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화
쇼다운(6)
5사도 엘드리히가 현현한 핏줄이 뒤얽힌 거검이 스타디움 상공에서 추락한다·
가히 고층 빌딩에 버금가는 질량덩어리가 아무런 제약없이 지상에 낙하·
박살나 잔해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비공정의 잔해 위로 떨어지고·
[충천(衝天)]
콰아아아아아앙!!!!
충격과 함께 스타디움이 순간적으로 기울어지듯이 움푹 가라앉았다·
치이익···!!
거검이 떨어진 자리· 검면과 맞닿은 지면이 속절없이 부식되고 녹아내리며 벌어지고·
캄로달이 소환한 촉수가 균열 사이를 파고들면서 스타디움 전역을 헤집었다·
쿠과과과과과!!!!
광대한 경기장 전체를 자신의 촉수로 꿰어 뒤덮고 변질시키는 듯한 기현상·
수십 갈래에 달하는 거대한 문어다리가 흐물거리면서 지상에 체액을 흩뿌린다·
그때마다 머리가 으깨진 채로 죽어 있던 사제들이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 어어어····”
“그에에그-”
사제들을 되살리거나 언데드로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사제들의 시체에 자신의 촉수를 꽂아 넣고 새로운 생명을 꽃피운다·
수백에 달하는 사제들을 인형으로 부리며 좀비처럼 일으켜세우는 캄로달의 성역 위천초령·
성역으로 선포한 영역 내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사도술식의 대상으로 삼는 막강한 증강기·
하지만 거의 동시에 성역과 소우주를 사용한 두 사도의 표정은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저건····”
[키키키킥···!!]
후드를 뒤집어쓴 매부리코 거인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레녹이 소환해 낸 특질계 인공소환수 허수차원의 재단사·
엘드리히의 거검이 추락하는 순간 재단사가 마력사로 검면을 붙잡고 감속을 시도·
경기장 전체를 날려버렸어야 할 충격을 반절 가까이 경감시켜 범위를 억제했던 것·
촤라라라락!!!
후드 아래로 펼쳐진 여덟개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방대한 마력사의 파도가 몰아친다·
마흔 개의 손가락이 정교하게 허공을 두들기며 수만 갈래 마력사를 하늘 위로 띄워올리고·
사제들이 소환했던 10사도의 공간균열을 꿰매어 닫아버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접···!!
“신녀님께서 복마전의 술사들을 그토록 경계하신 이유를 이제 알 것 같군·”
소환되자마자 엘드리히의 거검을 붙들고 늘어지며 동시에 사제들이 소환한 공간균열을 꿰매 버리는 괴물·
레녹의 뒤에 나타난 재단사의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엘드리히가 말했다·
“저런 종류의 소환수는 처음 보네· 단 한 번에 이 전장을 지워버릴 생각이었건만····”
[조작술식을 보조하고 매개체를 보충하는 일에 특화된 불신자의 소환수다·]
쿵!!
엘드리히의 옆으로 걸어나온 캄로달이 말했다·
[이동능력은 없으나 허수차원을 오가는 능력을 지녔으니 소환수는 무시하고 술자를 노리거라·]
“일전에 저 조작술사를 상대해 본 적이 있던 모양이로군·”
[놈은 아공간을 탄환으로 삼아 공간을 ‘도려내는’ 술식을 보유하고 있다·]
캄로달의 눈빛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요르타의 늪지대에서 어떤 식으로 빅터에게 패배했는지 그 역시 아직 기억하고 있었던 것·
[저 불신자에게 그 술식을 맞고 한번 패퇴한 적이 있었지·]
“····”
[소환수를 꺼냈을 때만 사용가능한 술식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니 우선적으로 노려야 할 것은-]
두 사도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레녹을 넘어 그 옆으로 향했다·
“저 광인의 영역인가·”
[광대 아트렌 키자드 쪽이다·]
차르르르르륵!!!
광대의 머리 위에 떠오른 채 격렬하게 회전하는 거대한 룰렛·
혀를 쭉 빼문 삐에로가 기괴한 웃음과 함께 룰렛을 혓바닥으로 이리저리 핥아댔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룰렛의 형상에 두 사도의 기척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자성영역의 전개과정에 전조가 없다···· 어째서지?’
‘미리 영역을 완성하고 지금 꺼내든건가? 아니 그랬다면 수인을 맺었을 리가 없어·’
자성영역이란 술자의 근원심상을 현실에 투영하는 기예·
그렇기에 영역을 전개하기 전에는 근원심상을 담는 의념의 파문을 먼저 현실에 펼쳐야 한다·
하지만 방금 광대는 자성영역을 전개하며 일체 어떠한 전조조차도 내보이지 않았다·
다만 양손을 합장하고 수인을 맺은 직후 저 기괴한 룰렛을 소환했을 뿐·
사소하다면 사소한 차이· 하지만 고위계 초인들간의 전투에서는 생사를 가를지도 모르는 차이다·
전투경험으로 인해 광대의 영역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무시하지 못한 두 사도가 멈칫한 찰나·
“어라 계속 거기서 구경만 하고 계실 겁니까?”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룰렛을 가리킨 광대가 씩 웃었다·
“뭐 좋습니다· 모르면 일단 맞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무작위로 룰렛을 돌려 영역의 위계와 능력을 정하는 능력인가·]
캄로달이 비웃었다·
[그야말로 불완전한 행운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광인의 발상이로다· 우리 사도조차 그러한 삿된 변수에 의존하려 하지 않거늘·]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만큼 재미있는 능력을 또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광대가 어깨를 으쓱였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하시지요·”
[천운을 대가로 완성되는 그 능력이야말로 분명 우리 모두를 지옥에 떨어뜨릴 환술의 극치겠지·]
캄로달이 말했다·
[하나 네놈이 자신의 행운을 입맛대로 조작하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쿠우웅!!
바위거인이 수인을 맺는 것과 동시에 성역의 촉수들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꿈틀대는 초대형 촉수들이 허공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서로 매듭을 짓고
이윽고 캄로달의 등 뒤에서 압축되며 거대한 촉수 덩어리로 변했다·
무언가를 품은 알처럼 변한 촉수덩어리를 만든 캄로달이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시간을 들여서라도 어떠한 환상조차 부술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할 뿐·]
캄로달은 광대가 영역을 전개한 것을 보고도 그를 막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본인도 시간이 필요한 큰 기술을 대놓고 준비하기 시작했을 뿐·
캄로달이 광대를 막아야 하는 것만큼이나 광대에게도 캄로달을 막아야 할 이유를 부여한다·
한쪽으로 승리조건을 한정시키지 않고 이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도 어떻게든 균형을 맟춰 나간다·
철컥!!
스타디움에 추락한 거검이 사방에 흥건한 핏물을 꾸역꾸역 들이마신다·
거검의 칼날이 붉은빛으로 물들면서 아주 조금씩 그 크기를 줄여나갔다·
주변의 핏물과 죽음을 들이마시고 스스로 크기를 줄여나가는 엘드리히의 소우주·
캄로달이 말했던 것처럼 엘드리히 역시 그 말을 듣자마자 시간이 필요한 큰 기술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
교단의 두 사도와 광대가 거의 동시에 배짱을 부리면서 큰 기술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전장·
“흐흐흐 당신 진짜 사도답지 않군요·”
광대가 캄로달을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문어괴물 주제에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다 불신자·]
캄로달이 대꾸했다·
[그 어떤 전장에서든 마지막에 웃는 것은 만신의 교리를 따르는 쪽이 될 테니·]
콰아앙!!
거대한 촉수 덩어리가 일렁이며 광대의 머리 위로 후려치듯 떨어져 내린다·
공연장 내벽을 수직으로 뛰어 가속한 엘드리히가 지척까지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촉수와 날카롭게 회전하는 검광을 보며 광대가 히죽 웃은 그 순간·
조작계열 고유마법
근신경계 강제조작
[완구작서(玩具作庶)]
으직!!
재단사의 손끝에 매달린 마력사가 사방에서 캄로달의 촉수들을 움켜쥐었다·
마력사가 촉수를 쥐어짜듯 조이면서 체액을 흩뿌리고 그 방향을 바꿔 세운 순간·
캄로달의 대형 촉수가 엘드리히의 거검을 후려갈겨 그 방향을 바꾸었다·
콰아아앙!!!
스타디움에 사선으로 꽂힌 거검이 그 충격으로 뒤틀리며 뽑혀져 나온다·
그 반동으로 지축이 흔들리고 시계가 요동친 찰나 광대의 발을 묶은 마력사가 그 몸을 쭉 잡아당겼다·
발라당 넘어진 광대의 얼굴이 흙바닥 위로 처박혀 미끄러지며 갈려 나갔다·
“우웁!! 아푸푸!!”
양팔을 휘저으면서 입에 가득 찬 흙더미를 뱉어내는 광대의 모습·
재단사를 조작해 광대를 발아래로 끌어당긴 레녹이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기어이 그 짜증 나는 영역을 또 꺼내 들었군·”
광대의 자성영역은 룰렛을 돌려 그 결괏값을 영역의 능력으로 삼는 힘·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쓰인 각자 다른 크기의 칸과 해골마크가 그려진 수십 개의 꽝·
1레벨부터 9레벨까지 존재하는 각자 다른 영역의 능력을 운에 기대 결정하는 괴악한 능력이다·
심지어 그렇게 결정된 능력조차 평범하게 강하기보단 광대답게 독특하고 사용처가 한정되어 있는 바·
교단의 두 최고위 사도와 싸우는 도중에 사용한다고 하여 승산을 장담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이거 섭섭하게 왜 그러십니까·”
땅바닥에 갈려 나간 얼굴을 환술로 멀쩡하게 바꾸고 일어선 광대가 낄낄 웃었다·
“우리 저번에는 이걸로 재미 좀 봤잖아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지요·”
“마냥 운에 기댈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영역의 능력을 무작위로 결정하기 때문인지 광대의 영역이 지닌 능력은 술식의 범주를 아득하게 뛰어넘어 있다·
질리언의 성채를 탈출할 때 사용했던 [해적 룰렛] 역시 무작위 공간 사출이라는 기형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바·
판데모니엄의 그 어떤 초인보다도 변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말 그대로 조커와도 같은 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가 좋을 때의 일이었다·
멀리서 마력을 끌어올리는 바위거인과 중절모를 고쳐 쓰는 늙은 기사·
스타디움 사방을 포위하고 태세를 갖추는 수백에 달하는 사제들의 모습·
“후후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번에는 속임수 따위 쓰지 않고 정직하게 가겠습니다·”
광대가 그렇게 말하며 제 목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느닷없이 입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기괴한 모습·
“우웁- 쿨럭 쿨럭!!”
“····”
“후후후 짜잔~”
광대가 손을 펴고 침범벅이 된 무언가를 레녹에게 자랑스레 내밀었다·
경멸하는 눈초리로 그것을 내려다보던 레녹이 중얼거렸다·
“다트?”
“사실 저번에 빅터와 함께 일한 뒤로 영역을 몇 차례 손봤거든요·”
광대가 그렇게 말하며 침이 묻은 다트를 손가락으로 휙휙 돌렸다·
“귀찮은 조건을 몇 가지 추가하긴 했지만 일단 룰렛에 개입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봤습니다·”
“그렇군·”
순식간에 다트의 용도를 이해한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룰렛의 결괏값을 강제로 바꿔버릴 수 있는 도구인 건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돌린 룰렛의 결괏값을 구현하지 않고 저장해두는 도구입니다·”
광대가 히죽 웃었다·
“이른바 행운의 재분배라는 거죠·”
“····”
“이걸 사용하면 제가 예전에 돌려두었던 룰렛의 결괏값이 바로 튀어나올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캄로달의 말대로 광대는 행운을 조작하기 위한 수단을 갖고 있었다·
확실히 룰렛의 결괏값을 조작할 수 있다면야 승산이 높아지기야 하겠지만-
레녹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끌린다고 이쪽이 유리해지는 건 아니야· 저쪽도 큰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쿠구구구!!!
8사도 캄로달의 머리 위에서 꿈틀거리는 기괴한 촉수 덩어리·
5사도 엘드리히의 뒤 핏물을 들이마시며 조금씩 크기가 줄어드는 거검·
둘 모두 그냥 지나치기에는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다·
광대가 준비했다는 예의 ‘방법’이 두 사도의 기술을 동시에 받아낼 수 있을까·
세 괴물이 동시에 시간을 두고 큰 기술을 준비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혼전 속·
무어라 대답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레녹이 광대의 등허리를 걷어차는 것과 동시에 바위거인이 그 자리에 추락하며 충격파를 내뿜었다·
콰아앙!!!
캄로달의 접근을 인지하자마자 점멸로 거리를 벌리는 레녹의 신형·
그런 레녹에게 따라붙은 엘드리히가 날카로운 검격을 내리꽂는다·
드드드득!!!
추락한 거검이 스타디움 지면에 처박히며 진동한다·
캄로달의 대형 촉수가 거검의 손잡이를 잡고 휘두른 찰나 검면이 옆으로 회전하며 가속하고·
두 사람의 발아래서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검(巨劍)이 떠오르며 사선으로 회전했다·
쿠구구구구구!!!!
“끄에에에에!!!!”
캄로달이 되살려낸 교단 사제들의 시체가 좀비처럼 우글거리며 거검을 타고 달려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핏물을 흠뻑 들이마시며 조금씩 크기를 줄여나가는 엘드리히의 거검·
하나 그럼에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대검의 검면 위에서 레녹과 노인이 격돌한다·
어지럽게 교차하는 마력사 다발이 레녹과 5사도의 몸을 이리저리 당기고 베어낸다·
땅에 발을 내딛지도 않고 허공에서 육탄전을 이어나가는 레녹과 사도의 신형·
카가가가각!!!
무수한 빛의 선처럼 휘어져 쏟아지는 검격 속에서 몸을 튕기듯이 회전시킨다·
마력사로 인형을 조작하듯 육체를 움직이며 실이 묶이는 교차점으로 노인의 검극을 받아낸다·
칼날의 예기에 마력사가 잘려나가지만 잘려나간 마력사가 그대로 뒤엉키면서 더 강한 장력을 구축하고·
사방에서 뒤엉킨 마력사의 매듭이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으며 5사도의 검광을 멈춰 세운 순간·
레녹의 멱살을 움켜쥔 노인이 그대로 그 신형을 뒤틀린 거검에 내리꽂았다·
콰앙!!
“···!!”
“역시 육체능력자는 아니야·”
흑요석 가면을 내려다보는 엘드리히의 눈동자는 숨길 수 없는 경탄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나 술식의 운용만으로 교전능력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린 건가· 정말 대단하군·”
육체강화나 소우주에 의존하지 않고 술식운용만으로 이렇게 싸우기 위해서 대체 어느 정도의 응용력이 필요한 것인지·
가속과 감속 이동과 회피· 힘의 조절과 반동제어를 비롯한 그 모든 공방을 술식으로 계산하고 조정해야 한다·
단순히 몸을 움직여 감각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
고위계 육체능력자· 그것도 검을 다루는 기사였기에 더 잘 알 수 있다·
“술사도 아니면서 타인의 술식에 참 관심이 많군·”
레녹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늑장을 부릴 거라면 이쪽에서 먼저 시작하지·”
촤아아악!!
광대의 목에 건 마력사를 힘껏 잡아당기면서 끌어내린다·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던져진 광대가 스타디움 잔해 속을 뒹굴면서 추락했다·
퍼엉!!
머리부터 땅에 거꾸로 처박힌 광대의 신형이 쪼개져 여러 명의 미니 광대로 변하고·
사방에서 쪼르르 달려 나온 미니 광대들이 곧바로 합체하며 제 모습을 되찾았다·
“푸하하핫!! 먼저 갑니다!”
[놓치지 않겠다···!!]
콰아아아앙!!!
2층 관객석 한쪽이 폭발하듯 무너지면서 그 잔해를 사방으로 흩뿌린다·
쏟아지는 날카로운 바윗덩이 속에서 광대의 몸이 난자당하며 육편이 된다·
“으겍·”
흙바닥을 데굴데굴 뒹굴던 광대의 등허리에 바위 파편이 꽂히며 몸이 절단됐다·
네발로 개처럼 뛰던 광대의 두 다리가 으스러지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엉금엉금 기어가던 광대의 발아래 지면이 갈라지며 균열 사이로 추락했다·
발작하듯 휘두르는 촉수의 군집체 속에서 쉴 새 없이 죽어나가는 광대의 모습·
“하핫 하하핫!!”
하지만 마트료시카처럼 죽은 광대 안에서 광대가 튀어나와 광소하며 질주한다·
광대의 몸이 수십 마리 나비가 되어 흩어졌다 수백 개의 깃털이 되어 나풀댔다·
[정말 미쳤구나 불신자···!!]
사도의 눈조차 현혹하는 온갖 기현상의 폭풍 속에서 캄로달이 경악했다·
[특질계 환술을 그딴 식으로 난사하면 네놈 역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텐데!!]
[낄낄낄···!!!]
촉수를 조작해 광대를 뒤쫓는 캄로달의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음습한 조소·
재단사의 여덟 팔이 허공을 어루만진 순간 그 손끝에서 공간이 깨져 나간다·
갈라진 공간 균열 사이로 마흔 개의 손가락을 한 방향으로 일점집중·
그 끝에 정확하게 캄로달의 머리를 겨냥한 재단사가 히죽 웃었다·
[초찰나 : 아공탄(亞空彈)]
빠직!!
아공간을 임의의 가상 질량체로 삼아 쏘아내는 발사주문·
피격 직후 폭발해 공간 전체를 도려내는 아공간 조작 술식의 정수·
특질계 인공소환수 허수차원의 재단사를 꺼내든 이 순간에만 사용가능한-
쐐애액!!
[어림없다!!!]
하지만 캄로달은 자신의 머리를 두 번째로 겨누는 아공탄을 보고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자신의 성역에 소환한 촉수를 조작해 아공탄을 정면으로 겨누고 사도술식을 발동·
수십 개의 촉수 말단이 세포 단위로 분열하면서 아공탄을 막아섰다·
으지지지직!!!
촉수들이 산채로 으깨지며 죽어나가고 뭉개지며 바스러진다·
그렇게 죽어나간 촉수들을 공양의 제물로 삼아 사도술식을 다시 강화·
촉수의 악력만으로 공간을 뒤틀 정도로 술식출력이 강해진 그 순간·
아공탄의 궤적이 사선으로 빗나가며 그대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아!!!
하늘을 사선으로 쪼개고 번뜩이며 소실된 아공탄의 광채·
“하핫!! 훌륭합니다 빅터!!”
미꾸라지처럼 캄로달의 술식 범위 밖으로 빠져나간 광대가 룰렛 위에 올라탔다·
찰칵 망설임 없이 다트를 룰렛에 꽂아 넣은 광대가 정신을 집중하고 수인을 맺은 순간·
“여기서부터는 제가 알아서-”
피처럼 붉게 물든 칼날이 뒤에서부터 광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뻐어어어엉!!!
동시에 그 몸이 격렬하게 들썩일 만큼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와 지상을 휩쓸었다·
광대가 반응하지 못할 만큼 초월적인 속도· 환술을 뚫고 심장을 타격하는 강렬한 위력·
“···쿨럭·”
가슴팍을 관통한 붉은 칼날을 바라본 광대가 웃었다·
“평범한··· 무기가 아니군요?”
“본인의 소우주 천중대검은 구현 직후 크기를 줄여나가며 평범한 검의 형태로 돌아오지·”
붉은 검을 움켜쥔 노인이 광대의 뒤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질량과 위력은 그대로 남아 본인의 검예를 비약적으로 증폭시키는 무구로 화하네·”
“쿨럭·”
“유감이군· 이번 싸움에서는 본인이 더 빨랐던 모양이야·”
광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5사도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자네의 신기한 재주를 구경할 시간은 없을 듯하군·”
“쿨럭!! 그렇습니까···?”
토혈한 광대가 입술 아래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 히죽 웃었다·
“그렇다면 유감이군요· 제가 사용하려던 건 처음부터 환술이 아니었던지라·”
“뭐라고?”
그 순간 쉴 새 없이 회전하던 광대의 룰렛이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룰렛에 꽂아 넣은 다트를 중심으로 눈금이 턱턱 걸리면서 멈춰서고·
끼리리릭-
[5]
[8]
[9]
[1]
무작위로 뒤섞인 숫자 칸을 느릿하게 지나며 마침내 완전히 멈춰선 그 순간·
끼릭·
[꽝]
“····”
“····”
침묵이 흘렀다·
[네놈·]
캄로달이 광대를 노려보았다·
[이 위대한 성전에서 우리 모두를 농락하는 것이 목적이었더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광대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만 성공이 있으면 실패도 있고··· 당첨이 있으면 꽝도 있는 법이지요·”
[불신자···!!]
“그리고 꽝에 걸렸으면 벌칙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크히히히히히힛!!!!]
그 순간 룰렛의 위에 그려져 있던 삐에로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두 눈을 번쩍 떴다·
섬뜩한 사백안으로 광대를 바라본 삐에로가 미친듯이 웃으면서 이리저리 고개를 뒤틀었다·
[걸렸구나~ 걸렸구나~]
쿠우우우우웅···!!!
삐에로의 얼굴이 직후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폭발할 것처럼 달아오른다·
[···설마·]
캄로달이 광대가 무엇을 노리고 있었는지 깨닫고 환술사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우리를 영역의 최심부에 묶어두고 자폭할 작정이었는가!!]
다트의 용도는 이전에 돌린 룰렛의 값을 저장해 두었다 불러오는 용도·
하지만 그 말은 반드시 ‘좋은 결괏값’을 저장해둘 수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광대는 예전에 걸렸던 ‘최악의 결괏값’을 사용하지 않고 저장해 둔 뒤 이 자리에서 대신 꺼내 들었던 것·
지금 이 전장에서 전력을 발휘하는 교단의 두 사도를 잡아둘 수 있는 이 순간을 위해·
“이만큼 실컷 환술을 사용했으니 이제 슬슬 현실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뚜둑 뚜둑!!!
동시에 광대의 몸 안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시한폭탄이 순식간에 타이머를 깎아 먹는 듯한 소름 끼치는 모습·
“술자가 쌓아 올린 위계의 결속을 모조리 끊어내며 발동하는 반물질 입자소멸·”
5사도의 검에 꿰여 있던 광대가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카바힘에서 탈출했을 때부터 미뤄두고 있던 ‘불행’이거든요· 같이 맛봐주시겠습니까?”
[이 미친 인간이 감히···!!!]
더 이상 말할 시간은 없었다·
쿵!!
룰렛에서 들려온 진동이 끊기고 삐에로의 두 눈이 광대를 노려보며 히죽 웃은 순간·
[죽어·]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광대의 몸 안에서 보랏빛 광채가 터져나오며 스타디움 전역을 휘감고 폭발했다·
사방에서 부서진 스타디움 시설 잔해를 불사르고 한줌의 재로 만들어버리는 열기·
광대 자신의 위계를 박살내 발동하는 입자 쌍소멸·
자기 자신을 반물질 폭탄으로 삼아 발동하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자폭이다·
하지만 지근거리에서 그 자폭을 마주한 사도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엘드리히!!!]
“본인은 준비됐네·”
폭발하는 열기 속에서 엘드리히가 붉은 검을 쥐고 눈을 감은 순간·
캄로달의 등 뒤에 압축된 채 엉켜 있던 촉수 덩어리가 천천히 열렸다·
쩌저저저접···!!!
무언가를 강제로 ‘배란’하는 것처럼 촉수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창백한 금속체의 형상·
길쭉한 포신처럼 생긴 그것을 잡아챈 캄로달이 성역 내 모든 촉수를 조작해 들어올렸다·
[금기병장 ‘비애’ 해방·]
그 순간 주변의 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면서 무너지고 분열하기 시작했다·
인륜을 저버린 금단의 무구· 천륜을 무시한 배덕의 병기·
교단 내부에서도 오직 선택받은 축복자들에게만 허락된 힘·
그것을 직접 ‘소환’해 낸 캄로달이 폭발하는 광대의 몸을 겨누고 마력을 끌어올린 찰나·
검을 쥐고 정신을 집중하던 엘드리히가 퍼뜩 시선을 들어 올렸다·
“···잠깐·”
우우우우웅!!!!
레녹이 쏘아 올린 초찰나 : 아공탄이 빗겨나간 하늘 위·
아공간을 가상의 질량체로 삼아 쏘아낸 발사주문이 폭발한 상공·
공간이 갈라지고 박리되는 그 공허의 저편에서 불길한 빛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쩌저저적···!!!!
수천 수만 가닥의 마력사가 사방에서 모여 일그러지며 회전하는 거대한 융합체·
아공간 탄환을 중심으로 삼아 그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강제로 꺼내는 듯한 기현상·
단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공간을 무너뜨리고 붕괴시키는 기괴한 광채·
부서지는 공간 저편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유리색 건틀렛의 형상·
“저건···!!!”
“시간이 필요했던 건 너희들만이 아니었지·”
캄로달을 향해 쏘아낸 아공탄은 광대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조력 따위가 아니었다·
아공간 그 자체를 탄환으로 삼는 술식 [초찰나 : 아공탄]·
그렇기에 탄환으로 삼은 아공간은 본래 용도대로 무언가를 ‘담는’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아공간 안에 미리 시동을 건 ‘그것’을 담아 하늘로 쏘아내 두 사도의 시선에서 순간적으로 벗어난 뒤·
모든 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하늘 위에서 이렇게-
“내 손으로 직접 끝을 내겠다·”
철컥!!
건틀렛을 장착하는 것과 동시에 수만갈래 마력사가 모조리 레녹의 통제 아래 들어온다·
공간을 붕괴시키는 기묘한 공명음과 함께 유리색 건틀렛이 섬뜩하게 발광하고·
주변의 열기와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면서 거칠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키유우우우웅-!!!!
강대한 인력의 구체가 사방의 모든 물질과 법칙을 끌어당겨 응집시키는 듯한 환상·
천지사방의 빛을 모조리 끌어당겨 가두고 스타디움의 하늘조차 어둠게 물들이는 기적·
[조작술사 설마···!!!]
캄로달이 건틀렛의 정체를 깨닫고 두 눈을 찢어져라 크게 떴다·
[네놈이 어떻게 그 무구를-!!!!]
교단의 사도·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교리에 헌신해 온 캄로달이기에 알 수 있다·
캄로달이 소환한 금기병장 ‘비애’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금기에 가까운 무구·
철컥!!!
“떨어져라·”
[불신자!!!!!]
스타디움의 상공에서 유리색 건틀렛을 장착한 레녹이 하늘을 ‘움켜쥔다·’
수백 개의 촉수로 ‘비애’의 포신을 들어 올린 캄로달이 하늘을 겨누었다·
각기 다른 두 금기병장이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자신의 존재와 술식을 겨누고·
붉은 검을 움켜쥔 엘드리히가 자폭하는 광대를 향해 칼날을 찔러넣은 그 순간·
네 갈래 인과가 인력과 척력처럼 교차하며 스타디움 전역의 공간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