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화
잔향(11)
“이게 대체 무슨····”
[아룽!]
충격을 숨기지 못한 레녹이 비틀거리자 수호령수가 꼬리를 쓱 내밀어 레녹을 받쳐주었다·
출렁!
푹신한 쿠션처럼 안락한 탑승감이 순식간에 레녹의 몸을 감싸 안았다·
꼬리 끝까지 푸짐하게 찐 지방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레녹을 받쳤다·
“····”
할 말을 잃은 레녹이 눈앞에서 쩝쩝대는 수호령수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내곽항로를 지나 서부전선을 돌파해 장막의 이면을 넘어 쿤다라에서 발칸으로 복귀하기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외겁도시의 여정·
하지만 그사이 레녹의 수호령수는 말 그대로 돼지 드래곤이 되어 있었다·
[꿀·]
레녹의 감정을 눈치챈 수호령수가 귀신같이 비슷한 울음소리를 냈다·
권역에서 태어난 영수답게 주인의 감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읽어낼 줄 아는 것·
하지만 레녹에게는 그조차도 지금 이 수호령수에 대한 충격에 비견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아·”
뒤늦게 레녹의 뒤를 따라온 딜런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 와중에도 선물 받은 단창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다·
“결국 봐버렸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대체 한 달 사이에 뭘 먹고 자랐기에 이렇게 디룩디룩 살이 찔 수 있단 말인가·
참치나 고기 농축액을 목구멍에 들이부어도 이 정도로 살이 찌지는 않을 터·
수호령수를 돌보는 용병들이 먹이를 헤프게 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게 말이지····”
딜런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레녹에게 사정을 설명하려던 그 순간·
수호령수의 뱃살 안쪽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까부터 왜 이렇게 주변이 소란스러운 게냐?”
불룩!
수호령수의 접혀 있던 뱃살이 꿈틀거리자 뱃살 안쪽에서 무언가 데구르르 굴러 나왔다·
새하얀 도포를 입은 헌앙한 체격의 청년이 찌푸린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내 분명 사질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깨우지 말라고 했을텐데· 귀찮게 굴면 본노도 전격마법을 가르쳐주지 않을 테-”
레녹과 시선을 마주친 청년이 이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리쳤다·
“사질! 언제 탑에 돌아온 게냐!!”
“···사질이라고?”
레녹이 눈앞에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보다 표정을 찌푸렸다·
어딘가 귀에 익은 한 사람밖에 사용하지 않는 호칭을 기억해 냈기 때문·
“설마 아켄드리아스 본인인가?”
“같은 벼락의 인과를 나눈 동지가 본노 말고 누가 있단 말이냐!!!”
어깨를 활짝 편 청발의 청년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오늘로 다시 위대한 여정에 함께할 벗을 되찾았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울 일이 없겠구나!!!”
“····”
느닷없이 벼락 운운하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니 레녹이 알던 토르번 마탑주가 맞는 듯하다·
하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노인이던 아켄드리아스가 갑자기 젊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그동안 있었던 일을 먼저 듣고 나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군·”
순식간에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며 레녹이 미간을 짚었다·
“대체 마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 *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요 녀석이 이렇게 변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거대도시 발칸 49구역· 견뢰의 마탑 지하공동·
지하공동에 선 레녹은 맞은 편에 주저앉은 아켄드리아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길게 잡아봤자 일주일? 비전격마법사들의 시간으로 따지면 대충 그 정도겠군·”
“····”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토르번 마탑주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건장한 체격·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생명력· 선이 굵은 외모와 특유의 화가 난 듯한 눈썹까지·
레녹이 기억하던 탑주의 인상과 분위기가 대부분 일치한다·
아켄드리아스 엘 토르번의 시간을 수십 년 정도 되돌려 청년으로 만든다면 이러할까·
하지만 토르번은 청년으로 회춘한 자신의 외견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의 입맛이 갑자기 확 바뀌면서 좋아하던 참치도 거부하고 이상한 걸 집어먹기 시작하더구나·”
“이상한 걸 집어먹었다고?”
“탑 내벽의 벽돌이나 기둥 운반 중이던 자재나 광석에서 싸구려 아티팩트까지· 다양하게도 씹어먹었지·”
“····”
“괜히 이상한 거 집어먹다 탈나지 말라고 본노의 벼락을 대신 내주었는데 아주 꿀떡꿀떡 주는 대로 잘 받아먹더구나·”
토르번이 멋쩍은 듯이 뺨을 긁적였다·
“이 어린놈이 좋아하는 걸 보니 본노도 흥이 나서 달라는 대로 주었는데 그 사이에 그만····”
“····”
할 말을 잃어버린 레녹이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당신의 모습이 이렇게 변한 것도 그것 때문인가?”
“본노와 요 녀석은 일종의 식신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더냐?”
청년으로 변한 자신의 얼굴을 쭉 잡아당기며 토르번이 말했다·
“본노의 벼락을 평소보다 많이 먹게 해준 것 때문에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구나·”
“체내마력을 영수에게 흡수당했는데 오히려 신체나이는 젊어져 버렸다고?”
“본노 역시 태생을 따지자면 중앙의 귀족이기도 하였으니·”
아켄드리아스가 태연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아르스노바의 귀족은 시간의 흐름에 개의치 않는다· 외견 따위는 본노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지·”
본래 수염이 있어야 할 턱을 어색하게 쓸며 그가 말했다·
“하물며 본노의 선뢰지체(仙雷之體)는 1세계의 신선들이 갈고닦던 힘일지니· 본노의 몸에 담긴 벼락이 곧 나이인 게야·”
“····”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네 영수에게 뇌기를 흡수당하면서 균형이 뒤틀린 여파이니· 마력을 회복하면 머지않아 돌아올 게다·”
지금 이 모습 자체가 뜻하지 않은 일이고 토르번 본인은 노인의 모습을 보다 더 선호하는건가·
그렇게 말한 토르번이 레녹의 눈치를 보며 슬쩍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러니까 요 녀석이 이렇게 살이 찐 건 본노의 책임만은 아니라는게지·”
“글쎄·”
레녹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대체 얼마나 벼락을 많이 먹였기에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나 의심스럽군·”
“아니 이 돈룡(豚龍)의 뱃살이 너무 푹신해져서 본노도 베개 삼아 잘 써먹기는 했다만-”
“됐다· 변명할 필요는 없어·”
레녹이 대답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것 같으니까·”
“호오 영수의 주인답군· 벌써 원인을 알아냈단 말이냐?”
“수호령수가 이상해진 시기를 들으니 대충 짐작이 간다·”
레녹이 눈을 감았다·
“내 마법체계의 변질 때문이었군·”
수호령수의 입맛이 이상해진 시점은 레녹이 승천의 비약을 마신 시점과 얼추 유사하다·
레녹이 마법체계를 변질시켜 휘두르는 사이 우로보로스를 기원으로 삼아 태어난 수호령수가 영향을 받은 것·
평소 좋아하던 참치도 무시하고 마력이나 뇌전을 주워 먹다 대폭 살이 찐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기존의 우로보로스와는 성질이 달라지면서 수호령수의 식성이 잠시 변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토르번 역시 그제서야 살짝 풀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본노가 식신으로 있는 도중에는 문제가 생기면 안 되지 않겠느냐·”
[바우우~]
뒤늦게 분위기를 눈치채고 움츠리고 있던 수호령수가 엉금엉금 다가왔다·
살이 디룩디룩 찐 몸을 비비적대면서 레녹을 꼬리로 끌어안고 마구 비볐다·
“···아니·”
하지만 레녹은 수호령수의 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식성이 변했다고는 해도 이 정도로 살이 쪄버린 건 본인이 조절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
“뭐라?”
“내 권역의 수호령수이니 내가 책임지고 영수를 되돌려 놓아야 하지 않겠나?”
서늘한 레녹의 눈빛에 돼지 드래곤이 무심코 움찔거린 찰나·
지방이 잔뜩 낀 꼬리를 콱 움켜쥔 레녹이 선언했다·
“다이어트다· 지금 당장 시작할 테니 준비해·”
* * *
[헥· 헥· 헥·]
쿵! 쿵! 쿵!
투실투실한 뱃살이 낀 용이 두 발로 뒤뚱거리면서 연병장의 안뜰을 뛰고 있다·
혀를 축 내밀고 헤롱헤롱 돌아가는 눈으로 휘청이면서 땀을 줄줄 흘리는 수호령수의 모습·
“앞으로 두 바퀴 더·”
연병장의 단상 위에 선 레녹이 수호령수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5분 휴식 후 수분을 섭취하고 다시 다섯바퀴· 식단을 조절하기 전에 운동량부터 체크할 거야·”
[헥· 헥·]
쿵! 쿵!
무어라 대답도 하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면서 뒤뚱거리는 영수의 모습·
쌕쌕 숨을 내뱉을 때마다 연병장이 거칠게 울리면서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와 확실히 반이 말하니까 움직임이 다르긴 하네·”
“애초에 저 녀석이 저렇게 운동하는 거 처음 봐·”
그런 레녹의 옆에는 소식을 듣고 탑으로 복귀한 용병들이 우르르 구경을 나와 있었다·
수호령수는 태어난 이래 사실상 거의 외부활동이 없던 마탑의 명물 중 하나·
지하공동에서 먹고 자는 수호령수가 뜀박질을 하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무척 생경해 보인 듯했다·
“눈 핑핑 돌아가는 것 봐· 조금 불쌍해 보이는데····”
“불쌍하긴 무슨 반이 없는동안 하루종일 먹고 자던 저 뚱땡이가?”
“여차하면 탑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저 정도 운동은 기본이지·”
“오히려 그동안 너무 지나치게 느슨했던 거라고·”
옆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질겅질겅 껌을 씹고 있던 밀라가 어리둥절한 듯이 물었다·
“반·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파충류가 저렇게 땀을 흘리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나 멍청아·]
옆에서 맨슨이 로봇 머리를 번쩍이며 비웃었다·
[파충류는 변온동물이라 땀을 흘리지 않는다· 펠릭스와 함께 일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군·]
“아니 X발· 펠릭스가 수인인 거랑 파충류에 대해 아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반사적으로 쌍욕을 내뱉은 밀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그럼 왜 쟤는 뛰면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어?”
[모른다·]
“···진짜 뒤질래?”
밀라가 샷건에 손을 가져다대려는 찰나 맨슨이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수호령수는 애초에 현실의 생명종이 아니다· 연원을 따지자면 오히려 환수종에 가깝지·]
“그래서 결론이 뭔데·”
[땀을 흘리는 파충류는 없어도 땀을 흘리는 영수는 존재할 수 있다는 거다·]
“····”
곰곰이 생각하던 밀라가 샷건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컥!!
“결국 말장난이라는 거잖아 이 개자식아· 그냥 날 멍청이라 부르고 싶은 것뿐이지?”
[저번 대련에서 누가 이겼는지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군· 그 금붕어 같은 기억력으로는 어쩔 수 없지·]
샷건을 들어 올린 밀라와 검을 움켜쥔 맨슨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돌아선 그 순간·
은빛으로 타오르는 화려한 단창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잠깐·”
딜런이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 채로 말했다·
레슬러 마스크 사이로 한없이 낮게 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의 앞이야· 모두 자중해·”
밀라와 맨슨이 동시에 불쾌한 시선을 보냈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폼을 잡고 지랄이야?”
[운좋게 깨달음을 얻고는 날이 갈수록 콧대가 높아지··· 잠깐·]
맨슨의 기계로 된 눈동자가 딜런의 단창을 보고 격하게 번쩍였다·
[이게 뭐지? 네가 소지한 장병기 중에 이 정도 수준의 고급무구는 없었을 텐데·]
프리랜서로서 여러 무구를 사용하는 맨슨은 평소에도 장비에 관심이 많다·
다른 동료들이 평소 사용하는 장비도 모두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딜런의 단창이 어떤 수준의 장비인지는 대번에 알아보았던 것·
“흠 눈치챘냐?”
맨슨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딜런의 어깨가 순식간에 턱끝까지 치솟았다·
우쭐대는 기색을 감추지도 않고 목소리만 역겹게 내리깐 딜런이 말했다·
“뭐 별건 아니고··· 반한테 선물을 받았거든·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지·”
“반한테 선물을 받았다고?!!”
밀라가 소리를 꽥 지르자 뒤뚱거리는 영수를 구경하던 다른 사람들까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중심에서 딜런이 턱을 하늘 끝까지 치켜들었다·
“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믿음직한 장비를 주는 거지· 뭐 특이한 일은 아니잖냐·”
“이 자식 갑자기 굉장히 X같이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으스대는 듯한 추임새를 처넣지 않고서는 말을 못 하게 된 거냐?”
“반 저 자식의 말이 정말이야?”
냉큼 레녹의 옆에 착석한 밀라가 물었다·
“착각하면 안돼· 저 자식한테 좋은 장비를 줘봤자 어디서 잃어버리고 몸만 살아서 돌아올걸· 재생능력자라는 건 다 그런 새끼들 뿐이라구!!”
“····”
“뭐 그렇게 생각하는게 속이 풀린다면야 어쩔 수 없군·”
레녹이 말없이 웃고 있는 사이 딜런이 느긋한 목소리로 여유를 부렸다·
“6레벨의 그릇이 작은 투정 정도는 이제 윗사람이 너그럽게 받아줘야지·”
“으으으으···!! X발!!”
“뭐야 딜런의 성취에 대해 벌써 이야기를 들었나 보네?”
술사들 사이에서 신기한 듯이 영수의 운동을 구경하던 제니가 단상 난간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무조건 직접 얘기하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그새 쪼르르 달려가서 선물을 받아낸 거야?”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제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마음의 정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한 것뿐인지·
어느 쪽이든 레녹이 마탑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 이상 제니도 피할 수는 없었겠지·
“위계를 완성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으니까· 그에 어울리는 선물을 준 것뿐이다·”
“호오 그건 좀 부러운걸·”
느긋하게 시가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타티아나가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난 탑에 합류할 때부터 성위마법사였는데 혹시 이제라도 선물을 받을 수는 없나?”
“치글렛· 반은 마법사들을 위한 선물보따리 같은 게 아니거든·”
“원한다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제니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은 찰나 레녹이 턱을 짚었다·
“필요한 종류의 아티팩트가 있다면 말해· 한번 생각해 보겠다·”
“···정말?”
타티아나도 말하면서도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인지 눈이 살짝 커져 있었다·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주변에 모인 동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야· 누구든 유의미한 성취를 얻으면 어울리는 장비를 하나씩 선물해 주지·”
접합술주의 생명권역에서 획득한 장비들· 구겁의 보고에서 몇 개 집어온 유물들·
당장 레녹이 사용할 일이 없는 장비나 무구들이 아직 남아 있다·
차후 딜런처럼 7레벨에 도달한 이들이 있다면 축하의 의미로 선물해 줘도 괜찮겠지·
그 말을 들은 밀라와 웨이안이 눈을 반짝이며 콧김을 내뿜었다·
“저 정말이지?! 취소하면 안 된다!”
“나 나도··· 요즘 사용하는 톤파가 너무 낡아서····”
레녹이 직접 선물할 정도로 귀한 장비라면 발칸에서도 구하기 힘든 장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캬· 반이 직접 선물해 주는 장비라면 가격이···”
“···벨버· 꿈 깨· 만에 하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절대 못팔게 할 거니까·”
벌써부터 행복한 상상에 빠진 벨버와 경멸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는 벨리타와 스텔라·
수련이나 맨슨도 그 말을 듣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헥· 헥· 헥]
그 사이 어느새 뜀박질을 끝낸 수호령수가 연병장에 주저앉아 혀를 물고 엎어져 있었다·
고개를 쭉 내밀고 앞으로 엎드린 채 옆으로 투실투실한 뱃살이 비져나온 둥그런 형상·
고용된 수행원들이 사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땀이 줄줄 흐르는 몸에 열심히 물을 끼얹어줬다·
“편하게 태어난 팔자라 생각하긴 했지만 보고 있자니 아주 가관이로구나·”
뒷짐을 진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르번 마탑주가 끌끌 혀를 찼다·
“아무리 살이 피둥피둥 쪘다고는 하나 뜀박질조차 저리 힘겨워하다니 조금 더 찌면 제자리에서 굴러다니겠군·”
“영수를 살찌우는데 일조한 당신이 할 말은 아닐 텐데·”
레녹이 차가운 시선으로 탑주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탑주 방금 전까지 수호령수의 뱃살을 베개 삼아 누워 있지 않았나?”
“흠흠 내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억울하구나·”
머쓱하게 헛기침을 한 토르번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사질 그래서 본노를 찾아온 이유는 언제쯤 이야기를 해줄 생각이더냐?”
“····”
“탑에 돌아오자마자 본노를 찾았다면 영수의 뱃살 같은 문제 때문은 아니었을 텐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녹이 주티야와 대화를 끝내자마자 토르번을 찾은 것은 단순한 신변잡기 이상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으니까·
토르번 전쟁마탑의 주인이자 같은 전격계 고유마법을 익힌 대마법사·
레녹보다 훨씬 오랫동안 마법을 익힌 대술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전격마법에 대한 일이다· 내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흐음· 네 벼락의 변화에 대한 일이라·”
아켄드리아스의 눈동자가 격한 흥미로 번쩍였다·
“분명 수호령수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이야기했던 그 부분이겠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느냐?”
7레벨에 도달하면 무구를 선물해 주겠다는 레녹의 말이 상당한 자극이 되었는지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던 용병들이 하나둘씩 훈련장으로 향하던 상황·
한산해진 단상 위에서 레녹은 토르번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쿤다라의 일을 처리하는 도중 술식에 손을 댔고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전격마법의 출력을 조절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까지·
“그렇군· 마법체계가 뒤틀릴 정도의 충격이 저 돈룡 녀석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설명을 들은 아켄드리아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듣고보자니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분명 예전에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구나·”
“뭔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나?”
“흐음 그러니까 말이다····”
한 손으로 턱을 짚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
한참이 지나서야 결론이 나왔다·
“본노도 잘 모르겠군·”
“····”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레녹이 황당한 표정으로 탑주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처음부터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할 필요도 없던 것 아닌가?”
“아니 기다려보거라· 모른다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으니까·”
탑주가 그렇게 말하며 레녹의 앞에서 한 발을 내디뎠다·
파직!!
날카로운 뇌광이 스치는 것과 함께 토르번의 신형이 순식간에 연병장 한복판에 내려섰다·
여전히 레녹의 감각으로도 찰나에 가까운 가히 신속에 가까운 뇌화기동·
옷자락을 털면서 어깨를 돌린 토르번이 레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오거라· 이 영수 녀석도 미리 좀 치워주고·”
“뭘 하려는 거지?”
“네 안의 뇌광이 어디까지 다다랐는지 알기 위해서는 네 번개가 얼마나 위험한 흉성을 품었는지 확인해야겠지·”
파지직···!!
가볍게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토르번의 전신에서 푸른 뇌전이 피어올랐다·
새파란 전류를 피워올리며 레녹을 올려다본 아켄드리아스 엘 토르번이 씩 웃었다·
“오랜만에 한 번 붙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