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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교환학생(3)
엘트먼 엘트윈이 스텔라에 복귀하 자 혼잡스러웠던 모든 시스템이 순 식간에 복구되었다· 그러나 정작 가 장 중요한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돌아온 탓에 엘트먼의 머리 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아키헤이든·”
,,예·,,
“스칼렛을 교수로 받아들였더군·”
“교장께서도 알지 않습니까· 그녀 에게 대적할 수 있는 마법사는 당신 밖에 없습니다·”
“협박에 비굴하게 꿇은 것도 자랑 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거야?”
“맞서 싸우고자 했다면 그럴 수는 있었겠지요· 하지만 스텔라의 방호 벽은 아주 손쉽게 뚫렸고 교내에서 싸움을 벌여봐야··· 수많은 인명피 해를 남기고 결국 패배한 것은 저희 였을 겁니다·”
타당한 말이었다·
아키헤이든은 마법전사가 아닌 학 교를 수호하는 교감으로서 가장 현 명한 선택을 하였다·
“이번에는 불가항력이었으니 조용 히 넘어가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다만·,,
엘트먼은 스산한 눈으로 아키헤이 든의 속내를 꿰뚫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 너희들의 장난질을 눈감 고 조용히 넘어가주었다· 그 또한 내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 지· 그러나 더 이상 내 눈에 띄는 짓을 벌였다가는 가장 먼저 네 목을
칠 것이다· 명심하도록·”
심장을 주먹으로 움켜쥐는 듯한 섬 뜩한 말에 아키헤이든의 동공이 심 하게 흔들렸다·
‘대체··· 무슨 의미야···?!
설마 자신이 흑마인이라는 사실을 엘트먼이 눈치챘나?
아니 그럴 리 없다·
교주님의 위장술은 완벽하다· 같은 흑마인조차 일부러 흑마력을 드러내 지 않는 이상은 구별하기 어려울 정 도였으니까·
제아무리 대마법사라지만 존재하 지도 않는 흑마력을 대체 무슨 수로 알아본단 말인가?
엘트먼은 아무것도 모른다·
저건 다른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움찔!
모든 진리를 꿰뚫어 보는 듯한 대 마법사가 가진 현자의 눈을 직접 마 주하니 저절로 고개가 떨궈졌다·
저 짙은 어둠과도 같은 눈동자 속 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이 감춰져 있 는가· 아키헤이든이 마른침을 삼키
고서 경직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자 갑작스레 엘트먼이 씨익 웃었 다·
“뭐 서로 선만 넘지 않으면 돼· 나는 교장이고 너는 교감이고· 각자 의 자리에서 제 역할에 충실하면 된 다고· 너도 알지?”
“하하 예··· 알고 있습니다·”
“그거면 된 거야·”
엘트먼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 지나치려 하자 아키헤이든이 그를 급히 불러세웠 다·
“잠시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
습니다·”
“응? 뭔데?”
“이거··· 그 마녀가 두고 간 지팡 이입니다·”
“지팡이? 마녀는 그런 걸 쓰지 않 아·”
“예· 교보재로 사용했나 싶지만 마 녀가 그런 걸 꼼꼼하게 준비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가 져왔는데 ··· 살펴보시 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아키헤이든이 천 으로 감싸여 있던 지팡이를 조심스 레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끈을 풀어서 천을 거둬들이니 수
백 년 전 신선들이나 쓸 법한 투박 한 생김새의 고목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옛날 방식의 지팡이군·”
최근에는 마력석 및 마력수정을 지 팡이의 끝에 달아놓는 형태로 발전 하였는데 완전히 나무로 이루어진 저런 형태의 지팡이는 골동품 가게 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 어렸을 땐 이런 지팡이 하나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엘트먼은 가만히 지팡이를 쓰다듬 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흐음 이 지팡이 마녀가 두고 갔
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건네주려다 깜빡한 것 같군· 자네가 전해주게·”
“···누구에게 주면 되겠습니까?”
엘트먼은 다시 뒤돌아 교장실을 나 서며 말했다·
“백유설· 그 아이에게 갖다주도록·”
* * *
별꽃나무 마법학교와 스텔라 아카
데미가 교환학생을 통해 교류하기 시작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먼 옛날 엘트먼에게 큰 은혜를 입 은 엘프들이 서서히 인간에게 마음 을 열기 시작했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마침내는 마법학교의 교 류까지 발전하게 된 것도 어쩌면 엘 트먼 엘트윈이 이룩한 위대한 역사 적 업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천 년 가까이 엘프 드워프 인간은 서로를 적대하지는 않되 개와 원숭 이의 관계처럼 각자의 터전에서 선 을 그어놓은 채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경계를 모조리 허물어뜨린 장본 인이 바로 엘트먼 엘트윈이었으니까·
올해도 마찬가지로 교환학생이 있 을 예정이었는데 작년에는 별꽃나 무의 엘프들이 스텔라로 향하여 교 육을 받았으니 올해는 스텔라의 학 생들이 별꽃나무에서 교육을 받을 차례였다·
“···젤리엘 생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조금 과하지 않습니까?”
별꽃나무 마법학교 인간 교환학생 전용 신(新) 막사·
무슨 궁전마냥 으리으리하게 지어 진 건축물을 보고서 학과장이 혀를 내두르자 젤리엘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작년에 저희가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역시 스텔라에서 으리으리한 막 사로 반겨주었어요· 엘프들이 좋아 하는 친환경 목재를 잔뜩 이용해서 요· 저희도 그에 따른 보답을 해야 죠·”
“이전 막사가 지어진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건 나무로 지어졌잖아요· 인간 들은 그런 소재를 좋아하지 않습니 다·”
사람들이 알다시피 엘프들은 집에 대한 걱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고 염원하면 엘
프왕이 그 소원을 받아 세계수에게 전달하고 그것을 이루어주기 때문·
하지만 세계수는 어디까지나 목재 를 다루기 때문에 결국 소재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태 엘프들은 친환 경 목자재로 지어진 건물에 매우 만 족하여 살았기에 이에 대해 크게 신 경 쓰는 이는 없었으나 젤리엘은 달랐다·
엘프만 좋아하는 것으로 인간을 반 길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그녀는 어마어마한 자 금력을 동원하여 별꽃나무에 새로운 막사를 건축하기에 이르렀고 토지 와 관련된 문제까지도 오늘 모조리
처리해 버렸다·
“엘프의 문화를 보여줄 수도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만···
학과장이 조용히 말했으나 귓등으 로 듣지도 않고서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에는 이래저래 복잡한 말이 써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별 구름 상회에서 저 막사와 땅을 기부 하겠다는 의미였다·
자기 마음대로 막사를 짓겠답시며 별꽃나무 마법학교 근처의 땅을 통 째로 매입해 버렸으니까·
초코 쿠키를 선물하듯 가뿐히 건물 을 기부하는 젤리엘을 보며 학과장은
질릴 대로 질린 표정으로 사인했다·
“젤리엘 생도· 이건 개인적으로 궁 금한 겁니다만····”
“질문하지 마세요·”
“···예·”
젤리엘은 냉랭하게 그리 말한 뒤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신의 마차에 탑승해 휙하니 사라지고 말았다·
멀거니 혼자 남은 학과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신막사를 다시 바 라보았다· 엘프의 입장에서도 참 살 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 게 지어진 저 막사는 고작해야 2〜3 년에 한 달 정도밖에 쓰이지 않는다·
또한 젤리엘은 2학년이므로 올해 를 마지막으로 저 막사와 마주칠 일 조차 아예 없다·
그 말인즉 올해 한 달을 위해 이 만한 거금을 홧김에 질러버렸다는 뜻인데····
‘대체 스텔라에서 오는 누구를 반기 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저지른 거지?’
젤리엘은 평소에 하월 평야에서 거 주하는 탓에 인간을 비롯하여 다양 한 이종족들과 마주할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워낙 냉소적인 성격 탓에 다른 사람에게 물든 적이 단 한 번 도 없던 젤리엘이었는데 혹시 무언
가 마음의 변화를 주게 된 인물이라 도 스텔라에 있는 것일까?
‘쩝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군·’
자신에게 그 어떤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 젤리엘이었기에 학과장도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까 지 캐묻는 것은 무리였으니까·
또한 건축물은 세계수가 지어준다 지만 교보재를 비롯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필요한 수많은 마법 도구까지 땅에서 솟지는 않는데 이 것을 매년 지원해 주는 곳이 다름아 닌 별구름이었으므로 학과장으로서 는 젤리엘에게 고개를 숙이는 수밖 에 없었다·
달리 말해서·
별꽃나무 내에서의 젤리엘은 절대 적인 권력을 갖고 있으며 그 영향 력은 가히 스텔라에게도 크게 끼치 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는 데····
‘젤리엘에게 찍히는 학생이 아무도 없으면 참으로 좋겠군·’
만약 그런 학생이 존재했다가는 별꽃나무든 스텔라의 학생이든 평범 한 학창생활을 보낼 수는 없을 테니 까·
“저 기요오···
“음?”
신막사를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웬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워낙 귀여운 외모에 청량한 마 나를 품고 있어 처음에는 인간으로 착각했으나 둥그런 귀를 보고서 인 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자네는 누구지?”
“아 저는 아넬라라고 하는데··· 그 보다 혹시 젤리엘 아가씨 못 보셨나 요?”
“젤리엘 생도라면 방금 마차를 타 고 떠났다만·”
“예에?! 아가씨가 커피를 타오라고 해서 가져왔는데요···?”
“···젤리엘 생도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
“말도 안 돼!”
아넬라는 울상을 지으며 젤리엘이 떠나간 자리로 그 짧은 다리를 놀리 며 후다닥 달려갔으나 이미 멀리 떠난 마차가 보일 리는 없었다·
털썩·
자그마한 소녀가 울상을 지은 채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을 보고 있자 니 퍽 마음이 아팠으나 딱히 학과 장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기에 혀를 쯧쯧 차고서 지나쳤다·
“그럼 나는 집에 어떻게 가아····”
여러모로 젤리엘과 함께하는 아넬 라의 하루는 서글프기만 하다·
별꽃나무와의 교환학생은 한 달 정 도로 가을 내내 그곳에서 지낸다고 보면 좋았다·
꽤 긴 시간 체류할 예정이므로 백 유설은 짐을 단단히 챙겼다· 어차피 그곳에 가서도 외출을 자주 할 생각 이기는 했으나 하늘꽃요람에서 인 간들이 애용하는 물건을 구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귀찮네·”
하나하나 골라서 챙겨 넣는 것도 귀찮아진 백유설은 대충 아공간에 죄다 때려박았다· 아공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한 달 정 도 입을 교복과 마도구를 챙기기에 는 충분했다·
그는 특히나 던전 탐사 용품을 잔 뜩 챙겼는데 대부분 알테리샤 학파 의 ‘아이템’으로서 이제는 꽤 완성 된 시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아직 양산화가 되기 전이라 굉장한 값어치를 가진 것들이나 알 테리샤가 선물이랍시고 잔뜩 넣어줘
서 문제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걸 아키헤이든한테 받을 줄은 몰랐네·’
짐을 챙기던 백유설은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나무 지팡이를 바라보 았다· 스칼렛이 가끔 들고 다니며 학생들의 머리에 꿀밤을 놓기도 했 던 장식용 고목 지팡이·
직박구리 안경으로 분석을 끝마쳐 서 이미 저게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 지도 잘 알고 있다·
[생명의 뿌리]
지팡이처럼 생겼지만 저건 지팡이 가 아니다· 구시대의 지팡이도 저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근데 이걸 왜 나한테 준 거지?’
현시점에서 이 지팡이의 활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십이신월 연두림사월 (軟豆林四
月)의 기운이 강하게 반응합니다·]
이건 십이신월의 ‘신물’이었으니까·
아마 스칼렛과 엘트먼조차 어림짐
작으로 ‘십이신월과 관련되었다’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어떻게 활용해 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 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 물건은 연두림사월의 신물 이지만 에피소드에서는 담갈토이월 과 더욱 크게 연관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담갈토이월의 태동]이라는 서브 에피소드를 해결 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아이템 이었다· 지금까지는 구할 방법이 전 혀 없어서 아예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구할 줄이야·”
이걸 스칼렛이 남겨두고 갔으며 아키헤이든이 찾아와 전해주었다는 사실이 못내 찜찜했으나 당장 좋은 일인 것은 틀림없었기에 마음에 크 게 담아두지 않았다·
마녀의 왕 스칼렛·
어째서인지 그녀는 백유설에게 도 움 되는 일을 해주고 있었으니까·
*···믿어도 좋을까·’
조금 도와줬다고 해서 100% 신뢰 하는 것은 좋지 못한 버릇이지만 백유설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스칼렛의 뜻을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