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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고결한 영혼(3)
탕-!
누군가가 책상을 요란하게 치는 소 리에 에이젤은 황급히 눈을 떴다·
머리가 아직 몽롱하고 시야가 흐릿 하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꾸벅꾸 벅 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 자냐?”
부스스한 눈을 억지로 떠서 시야의 초점을 바로잡으니 싱글벙글 웃고 있는 풀레임의 얼굴이 보였다·
“···네 네? 아뇨?”
“안 자는 척하기는· 명상 시간은 원래 수면 시간인데·”
,,아·,,
그제야 에이젤은 현재 자신이 듣고 있던 강의가 명상 시간이었음을 인 지하였다· 평상시 같았으면 정말로 깊은 명상에 빠졌겠거늘 최근 며칠 은 피곤했던 탓인지 명상 시간에 제 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꾸벅
꾸벅 졸았다·
명상을 하나 잠을 청하나 별로 티 가 나지 않는 수업 시간이라서 혼날 일은 없었지만·
“자 이거나 보라고· 나는 바쁘니까 이만 가 본다·”
“예? 아니 잠깐···
풀레임은 잡지 하나만을 대충 던져 놓은 뒤 바쁜 걸음으로 친구들과 함 께 복도로 빠져나갔다·
에이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잡지 를 확인해보았다·
[아르카니움 매직 매거진]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있던가·
아르카니움의 5대 명문 학교에서는 꽤 자주 동아리 활동을 합동으로 진 행하기도 했는데 ‘아르카니움 매직 매거진’은 5대 학교 학생들의 마법 신문부 합동 동아리였다·
신문부 외에도 합동하여 교류를 진 행하는 동아리는 꽤 많다고 들었는 데 이쪽으로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에이젤도 잘 알지는 못하였다·
···역시나·’
잡지를 짧게 살펴본 에이젤은 슬며 시 웃음기를 내비쳤다·
마녀 마녀 마녀·
죄다 마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문 기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취재를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 학생 기자들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취재하여 교수님들과 무 려 스텔라 기사단의 인터뷰까지 따 낸 것으로 보였다·
내용은 뻔하게도 백유설이 어떻게 마녀를 사냥했는지에 대한 의문점과 더불어 마녀사냥이라는 그 업적을 칭송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마 법사답게 본질적으로 마녀가 어째서 현대에도 남아 있는가를 고찰하는
부분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하지만 역시 학생 기자에게는 한계 가 있었는지 이번 사건의 핵심 부분 은 모조리 간소화되어 적혀 있었다·
풀레임과 에이젤을 비롯하여 멸암 단이 뒤에서 도왔다는 사실은 아예 알지도 못하는 듯했으며 마녀의 정 체가 ‘마지막 마녀의 후계ス『라는 정보 또한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하여 가볍게 후일담을 본다는 마 음으로 잡지를 읽어 내리는 와중 조 금 신경 쓰이는 부분을 발견했다·
‘으응?’
스텔라 기사 중 한 명과의 인터뷰
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백 유설에 대한 평을 썩 좋게 내리지는 않았는데 최대한 예쁘게 말을 한다 고는 했지만 백유설을 좋지 않게 본 다는 것이 티가 팍팍 났다·
‘백유설은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졌고 집단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에이젤의 해독력으로 최대한 풀어 낸 결과 대략 저런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 다·
아무래도 스텔라 기사단에게 단단 히 밉보인 모양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백유설은 어떻게 스텔라 기사단과 공동수사를 진행했는가?’
기사에 적힌 질문이었는데 이 또 한 에이젤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일전에 스텔라의 기사단장 아레인 이 백유설에게 짙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어떤 접점이 있을 것이라고 항 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스텔라 기사 단이 아직 1학년밖에 되지 않은 생 도와 함께 움직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 던 것일까 스텔라 기사단원들에게 밉보인 것은 물론 이런 소식까지 기 사에 적혀 있었다·
‘임시 스텔라 기사 자격을 취득했 으나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백유 설· 이유는?’
에이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해 당 문구를 다시 읽었다·
‘기사 자격을 곧바로 포기했다고?’
총괄기사단장 아레인이 백유설에게 임시로 기사의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은 교내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 져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이 끝난 즉시 기사의 자격을 포기하다니··· 그럴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말이다·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 다· 스텔라의 기사만큼이나 마법 전 사로서 영광스러운 직책은 없을 터·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니고 기사 단장 아레인이 직접 임시 기사 직위 을 내린 것이다·
틀림없이 졸업할 때까지 임시 기사 의 신분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 높은 직책은 보장받았을 터·
이번의 마녀사냥 임무까지 성공적 으로 완수한 관계로 앞으로도 어마 어마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도 불구하고 그것을 미련 없이 놓아 버렸다는 건····
백유설에게 있어서 스텔라의 기사 라는 직위는 그저 눈앞의 사건을 해 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이용수단일 뿐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암만 회귀자라지만·’
아니ス] 오히려 회귀자이기에 이런 판단을 손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일지 도 모르겠다· 수많은 삶을 살아왔을 백유설에게 부와 명예 따위는 더 이 상 의미가 없을 테니까·
잡지를 끝까지 완독하기에는 시간 이 부족한 관계로 그것을 가방에 넣 은 뒤 에이젤은 강의실을 나섰다·
복도가 요란히 유난스러웠으나 최
근 동아리 성과제를 준비한답시고 이런 경우가 잦아서 크게 신경 쓰지 는 않았다·
‘우리 동아리는 뭘 하려나···?
맛집 동아리라는 것 자체부터가 이 미 동아리 성과제에서 무언가를 선 보이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백유설딴에는 다 방법이 있다면서 ‘맛집 로드뷰 프로젝트’라는 해괴망 측한 이름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데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무엇이든 맛있게 잘 먹는 에이젤로 서는 애당초 ‘맛집’이라는 것의 의 미를 잘 알지 못해서 솔직히 그의
준비물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거기에 더해 일전에 마녀 식당에 서 영 기분 나쁜 일을 당하여 마 집’이라는 단어에 회의감이 생긴 것 도 있었다·
‘뭐··· 알아서 하시겠죠·’
일단은 믿고 맡겨도 좋을 것이다·
백유설은 뭐든 잘하니까·
* * *
본탑과 별탑을 잇는 워프 흘 게이 트의 입구는 언제나 학생들로 만선
이다· 이는 워프 홀이 한 번에 하나 의 방향으로밖에 향할 수 없어서인 데 A라는 장소로 향하고 싶은 학 생들이 모여서 동시에 출발하고 B 라는 장소로 향하고 싶은 학생들은 잠시간의 틈을 기다려야만 했다·
보통은 가장 먼저 모이거나 가장 많이 모인 학생 그룹이 먼저 이동하 게 해주고는 했다·
서로 면식도 없고 워낙에 규모가 큰 아카데미인지라 마주칠 일도 드 물어서 남남인 탓에 워프 홀의 순서 를 두고 말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잦 았으나 기술적 한계 때문에 교수들 도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물론 그런 싸움을 종식시킬 수 있 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는 있다·
교수님이 워프 홀 게이트를 이용한 다거나··· 혹은 존재감이 아주 강 력한 학생이 이용한다거나·
지금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서로 워프 홀 게이트를 먼저 이용 하겠답시며 신경전을 벌이던 학생들 은 3학년 여학생의 등장으로 순식간 에 입을 다물고서 자리를 비켰다·
‘사예란 오르칸·’
검은 머리칼에 인형처럼 창백한 피 부를 가진 그녀는 굉장히 무기질적 인 눈빛을 가지고 있었는데 ‘살아
움직이는 인형’이라는 별명이 왜 붙 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갈 정도였다·
사예란은 아돌레비트 왕국의 양대 산맥 중 하나라고 불리는 오르칸 공 작가의 장녀로서 홍시화 공주의 오 른팔로 유명하기도 했다·
또각-!
사예란이 복도를 거닐자 그 뒤로 수행원들이 그녀를 뒤따랐다·
수행원은 한 명 한 명이 전부 스 텔라의 학생들이었으나 태어날 때부 터 오르칸 가문을 보좌한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살아왔기에 여타의 학 생들과는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
다·
오로지 사예란 한 명만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퍽 이질적이었고 소 름이 끼칠 정도였기에 학생들은 그 들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웅웅웅!!
워프 홀 게이트가 활성화되며 목적 지가 뒤바뀐다· 사예란은 아주 당연 하다는 듯 제일 늦게 도착했으면서 도 자신을 위해 워프 홀이 가동되는 것을 기다린다·
“크흠 어디로 가십니까?”
워프 홀을 관리하는 조교는 학생에 게 존댓말을 쓰는 게 퍽 어색한 듯
보였다· 아무래도 이곳의 관리를 하 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으 로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나· 아무리 학생이라지만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사는 귀족에게 반말을 할 만큼의 깜 냥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제 19별탑·”
사예란이 무뚝뚝하게 말하자 조교 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워프 홀을 조 작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잠깐· 나 먼저 쓸래· 비켜줄래?”
그 뒤로 홍비연이 불쑥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게13별탑으로 바꿔줘·”
별다른 수행원 없이 혼자의 몸으로 나타난 흥비연은 팔짱을 낀 채로 턱 을 살짝 치켜세우고서 기다렸다·
그 자세는 마치 ‘너에게 내 말을 거역할 권리 따위는 없다’라고 말하 는 듯하여 조교의 안색이 창백해졌 다·
‘으아아아····’
둘은 완전히 속성이 정반대였다·
사예란은 순수하게 두려움과 공포 심 때문에 명령을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감이라면 홍비연에게는··· 근 본적으로 명령을 반드시 따라야만 할 것 같은 위암갑과 경외감이 새록
새록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감정 따위는 조교에게 중요치 않다·
그는 소시민이었으며 그저 대학마 탑에 진학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워프 홀 게이트 관리를 시작한 것이 고 무려 오르칸 공작가와 아돌레비 트 왕가를 동시에 상대할만한 기백 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제가 이용하던 도중이었습니 다 공주님·”
사예란이 기분 나쁜 듯 인상을 찌 푸리자 홍비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럼 내가 먼저 쓸게·”
“그렇게는 안 됩니다·”
사예란은 명백히 홍비연보다 신분 이 낮으나 그렇다고 또 홍비연이 막 대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사예란은 등에 홍시화라는 든든한 아군을 업고 있었으니까·
“안 돼? 이유는?”
홍비연의 질문에 사예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뜸 ‘내가 먼저 왔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면 그녀는 이 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너보다 먼저 온 쟤들은?’
알고는 있다·
사예란에게는 권력이 있었고 그것 을 아주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경우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기 자신 혼자서 상대하기 버거운 더 큰 권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나서 그 권리를 침해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사예란은 생각했다·
홍비연 공주가 갑자기 왜 저러는 가·
이전의 그녀는 자존심만 높을 뿐 자존감은 낮은 쓰레기 중의 쓰레기
였다· 감히 홍시화 공주님과 비교하 는 것조차도 안타까울 정도로 덜떨 어진 열등생·
감히 자신에게 말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눈이 마주쳐도 재빠르게 줄 행랑을 치던 그 겁쟁이가··· 이렇 게나 대놓고 시비를 걸어올 줄은 전 혀 몰랐다·
“이유 없지? 그럼 나 먼저 쓴다?”
“···그러십시오·”
홍비연은 그리 말한 뒤 아주 자연 스럽게 혼자 워프 홀을 조작하여 순 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저저 개념없는 공주가 무례한 짓
“제가 나중에 따로 보고하도록 하 겠습니다·”
“됐어·”
사예란은 기분 나쁜 듯 눈썹을 살 짝 떨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런 일로 쉽사리 감정을 흐트려놓 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
장차 정계를 휘어잡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수모쯤은 견뎌야 한다· 오히 려 좋은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아 보이시
는데···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건 그런 이 유 때문이 아니야·”
워프 홀을 가로챈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예란 이 기분 나빴던 것은····
자신과 대화하는 내내 마치 태양 이라도 된 것처럼 홍비연이 맑고 화 창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라 도 있었다는 것처럼·
그녀에게 좋은 일은 자신에게 보통 좋지 않은 일이었기에 상당히 신경 이 쓰일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을 알
지 못한다는 점부터가 일단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그 미소를 정면으로 받아내 야만 했던 방금의 짧은 순간이 굉장 히 견디기 어려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장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사예란은 그리 생각하며 워프 흘에 발을 올려놓았다· 홍비연 따위에게 일일이 관심을 주기에는 그녀는 굉 장히 바쁜 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