와 같이 일해야 돼?”
“뭣···!”
적하유월이 상처받은 듯 보이スト 바로 옆에 있던 하늘색 빛깔의 사내 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셨나요? 적하유월·”
사내의 이름은 천청해오월(天靑海 五月)· 만물의 생명을 치유하는 아 주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십이신월 중에서도 세 명밖에 되지 않는 방어계열 능력자였다·
그리고 마지막 사내는····
“한심한 꼬라지로군· 같은 십이신
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인 절삭력으로 모든 것을 잘 라 버리는 주황색의 바람을 권능으 로 보유한 다홍추구월(唐紅秋九月) 이었다·
그들의 살벌한 인사에 적하유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시조 마법사께서는 다 깊은 생각이 있으셨어· 같은 자리에 모이 지 않아야 할 이유는 저 재수 없는 성격만으로도 충분해·”
“멍청하긴· 시조 마법사께서 고작 그딴 이유로 우리에게 운명적 제약 을 걸어뒀을 것 같아?”
“뭐라고?! 이 꼬맹이가 진짜!”
자력일월의 지적에 적하유월이 화 내려고 하자 회공시월이 손을 들어 서 저지했다·
“그쯤 하지·”
“어우 진짜· 내가 저 친구 때문에 참는다 참아·”
“헹 안 참으면 뭐 어쩌게?”
파지직! 파직!
붉은 불꽃과 보라색 스파크가 맞부 딪히려고 하자 그들의 사이로 푸른 색의 물길이 솟아오르며 장벽이 생 성되 었다·
“싸우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에요· 그건 여러분이 더 잘 아시잖아요?”
물길을 일으킨 천청해오월이 빙그 레 웃으며 말하자 뭔가 소름이 돋은 적하유월은 불꽃을 거둬들였다·
‘뭔가 재수 없어···
제단의 한가운데에 준비된 원탁에 는 총 여섯 개의 좌석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적하유월은 자력일월과 최대한 먼 좌석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그게 하필 마주 보는 형태여서 눈싸움은 피해갈 수 없었
회공시월은 좌중을 둘러보더니 천
청해오월에게 물었다·
“한 명이 안 보이는군·”
“아아 천황정팔월은 급한 볼일이 있다고 오자마자 돌아갔어요· 제게 전달해달라고 하더군요·”
“···여전히 제멋대로군· 이 자리 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터인데·”
그 혼잣말에 적하유월이 묻는다·
“중요하다고 하니 궁금하네· 대체 왜 우리를 모으고 있는 거야? 시조 마법사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안 그래도 설명하려고 했다·”
자리에 착석한 회공시월은 양손에
깍지를 끼고서 이 자리에 모인 네 명의 십이신월을 둘러 모았다·
본래 예정보다 훨씬 적은 숫자이지 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나만 묻겠다·”
회공시월이 운을 떼자 네 명의 십 이신월이 시선을 집증하였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에는 묘하게 사 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는데 별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십이신월들은 그에게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여태까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시조 마법사의 제약에 의문을 가져 본 적은 없는가?”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해·”
“말 그대로다· 시조 마법사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으나 수많은 제약 을 걸어두고서는 활동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두셨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그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자력일월이 잘 모르겠다는 듯 어설 프게 대답하자 회공시월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 뿐 실상은 틀렸다·”
“뭐어? 그럼 뭔데?”
“공교롭게도 우리의 존재에는 아 무런 가치가 없다·”
그에 다홍추구월의 표정이 와락 구 겨 졌다·
“그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군· 시조 마법사께서는 세계를 굽어살피라며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래서 너희가 여태 한 일이 과 연 무엇이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우리의 존재 로 인해 지상의 생명체들은 자연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에 회공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 리는군·”
“뭐···r
다흥추구월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 자 회공시월이 덧붙였다·
“너희를 나무라려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은 너희의 자 의가 아니라 시조 마법사의 명령이 었으니까· 과연 우리의 존재가 정말 로 세계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그야 당연히····”
다홍추구월은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게 현대에 이르러서는 십이신월의 존재조차 망각하고 살아 가는 이들이 대다수였기 때문·
십이신월이란 그저 전설 속 존재가 되어버렸을 뿐 결코 세계에 영향력 을 끼치고 있지 않았다·
“현실을 깨달았나? 우리의 존재 이 유는 세계의 평화니 뭐니 하는 그딴 게 아니다·”
“그럼 대체 뭔데?”
답답하다는 듯 적하유월이 다그치 자 회공시월이 그를 바라보며 천천 히 입술을 떼었다·
“너희는 시조 마법사를 기억하나·”
“기억하지·”
“그분에게는··· 두 가지의 이명이 존재하였지·”
‘창조의 마법사·’
그리고·
‘파괴의 마법사·’
그는 여타의 마법사들과는 달리 아 주 특별한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무언가를 물질째로 소멸시켜 〇으로 만들어버리는 파괴의 권능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의 권능·
그 위대한 권능은 대마도시대를 활 짝 열어버릴 정도로 대단했으나 반
대로 굉장히 위험하기도 했다·
“시조 마법사께서는 두려워하였다· 만일 본인이 떠났을 때 이 권능을 악용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세상은 틀림없이 혼돈에 빠질 테니까·”
하여 그는 자신의 권능을 조각으 로 나누었다·
밤하늘의 별을 본떠 일월부터 십 이월까지 열두 조각으로 권능을 분 배하자 그것들에게 자아가 깃들었 다· 권능이 너무나도 위대한 나머지 시조 마법사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
그는 자아를 가진 열두 조각에게
각각의 개성과 색깔을 부여하였고 전 세계 곳곳으로 흩어놓았다·
“그리고는 제약을 걸었지· 우리가 결코 모일 수 없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꽤 많은 제약이 필요했다· 십이신월이 속세에 관심 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욕심도 없 어야 했고 권능을 마구 휘두르지 않아야만 했다·
욕망을 거세하고 움직임을 제한하 며 온갖 제약을 십이신월에게 걸어 둔 시조 마법사는 마침내 떠났다·
영영 십이신월이 모이지 않기를 바 라면서·
“뭐야 그 이야기는·”
“잠깐· 그렇게 말하니까 꼭····”
자력일월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 로 떨리는 입술을 떼었다·
“우리가 가진 무한한 수명과 권능 이··· 그저 시조 마법사님의 계획을 위한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처럼 들 리잖아···T
“공교롭게도 그 말이 맞다·”
“말도 안 돼····”
자력일월이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 에 털썩 주저앉자 적하유월 또한 주 먹을 꽉 쥐고서 탁자를 쳤다·
“젠장 나는 그 말 믿을 수 없어!”
“믿지 않아도 좋다· 다만 너희가 여태껏 받아왔던 무수한 운명적 제 약을 떠올리도록·”
“크윽····”
왜 우리에게 서로를 만나지 말라며 제약을 걸었는가·
왜 세상을 굽어살피라면서 자유로 이 움직일 수 없게 하였는가·
왜 세상을 지키라면서 능력을 마음 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였는가·
그 모든 의문들이 점점이 모이고 모여 회공시월의 말에 깊은 신뢰도
를 더해주었다·
“걱정할 것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쓸모없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무슨 의미야?”
“시조 마법사께서는 우리에게 의지 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어떤 부 분에서는 안심하셨지· 먼 훗날··· 세 상에 큰 위험이 닥쳐왔을 때 우리가 자의적으로 그분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그렇군!”
“그런데 지금이 딱히 위기 상황은 아니지 않아?”
“아니·”
회공시월은 고개를 젓는다·
“무지한 너희가 모르고 있을 뿐 이 세계는 앞으로 5년 어쩌면 3년 이내에 멸망할지도 모른다·”
“뭐 뭐라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십이신 월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이었으나 그 말을 하는 장본인이 다른 누구도 아 닌 회공시월이었기에 거짓이라고 나 무라는 것도 힘들었다·
“잠깐 기다려 봐 회공시월· 세상이 멸망한다니···r
“대체 무슨 이유로? 왜 멸망하는 건데?”
회공시월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이 러 했다·
“알 수 없다·”
그건 꽤 실망스러운 말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대책이 없는 건 아닌 듯 보였다·
“그래서 이 자리에 너희를 불러모 은 것이다· 멸망이 원인이 무엇이든
시조 마법사의 권능으로 막을 수 있 겠지· 그분도 우리가 자의적으로 움 직이기를 바랄 것이다·”
십이신월들은 침묵하였다·
회공시월은 그들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어차피 저들이 내릴 결정은 정해 져 있었으니까·
이윽고 가장 먼저 입을 연 십이신 월은 자력일월이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그녀는 살짝 긴장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뭘 하면 되지?”
“단순히 모여서 손에 손잡고 기도 라도 올리라는 건 아니겠지?”
적하유월의 비아냥 섞인 말에 회공 시월이 답했다·
“간단하다· 너희의 권능을 그릇에 게 가호의 형태로 나눠주면 된다·”
그리고····
“우리의 힘을 모두 받은 그릇은 시조 마법사의 권능의 발동을 위한 매개체가 되겠지·”
그 말에 십이신월들의 표정이 아연 해졌다·
“그릇이라고?”
“그 그릇은 어디에 있는데?”
“설마 인간따위를 쓰려는 건 아니 겠지? 그놈들은 우리의 가호를 두 개 이상 받고서 버틸 수 없어·”
“아니· 한 명 있어·”
자력일월의 회의적인 말에 적하유 월이 고개를 저었다·
“백유설이라고··· 아주 독특한 인 간이 하나 있었지·”
“난 처음 들어봐· 그게 뭔데?”
“뭔데가 아니라 인간이다·”
다홍추구월이 혀를 쯧 차며 자력 일월의 말을 정정했다·
“십이신월의 가호를 다섯이나 받은 것으로 인간 사회에서는 꽤 유명하 더군·”
“뭐어?! 인간이 우리의 가호를 다 섯 개나 받았다고? 말도 안 돼!”
“아니ス 1· 불가능할 것도 없어· 우리 를 창조하신 시조 마법사께서도 태 생은 인간이셨으니까·”
“시조 마법사님에게 필적하는 그릇 을 가졌다는 건가···?”
“그럼 역시 그 소년을 그릇으로 쓰려는 거구나!”
다 알았다는 듯 자력일월이 소녀다 운 순수한 눈빛을 반짝거려 보았으
나 회공시월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백유설은 그릇이 될 수 없 다· 나와 뜻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릇이 뜻을 가지는 것도 가능해? 인간일 뿐인데?”
“자력일월· 방금 말했잖아요· 백유 설이 시조 마법사님과 필적하는 그 릇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아··· 아아···? 그러네?”
그렇다·
백유설은 십이신월의 힘을 끌어모 으는 그릇으로서 아주 훌륭했으나 너무도 훌륭한 나머지 자의를 지닐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후보로는 탈
락이 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¹¹그릇 후보는 한 명 더 있다·”
“뭐? 그게 가능해···?”
한 세대에 십이신월의 힘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무려 두 명이나 존 재한다니·
도저히 믿기가 힘들었으나 회공시 월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별들의 속삭임 사이에서 태어난 아주 순수한 영혼을 지닌 소녀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지·”
“우리는 그 여자애에게 힘을 담는 거야···r
“그래·”
“그 그릇은··· 어디에 있는데?”
회공시월은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백유설과 정반대의 용도로 사용될 또다른 그릇은··· 그와 가장 가까 운 곳에 있었으니까·
서로 깊은 정을 나누고 비밀을 공 유한 두 소년과 소녀의 운명이 정반 대로 엇갈리는 것을 생각하며 회공 시월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
았다·
그 모습을 보고서 십이신월들의 표 정이 얼음처럼 굳고 말았다·
그가 미소를 짓는 것은 태어난 이 후로 그러니까 천 년 만에 처음이 나 다름없었으니까·
“스텔라 아카데미·”
회공시월은 그리 말하고서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니 그리 알아두고 해산하도록·”
이윽고 회색빛무리와 함께 모습을 감춰버리는 회공시월·
남아 있는 십이신월들은 멍한 얼굴 로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 다· 수백 년 만에 활동할 수 있게 되어서 과연 기뻐해야 하는가 슬퍼 해야 하는가·
그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 으로 각자의 위치로 다시금 흩어지 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