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3화
쇼다운(4)
공연장 한복판에 추락하며 완전히 박살 난 비공정의 잔해·
지면이 파도처럼 들썩이며 관객석을 거세게 흔들고 무너뜨린다·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복도와 천장 곳곳에서 점등하는 붉은 경고등·
여기까지 두 눈으로 보고도 공연장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판데모니엄이 테러를 저질렀다!!”
“포 폭탄 테러야!! 스타디움을 터트리려는 거야!!”
“살려줘!! 나갈래 나 나간다고!!!”
“아아아아아악!!!”
수만명의 관객들이 사방에서 소리 지르면서 도망치려 앞다투어 비상구로 몰려들었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인파가 복도에 몰리면서 서로 밀치고 밟혀나갔다·
“밀지 마!! 밀지 말라고!!”
“비켜! 내가 먼저 나갈 거야!!”
두려움과 혼란 살고 싶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넘어지거나 굴러떨어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혼돈 속에서 압사당하거나 밟혀 죽는 사상자가 대규모로 발생했어야 할 터·
하지만 놀랍게도 밀리거나 밟힌 사람들 중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다·
“어 어라?”
“나 왜 살아 있지?”
스탠드에서 머리부터 떨어진 중년 남성이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사람들에게 마구 짓밟히고 있던 여성이 어깨를 덜덜 떨면서 힘겹게 일어선다·
“사 살았으면 됐어·”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이렇게 된 거 남아서 구경이나····”
“멍청아 빨리 도망쳐·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이들이 한발 늦게 스타디움을 빠져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테러 직후 발생해야 할 인명피해가 보이지 않는 안배에 의해 억제당한 듯한 기묘한 광경·
“기가 막히는군요·”
VIP 객석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광대가 낄낄 웃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객석 뒤편에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던 안타레스를 바라본 광대가 물었다·
“설마 이걸 예지하고 프레이야에게 축복을 주문했던 겁니까?”
이번 공략작전에 안타레스가 예지자로서 참가하며 내세웠던 그 첫 번째 조건·
그건 프레이야가 공연에서 사용할 음계술식의 종류를 직접 정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콘서트가 시작하기 직전 자리를 비웠던 안타레스가 레녹과 만났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것·
“콘서트가 시작하고 첫 휴식시간까지 프레이야가 부르는 노래는 모두 다섯 곡·”
안타레스가 대답했다·
“그 다섯 곡에 모두 음계술식의 버프를 담아 부르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도 잠시나마 신체 내구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게 가능하지·”
“오옷?”
“대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명피해는 완벽하게 억제할 수 있어·”
스타디움 밖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레스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프레이야에게 부탁한 건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남지 않게 정신계열 버프도 걸어달라는 것뿐이었다·”
“호오 그렇군요·”
프레이야가 콘서트를 시작하고 부른 다섯 곡 모두에 음계술식을 담아 부른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스타디움에 모인 관객들 전원에게 신체능력 증강과 정신방벽을 부여·
사람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무의미한 인명피해나 트라우마가 발생하지 않게 신경을 썼던 것·
테러가 발생하고 대피를 권고한 시점에서 관객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안타레스는 시작부터 프레이야에게 음계술식을 전력으로 운용해 사람들을 보호할 것을 권고했고·
프레이야 역시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온 이들을 위해 선뜻 그 부탁을 수용했던 것·
턱을 괸 채 안타레스의 말을 듣고 있던 광대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되네요· 당신 그 크로켄 아실러스와 동료였던 게 맞습니까?”
“····”
“이렇게 재미없고 미적지근한 사람이 그 사람이랑 죽이 잘 맞았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안타레스는 크로켄 아실러스와 함께 순례길에 올랐던 전쟁용병 중 하나·
그들이 그 여정의 끝에서 모험을 포기하고 끝내 갈라졌다는 사실은 유명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이 어떠한 관계로 남아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민간인의 목숨을 신경 쓰는 안타레스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 그 괴물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었는지·
“아트렌 키자드·”
하지만 안타레스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나직하게 광대의 이름을 불렀다·
평온한 시선으로 웃고 있는 광대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억변(億變)의 환술을 다루는 이단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
“나와 같은 본성을 기꺼워하지만 반대로 내게 없는 결핍을 동경하지· 같은 것을 바라며 다른 것에 이끌리기도 해·”
안타레스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는 거야· 그런 기준을 정하는 것조차도 무의미하지· 모든 것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르고 또 달라야 하기 때문이야·”
순례길의 끝에서 안타레스는 어떤 이유로 크로켄과 갈라진 것인지·
어째서 그 여행에서 실패하고 예지능력을 얻게 된 것인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적어도 안타레스는 크로켄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흠 재미없군요·”
광대가 의자에 몸을 기대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매번 다르게 대답하지만 돌고 돌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예지자란 종류는 달라도 모두 실패한 결말을 미리 보고 온 사람이니까·”
안타레스가 수긍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지하지 못한 미래를 원한다· 그것이 설령 거짓된 파멸에 가담하는 형태라 해도-”
냉정한 눈길로 저 멀리서 날뛰는 사도를 바라본 안타레스가 말했다·
“교단이 추구하는 구세에 비할 바는 아닐 테니까·”
“···헤에·”
언뜻 듣기에는 잘 와닿지 않는 단어를 확신하듯 이르는 안타레스의 전언·
하지만 광대는 그 말을 듣고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 당신의 방식이 오히려 더 위험해 보입니다만·”
“····”
“하지만 뭐 좋습니다· 미래를 걸고 두는 도박은 저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이 별이 지옥에 떨어지는 순간도 나름 볼만하지 않겠습니까?”
낄낄 웃은 광대가 천천히 팔걸이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거리면서 중심을 잡은 광대가 VIP 객석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스으읍 어디 보자·”
새하얗게 칠한 얼굴을 문지르며 광대가 시선을 돌렸다·
스타디움 외곽에 몰려 공연장 밖으로 도망치는 관객들·
부서진 무대의 중심에서 이동하며 충돌하는 빅터와 5사도·
쩌저저적···!!!
그리고 공연장 사방에서 지퍼처럼 열린 수십 개의 공간균열·
균열 저편에서 내려선 사제복을 입은 수백 명의 교단 신도들의 모습까지·
“최근 교단에 새롭게 취임했다는 신녀가 유능하기는 한 모양이군요·”
스타디움 곳곳에서 기도를 시작한 사제들을 보며 광대가 히죽 웃었다·
“그 까다로운 10사도의 저울술식을 이미 복구했다면 일이 좀 귀찮아지겠습니다·”
[경외하라]
[복종하라]
[기도하라]
[숭배하라]
엄숙한 표정으로 기도하는 사제들의 입과 턱은 문어의 다리처럼 징그럽게 갈라져 꿈틀거렸다·
교단 8사도 캄로달의 힘을 사용해 사제들의 신앙과 기도술식의 출력을 끌어올리는 금술·
그로 인해 사제들의 몸이 이미 인간이 아닌 이형의 괴물로 변이되어가고 있던 것·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올리면서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광대를 향하는 사제들의 시선·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대충 알겠군요·”
사제들이 사용하는 기도술식을 빤히 바라보던 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대는 그런 사제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안타레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한 번’ 사용해야 할 것 같으니 준비 부탁드립니다· 할 수 있죠?”
“말했지만 내가 나설 수 있는 순간은 한정되어 있어·”
안타레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이어야 한다면 협조하지·”
“당연하죠· 쓸데없이 아끼다가 X되버린다는 말 모릅니까?”
찰칵!!
손을 한 바퀴 돌린 순간 광대의 오른손에 날이 비틀린 단검이 역수로 쥐어져 있었다·
스르릉···!!
단검을 쥐고 천천히 들어 올린 광대가 고개를 삐딱하게 젖히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 이런 대낮부터 피냄새를 잔뜩 맡아야 한다니···”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광대의 눈동자가 아이처럼 반짝거렸다·
“이래서 이 일을 끊을 수가 없다니까요· 바로 가볼까요?”
* * *
스타디움 중심부· 비공정의 추락으로 반파된 무대 바깥·
반으로 부러진 조명 거치대 사이로 레녹과 노인의 신형이 빠르게 교차했다·
쐐애애액!!!
시설 잔해 사이에 마력사를 걸고 실을 당기면서 낮게 가속하는 레녹의 신형·
마력사를 당길 때마다 속도가 붙으면서 지상 가까이 비행하듯 충격파를 내뿜었다·
콰아아아!!!
전투기가 지상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소닉붐이 터져 나온다·
충격파가 관객석을 스치면서 좌석을 박살 내고 파편을 사방에 터트렸다·
외곽 층계 사이를 마력사의 조작만으로 가속하며 속도를 높이는 레녹·
그러한 레녹을 두 다리의 힘만으로 달려 따라잡는 노인의 모습·
두두두두!!!
벽면을 수직으로 내달리며 철검을 휘두른다·
노인의 손이 번뜩일 때마다 검광이 휘어지며 주변을 사선으로 베어냈다·
검극을 뒤로 쏘아내는 힘을 반탄력으로 삼아 가속하는 5사도의 신형·
쏟아지는 파공음 속에서 레녹이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까다롭군· 거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교단 다섯 번째 사도· 심지어 카바힘의 기사 출신인 검사다·
외견은 적잖게 나이가 들어보인다 해도 분명 고위계 육체능력자일 터·
거리를 벌리기 위해 속도를 내봤는데 상대는 검 한 자루를 쥐고 자유롭게 가속하며 따라붙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이미 저 멀리서 광대와 교단 사제들이 교전을 시작한 상황·
안타레스가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봤자 무의미하다· 어떻게든 손을 써서 지금의 구도를 뒤틀어버리는 편이 나을 터·
그렇게 생각한 레녹이 관객석 아래쪽으로 비행하며 몸을 홱 틀었다·
끼이이익!!!
약물을 사용해 반고리관을 비롯한 체내 균형감각을 마비시켜둔 상황·
육체에 가해지는 반동은 결계와 보호술식으로 때우고 마력사로 몸을 조작해 기동한다·
콰직!!
거치대 사이로 걸려 있던 간판이 반으로 쪼개지고 레녹이 그 위로 내려앉았다·
흑색 로브가 회전한 순간 그 움직임을 따라 주변의 마력사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무대 사방에 놓여 있던 스피커와 앰프를 비롯한 온갖 장비들이 뜯겨 나와 폭풍처럼 회전했다·
쿠오오오오!!!!
마력사의 장력과 탄성이 앰프를 뜯어내 아음속의 속도로 가속시킨다·
레녹이 주먹을 쥐는 것과 동시에 스피커와 앰프의 궤적이 변화· 노인을 향해 포탄처럼 내리찍혔다·
콰과과광!!!
폭격과도 같은 충격량을 연달아 내뿜으며 노인이 서 있던 자리를 두들겼다·
“마력조작이나 술식운용의 정교함은 경이로운 수준이로군· 본인이 상대해 본 술사 중에서도 단연코 으뜸이야·”
폭심지의 중심에서 걸어 나온 엘드리히가 레녹을 보며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어도 이런 사물로는 본인을 상대할 수 없지· 수단을 잘못 고른 것이 아닌가?”
“····”
“마력사라는 까다로운 매개체를 그런 식으로밖에 다루지 못한다면 더 볼일은 없을 것 같군·”
그렇게 말한 노인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일단 그 양손을 쓰지 못하게 잘라두고-”
그 순간 노인은 자신의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말을 멈췄다·
부서진 장비들의 잔해 사이로 솟구친 마력사가 어느새 노인의 팔을 단단하게 묶고 있었다····
“카바힘의 기사나 왕족은 몇 번 상대해본 적이 있지·”
가면 너머로 레녹이 말했다·
“본신의 감각이나 무력에 자신이 있어서인지 의외로 이런 식의 수작에 잘 당해주더군·”
끼이이익···!!!
밧줄처럼 엮인 마력사 가닥이 노인의 팔을 묶고 잔해 사이로 몇 겹에 걸쳐 둘려 있다·
사방의 잔해물을 지지대로 삼아 마력사 특유의 강력한 장력으로 움직임을 억제하는 기예·
그러한 조작을 교단의 사도인 엘드리히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시전해 낸 솜씨·
순간적으로 그것을 모두 이해한 노인이 감탄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던 그 순간·
노인의 등 뒤에서 날아온 두꺼운 철근이 투창처럼 엄청난 속도로 때려 박혔다·
쾅!!!
우두둑!!!
“···!!!”
엘드리히의 허리가 순간 반대 방향으로 꺾일 만큼 강렬한 충격·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술식출력의 고점과 저점을 뒤섞어 혼동을 주면 위력을 쉽게 재단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마력사로 조작한 물체의 중량이나 내구도를 끌어올리는 건 레녹에게 있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눈앞의 5사도가 어떤 전투 스타일을 지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렇군· 조작술사를 함부로 분석하려 하면 안 된다는 겐가·”
노인의 얼굴에 드리운 인자한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고쳐잡은 엘드리히가 천천히 중절모를 고쳐 썼다·
“실례가 많았군· 전장에 선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감각을 잊어버린 모양이야·”
“····”
“이제부터는 제대로 가지·”
콰아앙!!!
노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뽑혀 나가듯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한 팔이 레녹의 마력사에 묶인 채 등허리에 부러진 철근 파편이 꽂혀 있는 기괴한 모습·
하지만 정지상태에서 최대속도에 달하는 그 순간만큼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콰과과과과!!!
사방에서 부서진 기계 잔해들이 흩날린다·
나사와 철근의 폭풍 속에서 레녹과 엘드리히의 그림자가 동시에 움직였다·
카가가각!!!
채찍처럼 날카롭게 휘어진 검은 마력사가 엘드리히의 옷깃을 베어낸다·
엘드리히의 오른팔을 묶은 마력사 밧줄이 강하게 팔을 옥죄면서 근육을 쥐어짰다·
머리 위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철근 파편· 발아래서 연달아 폭발하는 스피커를 비롯한 무대장치·
하지만 엘드리히는 왼손으로 검을 고쳐잡은 채 그 모든 견제를 베어내고 앞으로 전진했다·
쾅!
오른팔을 쥐어짜는 레녹의 마력사를 잘라내는 대신 강하게 움켜잡고 잡아당긴다·
떨어지는 철근과 마력사를 베어내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면서 검을 한 바퀴 회전시킨 순간·
[태회검련(殆回劍鍊)]
[3식 전위(戰圍)]
[검중화(劍中花)]
우우웅···!!
기묘한 공명음과 함께 레녹의 눈앞에서 눈부신 검광이 꽃잎처럼 피어올랐다·
날카롭게 회전하는 검화(劍花)가 짓쳐드는 모든 물질과 마력을 베어내고 튕겨낸 찰나·
꽃잎의 중심에서 뻗어 나온 칼날이 엄청난 속도로 레녹의 명치를 향해 쏘아졌다·
파앗!!
레녹이 육안으로 보고도 반응조차 할 수 없는 감각의 빈틈·
하지만 육신은 반응하지 못해도 레녹의 의식과 마력사는 반응했다·
촤라라락!!!
사방에 펼쳐진 수천 가닥의 마력사가 칼날을 나선으로 감싸 안고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긴다·
날카로운 예기에 우수수 잘려나가면서도 마력사끼리 서로를 붙들고 옭아매며 엉겨붙고·
레녹의 가슴 바로 앞에서 칼날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멈춰 섰다·
끼이이익!!!
“이런·”
희미해진 검화의 뒤편에서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걸음이 부족했나· 개탄스러운 일이로고·”
“아니 훌륭했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머리 위에서 흩날리던 나사 한 개가 레녹의 손안에 날아와 잡혔다·
“이성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도치고는 차고도 넘쳤지·”
“····”
“그럼 이제 그런 일을 가능케 한 네 사도술식의 정체를 확인해 볼까?”
쐐액!!
레녹의 손에 잡힌 나사가 사출· 노인의 미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 반동으로 노인이 고개를 젖히자 머리에 쓰고 있던 중절모가 떨어졌다·
격렬한 교전 도중에도 단 한 번도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중절모가 벗겨진 그 순간·
“···그렇군·”
중절모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을 확인한 레녹이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 안에 그런 걸 키우고 다니면 모자로는 가리기 어려워 보이는데·”
“조금 불편하긴 하지·”
노인의 머리 위에는 두피나 머리카락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 위에 또 다른 인간의 얼굴이 거꾸로 박힌 채 레녹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뿐·
기괴하게 일그러진 두 번째 얼굴이 레녹이 쏘아낸 나사를 이빨로 붙잡고 있었다·
하나의 머리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노인이 레녹을 바라보며 웃었다·
“하지만 괜찮네· 이런 몸으로도 시간을 끌 수 있다면 족할 테니까·”
“····”
“왕도의 [문]을 손에 넣는 데 있어 가장 큰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야 그것대로 나쁜 일은 아니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레녹 역시 모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타디움 VIP 객석 쪽에서 한참 교전 중인 광대와 교단 사제들·
단검을 쥐고 사제들의 목을 따버리는 광대의 몸은 피로 흠뻑 절여져 있었다·
철퍽!!
사제의 목을 비틀어 베어내자 단검 사이로 끈덕진 피가 쏟아져 내린다·
쏟아지는 기도술식의 빛을 한 끗 차이로 피하면서 정수리에 단검을 꽂아 넣는다·
비틀린 단검 한 자루를 들고 무너진 관객석 사이를 질주할 때마다 사방에서 피보라가 몰아쳤다·
카가가가각!!!
빗발치는 창백한 섬광을 피하고 달리면서 죽은 사제의 시체를 방패 삼아 움켜쥔다·
그때마다 광대의 팔뚝과 어깨의 살점이 갈라지며 옷 위로 피가 배어나왔다·
“아야야·”
푸슛!!
사제들의 공격뿐만이 아니라 광대 자신의 움직임 때문에 부상을 입고 있다·
선혈의 욕조에서 추슬러야 했던 행운조작의 반동이 아직 광대의 몸을 좀먹고 있던 것·
온몸의 근육과 살점이 갈라지며 끊어지고 광대의 온몸이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물든다·
이대로 싸우다 보면 기껏 아문 상처조차 다시 벌어져 자멸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아····”
하지만 광대는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도 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출혈사 직전에 찾아오는 이 현기증이 좋다니까요· 제 경험상 어지간한 마약보다 훨씬 낫거든요·”
“미친놈····”
사제들 중 누군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천천히 자신을 포위하는 이형으로 변한 교단 사제들의 형상·
입과 턱으로 문어 다리를 꿈틀대며 기괴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
스타디움 내곽 복도 안쪽에서 오갈 데 없이 포위당한 이 상황·
“저기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려준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광대는 피범벅이 된 머리를 쓸어올리며 VIP 객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안타레스를 보며 광대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쪽을 데려온 이유가 뭔지 알지 않습니까· 슬슬 제 몫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행운이란 건 언제나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지·”
객석에 기대앉아 있던 안타레스가 말했다·
“그걸 억지로 비틀어서 앞에 가져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지만··· 다 됐다·”
천천히 눈을 뜬 안타레스가 광대를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던져·”
“하핫!!”
그 순간 광대가 단검을 쥐지 않은 손을 품 안에 밀어 넣었다·
다섯 손가락 사이로 주사위 일곱 개를 쥔 광대가 망설임 없이 몸을 홱 틀었다·
차르르륵!!
사제들이 반응할 새도 없이 일곱 개의 주사위가 순식간에 땅바닥에 떨어졌다·
피로 물든 정육면체 주사위 일곱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숫자를 띄워 올린 그 순간·
[6] [6] [6] [6] [6] [6] [6]
콰아아아아앙!!!!
일렁이는 아지랑이와 함께 광대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무리가 폭발했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사제들의 몸이 허공에서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토막 난 살점과 팔다리가 피를 흩뿌리며 머리 위로 뜨거운 비처럼 쏟아지고·
빗발치는 선혈의 폭우 속에서 광대가 눈을 감은 채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흠 숫자가 살짝 아쉽긴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이걸로 만족할까요?”
찰박!!
피 웅덩이 사이로 한 발을 내디딘 그 순간 광대의 온몸에 새겨진 상처가 거짓말처럼 아물기 시작했다·
아니 실제로 상처가 아문 것은 아니었다·
다만 광대가 자신의 환술을 사용해 실제로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것뿐·
하지만 그 환술은 타인은 물론이고 광대 자신마저 속이며 끝내는 이 현실조차 속여 넘긴다·
천천히 눈을 뜬 광대가 사제들을 향해 한발 앞으로 내디디며 귀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이 몸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