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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비현실(3)
솔직히 말해서 풀레임이 ‘전신 거 울에 완전히 잠식당하는 광경을 보 았을 때 나는 굉장히 당황하였다·
당황?
아니 ス]·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아무래 도 같은 학교를 다니며 서서히 사건 과 사고를 겪고 비밀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은근히 그녀와 내 사이가 상 당히 가까워졌던 모양이다·
풀레임이 전신 거울에 먹히는 광경 을 보았을 때 나는····
그래·
절망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끝없는 무기력의 낭떠러지 아래로 끊임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직박구리 안경이라는 치트 아이템
조차도 전신 거울에 잠식당한 풀레 임을 구하는 법은 설명되어 있지 않 았으니까·
하지만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어준 것은 다름 아닌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였다·
[백유설 당신에게 특수 임무를 부 여하고 싶습니다·]
[전신 거울 속으로 뛰어들어 풀레 임에게 ‘현실’을 자각시키십시오·]
‘뭐···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는 으레 그 렇듯 상당히 불친절하여 자세한 설 명은 모조리 생략하였다·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전신 거 울 속 세계는 오로지 풀레임의 ‘행 복’만을 위해 굴러간다고 하였다·
그 어떤 고통이나 시련 근심과 걱 정조차 없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 든 이루어지고 노력하지 않아도 모 두가 나를 찬양하게 되는····
그런 완벽한 세계·
하지만 저런 세계가 으레 그렇듯 완전히 행복에 잠식당하게 되면 영 영 현실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죽음·
정신이 붕괴되어 육신과 자아를 모 조리 상실하는 것·
‘···현실을 자각하도록 만들란 말 이지·’
그렇게·
나는 ‘풀레임의 세계’로 떨어졌다·
익숙한 장소였다·
매캐한 매연 냄새와 칙칙한 하늘 드높이 솟아있는 회색 빌딩의 숲과 요란하고 시끌벅적하며 바쁘게 움직 이는 현대인들·
내 고향 지구였다·
처음 한동안은 자리에 못 박힌 듯 우두커니 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집에 찾아가 보는 것이었으니까·
의미는 없다·
내게는 남은 가족도 없었고 이 세 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확실치 않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백유설·’
나는 내 스스로 다짐할 수밖에 없 었다· 고향에 돌아와 마음이 약해졌 지만 내가 할 일은 명백하다·
바보 같은 풀레임이 정신을 차리도 록 하는 것· 그전에 내 정신이 약해 져서야 어떡하겠는가·
공략집도 없고 그 누구도 내게 조 언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떻 게든 나는 방법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풀레임에게 비현실을 자 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사건에 뜬금 없이 끼어들었다·
“사실 이게 갖고 싶었지·”
90년대풍 액션 영화 속 주인공처 럼 선글라스를 낀 채 멋들어지게 등 장하여 오토바이를 짊어지고서 도망 쳐봤다·
실패였다·
오히려 풀레임을 더욱 주목받도록 해버렸으니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 한 짓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일 주일이라는 시점이 지난 뒤였다·
타입 스킵 (Time Skip)·
참으로 편리한 기능이다만 그 사 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참으로 곤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곧장 풀레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젠 나의 손을 잡아시 쎄이 예 에에스!
무수한 카메라와 딱 봐도 유명해 보이는 잘생긴 진행자까지·
틀림없다·
이번 일이 끝난 이후 풀레임은 어 마어마한 유명세를 타게 될 것이다·
“한 곡 더!”
“한 곡 더!”
“앵콜! 앵콜!”
사람들이 앵콜 사인을 보냈다· 그 찰나 나는 우연찮게도 풀레임과 눈
이 마주쳤다·
고개를 저었다·
무시당했다·
하는 수 없이 오디오를 직접 박살 내는 수밖에 없었으나····
-유•이 비가 오는 거리에〜刀 혼자 버려진 채로〜»
풀레임은 기어이 무반주로 완창을 해버렸고 오히려 더 뜨거운 반응을 얻고 말았다·
‘이런 썩을····’
내가 하는 행동이 오히려 그녀를 비현실 속으로 잡아끌고 있다는 사
실에 바닥을 힘껏 내려쳤다· 콘크리 트가 움푹 파이며 거미줄 형태의 금 이 갔다·
그때 깨달았다·
이곳은 지구·
초능력과 마법과 검과 이종족이 존 재하지 않는 세계·
그런데 나는 여전히 초인적인 능력 을 보유한 채였다·
[점멸]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마법 역시 사용이 가능했다·
···방법은 이제 하나뿐인 것 같았다·
* * *
“야야야야 풀레임! 봤어? 봤냐고!”
길거리 공연 이후로 1주일의 시간 이 홀렀다· 그사이의 기억은 전혀 없는데 시간은 이렇게나 빠르다니·
아직 열아홉밖에 안 됐지만 세월이 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뭘 또 봐”
필기노트를 작성하던 풀레임이 귀 를 후비며 묻자 한초연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너 나온 너튜브 영상 조회 수 천 만 돌파했어! 일반인 영상으로는 역 대급일걸? 지금도 계속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어서 더 오를 거 같대!”
“그러냐· 나한테 돈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왜케 호들갑이야·”
“김백광 너튜브에서 반짝 뜬 사람 들 죄다 가수로 데뷔한 거 몰라? 그 유명한 최각도 이 영상 덕분에 ‘너도 가수냐’에 출현했잖아·”
“난 가수 안 할 거라니까·”
그건 진심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건 즐거웠지만 그
렇다고 미래의 목표를 가수로 잡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노래는 취미로·
딱 그 정도로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사람들이 내 노래에 관심을 가져주 는 덕분에 조회 수가 늘어난다는 건 꽤 기쁜 일이었다·
“내가 봤을 때 이 기세대로라면 조 만간 대형 기획사에서 너 찾아올 거 같아·”
“헛소리는·”
“진짜라니까?”
풀레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 만 한초연의 말은 꽤 신빙성이 있었 다· 매일같이 [#실시간 급상승 동영 상]의 순위가 상승하더니 마침내는 1위를 달성해 버린 것이다!
오로지 일반인 한 명 등장하는 영 상인데도 이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경우는 정말 드물었기에 어마어마한 화젯거리가 될··· 예정이었으나·
정확히 사홀이 지난 날 아침·
학교에 등교한 풀레임은 뭔 판타 지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풀레임 이거 봐봐!”
“뭐?”
한초연이 보여준 영상은 [#실시간 급상승 동영상 1우]]라는 태그가 떡 하니 달려 있었다·
그런데 제목이 참 가관이었다·
[현대판 슈퍼 히어로? 정체불명의 초능력자의 등장!]
“뭔 슈퍼 히어로야 유치하게····”
애당초 히어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풀레임이었기에 영화 광고라고 생각하고서 대충 영상을 훑어보려고 했으나 뭔가가 이상했다·
영화 광고라고 생각하기에는 소리 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울리는 영상 의 잡음 심하게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는 화면과 흐릿한 화질이 신 경 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상의 내용·
“이게 뭐야···r
영상 속에는 웬 테러리스트 단체가 거리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있었다· 배경이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생각하 면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지만 그래 도 아예 없을 법한 일은 아니다·
총기는 누구나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때 등장한 교복 차림의
소년이 현실감을 완전히 부숴 버렸 다·
“순간이동이야 이거···r
소년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이동 하며 광선검을 휘둘러 테러리스트 단체를 박살 냈다·
소년이 어딘가를 바라보면 이미 그 곳에 소년이 존재했다·
그는 광선검을 휘둘러 총알을 튕겨 내거나 테러리스트를 베어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판타지 소설 속 소드 마스터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벌써 부터 ‘K-소드 마스터’라는 말도 안 되는 별명까지 붙었다고 한다·
그 우스운 별명과는 별개로 영상 은 진짜였다·
진짜로·
현실에 초능력자가 존재했다·
“이거 영상 찍은 사람이 한둘이 아 니야! 지금 실시간 급상승 동영상 죄다 저 사람 찍힌 영상이라니까?”
“더··· 더 보여줘·”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에서 찍은 영상들이었지만 풀레임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각막에 그것을 새겼다·
‘익숙해·’
얼굴은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거··· 우리 학교 교복 맞지?”
백유설·
저 소년은 틀림없이 백유설이다·
* * *
사월고등학교의 남자 교복은 남색 바지에 흰색 와이셔츠 남색 마이를 착용한다·
그렇다·
대한민국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주 흔한 교복이라는 의 다· 그렇다고 해서 네티즌들이 교복 의 출처를 찾지 못하겠는가?
“들었어? 우리 학교래·”
“사실 나야·”
“체격이 다르잖아·”
“활동할 땐 살 빼고 하다가 끝나면 다시 찌우는 거야·”
“병신·”
영상 속 ‘K-소드 마스터’가 오월고 등학교의 재학생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퍼져서 그를 찾기 위해 온갖
군데에서 기자들이 들이닥치거나 너 튜버가 찾아오는 등 정말 난리도 아 니었다·
줄여서 ‘케이소마’라고 불리는 소 년의 활동은 저번 테러리스트 퇴치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범죄자들을 퇴치하거나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 데 벌써부터 진짜 영웅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정체불명의 초능력スト 그 정체는 고등학생?]
[고속이동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파 악해 보자]
[광선검은 무슨 물질로 만들었나]
[사월고등학교와 소년의 관계는?]
이 세상의 모든 이슈가 백유설에게 집중되었다· 세계 최초로 등장한 초 능력자에 심지어 미국 대통령의 언 급까지 있는 데다가 소문에 의하면 외국의 비밀 집단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한국에 잠입했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아무 도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단 한 가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소년이 사용하는 고속 이동이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마법’이라는 것이다·
왜일까·
풀레임은 그 사실을 뼛속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능력의 정체는 마법 ‘점멸,이라 는 것을·
그건 꽤 어색하고 이질적이었으며 기분 나쁜 일이었다·
배우지도 않은 지식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돈다는 것· 마치 내가 아 닌 또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자꾸만 나를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왜 그래? 풀레임·”
“아무것도·”
하굣길·
학교 정문이 소란스럽다·
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는 것 이다· 정체불명의 초능력자 소년을 찾 겠답시고 기자들이 몰려왔겠지·
요 며칠간 익숙해진 풀레임이었기 에 길을 비켜서 가려고 했으나 오
늘은 뭔가가 달랐다·
“푸 풀레임··· 저기 좀 봐!”
“앙?”
한초연이 넋을 놓은 채 무언가를 가리켰다· 풀레임은 별 대수롭지 않 은 기분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뭐시여?”
그리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멋들어진 외제 차에 최고급이라고 자랑하는 듯한 검은색 양복 슈트를 입은 웬 30대 초반의 잘생긴 청년이 서 있는 게 아니던가·
연예계에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저 사람을 모를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월드 스타 갑빠 소년 단을 탄생시킨 ‘대박 엔터테인먼트’ 의 대표 김갑수·
그가 바로 이 학교에 직접 찾아온 것이다!
“꺄아아악!”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모습도 드러내지 않는 케이소마 따 위는 진짜배기 월드 스타의 아버지 의 등쌀에 밀려버렸다· 본래의 목적 조차 잊은 채 사람들은 김갑수를 향 해 소리를 질러대며 카메라 셔터를
마구마구 눌렀다·
그는 그런 시선을 즐기는 듯 여유 로운 자태로 서 있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고서는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엥·’
뭔가 제대로 마주친 것 같았지만 풀레임은 애써 그를 외면하였다· 하 지만 그 불길한 예상이 사실이라는 듯 김갑수는 그녀를 향해 일직선으 로 걸어왔다·
모세의 기적처럼 인파가 양옆으로 갈라졌고 눈치 빠른 한초연은 진작 뒤로 폴짝 물러나서 단둘이서 마주
보는 구도가 되었다·
“안녕? 네가 풀레임이구나·”
“···아 네·”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 가능할까?”
마음 같아서는 ‘아니요’라고 당당 히 외치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쏟아 지는 저 뜨거운 시선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 였다·
김갑수는 만족스럽다는 듯 그 잘생 긴 미소로 보답한 뒤 그녀를 리무진 으로 안내했다·
“그럼 조용한 데로 갈까?”
* * *
김갑수는 풀레임을 이끌고서 청담 동에 위치한 고급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린다거나 하 는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오 히려 주변에 일반인을 잔뜩 몰려들 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SNS를 통해 서 퍼질 ‘화제성’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단도 직입적으로 말할게· 나는 너 를 차세대 ‘갑빠 소년단’으로 키우 고 싶어·”
“아··· 네···
정말 ‘아’와 ‘네’ 말고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다지 탐탁지는 않아 보이네? 나 도 알아· 너]가 여태까지 들어온 수 많은 제의를 거절했다는 거· 그래서 말인데 네 학업과 일상을 모두 보 장해 주려고 하거든·”
“네···?”
“너는 네 일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 은 거잖아? 스타의 삶이란 피곤하 니까·”
그러면서 앞머리를 휘날리는 게 어 찌나 멋있는··· 게 아니라 유치한지·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풀레임은 대 충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든 일상과 인간관계를 존중 하고 절대로 관여하지 않을게· 대신 너는 그런 일상의 반대편에서 스타 의 삶을 살아보는 거야·”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
“그런다고 대표님께 무슨 이득이라 도 있나요?”
“당연히 있고 말고· 네가 스타의 삶이 마음에 들면 완전히 우리처럼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저기요· 혹시 이거 생방송은 아 니죠?”
“응? 흐卜하 벌써 카메라를 의식하 는 거야? 아쉽지만 아니야· 뭐 그 럼에도 모이는 이 뜨거운 관심을 막 을 수는 없겠지만·”
아니면서 대사를 왜 그따구로 치세 요? 라며 말을 꽂아버리려던 풀레임 은 애써 참을 인을 가슴에 새겼다· 스타라는 족속은 다 저런 건지 아니 면 저 사람만 저런 건지 모르겠다·
“우선 계약서야· 네 학창 생활과 연습생의 이중생활을 존중해 주고 또한 명시한 부분을···
김갑수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서 풀레임은 계약서를 뚫어지게 바
라보았다·
저기에 이름 석 자를 적어 넣기만 하면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갑수다·
대박 엔터테인먼트의 김갑수란 말 이다· 그의 한마디면 평범한 여고생 의 삶은 곧바로 끝· 본격적인 스타 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째서 이 타이밍인가요?”
“이 타이밍이라서 서둘러 너를 찾 아온 거지·”
현재는 백유설··· ’케이소마어I 대 한 열풍에 사람들의 화제가 모조리 집중되어 있다·
“이슈는 전염된다는 말을 알아? 폭 발적으로 무언가가 화제를 끌고 있 을 때 또 다른 화젯거리가 폭발하 면 관심사가 그대로 옮겨간다는 거 야·”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 그걸 노리고 있어· 김갑수가 직접 화제의 여고생 풀레임을 만나 서 데뷔시킨다는데··· 이 정도면 다음 핫이슈로 충분하지 않을까?”
확실흐】 김갑수는 아무런 생각 없 이 자신을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스타로 만들 생 각인 것이다·
그녀는 볼펜을 쥔 채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서명해 어서·’
‘빼앗긴 네 인기를 돌려받아야지·’
원래였다면 지금까지도 계속 너튜 브와 각종 SNS 사이트에서 떠돌고 있을 이름은 백유설이 아니라 바로 나 풀레임이었을 것이다·
현실의 슈퍼 히어로?
분명 그는 대단하고 세계적으로 화 제가 되기야 하겠지만 거기까지다·
그는 얼굴조차 공개하지 않았고 공 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 었으니까·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채 세계 최 고의 엔터테인먼트에서 밀어주는 월 드 스타의 인기는 감히 히어로 한 명이 막을 수는 없으리라·
“가자 풀레임· 나와 함께 스타가 되는 거야·”
사인만 하면 된다·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는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던 일상을 존중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 게 부를 기회가 바로 이 계약서에 서명하기만 하면 주어진단 말이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되는 거야·’
누군가가 속삭였다·
김 갑수인가?
아니면 나의 자아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덜덜 떨리는 풀레임의 손 은 어느덧 계약서의 지척까지 도달 해 있었다·
툭!
볼펜이 계약서 끝에 닿았고 점 하 나가 짝히는 순간·
,너 자신을 포기하지 마·,
어디선가 들려온 듯한 소년의 목소 리에 풀레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서 볼펜을 놓쳤다·
“···아니요· 저는 역시 가수를 할 만한 재목이 되지 못해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부담되거든요·”
“뭐? 하지만····”
김갑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풀레임은 서둘
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그 의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정말로 사 인을 해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세상이 옆으로 뒤집혔다·
‘아···?’
사방으로 비산하는 유리 파편과 벽 돌 조각· 무언가가 폭발하는 굉음 거세게 흔들리는 시야·
정신을 차리니 그녀는 바닥에 엎 어져 있었다·
“으 °··グ
온몸이 흙투성이다· 콘크리트가 부
서지며 날아든 가루에 교복은 완전 히 만신창이였고 팔다리가 잔뜩 까 져서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서 벽을 바라보 니 구멍이 뻥 뚫린 채 휑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대낮부터 폭탄 테러?
풀레임은 조심스럽게 뚫린 벽 바깥 으로 걸어 나갔다·
“꺄아아악!”
“도 도망쳐어어!!”
쿵! 쿠쾅!
비명·
무언가가 터지고 박살 나는 소리·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왜애에에에엥!!
어딘가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공부한 적 있어서 기 억난다· 저건 단순한 사이렌이 아니 라 공습(攻襲) 경보였다·
여기까ス1 다·
뒤로 물러나서 숨어야 한다·
아니면 도망치거나·
더 이상의 호기심은 수명을 깎아 먹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물러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풀레임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 천히 앞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도로 한복판에 도달했을 때 볼 수 있었다·
– 쿠워어어어!!
어림 잡아서 작은 주택 정도의 덩 치를 가진 초록색 피부의 괴수가 신 호등을 양손에 들고서 도심지를 때 려 부수고 있었다·
···괴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한데 뒤섞 이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저것을 알고 있다·
‘오우거’
숲에 서식하며 거구와는 달리 아 주 민첩한 몸놀림을 가지고 있어 나 무를 타고 기동하기 때문에 아주 위 험한 몬스터·
어째서 알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오우 거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투두두두!!
하늘에서 헬기 수십 대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늦었다· 저런 것들 따위로는 막을 수 없다·
쿵 쿵!
오우거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발을 떼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겁을 먹었는가?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죽이면 되잖아?’
도망칠 필요를 못 느껴서·
풀레임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른손을 내뻗으니 그곳에는 지팡 이가 쥐어져 있었다·
이름은 ‘에고 라 에코오브’·
초승달 형태의 아름다운 형태를 가 진 이 지팡이는 어디에서 얻었는지 어째서 이름을 아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중요할까?
지금도 나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무수한 마법의 지식들이 자꾸 만 자신을 꺼내달라며 아우성인데·
“빛이여·”
간단한 동작이었다·
그녀는 그저 지팡이를 한 바퀴 돌
린 뒤 바닥에 내려쳤고·
번쩍-!!
황금빛의 찬란한 마법진의 문양이 터져 나와 오우거를 뒤덮으며·
···그렇게 세상에 최초로 마법이 공개되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이 자신 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언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까지·
직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