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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담갈토이월(8)
담갈토이월의 권능은 흔히 ‘절대적 인 보호’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십이신월이 가 진 가장 대표적인 권능 중 하나일 뿐 그들의 모든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성격과 속성 사랑하는 것과 싫어 하는 것 꿈과 희망· 십이신월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나 누구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십이신월은 너무나도 오래되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존 재였으니까· 그들에게 감히 인간을 대입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이다·
“···내가 정말 이걸 사용해도 좋 을지 모르겠군·”
올림픽 경기장보다도 더 거대한 어 느 제단의 한가운데·
빛나는 마법진 위에 올라선 담갈토
이월이 망설이자 백유설은 잠시 고 민했다·
‘그러게···?
써도 되는 거 맞나? 사실 그도 잘 은 모른다· 생명의 뿌리는 마녀왕이 툭 내던지고 갔으니까·
하지만 저 물건의 사용처를 아무 도 알지 못한다는 점 하나는 확실하 게 알고 있다· 게임 내에서 저 신물 의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두림 사월을 만났을 때에도 그녀 역시 사용법을 아예 알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생명의 뿌리를 들고 서 담갈토이월을 조우한 플레이어가
일종의 호감도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제대로 된 사용처 가 알려지게 되었다·
“괜찮습니다·”
사실 그러한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 다· 혹여나 다른 사용처가 있다고 해도 백유설은 자신의 선택을 확신 하고 있었다·
담갈토이월·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 버린 그의 육신은 그 어떤 생명을 창조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다 고 말할 수 없고 생명의 탄생을 바 라볼 수밖에 없는 운명·
저 찬란하게 빛나는 생명을 보라·
얼마나 아름답고 환상적인가·
고작 100 년에서 200년 남짓밖에 살지 못하는 주제에 저들은 생명력 을 원동력으로 쉴 새 없이 움직여 세상을 가꾸어 나간다·
십이신월들이 그 무한한 수명을 가 지고서 조용히 세상의 저편에서 살 아갈 때 저들은 아이테르 대륙을 온 통 자신들의 흔적으로 뒤덮어버렸다·
천 년의 역사와 이야기·
평화와 사랑 전쟁과 증오·
발전하는 과학과 눈부신 문명까지·
생명이 일궈놓은 놀라운 광경들·
담갈토이월은 꽃이 피지 않는 영원 한 가뭄의 땅속에 잠든 채 저들의 반짝이는 영혼을 그저 동경하며··· 그렇게 천 년의 세월을 버텨왔다·
겨울이 끝난 2월의 십이신월·
차디찬 흙으로 뒤덮인 그에게는 꽃 을 피워낼 자격이 충분하다·
연두림사월의 신물은 담갈토이월 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선물이다·
“···시작하겠다·”
,,예·,,
백유설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담갈토이월은 생명의 뿌리를 바닥에 힘껏 꽂아넣었다·
화아악-!
연두색 빛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지 며 백유설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 날렸다· 그는 표정을 찡그린 채 자 세를 굽혀서 중심을 잡았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생 명의 파동·
‘이거 좀··· 위험한데?’
백유설의 신체에는 그 어떤 마나도 담겨 있지 않아 이렇게까지 높은 농 도의 마나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면 그것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그런 그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 지 담갈토이월은 생명의 뿌리를 바 닥에 완전히 꽂아넣어 가동시키고 말았다·
‘자 잠깐···!
있는 힘껏 입을 벌려서 소리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침묵·
순간적으로 모든 소리가 고요해진 듯한 착각과 동시에 백유설의 전방 에 거대한 파도가 나타났다·
63빌딩보다도 드높은 듯한 그 파 도는 연두색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마나· 너무나도 압도적인 농도의 생
명력이 요동쳐 마치 파도의 형상을 하고서 나타난 것이다!
저것에 덮쳐지면 결코 무사할 수 없 을 것이다· 생명에 취한다고 해서 죽 는지 안 죽는지는 모른다· 마력누설지 체에 대해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으 니까· 하지만 몸 상태가 성하게 끝나 지 않으리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연두림사월의 기운이 당신의 몸속 에 스며듭니다!]
“ O 。윽··· =7 0 0 0」
파도에 휩쓸린 백유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힘을 풀고 말았다· 휘몰아치는 마나와 점점 어두워지는 정신력·
知 장···
백유설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청동십이월의 가호가···!]
[연홍춘삼···!]
[은세···!]
은색과 연홍색 그리고 청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감싸
는 모습이었다·
* * *
별꽃나무의 지하 방공호는 단순하 게 지구의 방공호와 같은 구조로 설 계되어있지 않다· 최고의 마법기관 답게 아주 특별한 마법진이 거대한 배리어를 치고 그 내부로는 허락된 자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었다·
으아아앗!”
풀레임이 초록빛 배리어 속으로 몸 을 날리자 그 뒤로 학생들이 따라
서 들어왔다· 이미 백 명이 넘어가 는 생도들의 숫자·
오로지 풀레임 단 한 명의 학생을 바라보고서 쫓아온 이들이었다·
“허억 후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자 그 옆으로 은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주저앉았다·
체력도 풀레임보다 좋지 않은 주제 에 애써 힘든 티를 감추려고 온갖 고귀한 척을 다 하는 저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피곤한 와중에도 웃음 이 나왔다·
“하아 야· 공주님·”
다른 학생들이 죄다 바닥에 꼴사납 게 널브러져서 자유롭게 쉬는 와중 에도 양다리를 끌어모아 품위를 유 지하던 홍비연은 머리카락을 뒤로 홀러 넘기며 고개를 돌렸다·
대답은 하지 않는다· 제딴에는 어 떨지 몰라도 힘들어서 저러는 거 다 아는 풀레임에게는 그저 웃겼다·
“너도 바닥에 드러눕지 그러냐?”
무시하려는 듯 말없이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옷긴다·”
풀레임은 실실 웃으며 배리어 바깥 쪽을 바라보았다·
수십 마리의 망령들이 배리어에 모 여서 쿵쿵 두드려대고 있었다· 바글 거리는 거인의 망령을 보고 있자니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저것들을 뚫 고서 이곳에 도착한 게 기적처럼 느 껴 졌다·
“후우 네가 미친 짓을 하는 바람 에 하마터면 위험해질 뻔했잖아· 그 래도 고맙지? 외딴곳에서 조용히 숨 질 뻔한 거 내가 구해줬는데·”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
딱히 뭔 말을 들으려는 것은 아니 고 그냥 왠지 모르게 자꾸 말을 걸 고 싶어져서 그랬던 것이기에 대수 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는데·
“···그래 고마워·”
,,엥?,,
홍비연에게서 답이 돌아왔다·
“뭐라고?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다시 말해봐· 또 듣고 싶어·”
“닥쳐· 시끄러우니까·”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낸 홍비연은 머리카락을 뒤로 올려서 묶
은 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
풀레임은 그녀가 자리를 옮기는 이 유마저도 예상할 수 있었다·
“낯간지러워서 튀는구만?”
피식 웃음 풀레임은 반대쪽을 돌아 보았다· 고귀한 흥비연과는 달리 바 닥에 엉망진창으로 늘어진 에이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렇 게나 흩어진 하늘색 머리칼에 땀이 맺혀서 그런 것인ス 1 마치 겨울의 눈꽃을 보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야·,,
“느에에····”
“배꼽 보인다·”
그 말에도 에이젤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적잖이 힘든 모양이다·
쿠쿵! 쿵!
하는 수 없이 에이젤의 배를 손수 덮어주는데 바깥에서 요란한 굉음 이 들려왔다· 하늘에서 거대한 나무 기둥이 떨어지던가 초록색 빛무리가 허공에 맺히며 광선이 떨어지는 등 화려한 엘프의 마법·
“교수님들이 오신다·”
“사 살았다···!”
“어흐흑···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이곳으로 도망치는 와중 엘프와 인 간들은 너도나도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길을 뚫었다· 풀레임은 엘프 생도가 고립되었든 인간 생도 가 고립되었든 가리지 않고 위험에 처한 모든 학생을 구출해 냈다·
그러자 마지막에는 엘프 생도가 인 간을 먼저 발견하여 달려들기도 했 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경계의 선을 긋고서 따로 앉아 있던 그들 이 지금은 완전히 뒤섞인 채 쓰러 져있는 모습만 해도 얼마나 서로에 게 동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었다·
어깨동무를 한 엘프와 인간도 보였 고 서로 등을 기댄 채 잠에 빠져든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해피 엔딩으로 끝나서 다 행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다 오싹한 감각이 솟아올랐다·
‘해피 엔딩···?
누가 그렇게 정했지?
생각해 보면 풀레임은 아직 이 상 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거인의 망령이 어째서 나타났는지 과연 해치우는 게 가능키나 한 것인 지· 아무리 쓰러뜨리고 또 쓰러뜨려
도 무한히 나타나는 거인의 망령들·
쿠궁···!
그러다 바닥이 크게 진동하자 풀 레임은 표정을 찡그렸다·
‘이상해·’
진동이 이전보다 더 커지고 가까 워졌다· 마치 지진의 진원지가 이곳 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설마···!”
“어 풀레임 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풀레임은 교 수님들의 마법에 적중당하여 거인들 의 망령이 모조리 쓰러지는 타이밍
에 맞춰 배리어 바깥으로 도망쳤다·
“학생! 바깥은 위험해! 다시 안으 로 돌아와!”
어떤 교수님이 소리쳤으나 그녀는 무시하고서 건물 위쪽으로 달렸다·
도중에 살아남은 망령 하나가 팔을 휘둘렀으나 어디선가 나타난 얼음 의 송곳이 그것의 명치를 쑤셔박았 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뒤쫓아 나온 에이젤이 지팡이를 뻗고 있었다·
“에이젤! 학교의 꼭대기에 얼음 기 둥을 소환해 줘! 최대한 높이!”
“네? ス지금요?”
에이젤의 안색이 창백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서!”
“네 넵!”
푸른색 수정이 박힌 스태프를 이리 저리 휘둘러 마법진을 그려낸 에이 젤이 마법을 발동시키スト 거대한 얼 음 기둥이 별꽃나무 마법학교의 옥 상으로부터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빛을 발산하여 그 반동으로 학교를 순식간에 뛰어오른 풀레임은 얼음 기둥에 식물을 단단하게 둘렀다· 그 것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하기 위 함이었다·
얼음 기둥이 한참이나 솟아나더니 성장을 멈추었고 그 꼭대기에 선 풀레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아·”
갈색의 사람이었다·
머리는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드높 았고 덩치는 지평선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사람·
“말도 안 돼····”
그제야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을 알 아낸 풀레임은 아연실색하여 지팡이 를 떨어뜨렸다·
“저 저게 뭐야!”
“거인··· 거인이다!”
“으아아아악!!”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하여 아래쪽 에서 지켜보던 교수님들과 학생들 역시 거인을 보고야 말았는지 기겁 하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쿵! 쿠궁!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거인· 저것이 세계수에 닿으면 어떻 게 되는가·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결과 는 아주 손쉽게 예측할 수 있으리 라·
“주 죽을 거야···
누군가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누 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배리어 바깥으 로 도망쳤으며 마음이 여린 학생은 그대로 기절하여 바닥에 쓰러졌다·
풀레임은 눈을 감았다·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 재에게 대항할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일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아득한 절망이 두 발로 걸 어오고 있는 와중에도 왠지 모르게 희망이 가득한 이유는·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 어라?”
“뭐야···r
“갑자기 거인이···!”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소리치는 소 리가 들려오자 풀레임은 감았던 눈 을 떴다·
그곳에는 세계수에 닿을 듯 손을 뻗은 거대한 갈색의 거인이 건전지 가 다된 곰인형처럼 정지해 있었다·
우뚝 굳어버린 그 거인의 모습을 보며 풀레임은 허탈하게 웃을 수밖 에 없었다·
“진짜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 는 거야· 사람 식겁하게···
이번에는 기필코 자세한 설명을 듣 고야 말겠다고 생각한 풀레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