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화
쇼다운(10)
쾅!!
병실 문이 박살 나듯 열리면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괴한이 걸어들어왔다·
흑요석 가면 너머로 붉은 안광을 번뜩이면서 병실을 돌아보는 사나운 기척·
“흡···!!”
“죄 죄송합니다!!”
그 흉험한 눈빛에 병실 주변을 정리하던 직원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몸을 피했다·
시선을 한번 던져 주변의 사람을 물린 레녹이 침상에 누운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빅터·”
태평하게 누운 채로 링거를 꽂은 손을 들어 올린 광대가 씩 웃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저는 조금 걸릴 줄 알았는데·”
“····”
“같이 싸웠는데 정작 빅터만 멀쩡한 것 아닙니까? 이거 좀 억울하네요·”
너스레를 떠는 광대를 무시하고 레녹은 침상에 누운 광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잿빛 머리칼 넝마를 이리저리 이어붙인 듯한 행색·
살아 있는 인간의 파편을 주워서 대충 꿰맨 듯한 기괴한 외견·
하지만 레녹은 광대가 살아 있는 것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매사를 타고난 행운에 의존하는 이 광인이 실은 모든 승부마다 속임수를 부리고 확률을 조작하는 도박꾼이라는 것을·
이번 전투 역시 광대가 레녹을 비롯한 전장의 모든 사람을 속이고 농락한 결과물이라는 사실마저도·
솔직히 말해 레녹이 보기에는 어느 쪽이든 완전히 맛이 가 있음은 틀림없었지만-
그럼에도 일단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여기까지 계산하고 일을 저지른 건가?”
“계산이요?”
광대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뒤늦게 레녹의 말을 이해하고 피식거렸다·
“아 자폭 이야기였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뺨을 긁적인 광대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언젠가 한번 해야 하는 일이긴 했으니까요· 운이 좋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습니다·”
“그 다트· 애초에 좋은 결괏값을 저장해 두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군·”
레녹이 싸늘한 시선으로 광대를 내려다보았다·
스타디움을 무대로 교단의 두 최고위 사도와 충돌했던 마지막 순간·
마지막에 다트를 꽂아서 [꽝]이 나온 이유를 레녹 역시 그 전장에서 즉시 깨닫고 있었기 때문·
“룰렛을 돌려서 나온 최악의 결과를 뒤로 미뤄두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던 건가·”
“사도 앞에서 제 능력을 떠벌리고 나면 일이 재밌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했었죠·”
광대가 낄낄대며 머리를 흔들었다·
“카바힘에서 탈출할 때 영역을 사용했다 [꽝]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벌칙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다트도 그때 처음으로 만들었답니다·”
“····”
영역의 페널티를 미뤄두기 위해 다트라는 행운조작 기구를 즉석에서 만들어내 보관하고 있던 것인가·
광대가 환술이나 기아스를 다루는 데 굉장히 능숙한 술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근원심상을 기반으로 삼는 영역의 능력마저 그렇게 ‘조정’할 수 있을 줄이야·
“굳이 오래 갖고 있을 이유도 없을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심리전을 섞어서 터트려봤는데· 빅터의 말을 들어보니 좀 괜찮았던 모양이군요·”
“그럼 괜찮다마다·”
레녹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널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는 차고도 넘쳤지·”
“푸하하핫!! 못 본 사이에 농담이 많이 늘었-”
피이잉!!
박장대소하던 광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마력사·
마력사가 침상과 병실 벽을 동시에 관통한 걸 확인한 광대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레녹이 팔짱을 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사용한 자폭· 위계를 끊어내는 반동을 수반한 반물질 현상에 가까웠다·”
룰렛의 꽝을 사용한 광대의 속임수에 교단의 최고위 사도들이 당황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광대 자신의 위계를 대가로 삼아 터트린 폭발이 입자 쌍소멸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위력이었기 때문·
“왜 자성영역의 페널티를 받고도 살아 있는 거지?”
“아 그 부분은 사실 영업비밀입니다만·”
광대가 슬쩍 입을 가리고 말했다·
“룰렛에서 꽝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환술을 사용할 수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준비를 해뒀습니다·”
“무슨 준비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환술을 통해 죽음을 속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흠 글쎄요··· 그것보다는 죽어서도 죽지 않기 위한 준비라고 할까요·”
순간 광대가 답지 않게 말끝을 살짝 흐렸다·
“자아인지의 편향성을 조작해 중첩시킨다고 해야 하나··· 환술의 진위(眞僞) 개념과 관련된 일이라 말로는 설명하기 좀 어렵네요·”
“····”
“뭐 간략하게 설명하면 현실관측의 개념에서 일종의 오류를 일으킨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보시는 거죠?”
“···아니·”
침묵하던 레녹이 말했다·
“네 입에서 그렇게 고도로 전문화된 설명이 나올 줄은 몰랐군·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측면에서 환술을 다루고 있었나?”
“아니 평소에 저를 대체 어떻게 보고 계셨던 겁니까?”
광대가 억울한 기색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보여도 일할 때는 항상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자면-”
“예를 들자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광대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폭할 때 어떤 자세로 죽어야 가장 멋있을지에 대해서라거나·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
순식간에 차가워진 공기·
광대의 헛소리를 무시한 레녹은 며칠 전의 전투를 차분하게 복기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악운이 겹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광대의 수작에 최고위 사도들이 현혹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광대를 믿지 않고 움직였던 레녹이야 무사했지만 그를 상대하던 사도들은 광대의 자성영역을 쉬이 무시할 수는 없었겠지·
교단의 두 최고위 사도를 상대로 밀리지 않고 컨디션과 운이 좋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도 변수를 만들어낸 성과·
그 모든 판단을 즉흥적으로 처리하면서도 완벽하게 수행해낸 광대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확실히 위험하기는 하단 말이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치광이·
단 한순간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뒤틀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만큼 강하고 또 신뢰할 수 있는 강자다·
“흠흠 뭐 결과가 좋았다면 다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생각에 잠긴 레녹을 두고 광대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 도시에 누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일이 잘못되어도 대충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습니다·”
“네 몸을 수술해 준 의사를 말하는 건가?”
“아 빅터도 일찍 도착했으니 보셨겠군요·”
광대가 히죽 웃었다·
“그럼 그냥 여기서 소개를 드리는게 낫겠습니다·”
벌컥!!
병실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성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
“수술은 다 끝났다· 이곳의 시설이 워낙에 조악해 따로 정리하고 수습할 것도 없더군·”
방금 막 손을 씻은 것처럼 양손을 들고 쓰고 있던 얇은 수술장갑을 벗는다·
장갑을 벗어 침상 위에 팽개치듯 내려놓은 남자가 불쾌한 듯 손을 만지며 말했다·
“내 수술실에 비하면 불결함의 온상과도 같은 곳이다· 네 온몸은 지금쯤 세균덩어리가 되어 있을 테니 당분간 내게 접근하지 말도록·”
“빅터 이쪽은 아베스타 채프먼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말을 시원스레 무시한 광대가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는 접합술주라 불렸던 위인인데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이쪽 몸에 뇌를 이식한 상태지요·”
“····”
“깨어난 지는 아직 사흘도 되지 않아서 정신이 오락가락할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판데모니엄의 조작술사로군· 주문연맹에 있던 당시 네 특질계 술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술주 역시 빅터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는지 흥미로운 기색으로 눈을 빛냈다·
본인이 특질계 술사인 만큼 같은 특질계인 빅터에게 흥미를 보이는 건가·
“그런데 아까부터 너를 볼 때마다 내 뇌와 중추신경계가 동시에 쑤시는 것 같은데·”
“····”
“아까도 물었지만 너는 나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건가?”
서슴없이 자신의 상태를 고하며 레녹에게 질문하는 술주의 언행·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눈앞에 서 있는 접합술주를 바라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스마스터의 몸을 차지하고 깨어난 접합술주의 ‘우뇌’를·
‘신기한 기분이군····’
첫 번째 관문에서 접합술주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물질과 생명을 넘어 영역과 개념마저 ‘접합’하여 레녹을 몰아붙인 소름 끼치는 무위·
위계를 초월한 특질계 술사가 어떠한 존재인지 그때 처음으로 실감하지 않았던가·
레녹의 대상지정 저항능력이 아니었다면 싸움의 결과는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르지·
레녹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마주한 접합술주의 존재가 생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주한 술주의 ‘우뇌’가 레녹이 죽인 ‘좌뇌’와는 또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까부터 대답이 없군·”
침묵하는 레녹을 보며 채프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조작술사는 언어를 구사할 정도의 지능이 없는 건가?”
“···채프먼· 미쳤습니까?”
황당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광대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접합술주의 모습·
“그럼 대답을 해라· 설마 벙어리와 같이 문을 공략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겠지·”
“생각보다 감정적이군·”
그 순간 레녹이 변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면 너머로 술주의 얼굴을 바라본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전해 들은 연맹의 대술주는 조금 더··· 차분한 성격이었는데·”
“···너·”
채프먼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술주 역시 특유의 영민한 지성으로 레녹이 말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읽어냈던 것·
“나에 대해 알고 있군· 아니 첫 번째 관문에서 있었던 ‘나’의 패배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
“그렇군· 내가 천번이라는 마법사에게 패배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그 소문이 중앙전선 전역에 퍼졌을 테니·”
술주가 뒷짐을 진 채 레녹을 휙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건 결과적으로 나 스스로 각오했던 결말이다· 한정된 자원을 쪼개어 실험에 임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안배였지·”
“····”
“미칼 젤리히의 불사이능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은 유감이나 서로 다른 뇌반구를 접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리란 건 알고 있었다·”
병실 창가에 기대선 채프먼이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아확증편향에 기반한 생동성 시험은 끝났어· 그럼에도 내가 나로서 아직 남아 있다면 이것 역시 유의미한 수확이라 할 수 있겠군·”
“아까부터 혼자 무슨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자신의 뇌를 둘로 쪼개어 나눈 기행을 옳다고 말하는 것도 천번에게 패배한 결과를 수긍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을 혼자 떠들며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것도 레녹이 기억하던 접합술주와 판에 박힌 듯 똑같다·
조금 다른 점이라 한다면 레녹이 기억하던 술주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으로 보인다는 것 정도·
“그딴 대답으로는 연맹의 접합술주가 여기 숨어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텐데·”
하지만 레녹은 그런 감상을 일절 내색하지 않고 광대를 내려다보았다·
“접합술주가 뭘 하고 있는지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아· 지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빅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접합술주는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외과의 중 한 명입니다·”
광대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접합술식은 특질계에서도 굉장히 강력한 술식이긴 하지만 실은 전투 이외의 분야에서 훨씬 활용도가 높거든요· 본인의 감응력과 손재주를 활용한 그 솜씨는 대륙 전역에 정평이 나 있지요·”
“술식의 유용성 따위는-”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그 재능을 이용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레녹이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어딘가 묘하게 느껴지는 광대의 설명이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
“···설마 그 말은?”
“그는 이번 작전에서 ‘의사’ 역할을 맡아줄 겁니다·”
광대가 히죽 웃으면서 술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금 덧붙이자면 의사 겸 탐색기 겸 지도 역할로 이쪽을 보조하게 될 예정입니다만 그 감응력이 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판데모니엄 따위를 그렇게까지 도와줄 생각은 없다· 내가 협조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술식성능을 점검하고 육체의 조정을 마치기 위함이니·”
술주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수술복에 손을 꽂아 넣으며 대꾸했다·
“이 쓰레기같은 몸에서는 본래 술식성능의 절반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최소한 50% 정도의 출력향상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군·”
“어라 그래도 제 수술은 비교적 수월하게 끝내지 않았습니까?”
“찢어진 몸을 접합하는 정도야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시술이다·”
채프먼이 냉엄한 시선을 보냈다·
“이 불쾌한 육체와 내 우수한 두뇌의 파장이 맞지 않아 몇 달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걸 잊지는 않았겠지·”
“그 육체의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 저번에 한번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광대가 침대에 누운 채로 낄낄 웃었다·
“대륙 전역에 마약을 공급하던 사업가라니까요· 온몸이 마약에 절여져 있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군· 바로 그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거다·”
채프먼이 불쾌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나는 내 우수한 두뇌를 이딴 몸에 이식해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누가 이 폐기물 같은 몸에서 나를 깨우라고 했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박사가 설명했을 것 같습니다만·”
광대가 히죽 웃었다·
“애초에 평범한 소체는 당신과 어울릴 수 없어요· 특질계 술사라 해도 뇌 반쪽만으로 타인의 육체와 완벽하게 동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그 육체의 주인이 구세계의 연금술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뇌의 반쪽을 연금술로 채워 당신을 보조할 수 있던 겁니다·”
뚱한 술주의 얼굴을 보면서 광대가 느긋하게 말했다·
“여차하면 반신불수가 된 몸에서 깨어나는 게 당연했을 텐데 운이 좋은 줄 알아야지요·”
“아니 그딴 말로는 지금 내가 느끼는 불쾌감을 단 한마디로도 표현할 수 없어·”
채프먼이 불편한 듯 목을 이리저리 꺾으면서 관절을 한계까지 잡아 늘렸다·
마치 처음으로 몸을 움직여 보는 듯한 어색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몸짓·
“체내 감각기관 중 절반 이상이 작동하지 않아· 교감신경계 활성화 정도도 형편없지· 후각은 마비되어 있다· 강렬한 자극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역치가 망가진 환자의 감각기관이 보통 이러하지·”
뚜둑 뚜둑!!
온몸에서 부러지거나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음에도 술주의 얼굴은 태연했다·
마치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망가뜨리면서 직접 진료하고 있는 듯한 기묘한 반응·
“이 몸을 쓸 만하게 만들려면 신경계를 통째로 세척하는 대수술과 반년 이상의 섬세한 관리가 필요할 거다· 그게 얼마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지 생각해본 적은 있나?”
“아뇨? 딱히 궁금하지는 않습니다만·”
“····”
무표정한 얼굴로 광대를 내려다보는 술주를 두고 레녹이 짜증스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종잡을 수 없는 기인들이 가득한 판데모니엄에 그에 못지않은 미치광이가 들어왔음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
접합술주의 우뇌를 어디선가 마주칠 거라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같이 일하게 될 줄이야·
“아그네타를 불러오지· 일단 지금 상황을 바깥의 놈들에게 알려야겠다·”
광대를 향해 다가온 레녹이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내일이라도 토커퍼즈를 떠나는 배편을 잡을 수 있다고 하더군· 그때까지는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거다·”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광대가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신디케이트 측을 통해 도시 근처에서 운행하는 카지노 크루즈 하나를 하나 빼돌려 두었거든요·”
“뭐?”
“토커퍼즈에서 카바힘 왕도 인근까지 직행으로 운행하는 노선이 딱 하나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멤버를 소집한 이유가 그거였기도 하고요·”
광대가 느긋하게 말했다·
“대신 테러에 개입한 교단 사도들과 새로운 신녀에 대한 정보를 넘겼으니 적당한 거래였죠·”
전투가 일어난 현장을 수습한 것이 신디케이트 측이었던 만큼 그들로서는 교단에 대한 정보가 꽤나 간절하게 필요했겠지·
광대가 그걸 노리고 시의적절하게 교단의 정보를 팔아먹었다면 이해할 수는 있었다·
“날이 밝는 대로 카바힘으로 출발하도록 하죠· 저도 그사이 조정을 끝내놓겠습니다만-”
광대가 씩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역시 아무래도 저것까지는 그냥 보고 지나치기 어렵겠죠?”
“····”
병실 침상 위의 작은 소형 TV 화면 너머에서 송출되는 경매장의 모습·
광대한 홀 위에 가면을 쓰고 모인 고객들과 한참 경매를 진행 중인 사회자·
그리고 경매장 단상 위에서 천을 걷고 모습을 드러낸 창백한 포신의 형상까지·
“교단의 금기병장인가· 흥미롭군·”
술주가 화면 너머의 창백한 광채를 알아보고 눈을 빛냈다·
“사도를 죽여봐도 갖고 있는 경우가 없던데· 저런 물건이 경매장에 어떻게 올라온 거지?”
“····”
금기병장 ‘비애’·
레녹이 광대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 금단의 무구가 이미 경매에 올라온 것인가·
레이몬드가 약속을 어긴 것인지 아니면 주최 측에서 일정을 앞당긴 것인지·
레녹이 싸늘한 시선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사이 광대가 턱을 괴며 말했다·
“재밌네요· 아무래도 누군가 우리 몰래 밥상을 차려놓은 모양입니다만····”
화면 너머로 그것을 바라보던 광대가 웃으며 물었다·
“저는 준비됐습니다만 빅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
금기병장을 두고 시작된 경매를 바라보던 레녹이 걸음을 돌려세웠다·
촤악!!
검은 마력사를 뽑아 쥔 레녹이 그것을 망설임 없이 병실 천장에 걸며 차갑게 말했다·
“한나절 안으로 금기병장을 ‘회수’하고 카바힘으로 출발한다·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