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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매직 서바이벌⑺
콰쾅!!
화려하게 번지는 검붉은색의 불꽃 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언덕과 천 년 묵은 고목 쏟아지는 소나기와 내리치는 천둥벼락마저도·
모조리 검은 불꽃에 휩싸였다·
화르륵···!
젤리엘은 급히 실드를 펼쳐 보였지 만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진 마법은 현실이 아닌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검붉은 불꽃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 었다·
쨍그랑!
읏···!,,
작은 충격파와 함께 뒤로 밀려난 젤리엘은 불타오르는 고목에 부딪히 며 주저앉았다·
화륵···!
어깨에 검은 불꽃이 옮겨붙은 것을 뒤늦게 확인하여 꺼뜨리려고 했으나 잘 지워지지 않았다·
,이건···!
평범한 마법으로는 꺼지지 않으며 현실 그 자체를 불태워 버리는 불꽃·
책으로 읽어본 적 있다·
검은 불꽃을 다루는 흑마인 최강의 혈통 중 하나 ‘이스카람의 혈족’·
눈앞의 저 흑마인은 고대 시절부터 존재해온 이스카람의 피를 계승받고 서 검은 불꽃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직속 혈통을 계승받지 못 하고 파생된 씨앗을 이어받았는지 불꽃의 색깔이 탁하고 선홍빛이 상 당히 섞여 있다·
파괴력 자체는··· 도시 하나를 한 꺼번에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이스카 람의 악명보다는 훨씬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가?
···불가능해·’
불붙은 어깨에서 벌써부터 화끈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로써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불꽃은 정말로 나를 집 어삼켜 불태워 없애버릴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을·
—ロ ・
방금 획득한 4레벨의 아티팩트 지 팡이로 몸을 지탱하고서 힘겹게 일 어난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베런칼을 침착하게 바라보았다·
분석해 본다·
승리할 확률과 살아남을 확률·
주변의 지형지물과 여태 획득한 아 이템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적에게 서 도망치는 방법까지·
당장 눈앞에서 죽음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젤리엘은 자기 자신조차 도 장기말로 생각하고서 냉정한 사 고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그저 장기말을 다루는 사령탑에 불 과했을 뿐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 든지 이용할 자신이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나? 응? 예쁜 얼굴에 근심이 아주 많아 보여 아가씨·”
베런칼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젤리 엘을 향해 다가갔다· 눈앞의 저 소 녀가 누구인지는 진작 눈치챘다·
귀족 중의 귀족·
세계에서도 최상위 신분에 위치해 있을 하이 엘프 소녀 젤리엘·
축복받은 가문에서 태어나 천부적 인 재능까지 타고난 그녀를··· 이 곳에서 불태워 버린다면 자신의 이 름은 틀림없이 마법계에 큰 흉터를 새긴 흑마인으로서 기록될 터·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쳤다· 혈관을 타고 흐 르는 피가 더더욱 그의 머리와 가슴 을 뜨겁게 만들었다·
‘어떻게 괴롭힐까?’
여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 아왔겠지· 그 면상을 아주 천천히··· 예술적으로 망가뜨리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찬양받던 아름다운 얼
굴을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도 록 끔찍하게 불살라 버릴 것이며 다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도록 손 과 혀를 뽑아버릴 것이다·
“하하 그 차가운 눈빛이 일그러졌 을 때가 기대되는구만! 너 같은 여 자들이 괴롭히는 맛이 있다고!”
화륵-!
가뿐히 오른팔을 휘둘러 검은색 불 꽃을 날리 スト 젤리엘은 방어하지 않 고 그대로 옆으로 몸을 힘껏 날려서 굴렀다· 마법사의 전투라기에는 더 럽고 추잡했지만 이것이 최선의 판 단이었다·
뒤이어 젤리엘은 베런칼에게 지팡 이를 겨누었다· 순간 날아올 마법을 예상하여 베런칼은 방어 태세를 갖 췄으나·
파앙···!
젤리엘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서 ‘점핑 슈터’ 아티팩트를 이용해 높 이 뛰어올랐다·
“하 잔재주를!”
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베런칼 이 손가락을 튕기자 젤리엘의 코앞 에서 불꽃이 형성되어 터져 버렸다·
‘무슨···!’
퍼퍼펑!!
“읏···!,,
그 반동으로 인해 바닥으로 다시 처박혀 버린 젤리엘· 다행히도 추락 으로 인한 고통은 거의 느껴지지 않 았으나 상반신에 거의 불꽃이 옮겨 붙고 말았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 스러웠으나 젤리엘은 꾹 참고서 원 인을 파악했다·
‘좌표 생성의 사거리가 상상 이상 으로 길어·’
보통의 마법사는 이렇게까지 먼 거 리에 ‘타깃’ 마법을 형성할 수 없다·
마법이 허공에 즉시 발동되는 대신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약한 게 타 깃의 단점이었기에·
즉 눈앞의 저 흑마인은 타깃 마법 에 최적화가 되어 있다는 뜻인데····
‘도망치는 건 무리·’
판단을 끝마친 뒤 힘껏 뒤쪽으로 구르자 눈앞에 불꽃 덩어리가 떨어 져 내렸다·
“하하하 도망치려고 했구나? 이제 소용없다는 걸 알았으니 어떻게 하 시려나? 응?”
화륵! 쿵!
베런칼은 양손으로 공놀이를 하듯
이 검은색 불꽃을 젤리엘에게 툭툭 던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무의 뒤로 숨거나 실드 아티팩트를 집어 던지는 것으로 어떻게든 공격을 상 쇄하였지만 오래 버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방법은 있어·’
추정 등급 5리스크의 흑마인·
평상시 같았다면 승리할 수 없었겠 지만 스테이지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티팩트가 상당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벌써 하나의 계 획이 척척 완성되어 자리를 벗어나 빠져나갈 루트까지 완벽하게 설계되
고 있었다·
타닥 탁····
젤리엘은 시선을 내려 불붙은 자신 의 상체를 바라보았다·
뜨겁고 괴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비 명이나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시간이 얼마 없어·’
곧 있으면 상반신을 모두 집어삼키 고 이 불꽃은 자신의 전신을 불태 워 버릴 것이다·
살아남기만 하면 흉터 하나 없이 말끔히 치료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남자·
젤리엘은 굳게 결심하고서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점점이 초록빛의 마법진이 그려지 며 천년 고목의 몸이 뒤흔들리더니 나뭇가지가 요동쳤다·
쿠구구궁!!
‘정령 마법 엘피온 소환·’
식물에 깃든 의지를 살려내 부릴 수 있는 하이 엘프 최상위 마법· 비 록 그녀가 4클래스밖에 되지 않아 강력한 정령을 소환할 수는 없었지 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쿵 쿠궁!!
-쿠워어어어!
나뭇가지로 얽힌 정령 엘피온은 소 나기가 내리는 낮에 더욱 강력한 힘 을 낸다· 비록 시간대가 밤이었기에 그 버프의 절반밖에 받을 수 없었으 나 쏟아지는 소나기는 엘피온을 더 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리라·
“하 엘프들은 재미있는 마법을 쓸 줄 아는군?”
베런칼은 가소롭다는 듯 손가락을 가뿐히 튕겼다·
콰쾅!!
지팡이조차 없이 즉발된 검은색 불 꽃이 엘피온의 상반신을 통째로 태
워 버렸으나 그것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서 베런칼을 향해 나아갔다·
“하하! 소용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 겠나!”
그는 엘피온을 향해 불꽃을 날리면 서도 흑마인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 을 세워서 주변을 살폈다·
혹여나 젤리엘이 자리를 벗어나면 귀찮아지기 때문·
마침 베런칼에게는 천만다행스럽게 도 이곳은 탁 트인 언덕의 꼭대기였 고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천년 고 목이 전부였다·
즉 눈앞의 저 엘피온만 쓰러뜨리
면 젤리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네가! 생각해 낸! 수가! 고작! 이 것밖에! 안 되는! 거냐!”
베런칼의 불꽃이 터질 때마다 엘 피온의 몸이 부서져 내려간다· 팔이 떨어지고 다리가 무너지고 전신이 불꽃에 휩싸이는 와중에도 엘피온은 꿋꿋하게 베런칼을 향해 걸었다·
“하··· 꼭두각시를 때리는 건 재 미 없군·”
슬슬 귀찮아졌겠다 엘피온을 마무 리하려는 그때·
‘음?’
콰드드득!!
사방에서 천년 고목의 뿌리가 솟아 올랐다· 시야를 방해하기 위하여 방 해물을 세워놓으려는 것이다·
‘같잖은 수작을!’
베런칼을 바닥을 발로 내려찍어서 사방에 검붉은 불꽃의 파동을 흩뿌 렸다· 그러자 대부분의 고목 뿌리가 불타며 잘려 나갔으나 천년 고목은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났다·
“자포자기인가? 똑똑하다고 들었는 데 그것도 헛소문이군· 쓸데없는 곳 에 마나를 낭비하는구나!”
물론 젤리엘은 ‘마나 회복 포션’이
라는 서바이벌 전용 아티팩트로 마 나를 보충하고 있었으나 게임의 룰 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베런칼은 알지 못했다·
쾅! 콰쾅!!
“하하! 어디에 숨었나! 이렇게 하 면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생긴 거랑은 다르게 귀엽게 노는데!”
시야를 가리기 위한 헛수작은 통하 지 않는다· 그의 강렬한 불꽃은 소 나기조차 태워 버려서 사방을 탁 트 이게 만들었고 젤리엘이 숨을 장소 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툭 투둑···!
“음?”
그때 그의 발밑으로 굴러오는 흑색 의 구슬· 직감적으로 저것이 아티팩 트라는 것을 깨달은 베런칼은 흑색의 불꽃으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번쩍!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으나 베런 칼에게 들어오는 피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애당초 완전히 흑마력을 개 방한 베런칼이었기에 섬광탄에 적중 당하더라도 금방 회복했겠지만·
“하는 짓이 점점 더 귀여워지는군·”
마법에 더해 아티팩트를 이렇게 억 지스러운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건 정말로 수세에 몰렸다는 의미·
베런칼은 느긋한 걸음으로 천년 나 무의 고목을 향해 걸어갔다·
그 와중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고 목의 뿌리를 쳐내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띠띠띠-쾅!
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지뢰류 아티 팩트가 발동되었으나 발바닥으로 불 꽃을 내뿜어서 지워 버린다·
고목의 틈새에서 ‘마나 소멸탄’ 아 티팩트가 발사되었으나 허무하게 허
공에서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불꽃과 나무의 대결·
극악의 상성·
심지어 수준도 불꽃이 더욱 높다·
“하하하!”
명문 별꽃나무 마법학교 최고의 학 생 하이 엘프 젤리엘을 자신이 마 음대로 유린한다는 생각에 베런칼은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
마지막 산화·
거대한 불꽃의 덩어리를 허공에 소 환한다· 그때까지도 젤리엘은 나무
의 뿌리를 조종할 뿐 모습을 드러 내지 않았다·
‘멍청한 년!’
이대로 죽일 생각은 없기에 적당 히 파워를 조절한다·
나무는 모조리 불태우되 젤리엘은 죽지 않을 정도로 크기를 키워 전 방을 향해 발사·
···화륵 콰콰콰쾅!!
격한 폭음이 세상을 뒤덮는다·
단순히 나무를 불태우는 수준이 아 니라 아예 산산조각 폭발시켜 버리 는 괴랄한 위력·
“자 이제 슬슬 나오라고!”
검은색 불꽃은 연기조차 일으키지 않아서 시야는 가려지지 않는다·
완전히 불꽃에 뒤덮인 고목의 틈새 를 헤집고 들어간 베런칼을 크게 소 리 쳤다·
“자 어디에 있나! 빨리 나오지 그 래! 잘못하다간 죽어버릴지도 모른 다고?”
묵묵부답·
젤리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후두둑····
사방에서 자꾸만 귀찮게 굴던 고목
의 뿌리가 바닥으로 힘없이 가라앉 았고 더 이상 그 어떤 인기척도 느 껴지지 않았다·
“···음? 어라?”
베런칼은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살 폈다·
“이럴 리가 없는데···T
분명히 위력을 조절했다· 뒤에 숨 어있는 젤리엘에게는 큰 피해가 가 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죽이지 않 고 더 갖고 놀 생각이었는데····
‘설마 죽었다고?’
딱!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모두 꺼트린 그는 눈에 감각을 집중하여 고목의 잔해 사이를 헤집었다·
그러나 완전히 소멸해 버린 고목의 틈새에 사람이 숨을 만한 구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혹여나 대지 계열 마법으로 땅을 팠을까 싶어서 바닥으로 마나를 탐지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죽었다고? 이렇게 허무 하게? 갖고 놀지도 못했는데?”
애초에 죽일 생각으로 갖고 논 건 사실이었으나 어쩐지 허탈해졌다·
제대로 쾌락을 즐기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퍼뜩 드는 생각에
베런칼은 몸을 돌려 엘피온의 사체 를 향해 달려가 손을 쑤셔 박았다·
화르륵! 펑-!
“악···!”
그러자 엘피온의 내부에서 젤리엘 이 튕겨 나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미 전신에 화상을 입어 까맣게 그 을린 그녀는 생사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아직 죽지는 않았다·
“···너· 진짜로 미친년이었군·”
베런칼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미끼라고 생각했던 엘피온에 본인 을 직접 담을 줄이야·
“그러다 불타서 죽을 거라고는 생 각하지도 못했나? 멍청한 년·”
아니 사실은 그 반대다·
젤리엘은 자신이 불타서 죽을 각오 까지 해가며 엘피온에 몸을 실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이 자리를 빠 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 니까
마지막에 베런칼이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실제로 젤리엘은
이대로 빠져나가 경기 지역 바깥으 로 가서 탈락을 택한 뒤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젤리엘은 차게 죽은 눈으로 베런칼 을 올려보았다· 더 이상 움직일 기 력조차 없다· 정말 숨만 간신히 쉬 는 게 고작인 상황·
더 괴롭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 버리는 장난감을 대체 무슨 수로 가지고 논 단 말인가·
베런칼은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 뜨리고서는 이를 갈았다·
“젠장 팍 식었군·”
대상이 괴로워하고 고통에 울부짖어 야 괴롭히는 쾌락에 젖을 수 있거 늘··· 저 여자는 정말로 ‘인형’ 같지 않은가·
감정 없이 목표를 향해 묵묵히 움 직일 뿐인 태엽 인형 말이다·
어쩌면·
죽는 이 순간조차도 냉정하게 받 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베런칼의 생각과는 달리 젤 리엘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데····’
삶과 목숨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 로지 아버 ス1 단 한 명뿐이었으니·
‘내가 죽으면··· 아버지를 치료해 줄 사람이 없는데····
그녀의 아버지 멜리안은 아주 오 래 전부터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의사들을 불러모았으나 치료할 방법은 전무·
수십 년 동안 방도를 찾았으나 도 저히 길은 보이지 않았고 멜리안은 하나뿐인 삶에 그런 시간을 낭비하 기는 아깝다며 진작 깔끔하게 포기
한 채 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젤리엘에게 경영을 전 수해 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훗날 자신이 죽으면 젤리엘이 스 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하지만 젤리엘은 아버지가 죽게 내 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고대 카르멘세트의 유적·’
이제 조금만 더 하면 길이 보이는 데· 유적지의 흔적을 거의 다 찾았 는데· 그곳에 들어가기만 해도 아버 지를 살릴 수 있는데·
허무하게 죽어야 하는가·
‘내가 죽으면 아무도 유적지를 찾 지 않을 거야·’
아직도 모두가 카르멘세트의 유적 지를 전설로 치부하고 있으니까·
시조 마법사조차 해내지 못한 불멸 의 삶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나아가면 아버지를 살 릴 수 있는데····)
쏴아아아一!
소나기가 억세게 쏟아진다·
가짜로 만들어진 빗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젤리엘은 묘하게 현실감을
느꼈다· 눈앞에 진짜 죽음이 다가와 서 그런 걸까·
“···마지막까지 그 눈빛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
세상 모든 것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듯 젤리엘의 투명한 눈빛은 베런칼 로 하여금 불쾌감이 들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쾌락에 취해 살아가 는 흑마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 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갖고 놀 가치도 없겠군·”
베런칼이 손을 내뻗는 와중에도 젤 리엘의 머릿속으로는 무수히 많은
생각의 갈래가 뻗어 나갔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목숨을 구걸한다고 해서 그가 나를 살려줄까? 오히려 더 좋아하고 지독 하게 괴롭히지 않을까? 아티팩트와 계열 마법의 전략을 통한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언제나 항상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반드시 답을 찾아내던 젤리엘의 두 뇌조차 이번에는 그 어떤 해답을 내 놓지 못했다·
그리 생각하니 어쩐지 ‘슬픔이라 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 게 된 것 같다·
죽음의 직전이거늘 공포도 분노도 아닌 슬픔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감정이었다·
‘나는 죽는구나·’
저 하늘에서 기적처럼 날벼락이라 도 떨어지지 않는 한은 말이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이 그저 희망 을 노래할 뿐인 헛된 망상이라니· 나도 죽음을 목전에 두니 다른 사 람들과 똑같아지는 걸까·
그리 생각하니 어쩐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젤리엘은 웃었다· 그 것은 그녀가 진심으로 보이는 최초 의 웃음이기도 했다·
그런 젤리엘을 보며 베런칼은 손 을 내뻗었다·
“이만 죽어라·”
마치 죽음처럼 피어오르는 검붉은 색의 불꽃· 그것을 바라보던 젤리엘 은 고요하게 눈을 감았고·
···번쩍!
콰콰쾅-!!
갑작스레·
거대한 벼락 한 줄기가 내리쳤다·
마치·
기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