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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교환학생(5)
별꽃나무 마법학교 유학생 전용 신 막사가 올해의 스텔라 교환학생들을 위해 신축되었다고 전해져 많은 학 생들의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흥하듯 역시 나 신막사는 별구름 상회의 주도하 에 지어져 어마어마한 퀄리티를 자
랑했다·
인간들의 편의성을 잘 봐준 것은 물론 복도 전체에 나무뿌리가 돋아 있는 데코레이션이라든가 기숙사 로 비 증앙에 우뚝 솟아 있는 축소형 세계수 모형은 건축가가 미적으로 얼마나 힘을 썼는지 알 수 있는 부 분이었다·
““오셨습니까 스텔라 생도 여러 분!,,,
스텔라에도 기숙사를 관리하는 사 감과 사용인이 존재했으나 학생들에 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 다· 인간 중에서는 귀족으로서 권력 을 지닌 채 살아와,그것에 너무 익
숙해진 학생들이 많았기에 그 감각 을 버리라는 의미에서 스텔라의 사 용인들은 말 그대로 유령’처럼 움 직이고 행동했다·
분명히 존재하며 학생들의 편의를 완벽하게 봐주나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이들·
그러나 엘프 사회에는 귀족이 없 다·
“별꽃나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 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용인들이 생도 들에게 예의를 갖출 수 있게 되었 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각 종 족이 추구하는 방식과 신념이 너무 나도 달랐기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아 넵···
“안녕하세요···
평민 출신의 생도들은 어색하게 사 용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귀족 출신들은 익숙한 감각이 간만에 되 살아난 듯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중에서도 백유설은 가장 극진한 대우를 받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젤 리엘이 그와 함께 걷고 있었기 때문 이다·
따지고 보면 호텔보다도 호화로운
이 기숙사의 ‘오너’나 다름없는 젤 리엘이 당당히 걷고 있으니 그 뒤로 사감과 사용인 열 명이 뒤따랐다·
‘거 참 불편하네···
학생들이 저마다 기숙사로 흩어지 는 와중 백유설 혼자 그러지 못했 다· 젤리엘이 기숙사를 꼭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말하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
뭐 귀찮기는 했지만 백유설에게도 썩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그는 여 행도 좋아하고 게임도 좋아하는 평 범한 학생이었고 엘프들의 문화로 지어진 기숙사를 구경하는 것도 상 당히 새로운 경험이었으니까·
내친김에 기숙사 상층부에 존재하 는 테라스 야외 정원에서 단둘이 식 사까지 하게 된 백유설은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원래는 이런 기숙사가 아니었는 데· 왜 새로 지은 거야?”
“네가 교환학생으로 올 거라고 생 각했거든·”
“···예?”
조금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내가 오는 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네가 이곳에서 좋은 기 숙사를 쓰기를 바랐거든·”
“그···러냐?”
그녀는 양 손목을 겹치고서 그 손 등 위에 턱을 받치고서 백유설을 향 해 고개를 내밀었다·
“마음에 안 들어?”
은은한 미소와 함께 던져진 그 질 문 속에는 자신감이 한가득 들어 있 었다· 마음에 안 들 리가 없다고 생 각한 것이다·
그 말마따나 백유설은 이 기숙사가 마음에 쏙 들었으나 자신을 위해 지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조금··· 부담을 느꼈을지 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젤리엘의 말에 대답 하지 못했다·
아주 손쉬운 한마디면 충분했다·
‘응· 너무 마음에 들어·’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서 머뭇거 리던 백유설은 결국 눈■치를 살살 보 며 입술을 떼었다·
“저기···
그가 무어라 말하려고 흐卜자 젤리 엘이 그 말을 끊어버렸다·
“식사 끝났으면 그만 일어날까· 너 도 바쁠 테니까·”
“어 응· 그러자·”
젤리엘이 먼저 일어나자 백유설은 그 뒤를 죄인처럼 뒤따랐다· 그녀에 게 들리지 않도록 한숨을 푹푹 내쉬 면서 후회한다·
‘그냥 깔끔하게 반응할걸·’
실망시킨 것 같아서 너무나도 미안 하다· 하지만 과연 거기에서 좋다고 기뻐하는 것도 옳은 일이었을까·
뭐라고 말할까· 그냥 조용히 지나 치기에는 조금 그렇고 이 침묵도 어색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 에서 회오리칠 때 우뚝 걸음을 멈 춰선 젤리엘이 빙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신경 안 써·”
“뭐?,,
“네가 지금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그녀는 한 발자국 다가왔다·
“다만 네가 알아줬으면 해·”
“··뮈グ‘
방긋 웃는 젤리엘· 그 얼굴에는 더 이상 싸이코라고 불리던 악녀의 모 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평생을 속죄해도 씻을 수 없는 죄를 무수히 많이 지었어· 지
금도 속죄하고 있지· 그러니··· 너 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아· 단지 내 생각과 마음을 네가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 정말로· 그것으로 평생 만족하고서 살아갈 자신이 있 어·”
저 말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얼마 나 많이 담겨 있는 걸까· 굳이 이해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 겠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젤리 엘은 만족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차마 백유설은 그녀의 감정을 확인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런 백유설을 두고서 빠르게 기숙 사를 빠져나온 젤리엘은 허벅지 근 육에 부담이 될 만큼 빠른 걸음으로 별꽃나무 교내 부지를 걸었다·
뒤늦게 사용인들과 별구름의 보디 가드가 쫓아오고 있는 게 느껴졌으 나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고 가슴 이 거칠게 쿵쾅쿵쾅 뛰었다· 호흡이 거칠고 머리가 아찔해서 제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백유설에게 내뱉었던 그 말은 틀 림없는 사실이다· 젤리엘은 여태 그 렇게 생각해왔으니까·
‘속죄
죄인으로서 자신이 힘과 권력을 활 용하여 속죄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 에서··· 욕심을 내지 않겠다·
그렇게 결심했다·
‘그게 과연 쉬운 일일까?’
마음속의 또 다른 젤리엘이 속삭이 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여태 갖고 싶은 것을 얻지 못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을 가질 수 없게 되니 짙은 상실감이 가슴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으윽···!”
심장이 지끈거리며 아픈 둣한 느낌 에 가슴을 움켜쥐었으나 그건 통증 이 아니었다· 감정이라는 것을 너무 나도 뒤늦게 깨우치는 바람에 부정 적인 감정을 통증으로 인지해 버리 고 말았을 뿐이다·
‘···아니야· 나는 괜찮아·’
괜찮은 거 맞아? 정말로?
흐]•아 입에서 새어 나오는 거친 호 홉을 스스로 참을 수 없었던 젤리엘
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타탁!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 다· 보디가드가 벌써 쫓아온 것이다· 저리 가라고 내치기 위해 고개를 돌 렸는데 그곳에는 사용인이나 보디 가드가 아닌 백유설이 서 있었다·
“···뭐야· 어디 아프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자신을 쫓아왔 다는 사실에 젤리엘은 눈을 동그랗 게 떴다·
“아니··· 그냥 조금· 피곤해서·”
입을 가렸던 손을 잽싸게 내렸으나 둘 곳이 없어 자신의 팔뚝을 감싸
쥔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자신 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은 언제나 창피한 일이다· 그런 모습을 백유설에게 들켰으니 그녀로서는 지 금이 가장 수치스러웠다·
“왜 할 말만 하고 가냐·”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돌아올 대답이 뻔하니까·”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서는 백유설 보다 젤리엘이 몇 수 우위에 있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대화를 전략적 으로 나누며 상대방의 대답을 표정 과 성격으로 예측하며 살아온 젤리
엘은 그에게서 돌아올 말을 머릿속 으로 시뮬레이션까지 끝마친 상태였 다·
“아니· 네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어·”
“···뭐야 그게·”
“내가 왜 다른 사람의 감정에 부담 을 느끼는 줄 알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 기 때문이야·”
“뭐··· 라고?”
그 말에 젤리엘은 덜컥 겁이 났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백유설은 ‘마 력누설지체’라고 하여 시한부 인생 이라고 들었다· 그와 관련해서는 꾸 준히 조사하고 파고들었고 백유설 에게 직접 ‘괜찮다’라는 대답을 들 어서 이제는 상관없을 줄 알았는 데····
“사라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소 소리는 지르지 말고···
“···미안·”
잠시 입술을 꾹 깨문 그녀는 조심 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네 체질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런 건 아니야· 마력누설지체 따 위는 나를 죽이지 못해·”
그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천 년이 넘는 역사 동안 그 누구도 극 복하지 못했던 마력누설지체를 ‘따 위’로 취급하는 백유설의 그 말이 우습지 않고 오히려 믿음이 간다니·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럼 뭐 때문에 사라진다는 거 야?”
“그건····”
백유설은 잠시 고민하였으나 역시 이것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젤리엘 의 감정을 배려하겠답시고 여태까
지 줄곧 고민해왔던 부분을 저도 모 르게 털어놓은 것부터가 잘못이다·
···확실하지 않으니까·’
아이테르 월드로 오게 된 첫날부터 생각했던 의문 중 하나·
‘만약 메인 에피소드가 끝나게 되 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백유설은 결국 이방인이다·
그런데 과연 에피소드가 끝난 뒤에도 그는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만약 남을 수 있다고 치자·
흑마룡 흑야십삼월을 상대로···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승리하는 게 가능이나 할까?
그런 걱정과 부담이 자꾸만 가슴을 파고들어서 백유설은 그 누구와도 직접적인 감정 교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안· 그건 말할 수 없어·”
한참이나 머뭇거리던 백유설이 결 국 고개를 가로젓자 젤리엘은 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 그거면 충분해·”
“어? 진짜로? 나는···
“충분해·”
사과하러 왔으나 제대로 말을 꺼 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젤리엘은 만 족할 만한 대답을 들었는지 다시 뒤 돌아 가던 길을 재촉했다·
”잠깐····”
그녀를 잡으려고 했으나 그때 뒤에 서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
“아가씨!”
“호 혼자 돌아다니시면 위험하다 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날씨가 춥습니다! 제발 이 코트를
입어주세요!”
별구름의 사용인들이 젤리엘을 애 타게 찾으며 쫓아온 것· 백유설이야 연속 점멸로 금세 따라잡았다지만 저들은 인간이면서도 이 거리를 쉬 지도 않고 뛰어왔으면서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체력도 참 좋은 사 람들이다·
“아휴 이러다 감기 걸리실라····”
나이든 노파 사용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젤리엘의 몸에 외투를 덮어주 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그녀의 변화가 주변인들에게 모두 영향을 끼 쳤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젤리엘이 악에서 선으로 넘어오니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레 그녀를 진심 으로 생각하고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백유설은 그녀의 변화를 포함하여 그런 모든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속죄· 젤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여 전히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앞으로 그녀가 바꿔나갈 미래는 여태 저질렀던 죄 업을 가볍게 뒤덮고 세상을 더 밝게 만들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그녀를 돌려보낸 뒤 혼자서 별꽃나 무의 거리를 걷게 된 백유설은 쌀쌀
한 가을바람을 맞았다·
‘슬슬 겨울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기도 했으 나 백유설은 가을 타는 남자가 아니 었으므로 별로 해당 사항이 아니었 다·
멍하니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백유설 씨」
···순식간에 심장이 녹아버릴 것처 럼 아름다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 았다·
“예 꽃서린 누님·”
폐하라는 말 대신 조금 더 친근하 게 부르던 평소의 그 말투를 사용하 며 반갑게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면사포조차 벗은 채 우울한 눈빛으 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굴의 미소를 지워 버린 백유설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 혹시····”
담갈토이월의 태동 때문이냐고· 그 런 거라면 문제없다고 대답하려고 했으나 그보다도 먼저 꽃서린이 입 술을 떼었다·
“사라진다는 게··· 무슨 뜻이죠?”
“···예?”
설마 그녀가 엿들었을 줄은 몰랐기 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명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젤리엘 때와 마찬가지로 거절하려 고 했다· 아니 애당초 젤리엘은 백 유설에게 ‘어떤 이유가 있다는 사 실’이 중요했기에 그 이유를 정확하 게 듣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꽃서린은 다르다·
백유설이 사라지지 않기를 필사적으 로 바라는 사람으로서 그 이유를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갈구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