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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아리⑴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 스텔라의 마법기사단 서른 명이 즉시 마르테 비스 공동묘지로 날아왔다·
네크로맨서의 시체는 마법 수사대 에서 회수했으며 마르테비스 공동 묘지는 정화작업을 거치게 되었다·
“우리는 그럼 뭐 먹고 살라고!”
“아이고 우리 다 죽네! 일반 시민 다 죽어!”
상인들이 목을 뻣뻣이 세우고서 소 리를 고래고래 질러댔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신들 모가지가 스켈레톤의 손에 떨어졌어도 그 소리가 나왔을까? 저 기 저 학생들 아니었으면 당신들 이 미 다 죽었어!”
“그 그건···
“그딴 이기적인 마인드 때문에 피 해 입는 자들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오늘 바로 정화작업을 개시 한다·”
“아이고 잠깐의 유예기간이라도 좀 주시고····”
“당장!”
백유설은 몰랐던 사실인데 스텔라 의 입김은 공권력조차 움직이게 만 드는 모양이었다·
학생들은 스텔라에서 운영하는 비 행선을 타고서 안전하게 귀가하였 다· 돌아오자마자 백유설은 교관 이 한월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수련하 러 간다더니 사냥터로 향했군· 공동 묘지의 공기가 꽤 좋았나 보지?”
그 비꼼에도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가는 길에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 같아서 내렸습니다·”
“그렇군· 너는 교칙에 따라서 벌점 이다· 예외는 없다·”
이한월은 몸을 돌리며 덧붙였다·
“하지만 학교의 규칙을 위반하면 서까지 친구를 지키기 위해 망설이 지 않고 전장에 뛰어들었지· 아주 훌륭한 일을 해냈다· 그에 상응하는 포상과 상점을 줄 것이니 기다리고 있도록·”
“아 넵·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좋은 일 하고 벌점만 먹 었으면 기분 더러울 뻔했는데·
“아휴 피곤해·”
시간은 아직도 새벽· 보랏빛의 밤 하늘이 참으로 아름답다만 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
허벅지가 여전히 아프다· 풀레임과 뛰어난 치료사에게 응급처치를 받았 음에도 며칠 동안은 계속 아플 거란 다·
다행스럽게도 심한 상처는 아니고 신기하게도 회복력이 일반인보다 빨 라서 곧바로 수업에 복귀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아마 마력누설지체의 영향으로 회 복력도 좋아진 모양·
‘수업에 빨리 복귀하는 건 싫은 데···· 그냥 입원시켜 주면 안 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비척비척 걸어가 는데 누군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풀레임이 었다·
“아저씨 신세 좀 졌다·”
“그러냐· 나중에 밥이나 쏴·”
“돈 없는 학생한테 뜯어먹기?”
“나도 학생이야·”
“그건 그러네·”
백유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 르게 풀레임이 그다지 위험한 인물 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최근 부쩍 들기 시작했다·
게임에서의 풀레임은 플레이어들이 조작하는 탓에 에이젤의 온갖 기연 과 가능성을 빼앗고 성장하는 경우 가 부지기수였는데 현실의 풀레임 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이후로도 차례대로 독철광과 반디 연 홍비연과 그룹원들 카시프 데릭 등이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는····
에이젤이 다가왔다·
그런데 어째 표정이 상당히 어두 웠다· 백유설은 그것을 보고서 뭔가 좋지 않은 짐작을 하였다·
‘얘가 왜 이래?,
에이젤은 항상 밝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 이면에 어떤 짐을 짊어졌더라도 꿋꿋하게 버텨내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그런 위대한 위인·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어요·”
“어· 나중에 한턱 쏴·”
농담처럼 가볍게 이야기하는 백유
설을 보며·
에이젤은 말없이 생각했다·
이번 사건 아니 그 이전부터 그 녀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 세상에는 나 말고도 뛰어난 사 람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 로 뛰어난 천재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것을 스텔라 아카데미에 들어오 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았다·
무조건 최고가 될 생각으로 학교에 입학했으나 그것이 결단코 쉽게 이 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최고가 돼야만 했다·
그래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걸까?’
자신과 비슷한 또래임에도 이미 앞 서나가 버린 천재가 이렇게 많은데 과연 가문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런 우울감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 았지만 에이젤은 애써 참았다·
마음속으로 모든 불안감을 꾹꾹 눌 러 담았다·
불안은 공포보다도 공포스럽다·
공포는 인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에 대한 반응이지만 불안은 내 면의 무의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기 에·
‘나는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가다듬어도 한계는 명백했다· 근본적인 흉터를 치료하지 않으면 아무리 약을 바르 고 또 발라도 피는 새어 나오게 마
련이었으니까·
그래서 에이젤은 저도 모르게 백 유설에게 묻고 말았다·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을 받으며·
백유설은 표정을 가라앉혔다·
별로 좋지 않은 질문이었다· 질문 자체가 곤란해서가 아니었다· 그녀 가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기 때문 이다·
원작에서의 에이젤은 주인공으로 서 겪을 만한 시련이란 시련은 죄다 겪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이겨낸다· 이 네크로맨서의 습격 또한 마찬가 지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 낸 전략으로 난관을 이겨내기 위해 노 력했을 것이고 결국 그녀의 노력은 어떻게든 상황을 좋게 이끌었을 것 이다·
하지만 백유설이 개입하는 바람에 에이젤에게는 시련만 주어졌을 뿐 ,극복,의 서사는 전혀 내려지지 않 았다·
오로지 주변 사람에게 의존하여 구해지는 게 그녀가 한 역할의 전부
였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에피소드를 몇 개나 건너왔음에도 여전히 마음이 유약 했다·
처음에는 가랑비를 맞고 견뎌내고 거기에 익숙해져 소나기를 견뎌내 고 이윽고는 폭포를 견뎌내고 해일 마저도 견뎌낼 에이젤에게 시련 자 체에 대한 내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 이다·
’···어떻게 할까·’
어쭙잖은 위로 따위는 소용없다·
빈말도 의미 없다·
그건 그녀를 더욱 아프게 할 뿐이
니까
그래서 백유설은 자신이 하고 싶 은 말을 했다·
“나한테 물어볼 필요는 없는 것 같 은데· 너는 이미 남들이 불가능하다 고 했던 것들을 이뤄냈잖아·”
“···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배신 자의 자식이라며 버려진 소녀·
그러나 끝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서 에이젤은 마법에 몰두하였다·
폭설이 오는 날 동굴 아래에 몸을 숨겨 떨면서도 헌책방에서 구매한 마법서로 공부하고 돈이 없어 쫄쫄
굶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빵 한 조 각보다 연필 한 자루를 택하고 하 루에 2시간 잠을 자가며 신체를 혹 사시키는 노동을 하는 와중에도 꼬 박꼬박 펜대를 놓지 않아서·
그렇게 그녀는 기적적으로 스텔라 아카데미라는 최고의 명문 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를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면 과 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러니까 앞으로도 너는 기적을 이뤄낼 수 있겠지·”
에이젤은 입술을 꾹 닫고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 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그야 계속 지켜봐왔으니까·”
“···네?”
순간 그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잠깐만· 이거 스토커 아냐?’
쭉 지켜봤다니· 변태도 이런 변태 가 따로 없다· 이런 말실수를 하다 니· 백유설은 서둘러 몸을 돌렸다· 참 운수 좋게도 노을을 등지게 될 수 있었다·
“그럼 이만 가 볼게·”
그렇게 백유설이 서둘러 자리를 뜨 자·
에이젤은 한동안 그 자리에 계속 남아서 그의 말을 곱씹었다·
‘나를··· 지켜봐왔다고···
그 누구도 배신자의 자식 따위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흉보고 돌을 던지 기 위해서였지 자신을 위했던 사람 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 생각이 깨졌다·
‘너는 이미 이뤄냈잖아·’
그 말이 심장을 타고 전신의 혈관 을 일주하여 머리를 시원하게 관통 하였다·
두근·
그녀의 심장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 다· 마법에 대한 열정· 잃어버릴 것 만 같았던 그 목표가 다시금 깨어나 고 있었다·
어느덧 저 멀리 동이 터 올랐다·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 * *
마법의 본고장 도시 카멜른에는 세계 최정상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 는 장소가 있었다·
마법원로회· 마법에 너무 깊이 빠 져 버려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게 된 늙은이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40대 이상의 외모를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었었고 대부분 2~30대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뭐? 네크로맨서? 요즘 시대가 어 느 땐데····”
“그놈들은 정말 죽지도 않고 계속
나타나는군·”
원로회의 장로들은 자신보다 나이 가 더 들어 보이는 직속 ‘흑마척살 대’의 요원에게 소식을 들었다·
“쯧 그러다 알아서 들어가겠지·”
네크로맨서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옛 시절을 잊지 못하고 요란 떠는 게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으니 까·
그런데 네크로맨서에 신경조차 쓰 지 않고 있던 장로들도 놀랄 만한 소식이 하나 있긴 있었다·
8클래스의 마법사 루델릭은 두 눈 을 휘둥그레 뜨고서 되물었다·
“···뭐? 스텔라의 생도들이 5클 래스의 해골 놈을 격파했다고?”
“예· 격파에 참여한 학생은 총 열 셋으로 피해는 없다고 합니다· 심지 어··· 믿을 수는 없지만 정작 네크 로맨서의 본체 자체는 단 한 명의 학생이 해치웠다고 하는군요·”
“아니 그게 말이 되겠나? 곧 죽어 도 네크로맨서는 네크로맨서란 말이 다· 뭐 그 학생 중에 4클래스 이상의 수준을 가진 놈•이라도 있다는 거냐?”
“아닙니다·”
하긴 그럴 리가 있나· 그 말을 내 뱉은 루델릭 또한 그냥 해본 소리였
기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 기에 더욱 이상했다·
‘어떻게 학생들이 네크로맨서를?’
제대로 세력을 키운 네크로맨서는 수천 단위의 병력을 부릴 수 있다· 제아무리 5클래스의 수준밖에 안 된 다고 해도 그 실질적 위험도는 6리 스크 이상을 판정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학생 열셋이 네크로맨서를 해치웠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데·”
“하지만 사실입니다· 특히 그 학생 중에는 홍비연 아돌레비트 공주와
만월탑주의 후계자 해원량 빛과 자 연과 물질을 다루는 천재 마법사 풀 레임과 모르프의 후계자 에이젤 또 한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흐음· 그런가· 그렇군· 그럼 그놈 들이 무슨 수를 썼겠지·”
그 네 명은 모두 천재니까·
루델릭은 굳이 뒷말을 생략하였다· 이 마법 사회에서 진짜배기 ‘천재’ 라는 존재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납득하게 만드는 오묘한 힘이 있었 다·
“그럼 네크로맨서를 잡은 건 고 네 명 중 하나겠군·”
“···그게 또 아니랍니다·”
“뭐야? 그럼 대체 또 누군데?”
그러자 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대 답을 주저하다가 천천히 입술을 떼 었다·
하백유설’이라는 학생입니다·”
“처음 들어보는데·”
“네· 기사도의 신념을 가진 아주 독특한 학생이랍니다· 듣자 하니 스 텔라의 교장 엘트먼 엘트윈이 주시 하는 듯하다고····”
“허 참· 오래 살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
루델릭은 그 학생의 이름 석 자를 기억했다·
어쩌면 머지않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 * *
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이 일정 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시간의 속도에 변수를 줄 수 있는 요인이 이 세상에는 무려 두 가지나 있다·
첫째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에 의하면 아주 무거운 물질은 공간 구조에 영향을 미쳐 시간 지연 현상 을 발생시킬 수 있다·
둘째로 주말에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렇다·
눈 깜짝할 새 월요일이 되었다·
주말이 사라진 것이다·
‘일요일에 뭐 한 것도 없는데····’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학 생의 신분으로 흑마인에게 맞서 싸 워 승리해 냈다며 무려 표창을 받기 로 되어 있었으니까·
보통의 마법사가 공적을 세우면 카멜른의 ‘마법사 협회’에 초청을 받아 포상을 수여하고는 한다· 스텔 라는 다르다· 포상을 줘야만 하는 일이 있으면 직접 수여를 한다·
교장이 대륙에 10명도 채 안 되는 9클래스의 마법사였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열세 명의 학생이 단상에 일렬로 죽 늘어서 있고 뒤쪽으로는 전교생 이 오와 열을 맞춰서 정렬해 있었 다· 거기까지였으면 나도 별로 신경 은 안 썼을지도 모른다·
한쪽 구석에는 마법부와 마탑에서
파견 나온 마법사들이 바글댔고 사 진을 찍어대는 기자들이 늘어서 있 었으며 몇몇 귀족들이 보이기도 했 다·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냥 조용 히 따로 불러서 표창 주면 안 되나· 왜 이렇게 높으신 분들은 허례허식 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흐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홍비연은 기분이 상당히 좋은 듯 입꼬리가 귀 에 닿을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본 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하기야 어머니한테 인정받으려고
평생을 애써왔는데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서 표창까지 수여 받았으니 얼 마나 또 칭찬받았을까·
“··뭘 봐?”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자 홍비연 이 눈을 마주치고서 표정을 와락 구 겼다· 그럼에도 입가의 미소는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좋냐·
새삼 내 옆에 나란히 선 학생들의 얼굴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홍비연 풀레임 해원량 에이젤·
메인 등장인물들과 결코 엮이지 않 고서 조용히 내 할 일만 하려고 했
거늘 입학 몇 달 만에 결국 모든 이들과 엮이고서 심지어 가장 주목 받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넌 뭘 잘했다고 좋아하냐?”
“어? 무 뭐가· 나도 같이 싸웠거 든?,,
“참내· 트롤러 새끼가 말은 잘하 지·”
“트롤러라니···
한쪽 구석에서는 진심으로 혐오스 럽다는 듯 반디연이 카시프 데릭을 갈구고 있었다·
여태 몰랐는데 그녀가 독철광을 갈굴 때는 약간의 애정이 묻어 나오
는 것과는 달리 진심으로 사람을 갈 구기 시작하면 그 표정과 말투부터 가 정말 무섭게 돌변한다·
에이젤도 카시프에게 그다지 호의 적이지는 않았는데 그는 이 자리에 서 혼자 왕따 당하고 있었다·
‘저렇게 화낼 것까지야·’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나중에 이 일을 빌미로 삼아서 한 번 부려먹으 면 되는 것을· 나는 좋게좋게 생각 하였다·
‘그건 그렇고 독철광은 벌써부터 근육질 장난 없네·’
독철광은 게임 내에서도 내가 정말
좋아했던 캐릭터 중 한 명이었다· 비록 반디연에게 맨날 구박받고 사 는 듯싶지만···· 뭐 그런 모습도 보기 좋다·
‘조금 더 친해지고는 싶지만····’
지금은 기회가 없다· 그래도 독철 광은 성격이 좋으니까 나중에 아는 척하면 받아주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죄다 잡담을 하는 와중·
뚜벅!
소란스럽던 장내가 갑작스레 고요 해졌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이 자 리의 진정한 주인공께서 등장하신
탓이다·
표창을 받는 우리는 주인공이 아니 다· 저 기자들도 우리를 찍으러 모 인 게 아니다· 마탑의 관계자들 역 시 우리를 보러 온 게 아니다·
인류의 정점 9클래스의 마스터 메 이지 엘트먼 엘트윈·
세상에 얼굴 안 비추기로 유명한 그의 용안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와우·’
게임에서도 엘트먼 엘트윈은 꽤 자 주 등장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역하레에 포함될 뻔한 인물 중 한
명이었으니까·
안타깝게도 청소년 검열 삭제 위원 회인지 뭔지 하는 현실적인 이유 때 문에 게임 내에서는 주인공과 이어 지지 않았다고 했던가·
설정 나이 300세 그러나 10대 중 반의 외모를 하고 있는 은색 머리칼 의 미소년·
언제나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으 나 ‘학살자’라는 파괴적인 이명을 가진 세계 최강의 마법 전사·
그것이 바로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오는 저 소년의 정체였다·
꿀꺽·
내 옆의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 리가 나에게까지 전해져왔다·
그는 그 어떤 마나도 흩뿌리지 않 고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심장과 방광을 조여왔다· 오줌 마렵 다·
자꾸만 본능적으로 눈을 내리깔고 자 고개가 내려갔으나 나는 애써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엘트먼 엘트윈은 자신의 기백을 견 디지 못하고 고개 숙이는 학생에게 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향후 내 계획을 위해서는 그의 관심에 아주 실낱만큼이라도 들 필요가 있
었다·
“오 너희들이 신입생이구나? 반가 워!”
“교장 선생님· 잡설은 됐고 목차대 로 따르시지요·”
“아 알겠다니깐· 잔소리는 좀·”
엘트먼을 쫓아다니는 수행비서가 조용히 속삭이자 그는 엄마의 잔소 리가 귀찮은 또래의 소년처럼 투정 을 부린 뒤 표창장을 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음 이하 생략·”
최소 3시간은 걸려서 준비했던 모
든 리허설을 단 네 글자로 축약해 버렸다·
“허억·”
“컥,,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 엘트먼은 우리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스쳐 지 나쳤다·
“모두들 수고했어· 정말 기특해· 앞 으로도 용감하게 노력해 주라고·”
인사치레처럼 보였으나 그는 나름 대로 학생들과 한 명씩 눈을 마주쳐 보았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시 험’일 것이다·
대부분은 시선을 외면하거나 고개
를 숙였으나 나는 눈을 부릅뜨고서 눈싸움 챔피언에 빙의하여 엘트먼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내 앞에 도달한 엘트먼은 왠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열심히 하는구나· 기대했 던 대로야·”
«··?,,
여전히 열심히 한다고?
무슨 의미지?
하지만 엘트먼은 그대로 지나쳐버 렸고 그 말뜻을 알 수는 없었다·
‘후우우우···
어쨌든 그가 지나치자 안도의 한 숨을 조용히 내뱉었다·
솔직히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다· 부릅뜬 눈은 건조해서 눈물이 다 고 일 지경이다· 집에 가서 블루베리나 먹어야겠다·
그렇게 엘트먼 엘트윈은 열세 명의 학생들에게 격려 아닌 격려를 해주 었고 표창을 쥐여주는 것으로 정말 순식간에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아 니 그럴 뻔했다·
“아참· 흑마인을 퇴치한 학생에게 는 ‘포상금’이 주어지는 건 알지? 다들 맛있는 간식 사 먹으라고·”
포상금· 그 단어에 유난히 움찔 몸 을 떤 사람이 있었다·
에이 젤이 었다·
-···이상 표창장 수여식을 마치 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진짜로 행사가 마무리되었 다·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우르르 몰 려나가고 나 또한 그들에게 치이지 않게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예상대로 상당한 숫자의 외부 마탑 관계자들이 내게 달려들 었다·
“백유설이라고 했나? 학생 혹시 졸업하고 들어갈 마탑 알아봤어? 우
리 마탑에····”
“우리 기업에 전투원으로 입사할 생각 없나?”
예상한 일이다· 마유성이나 풀레임 은 이거보다 더 심한 일도 겪었으니 까·
마음 같아서는 저것들을 전부 받고 싶었다· 하나하나 게임 내에서도 들 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마탑이었으니 까·
하지만 나는 저곳들에 들어갈 수 없다· 진짜 마법사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반쪽짜리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도 과연 지금처럼 들러붙을까?
글쎄·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뇨· 거절하겠습니다·”
그래서 제의를 모조리 쳐냈다· 훗 날 내가 정말로 마법을 못 쓰는 반 쪽짜리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았음에 도 연락하는 마탑이 있다면 그곳이 야말로 진정 나를 원하는 곳이겠지·
그때까지는 간 보기식으로 던져대 는 러브콜은 모조리 거절할 생각이 다·
“자 잠깐· 학생 이유라도 말해주 면 안 되겠나?”
이유라·
내가 마법 병신이라는 사실을 굳이 내 입으로 하기는 싫어서 다른 이유 를 댔다·
“이게 요즘 유행이라서요·”
“뭐···r
자고로 주인공은 길드고 뭐고 마이 웨이로 혼자 잘 벌어 먹고사는 게 요즘 트렌드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