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
52· 실전 훈련(5)
새벽녘 동터 오를 무렵·
스텔라 아카데미의 상공에 서른 척 의 비행정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비행정이 날아오르는 장 관은 항공교통에 의해 불가능한 일 이었으나 아무튼 그 거대한 비행정 이 순차적으로 날아오르는 모습 또
한 꽤 장관이었다·
반디연과 류데릭은 열 명의 1학년 생도들을 이끌고서 풍제국으로 향하 기 위해 세 번이나 비행정을 갈아타 고 열차를 두 번이나 거쳐서 워프 흘까지 사용해야만 했다·
아돌레비트 왕국 스칼벤 제국 연 금성 아르카니움 등 큼지막한 국가 나 기관은 대부분 중앙대륙에 위치 해 있었으나 풍제국은 남부 평야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륙이 워낙 넓은 만큼 장거리 여 행은 기본적으로 익숙해져야만 하는 부분· 거의 서너 시간의 장거리 질 주 끝에 그들은 풍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부 하월 평야·
바람의 나라 풍제국·
대륙을 관통하는 일곱 개의 대하천 을 갖추고 있어 남부 무역의 중심지 이기도 한 이곳은 수많은 종족이 의 기투합하여 사이좋게 모여 사는 곳·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여행하는 모 험가들은 언제든 달빛 아래에 머무 르는 연꽃 객잔에서 쉬어갈 수 있으 며 수인족들은 떠돌이 상인들을 언 제나 환영하여 신문물을 받아들였고 자유를 갈망하여 잠시 휴식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언제든 신선 호수에
서 낚시를 하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풍제국은 그 복장부터가 중앙대륙 의 국가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는데 바람이 잘 통하는 천 옷을 즐겨 입 는 이들을 보고서 백유설은 오랜만 에 동질감을 느꼈다·
,거의 뭐 한복이네·,
백유설은 풍제국의 수도 ‘태유산’ 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월 평야는 여러 이유 때문에 자 주 오긴 했으나 풍제국에 오는 것 은 또 처음· 문화가 상당히 낯설다·
“오··· 여긴 건축 양식이 신기한데·”
“예쁘다·”
“건물에 삿갓을 씌워놓은 것 같 아·”
여행자들이 세운 나라라고 해서 평 범할 거란 인상과는 달리 풍제국은 여타의 국가 못지않은 으리으리한 분위기를 자랑하였다·
거기에 더해 지구의 유럽식 분위기 를 보여주는 아이테르의 중앙대륙과 는 달리 동양풍으로 지어진 풍제국 의 건축 양식은 스텔라의 학생들에 게도 상당히 낯선 것이었는지 그들 은 정신없이 풍경을 구경하였다·
“자 다들 모였나?”
반디연은 열 명의 학생들을 죽 줄 세워놓고서 말했다·
“우리는 여행 온 게 아니잖아· 그 렇지? 풍제국이 아름다운 장소이고 보여줄 것도 많다는 점에서 나도 참 아쉽지만 우리는 곧바로 임무 수행 지로 떠나야 해·”
그리고 그 장소는 생각 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반디연이 염력으로 허공에 지도를 펼친 뒤 지팡이로 가리킨 위치는 수 도 태유산의 서쪽 골목·
“페르소나 게이트는 도시에 잘 출 몰하지 않아·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는 수사관들이 연구 중이라고 하지 만··· 어쨌든 중요한 건 저게 바 로 우리의 임무라는 거지·”
“이곳에는 풍제국 출신도 있고 아 닌 사람도 있겠지만 문화에 대해서 는 각자 예습해 왔겠지?”
류데릭이 묻자 학생들이 모두 고개 를 끄덕였다·
마법 전사는 임무 특성상 타국으로 파견 나가는 일이 잦았는데 덕분에 마법 전사 자격증은 곧 어느 국가로 도 통하는 여권과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마법 전사의 출신에 따라서 해당
국가가 거부하는 일도 있었으나 어 지간해서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의 미· 덕분에 마법 전사들은 각 국가 별 역사와 문화는 물론 언어까지도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스텔라 재학생을 포함하여 대부분 의 마법사는 ‘카멜른 어’를 사용하 지만 현지인은 그렇지 않아·”
아이테르 월드에도 지구의 영어처 럼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가 하 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카멜른 어·
마법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카멜른 에서 파생된 언어로서 시조 마법사 가 사용하던 언어라는 이유로 현재
에 이르러서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공용어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마법어와 룬어 등의 모든 마법 체 계가 카멜른 어를 기준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에 마법사라면 이 언어를 완전히 마스터하는 것이 반드시 필 人
즉 마법사는 모국어와 카멜른 어 까지 최소 2개 국어를 해야만 한다·
“혹시 이 중에서 풍령어를 사용할 줄 아는 학생 있나? 페르소나 게이 트 내에서 풍령어가 나올 수도 있거 든· 미리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어·”
대부분의 학생은 손을 들지 못했
다·
애당초 대부분의 체계가 비슷한 다 른 언어들와는 달리 풍령어는 상당 히 낯선 구조를 띠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단 두 명·
손을 든 학생이 있기는 있었다·
홍비연과 백유설·
그런데 백유설은 팔을 반쯤 들다 말아서 반디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팔을 반만 들어? 혹시 언어는 아는데 스피킹이 안 되는 거야?”
“아뇨 그건 아닌데··· 제가 할 줄 아는 것 같긴 하거든요? 근데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혀서···
“야· 말장난해? 할 줄 안다 모른 다· 딱 말해·”
다른 사람이 듣기에도 말장난처럼 들릴 정도였을 것이기에 백유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반디연이 중재하였다·
“됐어· 알아듣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니까·”
”···그래·”
류데릭으로서는 후배의 저런 건방 진 말장난이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반디연은 그마저도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다·
“다른 학생들도 기본적인 일상 회 화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예·,,
“우선 출발하기 전에 풍제국의 마 법사 협회 지부에 잠깐 들러야 흐]]· 외국인 마법 전사 임무 수행 절차는 다들 알고 있겠지? 그걸 지금부터 보여줄 거니까 따라서 참고해·”
그리 말한 뒤 반디연이 앞장서자 학생들은 정신없이 수도 태유산을 구경하며 따라 걸었다·
백유설이 맨 뒤에서 느릿느릿하게
걸어서 뒤쫓아오고 있자 홍비연은 그를 힐끗 확인한 뒤 일부러 느리게 걸어서 걸음을 맞추었다·
그러고선 지나가듯 물었다·
“평민· 너 풍령어를 할 줄 알아?”
풍령어를 배우느라 얼마나 골머리 를 앓았던가· 기억력과 관련된 특성 을 가지고 있어 남들보다 암기 과목 에 자신 있는 홍비연조차 머리가 다 아플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어· 그럭저럭·”
“···하긴·”
백유설이 모르는 언어가 있다면 그 것도 그거대로 이상하다·
휘이잉···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풍제국 특유의 맑고 깨끗한 공기·
영혼마저 관통하여 시원하게 만드 는 듯한 공기를 만끽하면서도 홍비 연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솔직히 이 상황 자체가 그녀에게는 썩 불만이었다· 어째서 단둘이 임무 를 수행하는 건 불가능하단 말인가·
고작해야 3리스크의 페르소나 게이 트 정도는 가뿐하게 해치우고 나올 자신이 있는데·
차라리 멤버 두 명으로도 신청이
가능한 몬스터 사냥이나 던전 탐색 같은 임무를 신청할 걸 그랬다는 생 각이 들었다·
홍비연이 저 앞에서 걷는 멤버들을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무렵 백유설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초골 릿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
그녀에게는 상당히 뜬금없는 행동 으로 보였지만 백유설을 비롯하여 여타의 학생들에게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행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쳐다보는 홍
비연이 퍽 귀여웠던 백유설은 주머 니에서 초콜릿 바 하나를 더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어· 너도 하나 줄까?”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니 그녀는 아 직 미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을 터·
“싫음 말고·”
순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초 콜릿을 다시 회수하려는데 그러기 도 전에 그녀가 붙잡았다·
“···먹을게·”
“그러냐·”
그러고선 초콜릿을 무슨 눈빛으로 꿰뚫어버릴 것처럼 노려보았다·
“왜· 서민의 음식은 처음이냐?”
“나도 초콜릿은 디저트로 자주 먹 어·”
“그건 초콜릿 열매를 녹여서 만든 진짜배기 비싼 초콜릿이잖아· 이건 카카오를 녹여서 만든 거야·”
놀랍게도 아이테르 월드에는 초콜 릿 열매라는 환상의 식물이 실존했 으나 안타깝게도 굉장히 희귀하여 부자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상관없어·”
홍비연은 그리 말한 뒤 백유설 표 싸구려 초콜릿을 있는 힘껏 입에 물 었다·
그러고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하지 않아·’
불과 일주일 전에도 달콤한 음식을 먹으려는 시도를 해보았으나 실패했 었다· 달콤하기는커녕 토악질 나오 는 역겨운 식감이 소용돌이치며 그 녀의 머리를 쿵쿵 울려댔기 때문·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달콤하다는 맛 자체는 아주 미세할 뿐이었으나 신기하게도 전혀 역겨운 맛이 느껴지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
레 혓바닥으로 녹아들었다·
한 입 두 입·
홍비연이 그 작은 입으로 초콜릿을 삼켜 버리자 백유설은 의외라는 표 정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미각이 돌아왔나?’
홍비연의 미각을 살려내기 위해 노 력했던 그 소수의 플레이어들·
그녀의 목숨을 건져내는 것은 끝끝 내 모든 플레이어가 실패했으나 아 주 극소수의 플레이어들은 홍비연이 라는 악녀의 마음을 열어 미각을 되 돌려 놓는 데에 성공했다·
역시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답게
미각이 되돌아오는 조건 중 하나는 참 우습게도 사랑에 빠지는 것·
왜 그런 조건이 불꽃에 의해 잃어 버린 미각을 되살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으나 중요한 점은 현재 의 그녀가 미각을 어느 정도 되찾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랑에 빠질 일이 있었나?’
의문 가득한 눈으로 홍비연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뒤늦게 초콜릿을 다 먹은 그녀가 화들짝 놀라서 헛기 침을 했다·
“굳이 초콜릿 열매로 만든 초콜릿 이 아니더라도 맛은 비슷해· 초콜릿
열매가 더 맛있는 건 서민들의 착각 일 뿐이야·”
“그러냐· 근데 그거 진짜로 먹어본 적은 있어?”
“···있어· 죄다 뱉었지만·”
“역시 너도 고급 음식보다는 나처 럼 서민 음식에 입이 맞는구나? 같 이 돼지국밥 먹으러 갈래?”
순식간에 홍비연의 표정이 싸늘하 게 굳어졌다·
돼지국밥·
백유설이 혼자 외출하여 자주 들르 는 식당이라고 하여 몇몇 학생들 사 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었는데 그
를 따라서 국밥을 먹어본 학생들의 후기에 따르면 굉장히 역하고 비린 내가 유난히 심하며 음식 자체의 비 주얼이 굉장히 추잡하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돼지국밥이라는 음식은 아르카니움 의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지기엔 너무 나도 낯선 타지의 음식이었다·
미각이 정상적인 학생들마저 역겹 고 비린내가 난다는 욕을 할 정도였 는데 홍비연이면 오죽할까·
평소 같았다면 정신이 나갔냐며 다 짜고짜 욕부터 나왔겠거늘 어째서 인지 그런 말이 목 끝에 걸려 내뱉
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평민이나 왕족이나 평상시에 먹는 음식은 똑같아· 내가 항상 귀한 음 식만 먹는다는 건 고정관념이야· 돼 지국밥도 먹을 수 있어·”
“오··그래?”
과연 돼지국밥을 먹으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벌써부터 국밥 앞에 숟가락을 들고 앉은 홍비연의 모습이 기대가 되었 으나 안타깝게도 동양풍의 풍제국에 는 돼지국밥집이 없는 것으로 보여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그 뒤로도 홍비연은 백유설과 별 시답지도 않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 며 걸었다·
초콜릿 돼지국밥을 시작으로 양파 와 마늘 향신료에 대한 이야기 진 짜 맛있는 요리와 요리를 하는 취 미 평소에 어떤 취미생활을 하며 보내는지 사실 마법서 독서가 상당 히 싫으나 역사책은 상당히 재미있 다는 백유설의 투덜거림까지·
쓸데없는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가 장 혐오하는 홍비연이었으나 백유설 과 대화할 때면 아무리 건설적이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되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여태 홍비연은 백유설이라는 존재 를 한 차원 바깥의 존재라고 생각했 다· 시간을 수천 번이나 거슬러 회 귀하며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는 백 유설은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머 나먼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평민 너는····”
“응?”
“내 생각보다··· 더 평범한 삶을 살
고 있었어·”
“어··· 뭐 당연하지?”
뜬금없는 말에 백유설은 그저 농담 으로 치부하여 웃으며 답했으나 홍 비연에게는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그 또한 평범한 한 명의 소년이다·
그건 홍비연에게 아주 가볍지만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수천 번의 죽음과 수천 번의 패배 속에서 닳고 닳은 영혼이 과연 평범 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게 가능키나 한 일일까· 어쩌면 일상을 갈망하고 있을 뿐이었던 게····
“자· 다들 도착했어· 대부분의 절차
는 나와 조교님이 해주실 거지만 너 희도 보고 참고해야 흐H· 2학년부터 는 누가 대신 해주지 않을 테니까·”
홍비연이 멍하니 사색에 잠긴 사이 에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했는지 반 디연이 그녀의 정신을 깨웠다·
“등록을 마치고 곧바로 페르소나 게이트로 진입할 거야·”
“다들 준비는 됐나?”
반디연과 류데릭의 질문에 학생들 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번 힘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