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화
쇼다운(1)
[지난밤 프레이야 칼린스가 알칸타라 호텔의 화재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었습니다·]
[17번째 월드 투어를 위해 토커퍼즈에 방문한 디바를 노린 사고가 아닌지 현재 조사 중으로···]
[아티스트 본인은 불의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콘서트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콘서트가 예정된 스타디움에서는 벌써부터 아티스트를 위한 응원이 이어지고 있으며···]
알칸타라 호텔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또 다른 최고급 카지노 시설·
시설을 이용하던 고객이 대피하고 텅 비어버린 광활한 로비에서 뉴스가 송출되고 있었다·
대륙 각지의 유명한 건축물을 재현해놓은 호화로운 시설· 사방에 무료로 비치된 고급술과 뷔페·
로비 안쪽으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로가 흐르고 듣기 편안한 음악이 은은하게 들려온다·
“····”
도박과 유흥의 도시답게 도시 중심부 카지노 시설들은 비현실적으로 호화로운 규모를 자랑하는 바·
하지만 수백 명을 수용하고도 남을 법한 화려한 카지노 홀 안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찰칵·
테이블 위에 쌓인 도박칩을 매만지던 레녹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멍한 얼굴로 뉴스를 바라보는 아그네타와 싸늘한 시선으로 바깥을 응시하는 소류·
주변의 분위기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한참 화장을 고치는 프레이야·
“크흐흐····”
복도 쪽에서 음습한 조소와 함께 삐걱대는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카라 테이블에 걸려 멈춰선 인형이 고개를 뒤틀어 일행을 돌아보았다·
“프레이야 칼린스의 대역은 내 인형으로 대체해 두었다····”
“····”
“누군가 집요하게 말을 붙이는 게 아니라면 공연 시작 전까지 들킬 일은 없겠지····”
인형술사· 체비엔· 판데모니엄의 결산과 회의에서 만난 괴팍한 성정의 보유자·
언제나 본체 대신 인형을 대역으로 내세우는 이 자가 이번 작전에 참가한 것인가·
각자 다른 판이한 개성을 지닌 초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과 함께 내려앉은 서늘한 공기·
“급조된 작전치고 꽤 재미있는 인선이로군····”
홀에 모인 이들을 돌아본 체비엔이 조소했다·
“신경에 거슬리는 능력의 보유자들만 골라 뽑아놓은 거냐··· 괴팍한 취미다····”
“야 인형잡이· 시끄러워· 그거 지금 이 상황에 꼭 필요한 말이야?”
프레이야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한숨도 못 잤거든? 피부 뒤집힌 채로 한나절 뒤에 공연하러 가야 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아?”
“크크큭 내가 왜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써야 하지···?”
“애초에 이번 공연 일정은 네 의사를 십분 반영한 결과일 텐데·”
2층 난간에서 창문으로 로비 바깥을 내려다보던 소류가 말했다·
“참가를 거절했다면 작전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거다·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야 왕자· 냉기가 골수까지 뻗어서 미쳐버리기라도 한 거야?”
머리칼을 휙 쓸어넘긴 프레이야가 차갑게 웃었다·
“내가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니들이 나한테 업혀가는 거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한자리에 모이자마자 서로 날 선 말을 주고받는 멤버들의 모습·
하지만 레녹은 그 와중에도 평소와는 묘하게 분위기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그 사실을 무시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마저도·
“····”
홀덤 테이블 한쪽에 눈을 감고 기대앉은 검은 셔츠의 남성·
길게 기른 흑발을 대충 쓸어 넘겼음에도 행색과 분위기는 정갈하다·
두꺼운 코트를 두른 채 아무 반응도 없이 유령처럼 앉아 있는 그 모습·
예지자 안타레스·
안타레스 용병단의 수장이자 8레벨의 육체능력자가 판데모니엄에 합류해 있었다·
그것도 카바힘 왕도 지하의 [문]을 공략한다는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본인이 맞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안타레스는 크로켄과 함께하던 전쟁용병으로 순례길에서 실패해 예지능력을 얻은 케이스·
용병단이 발칸에 자리 잡은 뒤로는 홀로 끝없이 대륙을 방황하던 있던 초인이다·
그런 그가 어째서 갑자기 이 시점에 판데모니엄과 행동을 같이하게 된 것일까·
흑요석 가면이 없었다면 표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해야 했겠지·
그 정도로 레녹 역시 지금 안타레스가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알칸타라 카지노 호텔에서 아그네타가 취득한 정보판독이 끝났어·]
치익-
그 순간 뉴스가 송출되던 스크린이 바뀌면서 차분한 하이레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텔의 인신매매는 중앙의 전쟁포로를 사들여 신병기 아머드 배럴의 동력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
[아머드 배럴의 카니발리즘 시스템은 인간을 동력으로 삼는데 추정되는 에너지 효율은 무려 105%에 달한다는군·]
[아무래도 토커퍼즈 시정부는 인간을 재료 삼아서 이 도시의 치안을 강화할 생각이었던 것 같아·]
“깡통 로봇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관심 없는데·”
의자에 앉아 화장을 고치던 프레이야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여기 오래 앉아 있으니까 춥고 허리 아프거든? 본론부터 말해·”
[다들 알겠지만 토커퍼즈는 양지의 ‘시정부’와 음지의 ‘신디케이트’로 양분되어 있어·]
하이레아는 프레이야의 말에 곧바로 설명의 방향을 바꾸었다·
[환락의 도시답게 신디케이트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경우가 다르지·]
[이번 대규모 인신매매를 주도한 건 시정부 측 핵심인사· 시장과 경찰청장 쪽이야·]
팟!!
스크린 위로 시장과 경찰청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다부진 인상의 장년 남성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의 얼굴·
[오간 돈을 생각하면 시장이 죽었다고 거래가 멈출 일은 없을 거야· 실제로 거래 대금을 치르는 건 경찰청장 측이었던 듯하고·]
[그렇다면 거래가 이뤄지는 시기는 분명 프레이야가 한참 공연을 진행하는 도중이 될 거야·]
“왜? 그게 지금 내 콘서트랑 무슨 상관인데?”
[시정부 측에서 인신매매 거래 날짜를 일부러 네 콘서트 일정과 겹쳐서 잡았거든·]
“뭐어어?!”
“시민들의 시선을 콘서트로 돌리고 안전하게 거래를 끝내고 싶기 때문이겠지·”
표정을 확 찌푸린 프레이야를 무시하고 소류가 말했다·
“중앙의 전쟁포로를 사들이는 일이다· 매스컴에 노출되면 뒤처리가 어려워져· 포로의 ‘용도’가 용도인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거래 과정을 숨기려 할 거다·”
방금 전까지 안타레스와 싸우려 했음에도 그 안색은 놀라울 만큼 차분해 보였다·
냉정을 가장하는 것인지 왕도로 향하는 작전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끝낸 것인지·
[콘서트가 시작되면 청장은 거래를 마치기 위해 이동할 거야· 구매한 포로들을 호송하기 위해 경찰인력이 대규모로 동원되겠지·]
“스타디움 주변에서 경찰인력이 빠지는 순간이 테러를 터트리는 시점이 되는 건가····”
[거기서부터는 현장에서 직접 판단할 문제겠지·]
체비엔의 질문에 하이레아가 슬쩍 발을 뺐다·
[여기까지가 알칸다라 호텔에서 획득한 정보 요약본이야· 그러니까 이제····]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는 하이레아의 목소리·
하지만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를 이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 계속하시지요·”
철퍽!!
온몸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낸 광대가 느긋하게 옷을 입고 걸어 나왔다·
욕조에서 온몸이 벌어지는 부상을 입고 있던 아까보단 조금 나아 보이는 행색·
목소리가 멈춘 통신기를 향해 정중하게 손짓한 광대가 히죽 웃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듣고 있겠습니다·”
[····]
광대의 느긋한 전언에도 불구하고 하이레아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통신 너머로도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이레아 역시 광대와 직접 일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광대를 경계하는 것은 하이레아뿐만이 아니었다·
“····”
소류나 체비엔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 역시 광대의 언행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흥미보다는 경계· 경계보다는 두려움이나 불가해에 가까운 경직된 시선·
하지만 레녹은 어째서 다른 멤버들이 광대를 이토록 경계하는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광대는 초월적인 환술사이자 복마전 내부에서도 단장의 작전을 도맡아 처리할 정도의 능력자·
조직 내부의 위상이나 평가를 감안하면 크로켄이나 명왕에 버금가는 지휘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와는 별개로 본인 스스로는 철저하게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기인·
괴상한 언행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광대는 복마전의 소집에 단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다·
사실상 광대가 이러한 대규모 작전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그만큼 광대의 위상이나 위험함이 복마전 내에 잘 알려져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상황 설명이 대충 끝났으면 이제 새로운 얼굴을 소개할까요?”
광대가 안타레스를 향해 돌아서면서 짝짝 박수를 쳤다·
“자자 이번 작전에 잠깐 동행하게 된 안타레스라고 합니다· 모두 박수~”
“····”
침묵이 흘렀다·
안타레스 역시 눈을 감은 채 반응도 하지 않았다·
머쓱하게 뺨을 긁적인 광대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흠흠 굉장히 뛰어난 예지능력자인데 이번 작전의 특수성 때문에 어렵게 모셔왔습니다·”
“····”
“굳이 따지자면 제가 추천한 인선은 아니긴 합니다만··· 뭐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 않겠죠?”
어깨를 으쓱한 광대가 히죽 웃었다·
“어쨌든 이번 작전에서 당분간 같이 움직이게 될 텐데 ‘일단’ 자문 역할로 참가한 거라 직접 나서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광대의 설명에도 안타레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물끄러미 앞을 응시하기만 했을 뿐·
담담하다 못해 평온하게 느껴지는 그 얼굴은 레녹의 기억과 거의 다르지 않다·
“예지능력자답게 가끔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긴 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리기로 하고·”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광대가 느긋하게 말했다·
“뭐 혹시 소감 같은 거라도 있다면 한번 들어볼까요?”
“····”
안타레스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거미 삐걱대는 인형과 가희를 차례대로 응시한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위악보다 위선에 가치가 있듯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에 의미가 있지·”
“뭐?”
“미래의 결과를 모르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이어지기도 해·”
안타레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
침묵이 이어졌다·
아그네타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
“뭐야 그게·”
프레이야가 표정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러니까 뭐 이 작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몰라서 참가했다는 거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흐흐흐 예지할 수 없는 미래를 좇아 움직이고 있는가····”
체비엔이 삐걱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예지자답군··· 하기야 그러니까 아직 자살하지 않고 살아 있겠지만····”
“····”
다른 멤버들이 냉소했지만 레녹은 안타레스의 말을 이해하고 침묵했다·
오래전 안타레스가 했던 말을 레녹 역시 아직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성공과 실패가 예지되는 정해진 결말이 아니라 결과를 모르는 미지의 미래를 원한다·
분명 그것이 안타레스라는 초인을 정의하는 본질이자 해답이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사안이 있군·”
고풍스러운 태피스트리 근처에 기대선 소류가 입을 열었다·
안타레스를 바라보는 소류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예지능력자는 굉장히 위험한 변수다· 조금만 잘못해도 결과를 완전히 오판할 가능성이 있지·”
“····”
“일을 편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도 몇 배는 더 큰 리스크를 각오해야 할 거다· 정말 이번 작전에 그만한 안배가 필요한 건가?”
“아 나도 비슷한 생각·”
아그네타가 멍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의 성패를 예지할 수 없다면 저 남자는 이번 작전에서 우릴 도와줄 수 없는 거 아니야?”
“기껏해야 국지적인 측면에서 잠깐씩밖에 사용할 수 없단 건데·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잖아·”
“예지란 거시적인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힘이 아닙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소한 부분에서도 엄청난 도움이 되지요·”
프레이야의 말에 광대가 웃었다·
마치 안타레스를 향한 평가 자체가 재밌다는 듯한 묘한 반응·
“게다가 이 친구 예전에는 꽤나 유명했던 용병 출신입니다· 저희를 도와주는 일은 없어도 방해가 될 일도 없겠죠·”
“전쟁용병? 이 남자가 용병 출신이라고?”
안타레스를 전혀 모르는 프레이야의 질문에 광대가 고개를 기울였다·
“레야· 공연을 하면서 대륙을 그렇게 돌아다니고도 잘 모르는군요·”
“그딴 걸 어떻게 알아? 내가 투어 돌면서 챙기는 건 그 도시의 특산물이랑 화장품밖에 없다고·”
프레이야가 귀찮은 듯이 머리를 헤집으며 대꾸했다·
“안 그래도 이번에 SNS에 올릴 토커퍼즈 특산 위스키들 다 증발했거든? 이번 작전 끝나면 네 돈으로 물어내·”
“아니 여기서 누구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자꾸 그러깁니까?”
“어 웃기지 마· 내 성격 이제 알았어?”
프레이야 정도의 연예인이라면 연간 벌어들이는 수입이 천문학적인 수준이겠지·
광대가 억울한 표정을 짓는 것도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크큭 사람 일이란 참 아이러니해····”
이 긴박한 상황에서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두고 체비엔이 웃음을 흘렸다·
“크로켄 아실러스의 동료가 이런 식으로 판데모니엄에 협력하게 될 줄이야··· 재미있군····”
“크 크로켄?!”
그 순간 광대와 말다툼을 하던 프레이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 역시 편람의 우물에서 만났던 크로켄에게 느낀 위압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나저나 하이레아라고 했습니까?”
순식간에 파리해진 안색으로 입을 다문 프레이야를 뒤로하고 광대가 시선을 돌렸다·
“양면성의 재능을 지닌 커넥터 생각보다 솜씨가 괜찮군요·”
[···난 전달받은 정보를 요약했을 뿐이야· 이번 작전은 순전히 그쪽이 준비한 판이지·]
하이레아가 한발 늦게 대답했다·
[무엇보다 우물 작전을 성공시킨 설계자 앞에서 자랑할 만한 솜씨는 아니군·]
“오! 겸손까지· 좋습니다·”
광대가 박수를 치며 짝짝 웃었다·
“전 이런 식의 설명에 영 소질이 없어서 말입니다· 이번 작전에 대해 첨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하이레아가 그렇게 말하며 시장의 사진을 치워 버렸다·
자연스럽게 남은 경찰청장의 사진에 멤버들의 이목이 쏠렸다·
경찰 제복을 입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발의 노인·
[아그네타가 보낸 정보들을 살펴보면 이번 작전에서 주의해야 하는 건 결국 경찰청장 쪽이야·]
[시장이 죽은 이 시점에서 큰 반응도 없이 인신매매를 강행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
하이레아가 그 사진을 보면서 설명했다·
[경찰청장 본인은 지난 분기에 취임한 인사인데 시장의 연줄을 잡고 올라온 실무자로 추정되고 있어·]
[취임하자마자 경찰전력을 강화하고 카지노 단속에 집중했는데 이게 성과를 내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지·]
[다만 이자의 출신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어· 경찰 데이터베이스에도 최소한의 인적사항만 적혀 있었고·]
“···으음·”
“시장 본인보다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자란 말인가·”
[어떻게 보자면 시장보다도 더 수상한 뒷배라고 생각해· 혹시 이 자에 대해 아는 사람 있어?]
하이레아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차분하게 경찰청장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은 모른다· 처음 보는군·”
“애초에 다른 도시 공직자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고 다닐 리가 없잖아·”
“잉?”
그 순간 광대가 경찰청장의 사진을 보며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시선을 기울였다·
“어라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
잠깐의 침묵· 하이레아가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경찰청장 본인은 현재 경찰청 본부에서 두문불출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하지만 콘서트가 열리는 당일에는 무조건 스타디움에 얼굴을 비추겠지·]
[프레이야의 노래를 매개로 삼는 대략 반년 어치의 축복· 도시 고위직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는 없을 테니까·]
“결론이 나왔군·”
소류가 입을 열었다·
“청장이 콘서트 도중 자리를 비우면 스타디움에 테러를 일으키면 되는 건가·”
[특질계 조작술사보다 이번 일에 적합한 인선은 없겠지· 빅터가 그 역할을 맡을 거야·]
“어느 쪽이든 소란이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없겠군·”
“결국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프레이야가 주변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는지가 중요하겠네·”
멤버들의 시선이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프레이야에게 향했다·
“할 수 있겠나?”
“아까부터 열 받게 자꾸 뭐라는 거야?”
머리칼을 휙 쓸어넘긴 프레이야가 말했다·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노래나 잘하라는 거잖아· 내가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할 것 같아?”
“그게 아니라····”
“내 콘서트야·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참견하지 마·”
프레이야가 새침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수만 명 정도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것 정도야 나한테는 숨 쉬듯이 쉬운 일이니까·”
* * *
[작전 시작 시간과 동선 체크 완료·]
[콘서트 선곡 리스트와 휴식시간 알람 동조·]
[공연 연주자 및 스태프 명단 확보·]
[인트로 연주 시작· 콘서트 개막까지 앞으로 3분·]
레녹은 어둠이 내려앉은 통로를 걷고 있었다·
저 멀리서 빛이 비치면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소음·
시작 전까지 시간과 동선을 확인하고 필요한 인선을 정리하면서 배제해 나간다·
이번 작전에서 레녹이 해야 하는 일은 단순히 토커퍼즈를 뒤집어 놓는 것만이 아니었으니·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통로 바깥으로 발을 내디디려던 그 순간·
“····”
두꺼운 털코트를 걸친 청년이 통로의 끝에 기대서 레녹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타레스와 마주한 레녹이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8레벨의 권사· 실패한 결말을 보고 돌아온 예지능력자·
예지할 수 없는 결말을 찾아 대륙을 떠돌고 있는 이 남자는 지금 레녹의 정체를 눈치챘을까·
안타레스가 입을 열었다·
“예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변인은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
“····”
“내가 보지 못한 결말의 일부라 해도 반드시 그것이 올바르다는 것은 아니야·”
안타레스가 시선을 들어 레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 존재 역시 그러하다면 굳이 물을 이유는 없겠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레녹이 냉소했다·
“아니면 반대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가?”
“····”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모르면서 굳이 알아내려 하지 않는 것인지·
묘한 침묵속에서 안타레스가 천천히 눈을 감고 레녹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통로 끝에서 눈부신 빛이 번지면서 레녹의 시야가 탁 트인 그 순간·
퍼버버버벙!!!
맑은 하늘 위로 폭죽이 연달아 터지면서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반짝이는 불꽃 사이로 거대한 전광판을 매달고 비행하는 무수한 비공정의 형상·
하지만 비공정에 매달린 전광판에 송출되는 것은 싸구려 광고 따위가 아니었다·
붉은 드레스를 날개처럼 펼친 여성의 모습이 전광판에 나타나고 그녀가 스탠딩마이크를 움켜쥔 순간·
[여러분-]
와아아아아아아아!!!!!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적인 함성이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토커퍼즈 스타디움·
10만명의 관객을 수용가능한 대륙 최대의 경기장·
어디로 눈을 돌려도 사람이 점처럼 가득 들어차 있다·
프레이야를 위한 응원도구를 든 사람들이 팔을 흔들면서 거대한 물결을 그리듯이 요동쳤다·
무대에 선 프레이야가 손짓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호응했다·
마이크를 쥔 프레이야가 광활한 무대 위를 홀로 걸으면서 입을 열었다·
[다들 들으셨겠지만-]
아아아아아!!!!
[어젯밤에 작은 사고가 있었어요·]
우우우우우-
[다행히 몸을 다친 건 아니라서 일단 공연하려고 올라왔는데-]
와아아아아아!!!!
[조금만 상태가 안 좋아도 내려갈 생각이니까 미리 말해둘게요· 괜찮겠어요?]
아아아아아아악!!
프레이야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미친 듯이 발광하면서 소리 지르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프레이야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안 괜찮아도 어쩔 수 없어요· 다음에 또 올 테니까 그걸로 용서해 줘요·]
와아아아아아!!!!!
“흥미롭군·”
관객들과 대화하는 프레이야의 모습을 VIP 객석에 도착한 레녹이 내려다보았다·
콘서트가 진행되는 무대가 훤히 내려다보는 2층의 깔끔하고 넓은 최고급 좌석·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콘서트의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이런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닐 텐데· 저 정도로 뻔뻔하게 굴면 오히려 호감으로 느끼는 건가?”
여차하면 콘서트를 파토 낼 거라 대놓고 말하는데 관객들은 오히려 그런 그녀의 말에 열광하고 있다·
그녀의 성격을 그만큼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그조차도 매력으로 느끼고 팬이 되었기 때문인지·
어느 쪽이든 프레이야는 그런 반응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용해가면서 이 순간을 고조시키는 도구로 써먹고 있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공연자로서의 재능·
“뭘 그렇게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겁니까?”
그런 레녹의 옆에 앉은 광대가 양 손에 응원봉을 쥔 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유일하게 1인분을 하는 시간 아닙니까· 일단 즐기고 보자구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이얏호~ 프레이야 화이팅!”
양손에 쥔 화려한 응원봉을 신나게 흔들면서 객석에 몸을 걸친 모습·
레녹은 그런 광대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VIP 객석 반대편에서 콘서트 시작을 기다리는 경찰청장을 비롯한 시정부 관료들·
소류와 안타레스 체비엔의 인형이 객석 주변에 앉아 제각기 무대를 내려다본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프레이야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대 위의 조명이 하나씩 꺼져 간다·
조명이 사라지며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프레이야의 목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스타디움에 자리한 관객들마저 덩달아 숨을 죽이고 입을 다문 그 순간·
파앗!!
어두워진 스타디움에서 청명한 녹색의 빛이 피어오르며 무대를 환하게 밝혔다·
그 음색만으로 주변의 마력을 공명시켜 프레이야를 비추듯이 발광한 순간·
[첫 번째로 부를 노래는-]
프레이야가 마이크를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부드러운 허밍이 흘러나왔다·
[축복(祝福)·]
토커퍼즈 스타디움· 월드 투어 콘서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