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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마녀(12)
쐐액!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유리 조각·
살짝 스쳤을 뿐이지만 따가운 감각 이 선명하여 뒤늦게 백유설은 고통 을 감지하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으 젠장· 더럽게 구분하기 힘드네·’
육감을 최대로 발현하였으나 상대 방은 자신보다 몇 단계 이상 수준이 높은 마법사였기에 제대로 공격을 포착하는 게 쉽지 않았다·
환상 마법이 걸리지 않는다는 그 압도적인 상성조차 상쇄해 버릴 정 도로 상대방의 능력은 강했다·
투두두둥!!
천장에서 쏟아지는 비눗방울의 소 나기· 예쁘장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도 닿는 모든 것을 폭파시켜 버리는 무식한 위력을 자랑하는 마법이었으 나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이 공격은 피할 필요가 없다·
‘다섯 걸음·’
비눗방울을 무시한 채 정확한 걸음 으로 질주한 뒤 점멸·
10m의 거리를 이동한 뒤 검을 휘 둘렀으나 상대는 고대어가 적힌 석 판을 소환하여 그것을 막아냈다·
‘뒤로 두 걸옴·’
재빠르게 물러나니 바닥에서 거대 한 검의 앞발이 튀어나와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위치를 훑고 지나갔 다·
방금의 공격은··· 맞았으면 꽤 위 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겠어·’
백유설은 눈가를 좁히고서 이 공간 전체를 지배한 환상을 응시하였다·
환상 마법이란 상대방의 마나를 흩 트려놓는 것으로 헛것을 보게 만드 는 것· 그렇기에 그에게는 전혀 통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몇몇 마법은 실체가 존재해·’
환상이면서 실체가 존재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말이 아닐 수 없었으나 사실이었다·
멜리셔는 환상을 현실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전설의 마법사” ‘마지막
마녀’의 능력을 계승받았으니까·
상대방의 정신이 아닌 이 세계 그 자체에 환상을 걸어버리는 저 무지 막지한 마법은 원작 게임에서도 단 세 번밖에 등장하지 않았으나 그때 마다 극악무도한 능력을 선보여 플 레이어들을 경악하게 만들고는 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등장이 바로 지금· [에피소드]의 선택지마다 다르 지만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멜리 셔와 직접 보스전을 치르게 되는데 당시 첫 번째로 적힌 공략 문구가 바로 이것이었다·
[공략 첫 번째·]
[가급적 최대한 마녀 멜리셔와 싸 우지 않는 루트가 나오도록 세이브 파일을 되돌리세요·]
[이미 두 번 이상 세이브하여 이전 의 데이터가 날아가셨다면····]
[유감입니다·]
오죽하면 버그를 사용하여 데이터 파일을 되돌리라는 문구가 가장 처 음으로 나오겠는가·
멜리셔의 보스전은 쏟아지는 환상 마법을 억제하여 지금쯤 아르카니움
어딘가에 잠복해 있을 카엔과 혜이 진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스텔라 기 사단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는데 만 약 혼자 싸우게 될 경우····
승산은 제로였다·
‘하지만 캐릭터 백유설은 달랐지·,
당시에 ‘캐릭터 백유설,을 여름방 학 이후 개학 시즌까지 육성한 사 람은 지구상에 백유설밖에 없었다·
당시에 그는 멜리셔와 전투를 치르 면서 아주 특별한 현상을 관측할 수 있었는데 마녀의 마법 중 ‘실체를 가진 공격’을 구분할 수 있던 것·
즉 캐릭터 백유설은 실체를 가지
지 못한 미완성된 환상 마법에 대해 완전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실체와 실체가 아닌 공격이 색깔로 표시가 되긴 했지만 일일이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당시에 마녀 멜리셔의 공략에 수십 시간을 퍼부어야만 했던 기억이 있다·
‘설마하니 지금 다시 현실에서 싸 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때의 기억은 틀림없이 도움이 되 었다·
‘비눗방울은 가짜지만 동물의 형 상을 띤 공격은 대부분 진짜였어·’
어떤 공격은 최선을 다해 피하고
어떤 공격은 피하는 시늉만을 하며 멜리셔를 방심시킨다·
그녀는 아직까지 자신의 마법에 빈 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마력누설지체가 아 닌 이상 모든 환상에 완벽히 걸려들 었을 것이고 일일이 ‘실체를 가진 환상’과 ‘실체를 가지지 못한 환상’ 을 구분할 것도 없이 피해를 입었을 테니까 말이다·
‘설정상··· 멜리셔의 능력은 여전 히 성장 중이라고 했던가·’
아직은 성장 중이었기에 몇몇 환상 만이 실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백유설에게 집증적인 공략 포인트가 되었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현실·’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에서는 약점 을 파고들어 공략하면 그만이었지 만 언제나 그래왔듯 게임과 현실은 다를 것이다·
백유설이 걱정하는 부분은 하나·
‘멜리셔가··· 스스로의 마법에 대 해 깨달아버리는 것·’
본래의 예정대로라면 그녀가 한 단 계 더 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특별 한 마녀 사냥꾼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어떤 다른
무언가가 기폭제가 되어 그녀의 능 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버릴지 모르 는 일· 심지어 약점을 안다고 해서 상성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해서 막 상 전투에서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공격 타이밍이 전혀 없어····’
일부러 점멸의 최대 사거리를 2m 정도 숨긴 채 최후의 수를 남겨두었 지만 마땅히 이 수단을 써먹을 기 회가 전혀 마땅치 않았다·
애당초 멜리셔는 점멸이라는 규격 외의 마법에 여유롭게 대처하기 위 해 거리를 최대한 벌리려고 시도했 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격 기회는 억지로라도 잡을 수 있어!’
[점멸]
바닥에서부터 암석이 솟아오르는 것을 교묘하게 피하며 순간이동한 뒤 검을 휘두르자 멜리셔가 다급히 허공에 달팽이 등껍질 모양의 실드 를 펼쳤다·
하지만 그 또한 노림수·
백유설이 왼손에 쥐고 있던 자그마 한 라이트의 버튼을 누르고서 달팽 이 등껍질을 훑고 지나가자 순식간 에 환상 마법이 사라져 버렸다·
“아···!”
저건 틀림없다·
마녀 사냥꾼의 마도구·
‘하지만···!)
멜리셔는 이를 악물고서 양손으로 손뼉을 친 뒤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등에서부터 나뭇가 지가 솟아 나와 전신을 가렸고 백 유설의 검은 그것에 부딪혀 그대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비틀·
“윽···?!”
예상치 못했던 반탄력에 가속도를 버티지 못한 백유설은 중심을 잃고
서 몸을 크게 휘청였다·
,엿됐···!’
찰나의 순간 백유설은 위기를 직 감했다· 베테랑 마법사를 상대로 너 무나도 큰 빈틈을 보인 데다가 심지 어 다음의 점멸까지는 아직까지 약 간의 틈이 남아 있는 상황·
이대로 공격에 적중당하면 필시 치 명상을 입으리라 예상하여 어떻게든 몸을 웅크려 충격에 대비하였으나·
타탓!
*···어?’
멜리셔는 백유설을 공격하지 않고 서 크게 뒤로 물러나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빗자루를 겨누었다·
‘뭐야 왜 공격을 안 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지만 백유설 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
하지만 그녀로서는 상당히 합리적 인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억지로 보인 빈틈·’
멜리셔는 수십 년을 살아오며 수많 은 적을 상대해왔다· 그렇기에 지금 마주한 적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사 실 정도는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 베테랑 마법 전사가 저렇게 나 큰 허점을 내보인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
‘같잖아·’
그런 허접한 수에는 통하지 않는다·
“···흐음·”
그러다 이내 백유설이 천천히 아 슬아슬 자세를 가다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멜리셔의 머리가 새하 얗게 물들었다·
‘뭐야? 저 태도는·’
허점을 내보여서 자신의 공격을 의 도한다는 수는 이미 파악되었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허술한 척 중 심을 잡지 못하는 마냥 비틀대는 꼬
라지라니·
저건··· 더 이상 마법전이나 심리전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를 얕잡아보고서 약올 릴 때나 하는 행위라면 또 모를까·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웃기지 마!!”
멜리셔는 이를 악물고서 분에 겨운 듯 소리쳤다·
“•••뭐?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갑작스 레 그녀가 소리치자 백유설은 크게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의 그런 반응
조차 역겹다는 듯 멜리셔는 고래고 래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무슨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 는 줄 알아? 너 같은 하등한 인간따 위에게 농락이나 당하려고 온 줄 아 냐고! 지금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악다문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백유설에게 입은 상처가 아니다·
스스로 입술을 너무나도 세게 깨무 는 바람에 피가 흐르는 것이다·
“감히 내가 어떤 각오인 줄 알고 서··· 장난을 쳐···
이만큼이나 전투를 치렀으면 깨달 을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자신의 공격이 전혀 먹히 지 않는다·
눈앞이 막막해질 정도로 그 현실 을 뼈저리게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대방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다·
“나는··· 마녀의 세상을 다시금 만들 거야· 마녀의 마을 마녀의 도 시 마녀의 나라를· 내가··· 식당 따위나 운영하고 있어서 우스워?”
눈을 뜬 순간부터 마녀는 외톨이
다· 그것은 운명이었고 섭리였으며 바꿀 수 없는 진리였다·
사회성과 감정을 갖추지 못한 마녀 는 마치 굶주린 짐승과도 같아 서로 의 영역을 갈취하면 모를까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끝내 마녀는 뭉치지 못하여 마녀 사냥꾼에게 하나둘 사냥당했고 지 금은 꼴사납게 음지에 숨어 사는 신 세로 전락하였다·
한때 마음만 먹으면 세계도 가뿐 하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불리 웠던··· 지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우등한 종족인 마녀가 말이다·
멜리셔는 그것이 싫었다·
사회? 나라? 외톨이?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 니었다·
“이제 더 이상 하등 종족에게 천 대받는 삶은 질렸어· 그런데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열등한 인간에게 무시를 당 해야 한다고···?”
백유설은 표정을 굳히고서 다시금 검을 겨누었다· 상대방이 이상한 오 해를 했으나 그것을 굳이 정정할 필 요는 없어 보였다·
차라리 잘된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전투태세 를 정비하려고 했으나 갑작스레····
우뚝·
“아니지·”
멜리셔가 팔을 늘어뜨렸다·
“아니야· 아니야· 아 그래 알겠다·”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 기울인 그녀 는 텅 빈 공허한 눈동자로 백유설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그렇게 쳐다 보면 꿰뚫리기라도 할 것처럼·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던 걸까?”
“장난치려고? 아니야· 그런 줄 알 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 닌 것 같아· 그렇지?”
백유설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멜리셔는 확신을 얻었다는 듯 한쪽 입꼬리만을 귓가까지 기괴 하게 찢으며 웃었다·
“아하? 그렇구나· 너 이 공간이 무서운 거지? 너에게 환상은 통하지 않을 테지만··· 나를 죽이면 현실 에서 완전히 격리된 이 공간에서 빠 져나갈 수 없을 테니까!”
“···잠깐 뭐라고?”
저게 지금 무슨 소리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으나 직박구리 안경의 자동해석 기능은 그가 원하 든 원하지 않든 자동으로 마법을 해 부하여 머릿속으로 주입하였다·
[특수 마녀 마법 환상 결계,의 분 석이 완료되었습니다·]
벼락 줄기가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 간 듯한 짧은 두통이 끝난 뒤 백유 설은 얼떨떨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환상 공간]
* 계열 : 현실계 환상(마녀)
* 해석 : 환상 마법의 극의에 이른 마녀는 새로운 공간을 상상으로 창 조해 낼 수 있습니다·
* 분석 : 해당 공간은 현실에서 격 리된 다른 차원의 새로운····
* 역산 수식▼
「공허 계열 공간 계열 현실계 환상 매혹 계열····
무수히 떠오르는 수많은 정보의 파 도 속에서도 백유설은 가장 중요한 문장을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
‘정말로··· 격리된 공간이라고?’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아니 애당초 격리된 공간이라니·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에서의 멜리 셔는 이 정도 수준까지 대단한 마법 을 사용하지 못했다·
아무리 환상이라지만 공간 그 자체 를 왜곡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7클 래스의 공간계 마법사 다섯 명이 모 여야 할 테니까·
‘역산은···
될 리가 없다·
환상 공간 마법을 역산하기 위해 필요한 계열이 전부 희귀한 종류였 기에 설령 백유설이 마력누설지체가 아니었더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갑작스레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 작했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이제 별로 중요치 않은 사안이 되었다·
”아하하···· 이제 됐어· 네가 두려 워하는 게 무엇인지 안 이상 시간 을 끌려줄 필요는 더 없는 거잖아?”
허탈하게 웃으며 빗자루를 늘어뜨
린 멜리셔는 허공을 향해 검지손가 락을 가리켰다·
통···!
마치 가벼운 유리종을 두드리듯 허 공을 향해 퍼져 나가는 자그마한 파 동· 그러나 그것은 이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을 폐쇄한다·”
“여태까지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 고 있었겠지만··· 이건 몰랐겠지?”
백유설은 황급히 환상 결계의 벽면 을 향해 질주하여 검을 휘둘렀으나 때앵!! 하며 강철벽을 나무 몽둥이
로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충격만이 울릴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런 미친! 이런 짓을 했다가는 너도 빠져나갈 수 없을 텐데?”
“하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죽게 생겼는데 이제 와서 그런 사실이 뭐가 중요할까·
게다가 만약 운 좋게 백유설을 죽 여서 흡수할 수 있다면 마녀 사냥 꾼의 정수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 폐쇄된 환상 결계를 여는 것은 문제 도 아니다·
“아아 표정··· 살벌해졌어···· 이제 야 여유가 사라졌나 보}? 조금은 진
지하게 나를 상대할 생각이 들어?”
그녀는 기품 있게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고서 요조숙녀처럼 웃었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이제는 나를 죽이더라도 너는 영영 환상 속에 갇 혀서 빠져나갈 수 없을 텐데 말야·”
백유설이 말없이 검을 겨누자 그 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멜리셔의 입 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감히 내 자존심을 짓밟고 희롱한 대가야· 달게 받아들이도록 해·”
빗자루를 수직으로 세워 그 위에 우아하게 올라탄 그녀는 선홍빛 입
술을 떼었다·
“자 그럼 네 전력을 보여줘·”
이윽고 멜리셔의 몸이 부유하더니 지하수도의 천장을 지나 아르카니움 의 상공으로 떠올랐다·
그러고서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마지막 가기 전에 서로의 자존심 정도는 지켜줄 수는 있는 거잖아?”
자신을 바라보는 백유설을 향해 나 긋한 어조로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