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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아(4)
10년 뒤 세상이 멸망한다·
은세십일월의 그 충격적인 발언에 오히려 더 깜짝 놀란 것은 다른 십 이신월들이 었다·
– 잠시만요··· 은세십일월 당신의 발언은 ‘천기누설^ 해당됩니다· 위 험한 짓이라구요·
이 세계는 참으로 특이한 규칙에 얽매여 있다·
미래까지의 운명이 모두 정해져 있 고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이 해당 내 용을 발설하면 천기누설이라는 명목 하에 존재 자체가 소멸되어 버리는 것·
“천기누설이라면····”
일전에 에이젤도 비슷한 사례를 겪 었던 적이 있다·
별의 서고에서 보았던 내용을 엘트 먼 엘트윈에게 전달했더니 그가 각 혈하여 쓰러지지 않았던가·
천기누설에 대해 영 좋지 않은 경
험 때문인지 엘트먼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으나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가 피를 토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 걱정 말게나· 내가 그것도 모르고 서 함부로 내뱉을 것 같나?
– ···그것도 그렇네요· 당신은 저 희중에서 가장 현명하니까요·
一쯧 현명하긴· 그냥 보고 듣는 게 많은 거지·
은세십일월은 쓰러진 백유설을 바 라보며 운을 떼었다·
– 한때··· 나는 미래를 보는 능력 을 완전히 내게서 떠나보냈던 적이 있다· 세상의 끝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던 이 능력에게 원한을 가졌 지·
“···그렇습니까·”
아류문은 은세십일월의 말을 쉬이 공감할 수 없었다· 9클래스라는 경 지에 도달했어도 인간으로서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니까·
하지만 십이신월은 인간과는 무언 가가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천 년을 살아온 탓일까 그들은 생명체 로서의 무언가가 결여된 것인지 인 간과는 다른 감정을 보여주고는 했 으니까·
– 그래· 이 세계에는 미래 더 정확 히는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 하지만··· 저 소년으로 하여금 무 언가를 보게 된 것이군요·
– 그래· 미래가 바뀔 수 있음을 알 게 되었지·
그는 이 자리를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대·
– 그러나 어떤 미래로 바뀌는가·
여태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였다· 백유설로 하여금 바 뀐 미래는··· 과연 지금보다 낫다 고 확신할 수 있는가?
“지금 백유설 탓을 하려는 겁니 까?”
엘트먼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세상의 멸망이 10년보다도 더 앞당 겨졌으나 그는 그것이 결코 백유설 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 세상의 멸망이 앞당 겨지는 건 오롯이 회공시월의 문제 였으니까· 오히려 백유설로 하여금 멸망은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었어·
“그자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일전에 십이신 월 담갈토이월의 태동을 저지하기 위해 봉인식을 펼쳤으나 난데없이
회공시월이 나타나서 저지하였습니 다· 틀림없이 무언가 목적이 있을 겁니다·”
-글쎄····
회공시월은 백유설이 바꿔놓은 운 명을 원점으로 되돌리려 한다·
그렇다면 백유설의 목적을 알아낸 다면 회공시월의 목적도 알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자네들이 들은 이야기는 없나?”
아류문이 에이젤과 홍비연 풀레임 에게 물었으나 모두 고개를 저었다·
“백유설 씨는 자신의 목적을 입에 담지 않아요···
“거 참 골때리는군·”
-못 담는 것일 수도 있지· 그 역시 도 천기누설의 제약에 얽매여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것보다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만·”
이런 질문을 해도 좋은지에 대한 의구심이 한가득 담긴 표정으로 아 류문이 물었다·
“10년 뒤에 세상이 멸망한다 면··· 대체 무슨 이유로 멸망합니 까?”
그러자 십이신월을 비롯하여 세 명의 소녀 역시 모두 침묵하고 말았
다·
여름방학에 별의 서고를 통해 백유 설의 과거를 보게 된 그녀들은 세상 이 어떤 식으로 멸망하게 되는지 어 림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짙은 흑색 피 부를 가진··· 아주 거대한 드래곤·
백유설은 은색빛 갑주를 입은 채 흘로 그것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 흑야십삼월·
낯설고 익숙하지만 이질적인 단 어·
“여 열세 번째 십이신월이 존재했 습니까?”
-아니·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다네· 하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그것은 흑색 용의 형상으로 나타나 세상을 불태운다네·
“그럴 수가···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은 모두 무너져 내리ス 1· 최고의 무기도 최강 의 마법도 그것에게는 통하지 않아·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니··· 그런 존재가 세상에 있단 말입니까? 그렇 다면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겁니 까?”
그 말에는 은세십일월도 대답할 수 없었다· 천기누설 때문이 아니다· 그
조차도 알 수 없던 것이다·
-은세십일월· 세상이 멸망할 때까 지 우리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리는 없어요· 저희는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죠?
-모른다네·
-그럴수가· 당신은 모든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던가요?
-모든 미래를 볼 수는 없어· 아주 큼지막한 뼈대를 지켜보는 게 고작 일 뿐이지· 세상이 멸망하는 날 그 자리에 우리는 없었다네·
-어째서····
연흥춘삼월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으로 입을 벌리자 구석에서 조용히 대화를 엿듣던 담갈토이월이 무덤덤 하게 말했다·
-···어쩌면 세상이 멸망하기 훨 씬 더 이전에 소멸되었을 수도 있 지·
-담갈토이월! 부정적인 말은 그만 두세요·
-미안· 하지만 가능성이 그것밖에 없잖아· 거기 청동십이월도 그렇고 금강칠월도 그렇고···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닥치면 가만히 앉아 있을 위 인들이 아니니까·
정의감을 가진 몇몇 십이신월들은
틀림없이 인류를 위해 흑색의 드래 곤에게 맞서 싸웠을 것이다·
그래야만 정상이다·
그런데 왜 미래에 십이신월이 아 무도 보이지 않는가·
-담갈토이 월!
부정적인 말을 자꾸만 내뱉는 그의 말에 연흥춘삼월이 나무랐으나 은 세십일월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一음 아니· 가능성이 있어·
-네에···? 은세십일월마저····
-생각해 보게· 지금 우리가 이 자 리에 왜 모여 있나?
-그야 백유설이··· 어?
무심코 이유를 말하려던 연홍춘삼 월은 순간 멈칫하였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주위 를 둘러본다·
운명적으로 결코 엮일 수 없는 십 이신월이 무려 넷이나 한자리에 모 여 있다· 비록 본체는 이곳에 올 수 없다지만 영혼체로 서로를 마주하 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지 않은 가·
-그래· 백유설이 우리를 모았지·
-허 그렇다면 백유설의 목적이 우 리 모두를 모으는 거란 말인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역사 속 에서 그 누구도 십이신월의 가호를 둘 이상 받지 못했으니 말이야·
-그래요· 하나의 가호를 받으면 또다른 가호는 몸이 버티질 못하 니···
-네 명이나 받은 사람은 아마도 백유설이 최초일 테고·
조용히 대화를 듣던 꽃서린은 무언 가가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회공시월의 목적도 그 와 비슷하지 않나요?”
-음? 무슨 소린가?
“일전에 엘트먼과 함께 담갈토이월 님을 봉인하려 했을 때 회공시월이 찾아와서 저지했어요· 백유설의 목 적이 십이신월을 모으는 것이라면 반대로 봉인을 도와야 하는 게 아닌 가요? 그가 십이신월을 만나지 못하 도록 말이에요·”
-···그것도 그렇군
-그럼 이 추리는 꽝인가? 허 은세 십일월· 자네의 생각이 빗나갈 때도 있군
-나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닐세·
“후 젠장· 알 수 있는 게 없군·”
그러다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에이젤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 다· 마치 학교에서 발표를 하려는 학생을 보는 것 같아 엘트먼은 웃 음이 새어 나왔다·
“에이젤 학생? 말해봐·”
“저 그냥 생각한 건데··· 어쩌면 회공시월도 백유설과 마찬가지로 십 이신월님들을 모으려는 게 아닐까 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그 왜· 백유설 씨와 함께 학교에 서 신월학을 듣는데··· 이 이건 별 로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 전설을 들었거든요·”
모든 십이신월이 모이면 아주 특 별한 일이 발생한다·
“그렇지 않나요···T
다람쥐처럼 눈치를 보며 말하는 에 이젤· 아무래도 초거물급의 인물들 이 모여 있다보니 한 마디를 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그렇군· 이에 대해 십 이신월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 까?”
-그건····
십이신월들의 말문이 막혔다·
아예 없는 전설은 아니라는 의미·
그러나·
– 우리도 모른다네·
은세십일월은 고개를 저었다·
– 먼 옛날 시조 마법사께서 우리를 탄생시킨 뒤 우리를 세계 곳곳에 뿔 뿔이 흩어 놓고서 그러한 제약을 걸 었지·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평생 을 떨어져 살았고·
– 맞아요· 그냥··· 운명이니까· 이렇 게 살아가는 게 정상이니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어요·
그들의 발언에 모두가 어떤 단어를 떠올렸으나 쉽사리 내뱉을 수 없····
“세뇌·”
“푸 풀레임 학생!”
“잠시만요 풀레임 양· 그 그런 예 민한 단어를 함부로 말하시면····”
“왜· 맞는 거 같은데요?”
어쩌면 십이신월들의 자존심을 깎 아내릴 수도 있는 풀레임의 폭탄 발 언에 사람들의 표정이 파리해졌다·
발을 동동 구르는 그들과는 달리 그러나 정작 십이신월들은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은 듯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렇군· 하긴 우리 같은 존재를 아무런 제약도 없이 세상에 풀어놓 았을 리가 없지·
-여태껏 어떤 세뇌로 인해 살아왔 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네요·
“···기분이 나쁘지 않으셨다니 다행 입니다· 그렇다면 확실해졌군요· 시 조 마법사께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십이신월님들을 서로 만날 수 없도 록 제약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백유설과 회공시월은··· 우리가 모두 모였을 때 무슨 일이 발생하 게 되는지 알고 있다는 의미겠군·
그래서 서로 먼저 십이신월을 모으 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이겠고·
회공시월은 사회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는 커다란 제약을 가지고 있 기에 조용히 이야기의 테두리에서 활동한다· 그 반대로 백유설은 이야 기의 중심에 서서 운명의 흐름을 직 접적으로 건드린다·
-그렇다면··· 저희가 이 자리에 서 함께하는 것도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미겠네요·
-그래· 백유설이 쓰러진 직후 멸 망이 앞당겨진 것도 아마 같은 이유 에서겠지· 그가 멸망을 막기 위해
우리를 끌어모았으나 역으로 회공 시월이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우리는 바보가 아니야· 그 싸가지 없는 자식의 속셈에 당해줄 생각은 없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은세십일월의 한 마디를 마지막으 로 일동 모두가 침묵하였다·
과연 백유설이 노력해왔던 결과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백유설이 깨어났으 면 좋겠어요····”
그가 일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그날 이후·
백유설은 오랫동안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사홀이 되고 일주 일이 지나 마침내 한 달이 흘러·
신년 1월 1일·
새해의 첫눈이 내리던 날·
때마침 백유설을 간호하던 간호사 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몸 이 허공에 서서히 떠오르더니 초록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사아아···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꿈틀거리며 발산되는 그 광경을 의사가 보았다 면··· 아마도 생명이 탄생하는 순 간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펄럭-!
“어머?”
병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기에 서둘러 병실로 간호사가 달 려왔으나 다시금 침대로 풀썩 떨어 진 백유설을 보고서 고개를 갸웃했 다·
“아무 일도 없잖아? 방금은 무슨 소리지···
어째서인지 그의 이불이 흐트러져
있기에 조용히 정돈해 준 간호사는 환기를 위해 살짝 열어둔 창문이 원 인이라 생각하고서 그것을 꼭 닫은 뒤 병실을 나섰다·
움찔!
백유설의 눈썹이 살짝 떨렸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