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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괴담(5)
스텔라의 생도들이 보통 모임을 갖 게 되면 카페나 테라스 같은 장소에 모여서 다과회를 연다· 그야말로 귀 족식 모임의 정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평민까지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풀레임은 치킨집을 갔다·
“···치킨?”
“양념치킨·”
“아뇨 그 치킨이····”
“양념치킨이라고· 안 먹냐?”
“먹긴 먹을 건데····”
“어·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에이젤은 우물쭈물거리며 치킨에 포크를 푹! 찍었다· 풀레임의 옆자 리에 앉아 있던 아넬라는 벌써부터 닭다리 하나를 뜯고 있었다·
“이 양심 없는 년아· 사람이 셋인 데 두 개밖에 없는 닭다리를 네가 낼름 가져가냐?”
“읍! 으읍!”
···아무래도 평화적이지 못한 방 법으로 가져간 것인ス] 풀레임에게 갈취당하고 말았지만·
“어· 너는 먹어· 허락해 줄게·”
“네에···
뭐 이런 걸 먹는데 허락까지 필요 한가 싶었으나 그냥 먹기에는 상당 히 눈치가 보였다·
“많이 먹으라고· 이 언니가 쏜다!”
에이젤은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한 다· 피スト 치킨 햄버거· 물론 서민 들이 먹기에 가격이 만만한 편은 아
니었기에 자주 먹지는 못한다·
나중에 대귀족 만찬회에 초대됐을 때도 호화로운 식사 대신 싸구려 치 킨 조각에 눈독 들이는 모습을 보고 서 제레미와 해원량이 홀딱 반했다 는 설정이던가·
그런 면에서는 나랑 비슷하네·’
풀레임도 귀족식 음식보다는 이런 인스턴트 식품이 더 좋다·
캐비어 푸아그라 트러플?
먹어본 적도 없다만 막상 먹어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스테이크고 뭐고 그냥 빨리빨리 구 워서 대충 상추에 쌈장 묻혀서 쌈
싸먹는 삼겹살이 최고란 말이다·
소녀 세 명은 그렇게 말없이 치킨 에 맥주···는 아니고 콜라 한 잔을 걸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뭐 야?”
“아 그게···
“왜· 그 아저씨의 행방이라도 궁금 해졌어?”
“아 아뇨! 아니거든요? 정말 어이 없네요·”
에이젤이 버럭 화를 내자 풀레임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빨대를 입에 물고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를 흘려내듯 은근슬쩍 백유설에 대 한 정보를 던져주었다·
“지금 서부의 어느 도시에서 체류 중이래· 볼일이 있다나 뭐라나·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 아저씨가 하는 일이니까 중요하겠지·”
“그렇군요···
문득 에이젤은 자신의 일상에 회 의감에 들었다·
미친 듯이 공부만 하는 지금의 내 삶에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지금 도 누군가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차 근차근 탑을 쌓아가고 있는데 고작 공부 따위에 열중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 걸까·
*···아니야· 나는 옳아·’
백유설이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수만 번의 회귀를 통해 수많은 지식 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아〜 모르겠다· 지금 같은 상황에 대체 어딜 간 건지·”
학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틀림없이 교내에 떠돌고 있는 괴담 과 이번 사건이 연루되어 있는 것으 로 보이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
야 되는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에이젤은 제7본탑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확신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도 오래전 아버 지를 통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난스럽게 그저 어린아이에게 겁 을 주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해 주 었던 아버지의 괴담·
그녀는 과연 이 이야기를 풀레임에 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였다·
,흐음···
풀레임은 그런 에이젤을 잠자코 기 다려 주었다·
원작 로판에서 에이젤은 자신이 가 지고 있던 제7본탑에 괴담에 대한 정보를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장난스레 해원 량에게 괴담을 흘리게 되었는데 호 기심 많은 소년은 그에 대해 깊게 파헤치게 되었고 그것은 훗날 ‘흑마 침식’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에이젤과 해원량의 접점은 사실상 제로라고 봐도 무방했고 현재 괴담
에 대해 아는 사람은 둘 뿐이다·
그러나 풀레임은 에이젤이 아는 지 식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지식은··· 에이젤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알 수가 없는 것이었기어1·
그래서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에이젤이 먼저 마음을 먹고서 이야 기를 꺼내주기를·
“냠·”
아넬라 혼자 눈■치도 없게 치킨을 뜯어먹는 와중 풀레임과 에이젤은 포크조차 내려놓은 채 말없이 서로 의 생각 속에 갇혀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마침내 마음을 단단히 먹
은 에이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제7본탑에는 사실 비밀 이 하나 있어요·”
“비밀?”
너1· 제7본탑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말도 있고 옛날 사진을 보면 처음 에는 있었다가 사라졌다는 말도 있 잖아요·”
그렇지·”
제7본탑이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 한 여부는 지금도 많은 논란이 있었 지만·
“존재했었어요· 50년 전까지는요·”
에이젤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아벨라인 슈타베르크· 누군지 아 시죠?”
“···알지·”
원작 로판 ‘공녀「‘를 읽었던 독자 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이 세계관에는 시대별로 ‘주인공’ 이라고 부를 법한 업적을 남기고 명 성을 떨친 이들이 존재했는데 200 년 전에는 ‘엘트먼 엘트윈’이었으며 반 세기 전에는 ‘아벨라인 슈타베르 크’가 바로 그러한 이들이었다·
한 사람이 남기고 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적을 세
운 아벨라인 슈타베르크·
그의 일대기를 따로 만들어도 수십 권 이상 분량의 판타지 소설이 나올 정도라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원작 로판에서는 그에 대한 내용이 상당 히 짧게 요약되어 있을 뿐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의 최후는 주 인공답지 못하게 끝났다·
‘흑마 배신
마법계에서 가장 최악이라고 치부 되는 죄를 저지르고선 흑마인이 된 것이다·
그는 원로회의 3명을 사살하고 전
대 만월탑주를 마나 불구자로 만든 뒤 도주하였는데 현재까지도 살아남 아 흑마인들을 평정하고 있다고 알 려져 있다·
많은 이들은 아벨라인이 마법계를 배신한 뒤 조용히 숨어지내는 것으 로 알고 있었지만 에이젤은 현재 그 의 근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흑마도왕·’
이 세계에서 누구도 대적할 수 없 을 정도로 가장 강한 힘을 가졌다고 알려진 바로 그 흑마인이 바로 아벨 라인 슈타베르크였다·
그가 왜 마법계를 배신했는지 어쨌
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는 하나 아 벨라인 슈타베르크가 제7본탑을 보 이지 않는 세계에 격리하였으며 그 안에 무언가를 숨겼다는 것이다·
“제7본탑 안에 잠들어있는 건 보물 도 아니고 전설의 아티팩트도 아니 에요 아벨라인은 당시··· ‘진실’을 그 안에 숨겨놓았다고 말했어요·”
“진실이라····”
네· 대체 무슨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어쩌면 아벨라인이 마법계를 배신하 고 떠난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아넬라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 다·
“그런데 그 진실 별거 아닌 거 아 냐? 엘트먼 교장 선생님도 안 찾고 있잖아·”
“글쎄요··· 저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그곳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그곳에 들어갈 의향이 있나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건 풀레임에게 희생 과 모험을 강요하는 꼴이었으니까·
하지만 풀레임은 예상치 못한 반
응을 보였다· 단 한 순간도 망설이 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당연히 가야지· 그거 얘기하려고 이렇게 질질 끈 거야?”
“그렇군요···
풀레임 같은 훌륭한 마법사가 함께 해 준다는 말에 어쩐지 안심이 되 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우선···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에 이젤은 자신이 아는 괴담 하나를 이 야기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야야· 지금 제4본탑 쪽 난리던 데?”
빨리 와봐 무슨 일 있나 봐·”
“뭔데? 무슨 일 있어?”
갑작스레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음식점까지 요란해 질 정도면 보통 심상치 않은 일이라 는 의미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온 즉시 풀 레임은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에이젤 역시 그녀를 뒤쫓자 아넬라 는 영문도 모르는 채 따라나섰다·
마침 저14본탑은 바로 근처였고 소 문의 근원지를 따라 달리고 달려 3 〇층의 D-17번 복도에 도착하니 이 미 교직원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조용! 학생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 도록!”
“각자 기숙사로 돌아가도록 해라! 말을 듣지 않으면 벌점을 주겠다!”
우글우글 모여 있는 인파와 그들을 통제하려는 교직원이 뒤섞여 제대 로 뭐가 보이지도 않았다·
복도의 유리창은 모조리 깨져 있었 으며 바닥은 온통 물로 흥건하였는 데 유난히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대마법사여 진실이 두렵나?]
[무엇을 그리도 숨기려 하는가?]
흥건한 복도 바닥에··· 새빨간 글 씨가 둥실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교수진은 어떻게 해서든 마법으로 그것을 지워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듯 식은땀을 뻘뻘 홀리고 있었다·
‘될 리가 없지·’
풀레임은 교수님들이 왜 마법으로 저것을 지우지 못하는지 이해하였 다· 저 글씨는 현실이 아닌 ‘이면 세계’에 적힌 것이었으니까·
현실에만 간섭할 수 있는 평범한 마법으로는 저 간단한 문구조차도
지워낼 수 없었다·
“그만·”
우뚝·
어디에선가 들려온 앳된 소년의 목 소리에 모든 소란이 멈췄다· 학생들 은 벙어리가 된 듯 입을 열 수 없 었고 교수진들은 잔뜩 경직된 자세 로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인파가 기적처럼 갈라지며 그 사 이로 소년 한 명이 걸어왔다·
엘트먼 엘트윈·
항상 싱글벙글 웃으며 여유로운 모 습만 보여주었던 그는 상당히 딱딱 하게 굳은 표정을 지은 채였다·
복도에 가득한 물 위를 소리조차 내지 않고 걸어간 그는 둥실 떠 있 는 글씨를 보더니 혀를 찼다·
그러더니 두루마기 하나를 꺼내더 니 그 안에 글자를 모두 담아 봉인 하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서 ‘역시 교 장 선생님’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풀레임은 다른 관점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굳이 자신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두루마기를 꺼낸 이유?
뻔하지·
그의 공간 마법으로도 그것을 건들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다른 마법사’의 마법이 담 겨 있는 두루마기를 꺼내야 했던 것 이다·
엘트먼은 그늘진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더니 교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친 사람은 있나?”
“부상자는 없습니다만····”
엘트먼의 질문에 교수는 침울하게 대답하고서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 에는 웬 소녀 세 명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 껴안은 채 떨고 있었다·
인상착의가 익숙하다·
온몸에 좔좔 흐르는 귀티·
소속을 자랑스러워하는 둣 붉은 루 비로 장식된 브로치를 몸에 하나씩 달고 있는 소녀들·
‘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풀 레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때·
교수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1학년 S반 홍비연 생도가··· 알 수 없는 이공간 공간 너머로 사라졌 다고 합니다·”
그건····
풀레임으로서는 전혀 예상도 상상 도 하지 못했던 대형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