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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격리(1)
전화기가 드문 아이테르 월드라고 는 해도 높으신 분들은 모두 개인 연락수단을 갖고 살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엘프왕 꽃서린은 그러지 못 했다· 멀리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장 기간 듣게 되면 저주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예·,,
이제는 아니다·
그녀의 저주는 크게 약화되어 이 제 목소리만으로 상사병에 걸릴 위 험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덕분에 꽃서린은 전화기를 자유자 재로 사용하며 스스로 업무를 보는 활동량이 늘어났고 본인이 처리해 야 하는 일거리는 늘어났지만 답답 한 점이 모조리 사라졌다고 했다·
-정말 신물을 곧바로 구하다니···· 다행이에요 정말로· 제가 직접 가지 못해서 얼마나 걱정이었던지····
거 참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고 우면 어떡하려고 그러나· 내가 봤을 때 저주가 사라져도 상사병에 시달 릴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거기에 내가 포함된다고 해서 이상 할 건 없지 않을까· 저렇게 매력적 인데 반하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아직은 딱히 연애를 할 생각 은 없지만·’
그래서일까 주변에 매력적인 여자 들이 이렇게나 많음에도 연애 감정 이 거의 들지 않았다·
대부분 나이가 어린 탓도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
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이유가 더 욱 컸다·
세상을 혼자서 구해낸다는 말도 안 되는 사명감 따위 갖고 있지 않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 다· 단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칠
HH
“곧바로 신물을 가지고 가서 저주 를 한 단계 더 해소해 드리고 싶지 만 저도 일정이 지금 겹쳐서···
-괜찮아요· 지금까지 기다려왔으니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더 빨리 갖다 줘 야 할 것 같잖아·
“네· 조만간 찾아뵐게요·”
-그간 건강하게 지내셔야 해요·
꽃서린과의 통화를 끝낸 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부서진 곰방대 를 꺼냈다·
“으음···· 완전히 박살 났네·”
이 곰방대의 이름은 ‘사령의 원혼 부적’· 너무나도 손쉽게 구한 아티 팩트였지만 사실 이건 아이테르 월 드 내에서도 정말 드물다는 최고위 급 마도구다·
유물이나 전설급은 아니지만 보유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령 계열 공격 완전 면역’이라는 개사기 특성
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박살 나고 말았다·
아무리 나라고 해서 풀레임을 구하 기 위해 거울 세계로 진입했을 때 리스크가 없었을까?
절대 아니다·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는 정말 드 물게도 스스로 나서서 내가 보유한 아티팩트를 개조하여 강화까지 해주 었는데 바로 이 ‘사령의 원혼 부적’ 에 특별한 축복을 걸어주었던 것·
덕분에 풀레임의 세계에서도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평생을 우려먹을 수 있었던
개사기 부적을 일회성으로 소모하고 말았다·
아티팩트는 고대 시조 마법사 시절 의 유산물이라 현대의 기술로는 수 리가 불가능하다는 설정이다·
‘그래도··· 알테리샤한테 갖다 줘 보긴 할까·’
원작 게임을 플레이할 땐 딱딱 정 해진 물건만 제작 및 수리 요청을 하는 게 가능했지만 이곳은 현실이 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도 얼 마든지 들어주긴 할 것이다·
수리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그 이 후의 문제겠지만·
“아깝긴 하지만··· 제대로 써먹었 으니까·”
고작 이따위 아티팩트로 풀레임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었으니 사령의 원혼 부적은 충분히 제값을 해냈다 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일단은 혹시 수리할 수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특수 보관 함에 넣어두었다·
다음으로는 정말 오래간만에 능력 치를 확인해 보았다·
〈백유설〉
* 능력치
[근력 : 3성 47%] [감각 : 3성 69%]
[민첩 : 3성 03%][체력 : 2성 78%]
[맷집 : 〇성 99%][심력 : 3성 76%]
[마력 : -]
* 스킬
[앞점멸 Lv·2]
[태령신공 Lv·2]
* 특성
[마력누설지체 Lv·3]
[연홍춘삼월의 가호 Lv·3]
[신수 잎하넬의 계약자]
여태까지는 성장이 상당히 더뎠지 만 [연홍춘삼월의 가히와 [태령신 공]의 버프 덕분에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큼지막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는 [흑마 침식]에 숟가락을 얹은 데다 가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가 직접 부탁한 임무까지 완수하면서 어마어 마한 성장 경험치를 획득하였다·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가 제시한 임무를 완수하여 당신에게 아주 특 별한 보상을 2개 제시합니다·]
[1· 게임 내에서 사용했던 아이템 의 하향 버전]
[2· 게임 내에서 획득했던 스킬의 하향 버전]
[3· 경험치 포인트]
그냥 보상도 아니고 ‘아주 특별한 보상’이란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이었기에 살짝 기대가 되었다·
보상 목록 자체는 이전과 별로 다 를 것도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조 금 더 메리트가 있겠지·
여기서 사실 고민을 좀 많이 했다·
아이템을 고르느냐 능력치를 올리 느냐· 근력이나 민첩을 올리는 것만 으로도 태령신공과의 어마어마한 시 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점멸을 고르는 게 낫겠지·’
마력누설지체? 태령신공?
결국 백유설이라는 캐릭터로서 한 때 내가 날뛸 수 있었던 이유도 바
로 이 점멸 때문이었다·
아무리 검을 기깔나게 휘둘러봐야 어떻게 하는가· 점멸이 없으면 고작 마법 몇 번에 휩쓸려서 사망해 버릴 뿐인 것을·
“음··· 2번으로 할게·”
「앞점멸에 경험치를 부여합니다·]
「앞점멸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앞점멸]
클래스 : 3
최대 사거리 : 15m
최대 충전 개수 : 3개
쿨타임 : 3초
드디어 랭크가 상승했지만 안타깝 게도 점멸의 최대 충전 개수가 늘어 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 다· 캐릭터 백유설의 근본적인 문제 점 중 하나·
다른 캐릭터에 비해 성장이 심하 게 더디다는 것·
‘이거 때문에 내가 몇 번 접으려고 했었지·’
캐릭터 마유성이나 캐릭터 해원량 을 플레이하게 되면 각자의 특색에 맞춰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다·
저 두 캐릭터의 특징은 다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기에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속성이 추가되거나 폭발적인 마법을 배우는 등 성장하 는 모습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백유설은 아니다·
점멸 마법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찔끔찔끔 거리를 늘리거나 아주 가 끔 충전 개수를 추가해 주는 게 고
작이었으니까·
그래도··· 다음 단계가 되면 점멸 최대 충전 개수가 4개가 되므로 조 금만 더 참고 버티スト·
원작 게임에서처럼 점멸을 마구 난 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 래도 4개의 점멸이라면 기동성 자체 가 완전히 달라지니까·
“두 번째 보상은 잠깐 보류·”
[보상을 보류합니다·]
흑마 침식 이후부터는 선택지에 따 라 분기가 갈리면서 메인 에피소드 에 큰 변동이 생긴다·
어떤 플레이어는 평탄하게 2학기의
스토리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플레이어는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 이라며 납량특집 공포 이벤트가 또 다시 발생하기도 했고 어떤 플레이 어는 [여름에는 햇살 쏟아지는 해변 가에세라는 이벤트를 통해 남주와 의 관계를 진전시키기도 한다·
정말 수백 수천 가지가 넘는 이벤 트가 존재하는 탓에 앞으로 무슨 에 피소드가 발생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막연히 늘어져서 기다릴 생각은 없었으므로 보상 등을 깔끔 하게 정리한 뒤 곧장 일어났다·
풀레임 병문안을 갈 시간이다·
* * *
풀레임은 1인실을 쓴다· 본래는 돈 많은 귀족들이나 쓰는 곳이었으나 이번 사건에 가장 깊게 관여하여 사 건의 해결에 지대한 공로를 한 덕분 에 교수진이 힘을 써준 것이다·
“아··· 네· 괜찮아요·”
“그래· 아픈 곳은 없어서 다행이구 나· 다음에 식사나 같이 하지·”
스텔라 아카데미의 교수뿐만 아니 라 마탑의 마법사들도 간혹 풀레임
의 병문안을 오고는 했다· 제7본탑 괴담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주도하여 해결했다는 데에서 많은 마법사들의 관심을 사게 된 것이다·
정작 풀레임은 이런 관심이 부담스 러울 뿐이다·
‘•••꿈속에서는 좋았던 것 같은데·’
그 세계에서의 그녀는 관심을 먹고 자라나는 식물처럼 인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건 실제의 풀레 임과 완전히 상반된 성격이었다·
‘귀찮아 죽것네–‘
교수님들이 몰려와서 걱정해 주는 데 어디 마음 편히 누워 있겠는가·
과일이나 꽃다발 등을 놓고서 그들 이 돌아가자 풀레임은 곧장 침대에 늘어졌다·
똑똑!
그러나 곧바로 울리는 노크 소리에 짜증 섞인 표정을 팍팍 지었다가 애 써 접대용 미소를 지었다·
“예이〜 누구세요〜?”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사람 은 교수님도 마법사도 아닌 백유설·
“난데·”
“어 으응···?”
깨어난 뒤로 이틀· 백유설이 병문
안을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에 풀레임의 표정 관리가 스르르 녹 아내리고 말았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웃을까? 짜증 낼까? 장난칠까?
아니 애당초 왜 내가 백유설 따위 를 만나는데 표정 관리에 신경을 쓰 는 거지?
풀레임의 사고회로가 과부하를 일 으켰다·
“반응이 왜 그렇게 시원찮아? 괜찮 냐? 죽을병은 아니지?”
“뭐···래 병신인가· 그냥 탈진이야····”
“어· 사실 알아·”
“···알면서 왜 묻냐· 짜증 나게·”
그녀가 쓰러지고 입원한 이유는 단 지 정신적 피로가 심하게 누적되었 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백 유설이 잘 알고 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선물들을 대충 밀어낸 뒤 자신 이 가져온 과일 바구니를 올려놓은 뒤 풀레임의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녀는 백유설을 피해서 안쪽 으로 엉덩이를 살짝 움직였다·
별로 티가 나지는 않는다·
“안 그래도 만나보려고 했는데 워 낙 병문안 오는 사람이 많아야 말이 지· 그때 일은 기억나?”
“어 음···· 좀 쪽팔리긴 한데 기 억은 나지·”
시선을 내리깐 채 손가락을 꼼지락 대며 그녀는 은근슬쩍 말했다·
“거기가 내 고향이야·”
아마 백유설은 이미 자신의 고향이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 이다·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무수히 많은 시간선 속 ‘그를 사랑 했던 또 다른 나’가 말했을 테니까·
“알아·”
예상대로 백유설은 대수롭지 않다 는 반응을 보이며 사과를 깎았다·
평상시에 검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서툴고 엉망이었다·
그래도 뭐 사과를 모양 보고 먹는 것도 아니니까·
“···더럽게 못 깎았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 スI 이 정 도면 진짜 최악 수준이다·
“대충 처먹어· 원래 껍질에 영양분 이 더 많대·”
백유설은 사과를 으적으적 씹었다·
아삭!
한동안 병실에는 사과 씹는 소리 만 울려 퍼졌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신문을 발 견한 백유설은 그것을 읽느라 정신 이 없었고 풀레임은 다음에 내뱉을 말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기···
그러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スト 백유설은 신문을 접고서 시선을 맞 춰주었다·
‘아 씨· 왜 저렇게까지 경청하는 건데····’
그냥 쓸데없는 말 하려고 했는데 저렇게까지 반응하니까 그러지도 못 하겠다·
“그 내가 꿈꿨던 세계 있잖아·”
“어·,,
“거기는 진짜 세계가 아닌 거지?”
그러자 백유설은 턱을 괴이고서 잠 깐 침묵하더니 그리 답했다·
“모르지·”
“···엉?”
“진짜 세계였을 수도 있고 아닐지 도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돌아옴으로써 그 세계는 이제 안전
하다는 거야·”
“그렇구나···「
“만약 그 세계가 진짜라면 너를 영 웅으로 기억하겠지· 네가 희생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괴수가 사라졌을 테니까·”
백유설의 말은 간단했다·
‘너는 그 세계를 구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자책하지 마라·’
풀레임이 어느 부분에서 무슨 고민 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비록 빙빙 돌려서 말했으나 그 말뜻 은 참으로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문을 트니 어색한 분위기가 점점 사라졌다· 점점 쓸데 없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 고 이전과 다름없이 그와 눈을 마 주칠 수도 있었다·
별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 는 와중·
복도 바깥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몰 려 지나가는 소란이 들려왔다·
“뭐지?”
신경 쓰지 않으려고는 했으나 뭔 가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 백유설은 곧장 일어나 복도를 살펴보았다·
“저건··· 아돌레비트의 ‘피닉스
기사단,이야·”
뒤쫓아 따라온 풀레임의 말에 백유 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스텔라에 사병의 출입은 특별한 경 우가 아니고서야 엄금되어 있다· 하 물며 왕실 직속 피닉스 기사단이 이 곳까지 찾아오는 건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마찰을 빚을 수 있단 말이 다·
“대체 뭐지···r
원작 로판에서는 없던 일인지 풀레 임은 의아한 표정이었으나 이게 무 슨 사태인지 곧바로 파악한 백유설
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홍비연 공주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스텔라를 졸업하는 날 죽음을 맞 이한다·’
원인도 모르고 이유도 알 수 없어 서 10년 동안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절망으로 빠뜨렸던 홍비연의 운명·
그녀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단순히 죽는 게 엔딩의 전부라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서 홍비 연은 더욱 최악의 엔딩을 맞이하고 는 했으니까·
바로 지금이 그 경우다·
‘홍비연 유배 엔딩·’
그녀를 사회에서 격리하여 감금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서히 말려 죽이는 것·
감옥살이 엔딩 사회적 사망 엔딩 참수 엔딩보단 그나마 훨씬 나은 형 편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옳지 않다·
백유설은 떠나가는 피닉스 기사단 을 뒤쫓았다· 가장 앞서 달리는 화 려한 마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는 스텔라 아카데미의 정문을 통
과하여 떠나가는 아돌레비트 왕가의 마차를 한동안 하염없이 바라보았 다·
기분 탓일까·
검게 칠해진 창문 너머로··· 누군가 와 눈을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