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27· 태령신공(4)
지구에도 미신은 참 많았으나 마 나의 부재로 인해 미신은 대부분 미 신에 그쳤다·
그러나 아이테르 월드의 미신은 조 금 특별하다· 마법적으로 원리를 증 명해 낼 수는 없으나 마나의 존재 로 인해 실제로 그 효과가 증명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태령은 그런 미신을 실제로 연구 해서 책으로 엮어놓았다·
자연만물(自然萬物) 에는 정기(正 氣)가 깃들어 있으며 이는 음(陰)과 양(陽)으로 나뉜다·
음양은 서로 대립하였으나 조화롭 게 순환하여 무한한 에너지를 발생 하였는데 그것을 곧 ‘마나’라고 부 른다·
마법사들은 마나를 호흡할 때 자 연의 이치를 따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심장이 중심이었는데 이는 그들에게도 자그마한 그릇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력누설지체는 다르다·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연을 기준으로 마나를 순 환해야만 한다·
기(氣)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는 데 목(木)화(火)•금(金)•수(水)・토(土) 로 구분되며 이를 오행(五行)이라고 칭하였다·
본인은 이 오행을···(후략)·
어쩌고저쩌고·
하여튼 미신과 마법이 뒤섞인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호흡을 하라는 내 용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는 하지 못했 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머리가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적혀 있는 대로 따라 하는 건 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저 비급 서를 따라서 호흡을 반복하였다·
단순한 호흡이니까 쉽지 않겠느냐 고?
정말 더럽게 힘들고 어렵다·
무슨 숨 한 번 들이쉬는 데에 어 디에 힘을 주고 무엇을 상상하고 한 번 내쉬는 데에 힘을 풀고 자연 을 만끽하고·
하여튼 나는 하루 종일 그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다·
바닥에 특별한 진(陣)을 그려보기 도 하고 무슨 요가를 하는 듯한 괴 상한 자세를 취해보기도 하고·
진짜 별의별 짓을 다 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운 결과·
[스킬 ‘태령신공’이 생성됩니다·]
드디어 호흡법이 스킬로 등록되었 다· 게임을 플레이하던 시절에도 간 혹 이런 경우가 발생하기는 했는•데 현실로 변한 뒤로는 처음이었다·
[스스로 등록한 스킬은 언제든지 당 신이 연구하여 능력을 증폭하거나 축 소할 수 있습니다·]
[스킬 ‘신령의 숨결이 하위 스킬로 판단되어 ‘태령신공’에 귀속됩니다·]
[스킬 ‘태령신공’이 강화됩니다·]
[태령 신공]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에 따라 호흡하여 자연을 받아들인다·
* 사용 시 혈중 마나 순환율이 상 승하며 이 수치는 사용자의 숙련도 에 따라 결정된다·
* 환경에 따라 마나에 오행(五行) 의 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
* 태령신공은 다른 숨결 또한 음양 오행의 묘리에 따라 받아들인다·
A신령의 숨결 Lv·l
이것이 바로 태령신공의 효과·
눈에 띄는 능력치 상승은 없으나 ‘혈중 마나 순환율’이 곧 내 전체적 인 스펙과 공격력을 결정짓는다·
지금까지 저 혈중 마나 순환율을 올리겠답시며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 가· 그 어떤 유산소 운동으로도 소 용이 없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 었단다·
새삼 조상님들이 얼마나 똑똑했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음양이니 오행이니 나는 진짜 상상도 못 하 겠는데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한 거
지?
신령의 숨결은 태련신공의 하위 스 킬로 등록되어 섞이며 그 효과 또 한 대폭 상승되었다·
아무래도 평범하게 ‘신령의 호흡’ 을 내쉬던 것을 태령신공의 복잡하 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호흡하니 당 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신령의 숨결 그 자체에도 어마어마한 혈중 마나 순환율 상승 효과가 붙은 것 같으니 여차할 때 사용하면 정말 큰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수 친화도의 문제 때문에 잦은
사용은 금기해야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스킬도 얻었겠다 나는 즉 시 태령신공을 사용해 보았다·
물론 ‘태령신공 발동!’이라고 소리 치는 것으로 간단히 호흡되지는 않 았다·
지금의 내 집증력으로는 가만히 자 리에 앉아서 한참을 호흡해야 효과 가 간신히 나타나는 정도였다·
[태령 신공]
대략 10분 정도를 집중하고 나서 야 간신히 발동되는 태령신공·
즉시 마력누설지체의 창을 올려서 확인해 보았다·
[마력누설지체 Lv·3]
* 근력 08%(+17%) 강화
* 민첩 12%(+29%) 강화
* 감각 20%(+25%) 강화
육감 : 사용자의 ‘심력’을 소모하 여 발동· 반경 24m 범위에서 발생 한 마나 현상을 적당히 감지하며 ,인지 가속,이 활성화됨·
사용자에게 위기가 닥쳤다고 판단 될 경우 자동 발동·
* 마력 집중 : 호흡한 마나를 한
곳으로 집결하여 방출·
* 혈중 마나 순환율 : 3%(+6%)
‘미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능력치 상승 이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폐가 찢어 질 것처럼 아프고 눈물이 찔끔 새 어 나오며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지 만 멈추지 않고 일어나 테리폰 소 드를 활성화하였다·
[마력 집중]
목표는 테리폰을 든 내 오른손··· 그 끝을 넘어서 테리폰 그 자체·
즉 나는 마력 집중을 이 마력검에 부여하려는 것이다·
가능하다· 아이테르 월드의 ‘캐릭 터 백유설’은 이것을 충분히 해냈 고 소드 마스터로서 마력검이 없더 라도 언제든 맨손에다가 검기를 방 출해 내는 검술의 천재였다·
치지지직···!!
테리폰 소드의 끄트머리에서 검의 형상이 거칠게 타오르더니 죽기 전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는 태양처럼
회광반조 (回光返照) 를 보여주고선
픽 꺼지고 말았다·
“켁 쿨럭!”
순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고통 스러운 감각에 가슴을 쿡쿡 쑤셔대 는 통에 나는 테리폰 소드를 놓치고 서 바닥을 뒹굴며 목을 부여잡았다·
역시 아직까지는 태령신공에 집중 하며 마력 집중까지 사용하는 건 무 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아주 잠깐이지만 검의 형상이 분 명히 나타났다·
비록 태령신공과 마력 집중을 동시 에 사용한다는 고난이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지만 차차 연습하다 보 면··· 언젠가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는 방향에 지름길은 없다·
하태령이라는 이름의 고마운 선배 님이 남겨주신 길을 따라서 정직하 게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수밖에는·
“하하···
조금 무리를 한 탓인지 정신이 점 점 아득해졌다·
어차피 토요일이니까 잠깐 정도는 자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게 불과 5분 전이었던 것 같은데·
“뭐야·”
깨어나 보니 일요일 저녁이었다·
엘프왕의 거처 백색의 성은 오랜 기간 꽃서린이 태초의 산맥에 숨어 서 지내느라 비워져 있었다·
태초의 산맥 깊은 산기슭에 위치한 고성에서도 세계수와 요정을 잇는 왕의 업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집
무를 수행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일도 상당히 많았다·
즉 백색의 성에서 ‘왕의 대리인’을 수행할 누군가가 필수적으로 필요했 다·
왕의 보좌관 하이엘프 오렌하·
그는 10세라는 어린 나이에 하이 엘 프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무엇이든 빨 리 배우는 천재적인 두뇌로 마법은 물론 정치 외교 연금술 설계 요리 그림 음악 마공학 보안호위··· 등 등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분야를 공부했고 모조리 전문 자격증을 딴 초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올해 120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보를 보여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고 그가 왕의 대리인이 되는 것은 당연 한 수순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모른다·
오렌하가 저토록이나 유능해진 이유 가 오로지 꽃서린의 대리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작은 과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녀를 위해서라면 저깟 스펙 따 위 모조리 불태워 버려도 상관없는 게 오렌하였다·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꽃서린은 오렌하에게 차를 대접하 며 말했다· 그녀는 저주의 영향으로 인해 외부 활동을 철저하게 금지하 고 있다· 공을 세운 스텔라의 학생을 위해 직접 얼굴을 비추는 일조차도 최대한 자제해야만 한다·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녀 와 같은 공기를 맡는 것조차도 위험 했으니까·
하지만 오렌하는 안전하다·
그는 꽃서린이 아는 한 누구보다도 자신의 저주에 대한 면역이 강한 사 내 였다·
이렇게 직접 목소리를 몇 번이나
들려줬는데도 그의 심장은 미동조 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겠 지····’
오렌하가 왕의 대리인이 된 이유는 그가 유능해서도 있었지만 같은 공 기를 마시고 직접 대화를 나눠도 되 는 유일한 사람인 덕분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안정제와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대화하지 못 하는 꽃서린에게 있어서는 이런 작 은 대화의 순간이 삶에 기쁨을 주었 으니까·
그런데·
과연 그녀는 알고 있을까·
오렌하는 이미 한참 전부터 꽃서 린의 저주에 걸려 있었다·
그건 오렌하의 순수한 호기심 때문 에 발생한 아주 자그마한 사고였다·
꽃서린은 평소 의식주는 물론 몸을 청결하게 하는 일마저도 고성 내에 서 조용히 해결하였으나 그날따라 하필이면 고성의 수도관이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달밤이 휘영청 떠오른 날 새벽 그 녀는 남들 몰래 조용히 호수에 찾아 가 목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호숫가에서·
꽃서린은 가장 먼저 가면만을 벗고 서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맞닿는 감촉을 한참이나 즐겼다·
흠칫!
그러다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황급히 자 리에서 일어나 경계하였지만 다행 스럽게도 지나가던 야생동물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꽃서린은 알지 못했다·
그 시선의 정체가 꽃서린이 외출 했다는 소식을 바람에게 전해 듣고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찾 아왔던 어린 오렌하의 것이란 사실 _Q_
[저 너머의 시선]
먼 거리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 특성 덕분에 멀리서도 그는 꽃서 린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그 녀가 무언가를 눈치채는 순간 재빠 르게 자리를 피하여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꽃서린의 얼굴을 몰 래 훔쳐본 격이 된 것이다·
오렌하는 아직도 그날의 일을 생생 히 기억한다·
차디찬 달밤조차도 꽃서린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 없던 걸까· 빙백산 맥을 닮은 그 흰색의 머리칼은 시린 빛을 받아 푸르게도 빛났고 별을 머금은 듯한 눈동자는 이 세상 그 어떤 천체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날 이후 단 한 순간도 꽃서린의 얼굴을 잊은 적이 없다·
간혹 그녀는 오렌하에게 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내 얼굴을 보면 모두 저주에 걸 려서 죽고 말아요·’
처음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으 나 이제는 알겠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탓에 바라보기 만 해도 상사병에 걸려 버리는 게 저주라니·
만약 그게 저주라면 자신 또한 그 저주에 걸린 게 틀림없다·
그녀를 앞에 두고서 거칠게 뛰어대 는 심장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으 니까
하지만 괜찮다·
상사병을 치료하는 법은 간단했으 니까·
상사병은 사랑에 빠졌지만 그 뜻이 이루어질 수 없을 때 생기는 병·
그렇다면 그녀를 가질 수만 있다 면····
상사병은 더 이상 병이 아니라 그 저 깊고 진한 사랑이 될 뿐이지 않 겠는가?
그것도 평생 한 사람만을 바라보 는··· 아름다운 사랑이란 말이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소용없다·’
그러나 벌써 꽃서린의 마음을 돌려 보려 노력했던 세월이 수십 년·
그녀는 결코 자신을 남자로 바라보 지 않았다·
이제는 방법이 별로 남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설령 요정의 숲이 모조리 흑마에 물들어도 상관없다· 세계수가 모조 리 불타버려도 좋다· 동족들이 모두 타락해 버린다고 하여도 괜찮다·
그녀가 나만 바라보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오렌하는 무슨 짓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이번 포상 수여식에 참석해 주시 면 될 것 같아요·”
“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후후 그렇죠· 저와는 달리 오렌하 는 공적인 장소에서도 유능하니까 요·”
“과찬이십니다·”
저 가면의 안쪽은 어떤 얼굴일까· 미소 짓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당장에라도 저 가면을 거 칠게 잡아 뜯고 반짝반짝 빛나는 금 색 눈동자를 확인하고 싶었다·
”··괜찮으신가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일어 나볼게요·”
벌써?
그녀와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은 일 년 중에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 에 오렌하는 그녀를 붙잡았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라도 있으 십니까?”
“아··· 네· 개인적인 일이에요· 신 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꽃서린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잎하넬은 잠들었고 그 소 년은 행방이 묘연해졌기에 동이 트 기 전 백색의 성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생각이 복잡했다·
잎하넬은 언제 깨어나는 것일까·
때에 맞춰서 찾아가고 싶은데·
그리고 그 소년의 정체는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사사로운 일에 세계수의 힘을 이용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꽃서린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자 오렌하는 턱을 쓰다듬었다·
‘개인적인 일이라·’
그녀의 감정 변화와 개인사에 민감 한 오렌하였기에 그것이 뭔지 짐작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신령살해자를 찾고 계시 는 것이겠지·’
그건 오렌하에게도 꽤 홍미로운 일 이었다·
솔직히 잎하넬인지 뭔지 하는 신령 이 죽어버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으 나 만약 그 신령살해자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 금이나마 애정이 담기지 않겠는가?
물론 꽃서린조차 찾지 못한 신령살 해자를 대뜸 찾아내기란 쉽지 않겠지 만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며 오렌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텔라 아카데미라· 인간들의 마법 학교 따위에 다녀오는 건 상당히 귀 찮은 일이었지만 꽃서린을 위해서라 면 뭔들 못하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