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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스텔라 기사단(4)
아이테르 월드에는 위성이 무려 세 개나 존재하였는데 지구의 상식으 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 으나 나는 원래부터 상식이 부족하 고 과학에 약한 사람이었기에 이를 받아들이기는 상당히 쉬웠다·
오늘은 세 개의 달이 모두 보름달
이다·
하나의 보름달이 떠도 자연 마나의 활력이 높아져서 ‘마법사의 날’이라 고 불리는데 세 개의 달이 모두 보 름달이 뜨면 하늘과 땅이 통하는 문 이 열린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어 마어마한 마나의 순환력을 보여주었 다·
오늘 같은 날 수련을 해도 좋겠으 나 나는 알테리샤를 찾아왔다·
“···정말로 이런 물질이 존재할 줄이야·”
“저도 될 줄은 몰랐네요·”
천문대의 천장이 열리며 세 개의
렌즈가 각각 보름달의 빛을 머금었 다· 특별한 연금술로 제작된 저 렌 즈는 달빛의 마나를 형태화하였고 그것을 그대로 물질 합성하여 고체 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월광석(月光石)’이 라는 놀라운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 었다·
강도 자체는 그다지 단단하지 않으 나 마나를 잔뜩 머금을 수 있어서 마법 아이템을 만들기엔 최고의 재 료나 다름없는 월광석은 세 개의 보 름달이 모두 뜰 때만 제작할 수 있 었다·
원래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월광석
을 추출할 수 없었으나 세 개의 만 월이 그다지 흔한 현상이 아닌지라 나는 급한 대로 알테리샤에게 ‘달빛 을 머금은 렌즈’라는 마도구의 제작 법을 알려주었다·
너무 급하게 만든 나머ス] 상당히 조잡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덕분에 실컷 달빛을 추출한 결과물 이 고작해야 자그마한 주머니를 간 신히 채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걸로 조수님이 원하는 물건을 만드세요·”
“···그래도 돼? 이렇게 귀한 걸····”
뛰어난 연금술사답거1 월광석을 본
즉시 이게 얼마나 귀한 물질인지 깨 달아버린 알테리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월광석 가루 주머니를 받았 다·
“저보단 조수님이 더 제대로 활용 할 테니까요·”
사실 조금 아깝긴 했지만 당장 저 정도 양으로는 뭐 제대로 할 수 있 는 것도 없다·
‘옛날에는 월광석으로 갑옷이랑 무 기도 만들어서 다녔었지·’
월광석으로 장비 아이템을 만드느 라 얼마나 노가다를 했는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난다·
“고마워···· 잘 쓸게·”
알테리샤는 감격한 듯 그것을 받아 들고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월광석을 만지작거렸다·
‘옛날 생각나네····’
나는 멍하니 천문대의 뻥 뚫린 천 장 너머로 세 개의 보름달을 바라 보았다·
수십 수백 수천 번의 죽음을 맞 이해가며 플레이했던 게임 아이테 르 월드·
그 속으로 들어오게 될 줄 설마 누가 알았겠는가·
세이브 데이터를 불러오며 몇 번이 고 넘어지고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끝끝내는 엔딩을 보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참··· 죽음조차 두렵지 않았 었구나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저··· 게임이었으니까·’
* * *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 별의 서고·
그 이름만 들어도 마법사로서 호기 심에 갈증이 일고 탐욕이 샘솟으며
지식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르는 전 설 속 신비로운 도서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이 잠들어 있 는 도서관에는··· 대체 어떤 비밀 이 있을까·
하지만 ‘시조의 열두 가문’은 콘스 텔라티오 프로젝트의 열람을 극렬히 거부하였고 그건 모르프 가문의 아 이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에이젤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아이작 모르프는 죽음을 맞이하였 고 남겨진 것이라고는 모르프의 혈 통과 가문을 상징하는 심볼뿐·
‘나는 할 수 있어·’
모르프 가문의 심볼을 양손에 꼭 쥔 채로 에이젤은 고개를 슬그머니 돌려 보았다·
마치 등대를 연상케 하는 탑의 꼭 대기에 형형색색 그려진 마법진· 저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마법진이 사 실 스텔라 아카데미를 뒤덮고 있단 사실을 친구들은 알고 있을까·
보통의 마법사는 눈으로 인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 교묘한 저 마나의 선은 이미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건 에이젤에게는 퍽 낯선 마법
진이었다·
여타의 평범한 마법진이 원을 토대 로 선을 그려 넣는 것과는 달리 이 마법진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을 이 어놓은 듯··· 마치 ‘별자리’를 연 상케 했으니까·
저 하늘을 수놓은 별자리의 마법 진· 그 중심에 에이젤이 서スト 아레 인이 그■녀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 었다·
“먼 옛날 유실된 콘스텔라티오의 조각 중 하나다·”
자그마한 팔면체의 돌멩이였다· 표 면에는 글자의 흔적이 있었는데 해
석은 불가능했다·
“···이런 귀한 걸 이렇게 막 써 도 되는 건가요?”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 들고서 에이 젤이 묻자 아레인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차피 내가 발견한 물건이며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용할 수 없으니 네가 대신 하는 수밖에·”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이자 아레인은 뒤로 물러났다·
“명심해라· 별의 서고에서 인간이
열람할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한정 되어 있다· 정보를 열람하는 대가는 ‘마나오ト ’심력’· 스스로 한계에 도달 했다고 느껴지면 그대로 돌아와야 한다·”
“···알겠어요·”
고작해야 3클래스의 마법사가 열람 할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될까· 그 나마 오늘이 마법사의 날이라 불 리는 세 개의 보름달이 떠서 망정이 지 평상시 같았으면 아예 접근 자 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그녀는 지금 세계 에서 유일하게 콘스텔라티오 프로젝 트에 방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사
람이기도 했기에 믿어보는 수밖에·
“후우····”
에이젤이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 을 바라보며 버릇적으로 담배를 꺼 내려던 아레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만두었다·
이 자리에는 ‘별의 서고 열람’이라 는 가장 신비로운 마법의 준비를 위 해 스텔라 오리온 마탑 최고의 학자 들이 모여서 집중을 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아레인 역人】 약간의 궁금증은 있 었다·
대체 12인의 제자들은 별의 서고
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두려 움에 떨며 저것을 봉인했던 것일까·
어차피 인간의 두뇌 따위로는 ‘모 든 지식’을 열람한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인간의 범주 내에 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막연한 공 포를 마주하였다는 것인데····
‘모르겠군·’
밤하늘의 별빛이 점점이 흔들리며 에이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하였 다· 자연 그 자체의 마나가 아닌 저 하늘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또 다 른 신비로운 마나· 아직까지 마법사
들이 정복하지 못한 ‘우주,의 기운 이 에이젤의 몸을 휘감았다·
별의 서고는 아무 때나 열람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은 정말 아주 오랜만에 세 개 나 되는 달이 모두 보름달이었으며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였고 때마침 십이성의 별자리가 떠 있는 덕분에 가능하였다·
아레인이 오늘 에이젤을 찾아온 건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오늘밖에 기 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르르····
별가루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에이젤의 의식이 점점 더 멀어졌다·
아득히 먼 곳으로·
꿈을 꾸는 듯하지만 꿈은 아니었 고 현실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현실 이 아닌 세상·
‘아···
문득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하늘 위를 걷고 있었다·
별빛의 망망대해를 표류하며 에이 젤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였다·
저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은 글자 가 되어 그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었다·
[에이젤 모르프]
9??
9999
99999 999999 99
999 9999 99
99 99 99 99 99
999 99
‘저건 내 정보···?
그러나 어째서인ス】 읽으려고 아무 리 애써도 읽을 수가 없었다· 시도 할 때마다 오히려 마나가 쭉쭉 빠져 나갈 뿐이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 는 격이었다·
‘됐어! 내 정보 따위는 필요 없으 니까!’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뭔가 뭔가····
아득히 높은 어떤 파도가 이곳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바다의 파도 도 별빛의 파도도 아니었다·
‘정보의 파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에 직격당하면 죽는다·
육체적이 아닌 정신적인 사망·
에이젤은 눈을 질끈 감아서 그것을 맹렬히 거부하며 머릿속으로 단 하 나의 정보를 떠올렸다·
‘마력누설지체· 그 치료법에 대해 알려줘!’
그러나 파도는 말을 듣지 않은 채 그녀를 향해 계속해서 전진하였다· 에이젤의 신호를 전혀 알아듣지 못 하는 것이다·
이대로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머릿 속에 주입당했다가는 영혼째로 산산 조각 분쇄당할 것이다·
포기하고 돌아간다면 살아남겠지 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다·
하여 에이젤은 마지막으로 소리쳤 다·
‘백유설에 대해 알려줘!!’
우뚝·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듯 다가오던 파도가 멈춰서더니 마치 모래성처 럼 무너져 내렸다·
직후·
정신을 차리니 그녀는 폐허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여긴···?)
한때 찬란하고 웅장했을 것이 분 명한 거대한 건축물은 모조리 반파 되어 있었고 거리에는 시체가 즐비 해 있었다· 에이젤은 곧 그 시체들 이 입고 있는 옷을 알아보았다·
‘스텔라 교복···?
그녀는 황급히 무너진 폐허를 확인 하였고 이내 이곳이 다름 아닌 아 르카니움의 ‘스텔라 아카데미’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어째서···
멈칫 에이젤은 문득 하늘을 올려 보았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성우가 지 상을 강타하고 있었다· 폭음도 소음 도 없이 그저 그것은 조용히 세상 을 짓이길 뿐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멍하니 무너진 세상을 관망하던 에 이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 고 그 순간·
화아악···!!
장소가 또다시 뒤바뀌어 그녀는
어느 드넓은 평야에 서 있었다·
이곳 역시 유성우에 의해 모든 게 무너져 내린 채였으며 사방에는 로 브를 입은 마법사들의 시체가 시산 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무언가·
그것은 살아 있는 공포였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재앙이었다·
그것은 검은색의 멸망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용’의 형상을 하 고 있었다·
,아···?)
순간 사고 회로가 마비되어 에이 젤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늘의 절반을 뒤덮는 검은색 용의 존재는 감히 인간 따위가 마주하여 서 있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이 었기 때문어】·
지상의 모든 위대한 건축물 진보 된 기술 마공학 역사 속 위인들····
모든 것들이 저 존재의 앞에서 한 없이 무의미해졌다·
누군가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세상의 멸망·’
어째서 일까·
어째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콘 스텔라티오 프로젝트에 ‘세상이 멸 망하는 순간’이 담겨 있는 걸까·
분명히 별의 서고에는 ‘현재까지 발생한 사건’만이 기록될 터인데··· 어째서 미래의 정보가 담겨 있냐는 말이다·
그도 아니라면 혹시·
···이미 발생했던 사건이라면?
거기까지 의문을 표한 에이젤이었 으나·
저벅
저벅-!
누군가가 그녀의 곁을 지나쳐 앞 으로 걸어가는 바람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에이젤은 곧장 그를 알아볼 수 있 었다·
현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화 풍의 달빛을 닮은 백색 갑주를 입은 채 신비로운 날이 선 백도(白 刀) 한 자루를 쥐고서 흑룡을 향해 걸어 가는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백유설이었다·
현재의 백유설보다 최소 10년 이 상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는 아무 런 표정조차 짓지 않은 채 그저 앞 으로 나아갔다·
흑룡을 향해·
‘아 안 돼!’
에이젤은 힘껏 소리쳤다·
가지 말라고·
그곳으로 가면 죽는다고·
그러나 백유설은 에이젤의 목소리 가 들리지 않는 듯 멈추지 않고 흑 룡에게 다가갔다·
마礼 홀로 그것을 상대하려는 것
처럼·
놀랍게도 흑색의 용이 처음으로 백유설의 존재에 반응을 하였다·
그것은 백유설을 향해 무어라 말하 였으나 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검을 겨누었고·
번쩍!
한 줄기의 섬광이 되어 흑색의 용 을 향해 쏘아졌다·
‘안 돼에에에!’
그런 백유설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힘껏 내뻗는 그 순간·
“···정ス 1 당장 정지하라!”
“허어어억!”
‘별의 서고 속 세상’이 무너지며 그녀에게 현실이 주어졌다·
“당···! 안정··· 포션을 가져···라!”
의식이 아득해진다· 멀어지는 세상 속에서 아레인의 다급한 외침만이 그녀의 귓가를 댕댕 울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