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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사도(1)
첫 번째 던전 실습이 종료되었다·
A 〜 S반 총 141명·
탈락자 39명·
해원량은 비록 2위를 했지만 어쩐 지 패배한 느낌에 뒷맛이 영 찝찝하 여 저녁에 곧바로 S반 훈련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순간에 에이젤이 난입하지 않았더라도··· 마무리를 하는 건 힘들었어·’
마유성의 힘이 거의 다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놈은 아주 잠깐의 틈만 줘도 금세 체력을 회복해 버린다· 그에 비해 자신이 준비했던 마법은 거의 떨어졌고 마나 역시 동나버린 채였기에 그 이상 싸웠다가는 승패 가 어떻게 갈렸을지 모르는 일이었 다·
‘나는··· 어떻게 해도 그 자식을 이길 수 없다는 건가?’
재능의 벽이라는 게 이렇게나 두 텁고 높았단 말인가·
그는 뭐든 설렁설렁했고 호기심이 들 때나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깔짝 깔짝 건드려본다·
그럼? 짜잔!
10년이 넘도록 그 분야 하나만을 파고들었던 전문가보다도 더욱 뛰어 난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는 원래부터 그랬다· 그래서 마 유성은 항상 사과를 입에 달고 살 았다·
‘미안 재미 삼아 해본 건데 내가 더 잘해서·’
그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였다· 결코 상대방을 놀리려는 의도조차 없이·
그래서 더욱 분했다· 노력조차 하 지 않고 뺀질거리는 놈에게 단 한 번의 승리조차 거두지 못하는 자신 의 한계를·
‘•••아니· 자책할 시간은 없어· 좀 더 분발해야 한다·’
스태프를 꺼내 들고서 거대한 허수 아비의 앞에 선 해원량은 거칠게 마 법을 흩뿌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마법을 설 계하여 적을 자신의 페이스로 옭아
매는 그 특유의 냉정하고 잔혹한 마 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 로 엉망진창이었다·
“해원량· 살살 좀 하지 그래?”
“···홍비연 공주님·”
한참이나 마법을 흩뿌리던 해원량 은 뒤에서 홍비연이 말을 걸어온 덕 분에 간신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몇 번 마법을 휘둘렀다고 벌써 혈 도가 엉망진창이다· 체력을 아무리 단련해도 마법을 아무리 공부하고 또 수련해도 그 ‘마나 총량’의 한계 는 극복할 수가 없었다·
홍비연은 해원량의 옆에 서서 진
정하라고 말한 주제에 본인도 아주 거칠게 화염계 마법을 홑뿌렸다·
해원량처럼 다수의 속성을 사용하 지도 못하고 설계하는 것도 약했지 만 그녀는 압도적인 마나 총량과 파 워풀한 왕가의 화염계 계승 마법 덕 분에 3클래스의 수준으로도 아주 화 려한 마법을 선보일 수 있었다·
“공주님도 누군가에게 당하셨습니 까?”
“···’도’? 너도 당했구나?”
움찔 평상시라면 하지 않았을 말 실수를 했다· 하지만 홍비연은 캐묻 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사소한 것
을 따지고 드는 성격이 아니었으므 로·
“당했지· 아주 시원하게· 그것도 학 년 꼴찌한테 말이야· 그거 때문에 짜증 나 죽겠어·”
변명거리는 많았다·
지형이 자꾸 변하는 바람에 자신 은 유명인이라 마법이 전부 까발려 진 바람에 자신의 마법이 파괴에 치중되어 있어 명중률이 낮은데 상 대방은 속도 위주인 바람에·
하지만 그래도 결국 변명은 변명 이었다·
홍비연 자신이 부족해서 졌다는 사
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포인트 스틱을 양보받아 3위씩이나 하고 말았다· 비록 1위는 하지 못했으나··· 어머니는 그럭저 럭 만족하셨다·
문득 그조차도 백유설에게 포인트 스틱을 돌려받은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홍비연은 스태프를 거칠게 바닥에 찍었다·
콰쾅!! 전방의 표적이 완전히 불타 버렸다·
그래· 솔직흐] 자존심 때문에 백유 설에게 포인트 스틱을 건네줬을 땐 엄청나게 가슴이 조여왔다·
정말로 백유설이 포인트 스틱을 전 부 가져가 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 는 거지? 순위권에조차 들지 못하 면 그땐 어머니를 무슨 낯으로 뵙 지?
그리고 그가 다시 돌려줬을 땐 내 심 안도하고 말았다·
‘짜증 나!’
싫었다· 백유설이 싫은 게 아니라 고작 평민 따위의 행동 하나하나에 겁먹고 마음 졸이고 안도하고 기 뻐한 자신이 싫었다·
‘언젠가는 그 짜증 나는 면상을 불 태워 버리겠어·’
저 멍청한 허수아비의 얼굴을 백유 설의 얼굴이라고 생각하자 놀라우리 만치 마법의 파괴력이 올라갔다·
거기에 더불어 홍비연은 며칠 전에 있었던 ‘특강’이 떠올랐다·
‘•••평민 주제에 잘난 척이나 해대 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효과가 없 었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놀랍게도 넌센스 퀴즈를 공부하면 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이후부터 마법의 성취도가 어마어마하게 증가 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다양한 방향으로 화염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더 계획적으로 적 을 불태울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직 그 ‘마의 3문항’ 같은 문제가 나오면 풀 자신은 없었지만 자신에 게 진전이 있던 건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녀의 스 태프가 우뚝 멈췄다·
그는 고작해야 평민에 불과하였고 성적도 최하위에 성격도 최악이었 으나 ···자신에게 부족한 단 하나 의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아는 유일 한 소년이었다·
여태 왕가의 그 어떤 선생들도 백 유설처럼 독특한 방법을 제안한 적 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공주님·”
때마침 홍비연의 호위 마법 기사 예테린이 자그마한 상자를 들고서 찾아왔다·
“응· 무슨 일이야·”
“장인들에게서 택배가 왔습니다· 지팡이 ‘테리폰’의 개조가 완료되었 습니다·”
“지금 바로 그에게 전할까요?”
“어 응· 그러는 게 낫겠지·”
“그럼 제가 전하고 오겠습니다·”
예테린이 그리 말한 뒤 훈련장을 나가려고 흐]•자 홍비연은 저도 모르
게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공주님?”
“어··· 아냐· 그거 두고 가· 내가 전해줄게· 마침 지나가는 길에 볼일 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그렇게 흥비연은 상자를 건네받고 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미쳤지····’
무슨 생각으로 이걸 직접 갖다주겠 다고 한 건 ス] 스스로도 모르겠다·
아무튼 본인이 하겠다고 했으므로 무를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백유설이 있 다는 저]2본탑’으로 향했다·
스텔라 아카데미의 외형은 아주아 주 거대한 대저택을 닮았으나 곳곳 에 꽂혀 있는 12개의 본탑과 24개 의 별탑 덕분에 저택이 아닌 성처럼 보였다·
그중 제1본탑은 스텔라 아카데미의 ‘스텔라 마법 기사단’ 교장 및 교감 과 이사회 등 이 학교의 주축을 위 한 건물이었으며 제2본탑에는 교수 진의 연구실이 배치된다·
그가 제2본탑에 갔다는 건 교수를 만나러 갔다는 건데 학기 초반부터
그럴 만한 일이 있나?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모르겠다·
,,홍비연 학생 출입 명부를 작성해 주세요·”
제2본탑에 직접 들어가려던 홍비연 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왜 직접?’
교내에서 만나도 되고 훈련장에서 만나도 되는 걸 굳이 여기까지 쫓아 오는 건 왕족으로서 평민 따위나 쫓 아다니는 것 같지 않은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아니에요· 돌아가 볼게요·”
하는 수 없이 본탑 정문으로 빠져 나와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모로 진짜 짜증 나게 만드네 그 평민···
“어머 공주님· 무슨 일 있나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홍비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 를 들었다·
“아··· 오랜만이네요 하메릴 선생 님·”
“후후 부족하지만 여기서는 교수 를 하고 있답니다·”
하메릴 교수는 한때 왕성에서 홍비 연에게 마법을 가르쳤던 스승이다· 그녀는 온화한 인품과 우아한 마법 을 구사할 줄 알았기에 홍비연의 롤모델과도 다름없는 존재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생의 진정한 스 승· 왕성을 떠난다고 했을 땐 아쉬 웠지만 이렇게 스텔라에서라도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2본탑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그게 잠깐 볼일이 있었는데 이만 돌아가 보려구요·”
“그런가요? 하긴 지금은 제2본탑 의 교수님들이 다 정신이 없으니까
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무슨 일은 없지만 그 ‘백유설’이 라는 학생 때문에 마법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극성이거든요·”
또 나왔다· 저 이름· 홍비연은 관 심없는 척 물어보았다·
“흠흠 그 평민이 왜요?”
“으음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홍비연 학생은 백유설 학생과 직접 대련을 해보셨지요?”
“그렇···죠·”
“그 학생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 구요·”
“···네·”
어쩐지 창피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였다· 상대방은 진심을 다하지 도 않았는데 자신은 당해내지 못했 다· 존경하는 스승 앞에서 못난 꼴 을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상대방도 진심 을 다했으니까요·”
“네···? 하지만 마법도 쓰지 않았는 데요?”
“그건 그가 가진 ‘신념’ 때문이에 요·”
“신념이라니 대체 무슨···r
“오늘 실습을 보고 교장 선생님께 서 직접 한 말씀을 남기셨어요·”
그에 홍비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엘트먼 엘트윈 그 위대한 대마법사 가 실습을 보고 있었다니· 게다가 무려 한마디를 남기고 갔다는 건····
“아마도 그 학생은 옛 시대에 사 라져 버린 ‘기사도’를 부활시키려는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시더군요·”
“기 기사도···?”
기사도· 옛 시대에 사라진 단어이 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단어를 기억하고 있다·
홀연히 검 한 자루를 쥐고 일어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악(惡)과 맞서 싸웠다는 동화 속 영웅들이 대부분 ‘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마법으로 돌아가는 이 세 상에도 여전히 검을 다루는 기사라 는 존재에 대한 환상은 존재했지 만··· 정말 딱 그 정도 수준의 환 상일 뿐이다·
누구나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버리 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검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천둥벼락을 다루고 땅을 가르며 하
늘을 날아다니는 마법사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 시대에 날붙이는 아 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으니까·
즉 요새는 우스갯거리로 하는 농 담 따위로 치부되는 게 기사도였다·
농담하지 말라고 홍비연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평민 실제로 나를 상대할 때 마법을 쓰지 않았어·’
그는 포인트 스틱을 마치 검처럼 다루며 점멸 마법 하나만으로 자신 을 상대했다· 그것도 꽤 훌륭하게·
즉 백유설은 자신을 상대로 장난 을 친 게 아니라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며 진심으로 그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특강을 해주 는 대가로 학교의 지팡이를 개조하 여 ‘마법검’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 귀한 중상급의 지팡이를 고작 취 향 때문에 개조해 달라고 하겠는가? 그는 다른 모든 마법을 포기하면서 까지 검을 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그 에게 장난치지 마라며 열을 내기나 했다·
“황당하죠?”
조금··· 네· 그렇네요·”
누군가가 ‘기사도’를 꿈꾼다고 말 하면 웃어넘길 것이다· 혹은 놀림거 리나 되겠スI· 요즘 시대에 무슨 기 사냐며·
그러나 평민으로 태어나 세계 최 고의 명문 스텔라 아카데미에 입학 할 정도로 뼈 빠지게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S반에 들어와 학년 5등의 자신과 싸워서 우위를 점할 정도의 강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백유설은 결코 농담이 아닌 진심 으로 기사도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 이 된다·
“하지만··· 마법 학교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건 어마어마한 페널 티를 받을 텐데요? 마법 실습 시간 에는 무조건 벌점을 받을 수밖에 없 을 거고 또 이것저것···
“그렇죠· 그 학생은 그걸 알면서도 이 길을 걷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대단하지 않나요? 남들이 두렵고 어 렵다며 가지 않는 길을 추구하고 있 으니까요·”
홍비연의 표정이 복잡해지 スト 하메 릴 교수가 이어서 말했다·
“백유설 학생은 이미 점멸이라는 제어 불가 마법을 제어하는 데에 성 공했다는 대단한 업적을 달성했어 요· 이대로 평범하게 마법사의 길을
걸어도 틀림없이 이름을 널리 알리 겠죠· 그럼에도 스스로를 다그치는 건··· 그 신념이 진짜라고 생각할 수밖에는 없겠네요·”
홍비연은 침묵하였고 하메릴은 너 무 많은 시간을 붙잡아서 미안하다 며 인사를 하고서 떠났다·
그녀는 그 자리에 한참이나 못 박 힌 듯 서 있었고 해가 살짝 저물어 갈 때쯤·
“너 여기서 뭐 하냐?”
“어····”
제2본탑 정문에서 백유설이 웬 약
초 뿌리 같은 것을 질겅질겅 씹으며 걸어 나왔다·
기사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 량스럽고 가벼운 걸음걸이·
‘기사는 무슨·’
홍비연은 애써 고개를 흔들어 아까 전의 이야기를 떨쳐냈다· 상대방은 그저 재수 없는 평민일 뿐이니까·
“너 때문에 온 거 아니야·”
“누가 뭐래?”
“···이거나 받아·”
“오 테리폰이냐? 이야· 박스 내가 가져도 되지? 내다 팔면 비싸겠는
데·”
홍비연은 백유설이 뭐라고 하든 말 든 홱 몸을 돌렸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또 저 이상한 평민의 페이스에 괜히 휘둘릴 것 같 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