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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겨울방학(2)
사람이 정신을 차릴 때에는 TV의 전원을 켜는 것처럼 단번에 불이 들 어오지는 않는다· 아주 서서히 꿈속 에 잠겨있던 의식이 현실 세계로 퍼 져 나와 조금씩 조금씩 감각을 잠식 해 나간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청각·
‘제가 함께···
*···상관해서····’
‘이송 과정이 복잡····)
‘저희도 할 수 있···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 자 의식이 돌아오는 속도가 점차 가속되어 감각이 선명해졌다·
한 번에 확 펼쳐지는 현실의 감각·
백유설은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 뜨고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〇··»
건물 한 채를 통째로 눈 위에 올 려놓은 듯 눈꺼풀이 무겁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가 강철 밧줄로 칭칭 묶어놓은 것처럼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 는데 온몸의 감각이 아예 사라진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의 몸이 왜 이러는지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했기 때문에·
그러다 심장에서부터 비집어 새어 나오는 강렬한 충격에 비명을 내지 르고 말았다·
‘끄아아아아······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기에 비 명마저 지를 수 없다·
마치 심장에 시한폭탄이라도 설치 되어 있는 듯한 감각에 백유설의 이 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터진다····’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인간의 연약한 심장 따위로는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 다·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백유설은 뭐라도 부여잡고 버티고 싶었으나 여전히 몸은 움직일 생각
을 하지 않는다·
‘ 0。윽··· 1 r
어떻게든 정신줄을 꽉 부여잡고 몸 부림을 치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
‘···어?’
순간 정신이 확 돌아왔다·
청각이 어느 정도 있기에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겠 다· 익숙한 목소리도 들리고 말이다·
‘마유성 젤리엘인가···? 알테리샤····’
그들이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귓가 를 메아리처럼 맴돌다가 멀어진다·
‘백유설의 상태가 이상···!
‘닥터! 닥터를···!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
정신이 점점 더 아득해지더니 이 윽고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 다·
그런 그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한 차원 더 위에서 바라보는 어떤 특별 한 시선이 백유설을 꿰뚫고 있었다·
‘누구지? 누구야!’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어떤 거대한 시선을 향해 외쳐보았으나 목소리 는 전달되지 않았다·
으윽!,
시선이 신경 쓰였으나 당장은 거기 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심장이 점점 더 부풀어 올랐기 때문·
‘흡!’
이를 악물···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어서 억지로 이마에 힘껏 힘을 쥔 백유설은 심장으로부터 강렬한 에너 지를 서서히 압박하였다·
‘할 수 있다· 방금까지 해봤잖아·’
먼 미래의 백유설·
혹은 또 다른 세계의 백유설·
백유설은 그 완성된 신체의 백유설
을 체험해 보았고 그가 어떤 방식 으로 자연천기지체에 도달했는지 어 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다·
물론 미래의 백유설이 도달한 경 지를 생각한다면 현재의 백유설이 맛본 범위는 고작해야 〇·01%도 안 될 터·
‘그 〇·01%라도 좋으니까····’
완전한 제로와 〇·01%는 다르다·
‘존재하지 않는다’와 ‘존재한다’의 차이니까·
백유설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체내에 갇힌 이 어마어마한 에너지 를 통제하고 배출해 내며 순환시킬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통로가·
‘크으으윽···
머리에 용암을 쏟는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당장에라도 뜯 겨져 나갈 것처럼 차올랐으나·
■·느껴진다·’
심장에 갇힌 생명력을 억지로 움직 여 신체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오로 지 ‘기맥 (奇脈)’을 타고 흐르도록·
꿈틀!
사방으로 퍼지던 생명력의 흐름에 방향이 잡히더니 백유설이 원하는 방향을 따라 홀러내려 가기 시작했
이거다·
바로 이것이었다·
미래의 백유설은 온몸에 기맥의 고 속도로를 뚫어놓아 이것들이 어마어 마한 속도로 순환되었으나 현재의 백유설에게는 고속도로는커녕 자그 마한 자갈길조차 없어서 여간 움직 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생명력을 통해 기맥의 구 멍을 뚫어 통로를 만든다면····
‘어?’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이건 어떻게 하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벽에다가 구멍을 뚫 어 통로를 만들어야만 하는 느낌인 데 아무런 도구조차 주어지지 않았 다·
포크레인은 됐다· 하다못해 삽이라 도 주어져 있으면 벽을 뚫어볼 텐 더1 가진 것이라고는 생명력의 덩어 리뿐·
으윽!,
생명력은 가만히 멈춰 있지를 못하 는 어린아이처럼 백유설이 잠깐 지 체하자 금세 또 날뛰기 시작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의 백유설을 체험했으나 그
신체는 완벽하게 기맥과 혈맥이 뚫 려 있는 신체였기에 뚫는 방법을 전 혀 배워오지 못한 것이다·
만약 그가 정상적인 루트로 서서히 성장했더라면 배웠을지도 모르겠으 나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답이 없어 보였다·
-대단하군요· 생명력을 제어하시다 니· 아직은 미흡하지만··· 인간 중 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에요·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어···?’
심장을 터뜨릴 듯 요동치던 생명력 이 순간 가라앉는다·
이 세상 전체를 울리는 듯한 메아 치리는 여인의 목소리·
순간 백유설은 눈을 번쩍 뜨고 말 았는데 아무것도 없이 캄캄한 공간 속에서 거대한··· 아주 거대한 초록 색의 여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 다·
마치 산을 닮은 그 여인은 백유설 을 향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당신이 특별한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확실 하게 알았어요· 당신은 저의 생명을 나눠 받을 자격이 있어요·
‘어 어째서·· 당신은 대체 누구
십니까?’
-제 이름은 연두림사월·
‘···헉!’
십이신월!
게임 속에서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 했던 바로 그 존재가 지금 그의 눈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백유설을 향해 커다란 손을 뻗으며 말했다·
-당신은 세상에서 자연에 가장 가 까운 존재이나 아직 생명의 탄생을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어리고 미흡해
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받 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모습 은 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 다·
···그 그래요?’
솔직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오히려 생명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해서 이 사달이 난 게 아니던가?
-제가 당신의 몸을 마음대로 건들 수는 없어요· 다만 조금의 도움을 드릴 수는 있겠지요·
‘도움이 라니····’
툭!
연두림사월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 시에 심장에 구멍이 뚫렸다·
-놀라지 마세요· 심장을 해친 것이 아닙니다· 기가 통할 수 있도록 통 로를 열어준 것이지요·
‘통로를 열었다구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유설은 다시 금 눈을 감고서 생명력에 집중하였 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심장의 한 켠에 생명력이 통할 수 있는 자그마 한 구멍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작고 길이 가로막 혀 있어 멀리 나갈 수도 없었으나····
조그마한 구멍이라도 뚫려 있다면 그 이후의 길을 뚫어버리는 것은 일 도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백유설 이니까··· 나는 존나 멋진 상남자 증의 상남자니까···
-현대의 주문은 특이하군요· 자기 암시를 위한 스펠인가요?
뚝 뚜둑!
기맥이 서서히 뚫리며 생명력이 여유롭게 빠져나갈 공간이 마련되었 다·
아직은 멀고도 험하다· 이제야 고 작 심장 부근에 하나의 길을 뚫었을
뿐인데 미래의 백유설은 전신의 모 든 혈맥에 통로를 뚫어두었으니까·
지금 당장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전신을 이어줄 단 하나의 기맥만 존재한다면····
‘미래의 백유설처럼 될 수 있어·’
* * *
삐-! 삐-! 삐一!
백유설의 생명이 위독하다며 기계 가 요란스레도 울려댄다·
알테리샤가 직접 제작한 생명 유지
장치에 들어가 누워 있는 그의 이마 에는 식은땀이 한가득 맺혀 있었는 데 무어가 그리도 고통스러운지 얼 굴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괘 괜찮을까요···r
“괜찮을 거예요·”
간호사가 걱정스레 물어왔으나 알 테리샤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비록 그녀가 의사는 아니었지만 생 명력의 순환을 돕는 저 기계를 제작 하기 위해 의학 공부를 근래 한 달 간 미친듯이 파고들었다·
‘저 생명력들은 통제가 필요해·’
백유설의 몸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 력은 마치 폭탄과도 같아 무식하게 배출하려고 들었다가는 터져 버릴지 도 모른다·
제어하고 순환하여 그것을 자연스 럽게 빠져나가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알테리샤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번 이송은 의미가 없어·’
백유설이 너무나도 위독했기에 어 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생명 연구회의 의사들에게 데려가고 있는 것이지만 현대의 과학기술로는 ‘생 명력’이라는 미지의 기운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생명력은 기계로 탐지도 불 가능하니까 말이다· 만약 그것의 비 밀을 단 0·01%라도 밝혀낸다면 인 간은 생명의 탄생마저도 조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미지의 영역이야·’
백유설의 신체에서 ‘마치 숲의 냄 새가 나요’라고 말했던 에이젤의 말 에 힌트를 받아 자연과 가장 유사 한 공간을 만들어낸 장치가 바로 저 생명 유지 장치·
만약·
아주 만약의 일이지만·
현재 의식을 잃은 백유설이··· 저 무한한 생명력을 통제하고자 시도한 다면? 그렇게 해서 살아남고자 노력 한다면?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조금 더 개조해야겠어·’
도울 수 있다· 자신의 기술이 그를 살려낼 수 있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아주 티끌 만큼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알테리샤 는 뭐든 할 수 있었다·
“잠시 나가 계실래요? 의사 선생님 들만 남아주세요·”
“예 옙····”
백유설의 불안정한 상태를 호전시
킨 것도 의사도 성직자도 아닌 알테 리샤였기에 그들은 그녀의 말을 깍 듯하게 들었다·
달칵!
바깥으로 빠져나온 간호사들이 식 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자 근 처에서 걷고 있던 스텔라 기사들이 슬며시 다가왔다·
“간호사 누님· 괜찮아요? 백유설 학생의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앞의 괜찮냐는 말은 의례적인 질문이겠지만 안 괜찮다고 대답할 게요· 그리고 백유설 학생의 상태도 당장은 괜찮아졌어요·”
“후우···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대 서 어찌나 놀랐던지· 한 달 내내 얌 전하지 않았어?”
“그러게 말이다·”
간호사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쳐 다보자 기사들은 헛기침을 큼큼 내 뱉었다·
“거 방해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기서 아돌레 비트의 공주님이랑 별구름 상회장님 의 따님이 두 눈 시뻘겋게 뜨고 빨 리 알아오라고 보채는데···
그제야 멀리 떨어져 있는 소녀들을 발견한 간호사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백유설의 상태가 위독해지자마자 호들갑을 떠는 그녀들이 방해된다며 알테리샤가 죄다 내쫓았는데 그 뒤 로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하는 바람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
“···정말 힘들어 죽겠네요·”
독특한 케이스의 환자를 케어하는 것도 힘든데 심지어 높으신 분들의 눈치까지 받아가며 살아야 한다니·
새삼 간호사라는 직업도 할 만한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기사들 역시 같이 한숨을 쉰다·
평범한 이송 작전이 될 줄 알았건 만 저 특별한 생도들이 따라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이번 이송 작전··· 무사히 마무 리될 수 있겠지···
그건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