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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학교 대항전(5)
전 세계 삼십여 명문 학교가 참여 한 학교 대항전의 모든 대회는 스텔 라 돔에서 개최된다·
반쯤은 현실 반쯤은 가상으로 이 루어져 있어 원하는 지형지물과 허 구의 마도구까지 원하는 것이라면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는 이 특별한
공간은 스텔라 특유의 아이덴티티이 기도 했다·
무려 9클래스의 공간계 대마도사 엘트먼 엘트윈이 자신의 모든 지식 과 마법을 쏟아부어서 ‘이면 세계’ 를 복제하였으니 말이다·
이면 세계란 말 그대로 또다른 세 계를 뜻한다· 그런 세계를 복제한다 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지 만··· 8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들에게 는 그런 ‘상식’이라는 게 통하지 않 았으므로 그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는 않았다·
“···정말 이런 칸막이가 저주를 막을 수 있는 건가요?”
모든 요정의 왕이자 엘프를 다스리 며 세계수와 가장 가까운 존재 꽃 서린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재 스텔라 돔에는 거대한 스타디 움이 구현되어 있었는데 일반 관람 석과 귀족들의 관람석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꽃서린은 아예 엘트먼 엘트윈이 직접 전용석을 분리해 주 었는데 스타디움에서 가장 높은 곳 에 위치한 이 공간은 바깥에서는 안 쪽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바깥 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안에서는 보이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 불투명한 유리막의 아이디 어는 풀레임이 제공하여 알테리샤가 개발한 특별한 물질이었는데 거기 에 더해 엘트먼의 ‘공간 차단막’이 중첩되어 이곳은 아예 별개의 세상 이나 다름없었다·
공간 그 자체가 다른 차원인데 저 주가 새어 나갈 리가 있겠는가?
덕분에 그녀의 근처로는 보좌관 오 렌하를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없어 꽤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저주의 걱정을 전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신기하네요···
꽃서린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불투 명한 막을 만져보았다· 평소 위엄 있는 척을 억지로 하던 모습과는 퍽 괴리감이 있어서 오렌하의 입꼬리 가 슬그머니 올라가려는 무렵·
“마음에 들어?”
“···엘트먼· 오랜만이에요·”
불투명한 막이 갈라지며 그 사이 로 스텔라 아카데미의 교장 엘트먼 엘트윈이 걸어 들어왔다·
단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 각에 오렌하의 표정이 살짝 굳었으 나 꽃서린은 고마운 친구의 등장에
미소를 띠었다·
“이런 걸 개발하시다니· 대단하네 요·”
“완전히 내 오리지널 마법은 아니 야· 뭐 99%는 내 마법이지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셨나 요?”
엘트먼 엘트윈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정도의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꽃서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게 웃었다·
“응· 이번에 우리 학교 학생이 ‘병 렬 배열식’이라는 아주 독특한 이론 을 개발했거든· 마법계가 발칵 뒤집
혔어· 너도 들어는 봤지? 백유설이 라고 독특한 학생 하나가 있거든·”
“아··· 네· 들어봤어요· 어떤 학생일 スL 정말 궁금해요·”
움찔 그 이름이 나오자 오렌하는 손끝을 떨었다·
백유설의 업적은 평범한 학생이라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뛰어났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사실은 그가 수백 살 넘게 먹은 마법사라는 진실을 떠올리면··· 충분히 개연성이 부여된다·
흑마인 퇴치? 병렬 배열식?
전부 다 놀라운 업적이다·
하지만 세간에 저런 놀라운 업적 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다·
그 대부분이 늙은 대마법사에 한정 되어 있었을 뿐·
백유설의 업적이 두드러지면 두드 러질수록 오렌하의 가설에는 확신 이 더해졌다·
‘틀림없다·’
현시점에서 모든 ‘신령 살해자’는 정예 하이 엘프 심판관의 집요한 추 격으로 인해 모조리 체포되거나 살 해된 지 오래다·
단 한 명 꽃서린의 친우 잎하넬을 잠재운 정체불명의 살해자를 제외하 고서는·
그런 시점에서 정말 신수가 아닌가 착각하게 될 정도로 신령의 기운을 온몸에 잔뜩 품고 있는 백유설은 틀 림없는 신령 살해자이다·
신령을 살해하여 그 심장을 취하 지 않는 이상은 인간 따위가 그런 기운을 가지는 게 불가능했으니·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슬슬 활동을 시 작한 것인가?’
그렇다면 큰 오산이다·
자신은 이미 그 정체를 간파했고 이 자리에는 무려 모든 요정의 왕이 직접 행차하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피해가는 건 절대로 불가 능하다·
‘뭐가 어찌 되었든 기대되는군·’
백유설이라는 이름으로 승승장구하 는 10대 학생의 삶은 즐거웠나?
천재라고 불리는 삶은 짜릿했나?
그렇다면 참으로 아쉽게 되었다·
그것도 오늘로 끝일 테니 말이다·
오렌하가 흘로 미소 짓는 것도 모 르는 체 꽃서린은 엘트먼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단한 학생이네요·”
“우리 학교의 학생에게 새로운 배 움을 얻다니· 나도 아직은 갈 길이 먼가 봐· 뭐··· 스승님’의 마법에 비하면 아직 그 발끝의 때조차 닿지 못하고 있으니 사실이긴 하지·”
꽃서린은 불투명한 막을 만지작대 며 물었다·
“이 물건을··· 혹시 더 구할 수 있을까요?”
엘트먼은 안타까운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 그건 안 돼· 이곳이 스텔라
돔이라는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내 수준으로는 현실에 서 구현하기 어려운 마법이라····”
“그렇군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홀로 지내 는 건 이제 익숙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아무튼 나는 자리를 지켜야 해서 이만 가 볼게· 모쪼록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해·”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엘트먼이 퇴장하고 나서야 드디어 둘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꽃서린은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리그 오브 스피릿’의 흥미진진한 경기를 관람하다가 오렌하에게 물 었다·
“보좌관·”
“예· 말씀하십시오·”
“분명흐] 이곳에 그 ‘신령살해자’가 있다고 하셨던가요?”
“물론입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오렌 하와 눈을 마주하였다· 검은색의 마 스크와 면사포로 가려져 있어 아름 다운 눈동자를 직접 마주할 수는 없 었지만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만큼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에··· 거짓은 없어야 할 거 예요·”
그건 꼭 경고하는 어조처럼 들렸 으나 자신의 뜻에 확신을 가지고 있 던 오렌하였기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 * *
학교 대항전 이틀 차가 되었다·
lvsl 결투와는 달리 리그 오브 스
피릿은 경기는 상당히 길게 진행되 는 편이다·
한 경기에 최소 짧게는 10분 길게 는 30분이 걸리고는 했는데 30개의 팀이 모두 매칭되어 승점을 따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 다· 오히려 천재 소년단의 경기를 보기 위해 먼 거리에서 직접 이곳까 지 찾아온 일반인 관람객도 상당하 였으니 길게 진행될수록 좋은 사람 도 많을 것이다·
그동안 할 일이 없는 나는 무엇을 하는가·
“어떻게 할래?”
의자에 삐딱하게 앉은 채 다리를 꼬고서 거만하게 커피잔을 입에 가 져다 댄다· 한쪽 팔을 등받이에 걸 치는 것은 포인트·
,,앗 뜨·,,
순간 혀를 델 뻔해서 폼이 살짝 흐트러질 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커피잔을 놓치지는 않았다·
젤리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뭔가를 생각하고 있겠지·
나를 ‘흑마인’으로 착각하게 된 경 위라든가····
‘영혼의 보주를 나한테 넘긴 시점 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단 거겠 지·’
그동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어서 깜빡하고 있었다· 젤리엘이 선물해 준 펜던트 안에 들어 있던 신비로운 아티팩트 영혼의 보주·
천령나무의 요람에서도 아주 귀한 보물로 취급되었기에 제아무리 거대 상회라지만 쉽사리 다룰 수는 없을 터· 그것을 대뜸 내게 넘겼다는 건 나를 흑마인으로 의심한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말이 되겠다·
“말 안 해?”
“제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에요·”
그러나 우리의 의리 넘치는 젤리엘 은 의뢰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 다· 괜히 들켰다가는 곤란한 신분의 누군가로 추정되기는 하는데····
‘어차피 천령나무 장로급 중 한 명 이겠지·’
애초에 영혼의 보주는 아무나 접근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이 엘프 의 장로급 이상이 아닌 이상은 그림 자조차 밟는 게 불가능했으니·
“그러냐· 그럼 어떻게 책임질래?”
그러자 젤리엘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하였다·
내가 아무것도 없는 학생이라면 모 를까 이제는 나도 꽤 무게감이 있 는 사람이다·
스텔라의 생도이スト 아이템의 공동 개발자이자 병렬 배열식의 창시자·
···내가 직접 이뤄낸 업적은 하나 도 없지만 어쨌든 간에 별구름 상 회에서 괜히 등을 졌다가는 상당히 골치가 아픈 인물이란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손에 넣고 싶 었나 보다·
내 정체가 흑마인이고 그것을 자
신이 알아냈으니 이를 빌미로 삼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었겠지·
젤리엘이라는 인물은··· 혼자 생각 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 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유능한 ‘장기말’을 두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으니까·
협박과 날조 조작과 폭력·
뒤에서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저질러놓고 상대방을 서서히 밑바닥 으로 끌어내려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점에서 제레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모로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다·
“내 말 한마디면 아무리 별구름이 라도 크게 휘청일 거야· 네 아버지 가 일궈놓았을 텐데··· 딸내미의 실수 때문에 참으로 안타깝게 됐 어·”
젤리엘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쯤 머리가 복잡하겠지·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설정 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말이 그 녀에게 치명타라는 사실을 잘 안다·
아버지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고 더 불어 그가 실망한다면··· 젤리엘로
서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뭐 애당초 너와 이야기하는 것도 귀찮네· 그냥 아버지 모셔와· 어떻게 반응하실까? 사람 한 명을 흑마인으 로 몰아세우고 심지어 그것을 빌미 로 협박까지 하려고 했으니····”
“···그만 제발 그만하세요·”
젤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 하였다· 그건 썩 애처롭게 보이기까 지 했다·
당장에라도 넋을 잃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외모의 소녀가 그런 눈동 자를 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남자라 면 그대로 매혹되어 심장을 빼앗기
겠지만 연홍춘삼월의 가호를 가진 나는 이런 부분에서 꽤 냉정하게 이 성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피해보상이라면 얼마든지 치를 테 니··· 제발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정말 그래도 되겠어? 네 아버지를 비롯해서 이 사실을 세간에 공개하 지 않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부가 세가 부여될 텐데·”
“···괜찮아요·”
대가를 얼마든지 치르더라도 자신 의 실수를 아버지에게 들키는 것만 큼은 끔찍하게도 싫다는 건가·
뭐 나도 회장 멜리안에게 굳이 일 러바칠 생각은 없다·
차라리 여기서 젤리엘을 협박해서 단단히 속박해 두는 게 낫다·
훗날 별꽃나무 마법학교로의 교환 학생 에피소드 때 젤리엘에게 지독 하게도 괴롭힘을 당할 예정인 풀레 임과 에이젤을 위해서도 이게 차라 리 나았고
“좋아· 그럼 결정됐네?”
나는 그녀에게 조금 과한 요구를 할 셈이다·
흑마인의 오명을 뒤집어씌운 건 분명 히 마법 사회에서도 금기시되는 것이
지만··· 그렇다고는 쳐도 지나치게 말 도 안 되는 요구사항·
하지만 그건 제아무리 젤리엘이라 도 곧바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예전에 한 번 써먹었던 방 법을 사용해야겠지·
딱!
손가락을 튕기スト 뒤에서 대기 중 이던 아넬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넵!”
“물건을 가져왔나?”
“물론입니다!”
거창하게 007가방까지 가지고 온
그녀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 고선 딸칵 딸칵 소리를 내며 열더 니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게 뭐 대단해 보이는 것처럼 연출하기는 했어도 그냥 문구점에서 사 온 싸구려 ‘마력지’다·
다만 마력지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건···
마력지에 빠르게 ‘서약서’를 작성 한 나는 그것을 젤리엘에게 내밀었 다·
“우리 소울 체스로 내기 한 판 할
까?”
“···내기 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내가 지면 깔끔하게 없던 일로 하고 내가 이기면 너는 이 조 건을 들어주는 거야· 어때?”
나는 서약을 어겨도 잃을 게 없으 나 상대방은 서약을 어기면 모든 마나를 잃게 되는 지독한 부당거래·
그런 사실조차 모른 채 젤리엘은 묵묵히 서약서를 읽어 내려갔고 마 침내 조항을 모두 확인한 그녀는 그 것을 테이블에 내려놓고서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 조건 받아들이죠·”
나는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렸다·
‘걸려들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