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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실전 훈련(7)
풍제국은 그 역사가 상당히 뿌리 깊은 만큼 마을과 마을 사이에 떠도 는 전설이나 설화가 상당하여 여행 하는 동안 지루할 새가 없었다·
“아 글쎄 200년 전까지만 해도 여 기서 구미호가 살았다니까?”
“예····”
아넬라는 썩어가는 표정으로 식당 의 옆테이블에서 침을 튀겨가며 떠 드는 아저씨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요 타지방 꼬맹이가 우리 말을 하 나도 안 믿네· 허허·”
“그럴 수 있지! 나도 어렸을 때 머 리 둘 달린 늑대와 싸웠던 이야기를 28년 동안이나 아무도 안 믿어줘서 골치 였거든!”
“개뿔! 그건 그냥 거짓말이잖아!”
아저씨들이 떠드는 사이 아넬라는 재빠르게 일어나서 식당을 빠져나왔 다· 흐르는 식은땀이 풍제국의 시원 한 바람에 녹아내렸다·
“후우 좋네···
확실히 맑은 공기가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장소였다· 저 아저 씨들도 허세가 조금 심할 뿐 타지 사람만 보면 자신들의 지방에서 유 명했던 전설과 풍습 등을 전파해 주 고 싶어서 말을 걸어주는 것이니 나 쁜 성격은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문화·
행복한 나라다·
···나의 나라는 멸망했는데·
“으음! 좋은 생각!”
그녀는 최대한 그림자가 비추는 쪽
으로 살금살금 걸으며 주변을 살펴 보았다· 최대한 눈에 안 띄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으나 사실 그닥 소용 은 없는 듯했다·
햇볕이 이미 쨍쨍 내리쬐는 와중 그늘에 숨는다고 사람이 안 보일 리 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걷는 어린 이방인 소녀의 모습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응? 학생· 길을 잃었니? 이 나라 는 처음이야?”
“아 아뇨! 지도 있어요·”
양갈래 머리칼에 세베룬 왕국 마법 학교의 교복까지· 얼핏 보면 중학생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녀가 혼 자 돌아다니고 있는 탓일까 민심도 좋은 풍제국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자꾸만 관심을 가지고는 했다·
흑마인으로서 풍제국에 잠입한 입 장이었기에 썩 좋은 관심은 아니었 다· 얼마 전에 엘트먼 엘트윈이 흑 마력의 마나 파장을 감지하는 신기 술을 거의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 오기까지 했으니 언제까지고 이 위 장을 맹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미 몇 번이나 들켰잖아·’
흑마 억제술로 흑마력을 스스로 봉 인하여 일반적인 마법사에게 절대로 감지되지 않는 이 완벽한 능력도 평
범한 스텔라의 학생에게 걸린 전적 이 있다· 풀레임과 백유설· 남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아이들·
비록 그들이 내게 우호적이었던 덕 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달리 말 하자면 죽을 뻔한 위기였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번 지령은 참 터무니없게도 다짜 고짜 풍제국의 수도 태유산으로 향 해 마녀의 왕이 남긴 흔적을 찾으라 는 명령이었다·
그건 다 좋은데 이렇게까지 힌트가
아무것도 없으면 대체 뭘 어떻게 활 동하란 말인가?
이왕 안 마주치면 좋겠다만 그렇 다고 아예 아무런 소득조차 없이 일 주일 이상 시간을 보내게 되면 이번 엔 진짜 죽는 수가 있었기에 최대한 뭐라도 해야만 했다·
’···뭐라도? 어떻게?’
막막하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아넬라는 관광 명소 로 유명한 장소를 돌아다녔다·
당장에라도 심장이 터져서 죽을 수 도 있는 마당에 맘 놓고 관광이나 즐기자는 생각은 절대 아니다·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 서 미쳐 버릴 것 같았기에 그랬다·
풍제국 태유산 해룡사당·
다리 여덟에 꼬리 셋 달린 ‘바다의 용’이 승천했다고 알려진 태유산 하 천에는 그 신비로운 신수의 존재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여기를 봐도 해룡 저기를 봐도 해 룡· 거의 건물 30층 높이로 세워진 해룡 석상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사방 에 해룡과 관련된 관광 상품이 가득 했는데 아넬라는 그것들을 구경하 는 척 무심한 눈으로 쓸어보았다·
‘저런 걸 사서 뭐에 쓴다고····’
가격도 하나에 최소 3만 크레딧 이 상씩 해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저거 하나면 최소 세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인데 가난한 아넬라로 서는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다·
“이봐 학생· 관광 왔어? 부적 하나 사 가지 그래?”
멍하니 상품을 구경하는데 옆에서 웬 할아버지가 부적을 흔들거렸다·
“부적이요?”
그려· 단돈 5천 크레딧· 자네는 행운을 5천 크레딧으로 사는 거야·”
“에이··· 그런 뻥을 누가 믿어요·”
아넬라는 어른이다·
나이 40먹은 어른·
외관은 어린애라도 저런 상술에 속 지 않는다·
“허허··· 뭘 모르는군· 그래 꼬마 아가씨 말대로 이 부적에 아무런 효 과가 없을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이 부적을 가짐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렇게 믿어서 뭐가 좋은데요?”
“세상에 믿지 않고서도 해낼 수 있 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이 부적은 그 믿음을 담아서 축적해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서 쓸 수 있도록 도와주 ス1· 그렇게 믿도록 해주는 거야·”
“에···
그러니까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아서 꺼낼 수 있다고 ‘믿게 해주 는’ 물건이 저 부적이라는 말이던가·
뭔가 이상한 말인더】 또 그럴듯하 다· 평상시 같았다면 멍청한 소리라 며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만 지금 당장 아넬라는 망망대해를 떠 도는 뗏목과도 별다른 바 없는 처지 였기 때문에 뭐라도 믿어야만 했다·
“사 살게요·”
“덤으로 믿음에 믿음을 부여해 주
는 물건도 있는데 한번 볼텨?”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빨려나간 육 만팔천 크레딧·
양손에 한가득 쥐어진 부적과 가짜 신물을 보고서 아넬라는 뒤늦게 한 숨을 폭 내쉬었다·
“멍청해···
이런 걸로 정말 뭐든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뭐하러 노력하겠는 가·
그래도 이왕 산 거 버릴 수가 없 어서 가방에 부적을 챙겨 넣으려는 데 눈에 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일전에 백유설이 갖고 있으라며 건
네주었던 낡은 부적 한 장·
“···이것도 부적이네·”
마법사의 세계에서 부적이란 참 낯 설기 그■지없다· 애초에 부적은 마법 이라기보단 주술과 도술에 가까웠기 때문·
주술은 마법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아주 오랜 세월 전에 사장되 었으나 여전히 그 세대를 이어가는 이들이 남아 있다고는 들었다·
철저한 계산으로 발현되는 마법과 는 달리 주술은 믿음과 신앙으로 발 현된다고 했던가·
듣기만 해도 퍽 이상하다·
“이건 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그러다 부적장사꾼 할아버지에게 시선이 갔다· 어차피 부적까지 대량 으로 구입했겠다 이 정도는 물어봐 도 대답해 주지 않겠는가·
“저기요 할아버지·”
“응? 더 사게? 환불은 안 돼·”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예전에 갖고 있던 부적이 하나 있거든요· 이것도 그 뭐 믿음의 부적 그런 거 예요?”
“부적···? 어디 한번 보자꾸나·”
아넬라가 낡고 여기저기 찢어진 백
유설의 원혼 부적을 내밀자 할아버 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으음? 이건···
“뭔지 좀 아시겠어요?”
그녀의 질문에도 할아버지는 눈가 를 찌푸리고서 한참이나 그것을 보 더니 서랍에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 부적을 들고서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건··· 300년도 더 전에 사라 진 고대 풍술어구나·”
“풍술어요?”
“그래· 너희 마법사들이 마법의 언 어로 기초하는 룬어와 비슷한 풍제
국 특유의 주술어지· 오래전에 그 전통이 끊어졌다고 들었는데··· 거 참 신기하구나· 게다가 상당히 강력 한 주술이 걸려 있던 것 같은데··· 꼬마 아가씨· 이걸 대체 어디서 구 했어?”
“그 그냥요·”
“아무튼 그 부적 굉장히 귀중한 물 건이니 소중히 보관하거라· 어떤 신 비로운 힘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부적을 다시 받아 든 아넬라는 새 삼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낡고 찢어진 부적 한 장·
고작 이것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믿
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었다·
백유설의 말을 정말 믿어야만 하는 지 믿어서 인간이 될 수는 있는 것 인지 슬슬 의심까지 들었는데·
···진짜였어·’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혹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해석은 안 되는 건가요?”
“으음 이건 전통 주술사를 찾아가 야 해석할 수 있겠구나· 나로서는 전혀 모르겠어·”
“그런가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주술사의
혈통은 죄다 끊어졌고 길거리에서 부적 장수나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이런 진짜배기 부적을 해석할 수 있 을 리는 없어 보였다·
아니 잠깐·’
그렇다면 저 할아버지가 팔아치운 이 부적들도 죄다 가짜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순간 열이 뻗쳐서 한마디 하려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 냈다·
“아아 그렇지· 최근에 어린 주술사 가 한 명 들어왔다고 했던가· 주술 을 제대로 계승받았다고 들었는데 정 뭣하면 그 소녀를 찾아가 보렴·”
“어린 주술사요···r
“그래· 네 또래라고 했는데 굉장히 용하다더군· 성곽길에서 가끔 눈에 띈다고 했던데···
“이름은 어떻게 되는데요?”
“그건 아무도 몰라· 생김새도 가면 을 쓰고 있는 탓에 봤다는 사람이 드물고· 그래서 오히려 찾기는 쉬울 게다· 가면 쓴 어린 주술사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
“으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 사한 아넬라는 부적을 멍하니 보며 거리를 걸었다·
당장 마녀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 부적의 비밀을 알 아내고 싶었다·
‘어린 소녀 주술사라···
당장 찾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웅성웅성-
부적을 손에 꼭 쥐고서 태유산의 도 로를 걷는데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 이 몰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눈에 흑마력을 집중하고서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 양복을 입은 마법사
들이 진을 치고서 사람들을 가로막 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거대하고 화려한 마차·
그 위에 새겨진 인장 ‘별구름 상 회의 선명한 녹색 마크·
오로지 별구름 상회장과 그 친딸밖 에 사용할 수 없다는 진짜배기 문양 을 보고서 아넬라는 두 눈을 동그랗 게 떴다·
‘별구름 상단주가 직접 이곳에 행 차한 건가···?(
사실상 풍제국을 먹여 살리는 장본 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남부 평
야의 진정한 실세 별구름 상회·
“정말 무시무시하군·”
“그러게 말이야· 고작 상인 한 명 이 나타났다고 바람의 일곱 가문이 직접 행차해서 맞이할 정도라니····”
“별구름 상회를 무시했다간 조만간 있을 계승식에서 철퇴를 맞을 테니 까 어쩔 수 없겠지· 아주 설설 기고 있을 거야·”
“심지어 지금 회장이 직접 온 것도 아니고 딸래미가 온 거라면서?”
“회장님이나 그 딸내미나 시끄러 운 거 싫어해서 어지간한 일 아니면 태유산으로 잘 오지도 않잖아·”
“뭔가 엄청 중요한 일이 있는 거 야· 틀림없어·”
“정말? 태유산 부동산의 30%를 먹어놓고서 오지도 않는다니· 아주 배가 불렀군·”
“부를 만하지· 별구름인데·”
누가 왔나 했더니 별구름 상회의 딸 젤리엘이 직접 태유산에 찾아온 모양· 고작해야 스물도 안 된 어린 소녀가 찾아왔는데 나라가 들썩일 정도라니· 새삼 어마어마한 영향력 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라는 생각에 경외감마저 든다·
저 멀리 젤리엘의 옆모습이 언뜻 보인다· 흑마인인 자신보다도 감정 이 더 메말라 보이는 차디찬 인상·
‘에휴 저런 데 신경 써서 뭐 해·’
앞으로 평생 엮일 일도 없을 텐데·
아넬라는 고개를 휙휙 내젓고서 성 곽을 향해 힘차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