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화
9레벨(30)
천뢰건의 열쇠가 구겁의 시공을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뇌신전의 성역이 열린다·
벼락의 눈동자가 만개하며 사방이 새하얀 뇌광으로 비추어 뒤덮고·
두 사람이 서 있는 전장을 완전히 다른 성질과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쿠과과과과과과!!!!!
어느새 선종은 끝을 알 수 없는 길 위에 레녹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새하얗게 일렁이는 장엄한 뇌전의 장벽· 어딘가로 끝없이 이어지는 갈림길·
연원과 종류를 알 수 없는 온갖 무기들이 장벽 위에 박혀 벼락을 내뿜는다·
번개를 빚어 만든 거대한 전당에 서 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과 가슴이 벅차오르는 충만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모순·
그것이 현실을 넘어선 이상향에 존재하는 의념중첩의 증거임을 인지한 찰나·
[구겁의 시공을 자신의 성역으로 선포했다고?]
레녹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달은 선종이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가능해· 이건 교단의 방식이다· 신앙조차 없는 네가 어떻게···!!!!]
성역선포·
술자의 근원심상이 아니라 타인의 이상향이나 외신의 꿈을 현실에 불러내는 힘·
원시신앙에 귀속된 사제나 교단 최고위 제사장 혹은 화신체인 사도에게 허락된 기적·
“뇌신전의 성역은 벼락의 인과 없이는 출입할 수 없으니 널 끌어들이거나 유인하는 것도 불가능했지·”
철컥!!
성역의 중심이 되는 뇌창에 기대 일어선 레녹이 말했다·
“그래서 뇌신전을 현실에 불러냈다· 내 것이 아닌 심상을 현실에 끌어오는 방법은 이것뿐이었으니까·”
토르번 마탑의 최심부에 존재하는 벼락의 성소 뇌신전(雷神殿)·
뇌신전의 성역 중심부를 지탱하는 뇌제의 열쇠 천뢰건(踐雷鍵)·
하지만 천뢰건을 얻은 뒤에도 레녹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열쇠를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뇌신전의 성역에 존재하는 세계를 초월해 존재하는 벼락의 인과·
하나 그 안에 선구자들이 남긴 또 다른 벼락을 받아들일 만큼 아직 레녹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
레녹 자신이 다루는 전격마법조차 통제할 수 있는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 있다·
전격계통에 그 이상의 인과를 더해봤자 큰 의미나 효용을 얻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지금만큼은 의미가 다르다·
파직 파지지직···!!!!!!
새하얀 뇌광으로 가득 들어찬 거대한 성역·
사방에서 솟구친 번개가 그 중심에 꽂힌 거대한 뇌창을 향해 모여든다·
성역의 모든 벼락이 한점으로 떨어지며 천뢰건을 타고 레녹을 향해 피뢰침처럼 내리꽂혔다·
쩌저저저저저정!!!!!!
휘청이며 서 있는 레녹을 향해 뇌신전의 모든 뇌전이 거꾸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성역 전체를 광대한 발전소로 삼아 그 안에서 무한한 동력을 보급받는 마법사의 신형·
[성역에 담긴 뇌기를 네 술식을 위한 동력으로 삼을 생각인가!!!!]
“벼락의 인과를 새긴 초월자들이··· 세계를 넘어서까지 공유한 비원이다·”
말레온의 거체와 마주 선 레녹이 눈을 감고 말했다·
“이 안에 담긴 뇌력(雷力)이란 어떤 초월자도 홀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이지·”
[···!!!]
빠지지지지직!!!!
온몸의 피부와 살점을 타고 뇌기가 쏟아져 흘러 내린다·
독액으로 썩어가는 몸의 혈관과 신경계를 타고 벼락이 번뜩이며 가속했다·
레녹 자신의 것이 아닌 그럼에도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벼락의 힘이 온몸에 차올랐다·
=견뢰·
아득한 뇌광의 저편에서 천뢰건에 깃든 뇌제의 의식이 속삭였다·
=나의 술식으로 네게 동력을 공급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네 육체가 버티지 못한다·
“····”
= 도와줄 수 있는 건 한 번뿐이군· 그 이후로는 성역을 유지할 수 없을 거다·
“괜찮아·”
레녹이 눈을 감으면서 서서히 의념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한 번이면 모두 끝날 테니까·”
비약을 마시고 죽음을 받아들인 지금 미래의 분기점을 비추는 만화경은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만화경을 전개할 수 없음에도 레녹이 성역의 전력(電力)을 끌어온 이유가 있다·
벼락의 성질을 품은 전력이란 그 자체로 강대한 에너지이자 순수한 동력·
그렇다면 뇌신전의 힘을 우로보로스의 동력으로 고스란히 변환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우로보로스를 사용해 레녹이 끌어내려는 도달점이란-
“위계의 가장 아래쪽까지 술식을 떨어뜨려 천저의 끝에 선다·”
양손을 합장한 레녹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실패한 나 자신이 손에 넣은 변질된 근원심상·”
만화경을 사용할 수 없다 해도 영역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전격마법과 선천이능· 고유술식과 의식병기·
레녹에게 남아 있는 자격과 능력을 모조리 내버리며 도달하려는 찰나의 기적·
억지로 끌어쓰는 광라무해궁이 아니라 이 순간에만 허락되는 새로운 가능성·
타락한 분기점의 레녹 자신이 보유한 고유한-
“자성영역-”
부아아아앙!!!!!
천뢰건을 타고 전달된 뇌력이 레녹의 손안에서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검은 헤일로가 어느 때보다 거대한 크기로 펼쳐지며 성역의 중심에서 거칠게 회전했다·
우우우우우우우!!!!
헤일로의 크기가 너무나도 방대해서 그 공명음이 끝까지 다 들리지 않는다·
칠흑처럼 검게 물든 헤일로의 중심에서 레녹의 몸이 깊게 파묻히며 침잠했다·
그것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에 스스로를 가라앉히는·
레녹의 몸에 내려앉은 파멸을 그 어느 때보다 깊게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선종이 깨달은 찰나·
[마법사!!!!!]
콰아앙!!!
선종이 더없이 섬뜩한 흉성을 내지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강렬한 별빛을 두른 승천자의 신형이 폭발적으로 수백 미터 가까이 상승했다·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성역선포는 뇌신전을 현실에 강제로 끌어내기 위한 편법·
은하용성군의 사상전역은 아직 구겁의 상공에 펼쳐져 있다·
천구의 중심에 선 선종이 손을 뻗는 것과 함께 사상전역 전체가 그 의지를 따라 휘어졌다·
[어처구니가 없군· 여기까지 와서 새로운 근원심상을 손에 넣겠다는 건가·]
부아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천 갈래 유성우를 등진 승천자가 노성을 터트렸다·
[그런 건 재능이 아니다· 닫힌 인과 속에 태어난 존재에게 허락되지 않는 가능성이야!!!]
원시마법(原始魔法) : 성련팔극식(星聯捌極式)
무종(無種) – 외법(外法)
창성순환(創星巡環)
[만라성천(萬羅星天)]
쿠과과과과과!!!!!
수천 발의 용성군이 일제히 휘어지며 하늘 위로 거대한 빛의 파도를 그렸다·
사상전역을 이루는 모든 별들이 급격하게 한 방향으로 뒤틀리며 속도를 높인 그 순간·
동시에 구겁을 둘러싼 사상전역이 무너지며 천지사방의 모든 별빛이 선종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선종의 손짓을 따라 수천 갈래 별빛이 휘어지며 하늘을 긁어내고 무너뜨렸다·
붉게 물든 노을이 별빛을 따라 지워지며 그 너머로 암흑의 바다를 어렴풋이 내보였다·
구겁이 추락하며 불꽃을 흩뿌리는 대기권의 시공을 강제로 뜯어내는 강렬한 파괴·
우우우우우웅!!!!
상공을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며 별빛을 끌어모은 선종이 두 개의 영혼과 심상을 모아 전력으로 손을 내저은 순간·
[우주의 별빛과 함께 네 기원을 세계에서 지우리라!!!!!!]
파앗!!
선종의 손끝에서 압축된 거대한 별빛의 구체가 제자리에서 폭발하며 수만 갈래로 갈라진다·
사방으로 터져 나온 별빛이 일제히 레녹을 향해 왜곡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한 점으로 수렴하고·
하늘 끝에서 휘어진 수만 갈래 성광이 나선으로 휘감기며 현실에 강림했다·
[외은하(外銀河) : 성해포(星解砲)]
콰아아아아아아아!!!!
사상전역의 모든 별빛을 한점에 그러모아 휘두르는 일격·
술자 본인과 대등한 힘을 품은 용성(龍星)을 수천 번씩 중첩해 일점좌표에 집속한다·
한계를 넘어선 별빛의 집속 끝에 터져 나오는 반발력을 모조리 끌어당겨 쏘아내는 술식·
은하용성군을 모조리 소모해 펼친 이 기적은 세계를 반영구적으로 개변하는 포격이 된다·
쿠구구구구구!!!!
성해포의 별빛이 붉게 물든 하늘을 사선으로 양분하고 가속해 떨어져 내린다·
섭리와 법칙을 바꾸는 힘을 오직 레녹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쏘아냈다·
‘····’
하지만 레녹은 흑색의 헤일로 안에 몸을 묻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뇌신전의 힘을 고스란히 레녹의 술식을 위한 동력으로 전환하며·
그 어느 때보다 뒤틀린 우로보로스의 힘을 증폭시켜 운용하면서·
타락해 변질된 마력의 중심에서 무저갱의 심연까지 스스로를 깊게 파묻었다·
레녹 자신의 기원과 본질마저 넘실거리는 어둠 속에 바닥까지 가라앉혔다·
‘알고 있었어·’
비약을 마시고 타락의 분기점에 도달한 순간 레녹은 알고 있었다·
검게 물든 벼락을 압축해 자연스럽게 흑선(黑線)을 만든 순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감각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이제서야 비로소 기억해낸 것처럼·
환희와 희열이 아니라 마침내 되찾았다는 안도감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언젠가 레녹 자신이 여기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레녹은 무엇일까·
어쩌면 무엇이었던 적이 있던 걸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어서 틀림없이 존재했던 타락의 잔재·
의식하지 않고 기억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심연의 바닥에서 남김없이 들이마신다·
비약을 마시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승급 의식에서 말레온을 방해하던 흑뢰를 본 순간부터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레녹이 이 세계에서 눈을 뜨기도 전부터-
“···아·”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구겁에 올라서기 위해 외해의 어둠에 온몸을 파묻었던 것처럼·
이 위대하고 저열한 율법 안에서 모든 것을 음미하기만 하면 충분했다·
바라는 순간 이미 도달해 있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레녹의 손안에 담겨 있었다·
삼라만상 모든 물질과 법칙이 거꾸로 뒤집혀서 일그러진다·
모든 것이 어긋나고 무너지며 잘못된 방향으로 뒤틀렸다·
레녹이 쌓아온 모든 대답과 구도를 반대로 뒤집어 도달하는 파멸의 분기점·
그 분기점의 극한에 위치한 가능성의 최저점·
그래 이것이 비록 올바르지 않고 틀린 길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것이 바로 레녹의 대답이었다·
[영역전개 ■■■■■·]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음울하며 얼룩진 전성이 레녹의 내면에서 폭발했다·
입을 열지 않아도 그 의지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현실에 새겨지고·
레녹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을 부르며·
[열려라·]
내면에 응어리진 혼돈을 아무렇게나 잡고 ‘돌렸다·’
끼이이이익-
칠흑처럼 검은 흑선이 레녹의 눈앞에서 좌우로 펼쳐졌다·
레녹이 손에 넣을 이미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는 추락한 도달점·
언젠가 분명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달했을지도 모르는 불가해의 분기점·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이미 쥐고 있는 그것을 기억하는 대로 돌린 순간·
끼기기기기기-
레녹의 눈앞에서 칠흑처럼 검고 거대한 [문]이 열렸다·
흑선을 아무렇게나 그어 만들어낸 직사각형의 검은 균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허만이 담긴 그것이 눈앞에 펼쳐진 직후·
콰드드드득!!!!
세계의 시공을 잡아 뜯으며 붕괴시키던 승천자의 술식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리고·
후욱-
외은하 성해포의 별빛이 소리도 없이 [문]을 넘어 사라졌다·
[-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종이 처음으로 불분명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광대한 암흑의 균열이 빛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성해포의 술식·
사상전역을 소모시켜 레녹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쏘아낸 외법의 정수가·
말레온과 선종의 재능과 미래를 끌어다 쏟아낸 9레벨을 초월한 기적이·
세계를 개변하기 위해 가속하던 별빛의 집속체가 눈앞에서 소멸했다·
[불가능해····]
선종의 음울한 전성이 덜덜 떨리다 못해 수십 번씩 겹쳐 울리기 시작했다·
[이건 이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 어떻게 이런···!!!!!!]
“처음부터 피하거나 막을 필요는 없었군·”
천천히 눈을 뜬 레녹이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문을 여는 것 자체가 내 영역의 형태였어·”
파멸을 전제로 손에 넣은 타락의 술식·
레녹이 언젠가 도달했을지도 모르는 실패하고 타락한 분기점의 자성영역·
이름조차 발음할 수 없게 망가진 자성영역의 능력은 바로 [문]을 여는 힘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승천의 묘리를 품었거나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파멸의 전조도 없다·
자신에게 엄습하는 모든 개념과 법칙을 [문]을 열고 ‘어딘가’로 날려 보내는 인과의 연결을 끊어내는 지고의 권능·
레녹은 영역을 펼쳐 선종이 쏘아낸 성해포를 [문] 너머로 날려 버렸던 것이다·
[웃기지 마라-!!!!!!!]
그제서야 선종이 귀청이 터져나갈 듯한 전성을 터트렸다·
레녹의 입으로 그 사실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부정할 생각이 들었다는 것처럼·
그전까지는 감히 그것을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 낼 수도 없었다는 듯이·
[그런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내게 말하지 마라!!!!! 그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감히!!!!!]
“····”
[살아 있는 생명 따위가 혼자서 [문]을 열었다고! 네가 인과의 단면을 이어붙였다고···!!!!!]
침묵하는 레녹을 노려보며 선종이 미친 듯이 목소리를 떨었다·
격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마력을 울리는 전성을 더듬기까지 하며 레녹을 찢어죽일 듯이 노려본다·
[승천자의 죽음을 거름 삼는 기적을 필멸자가 혼자 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는 없어···!!!!!]
“····”
[그런 건 인간이 아니야· 생명종이 아니란 말이다!!!! 저 바다의 신들조차-]
미친 듯이 소리 지르던 선종이 말없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녹을 보고 말을 뚝 멈췄다·
마법사의 눈동자에 담긴 어두운 공허를 마주한 순간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
부정하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의심하지 않으려 한순간 이미 의심하고 있었다·
카이세의 육체를 통해 원했던 가능성을 저 마법사는 이미 지나쳐 있음을·
그것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음에도 비로소 이제서야 마주하고 있었음을·
“어떤 식으로 열 수 있는 건지는 알지 못해·”
레녹이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 도달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알고 있었지····”
부서져 흩날리는 어둠으로 말레온의 육체를 바라보며 레녹이 속삭였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해낼 수 있다·”
끼이이이익···!!!!
세계가 삐걱대면서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개문의 선고·
하지만 그 파열음은 더 이상 레녹의 앞에서 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들어 올린 레녹의 손이 승천자의 육신을 가리킨 순간·
승천자로 완성된 은룡의 내면에서 다시 한번 [문]이 열리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그것을 깨달은 선종이 미친 듯이 포효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쿠과과과과과!!!!
강렬한 성광에 휩싸인 승천자의 육신이 엄청난 속도로 상공을 가속한다·
마력을 불태우면서 속도를 높인 말레온의 거체가 새하얀 빛으로 화해 날뛰었지만·
다음 순간 선종은 끝없는 암흑의 지평선에서 다시 레녹과 마주 서 있었다·
[허억-!!!!]
쩌적 쩌저적···!!!!
선종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문이 열리는 소리·
가슴 위로 검은 실선이 퍼져 나와 거대한 흑색의 큐브처럼 형체를 감싸 안았다·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문]이 열리는 전조임을 깨달은 찰나·
[안 돼-!!!!!!]
선종이 섬뜩한 포효를 터트리며 격렬하게 발버둥 쳤다·
[나를 나를 어디로 보내려는 거냐!!!!]
“····”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아!!!! 마지막까지 이 세계에 남아 영원한 기회를 얻을 거다···!!!]
[문]은 그 자체로 특별한 파괴력이나 힘을 지닌 개념이 아니다·
다만 세계와 외해를 망라해 시공을 연결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에 불과할 뿐·
문을 통과한 어떤 개념이든 분명 온전한 형태로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터·
하지만 레녹은 선종의 술식을 날려 보낸 것은 물론이고 선종의 존재마저 문 너머로 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식으로 결착을 지으려 하는지·
[죽은 나 자신조차 손에 넣지 못했던 무한한 기회를-!!!!]
“파멸을 전제하는 타락의 심상을 통해 손에 넣은 것은 [문]을 여는 힘·”
레녹이 조용히 말했다·
“그렇기에 [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이 세계의 시공이 아니라 나의 근원심상이다·”
[···그건·]
“다음이라는 의미가 사라진 결말의 저편·”
천천히 손을 뻗은 레녹이 말했다·
“내가 너를 보내려는 곳은 바로 실패해서 종말이 찾아온 멸망의 미래다·”
레녹의 만화경은 실패와 타락을 전제하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의 분기점을 비추는 힘·
하지만 죽음과 파멸을 받아들인 ‘실패한’ 레녹만이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결말이 있다·
레녹 자신이 실패하고 타락하여 멸망에 도달한 미래의 근원심상·
타락의 끝에서 뒤틀린 답을 품고 바닥 끝까지 떨어진 분기점의 자성영역·
만화경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불러오는 이 힘은 바로-
결말이 찾아온 실패한 미래· 모든 것이 파멸한 고정된 시간선으로 대상을 인도하는 힘·
끼리리리리릭-
선종을 가둔 흑색의 큐브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공허가 차올랐다·
검은 선으로 격리된 공간 너머를 문 너머의 어둠으로 가득 채우는 것처럼·
거대한 용종의 육신을 그 자리에서 [문] 그 자체로 만들었다·
쩌저저적···!!!
내면에 만들어진 문 너머로 의식과 영혼이 남김없이 빨려 들어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 아직 다가오지 않은 파멸의 미래·
다음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시간선 저편을 향해 나아간다·
닫혀 있는 세계· 원인과 결과가 끊어진 멸겁의 미래로 나아가는 파멸의 문·
[네가 문을 여는 자였다고····]
멍한 표정으로 [문] 너머의 공허를 바라보던 선종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선종의 목소리가 떨리다 못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네가 그자였을 리가 없어··· 그건 시간의 섭리를 거스르는-]
“그럴지도 모르지·”
레녹이 웃었다·
“세계의 마지막까지 나는 나 자신이고자 하니까· 다른 누군가가 될 일은 없을 거다·”
[····]
“하지만 이 세계의 결말이 닫힌 인과 속에서 무한히 순환할 뿐이라면-”
선종을 한 손으로 가리킨 레녹이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 실패한 결말조차도 내 의지로 다뤄내고자 한다·”
파앗-
선종의 대답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서 열린 [문]이 둥글게 회전하며 거대한 공허를 흩뿌리고 펼쳐졌다·
확장된 흑색의 문이 지평선 끝까지 남김없이 검은빛으로 물들이며 번뜩인 순간·
어둠의 별이 회전하며 선종의 의식과 영혼을 아득한 파멸의 미래로 날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