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화
9레벨(28)
외해 바깥에서 대기권을 돌파해 추락하는 구겁의 전장·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시공에서 두 초월자의 영창이 거의 동시에 교차했다·
자성영역 전개
참칭위계 심상구현
[광라무해궁(狂裸無海宮)]
흑색으로 물든 만화경이 회전하며 광라무해궁의 영역을 현실에 펼쳐낸다·
홀로 어떤 신도 섬기지 않고 미쳐버린 무해의 사도로 태어나는 광인의 분기점·
쿠과과과과과!!!!!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검은 기둥이 레녹의 양옆으로 거세게 내리찍힌다·
레녹을 중심으로 길을 만들어내듯 압도적인 크기의 기둥이 좌우로 도열하면서 번뜩였다·
새카맣게 물든 유성우가 영역의 하늘 위로 떨어지면서 불길한 그림자를 지상에 드리운다·
고개를 숙인 레녹의 등 뒤에서 헤일로가 연달아 펼쳐지며 검은 날개처럼 일렁였다·
죽지 않는 것을 죽이고 불멸자에게 현실의 법칙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필멸의 힘·
신이 없는 세계를 원하는 미쳐버린 사도의 처형대·
하지만 선종은 무해궁의 어둠을 보고도 영창을 멈추지 않았다·
9레벨의 승천자로서 손에 넣은 세계를 바꾸는 공능·
말레온 그노시스를 승천자로 존재하게 하는 자신의 답으로 세계를 개변하는-
사상전역 현현
기원위계 인과개변
[은하용성군(銀河龍星群)]
우우우우웅-!!!!
은빛으로 빛나는 수천발의 유성우가 구겁을 둥글게 감싸 안고 눈부신 천구의 형상을 그렸다·
유성우를 이루는 별빛이 둥글게 휘어지며 은빛으로 번뜩이는 거대한 빛의 구체로 화한 순간·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던 구겁의 잔해가 그 자리에서 허공에 ‘멈춰 섰다’·
쩌어어어엉!!!
추락하던 구겁이 허공에 반동조차 없이 그대로 속도를 죽이면서 시간을 멈추고·
자성영역과 사상전역이 하나의 시공간 좌표에서 동시에 중첩되며 충돌한 그 순간·
키이잉!!!!!
동시에 레녹의 의식이 극한까지 가속하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잘게 쪼개진다·
현실의 시간으로는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식을 무한히 잡아늘린 잠깐의 여유·
“반·”
아득한 의식공간의 저편에서 말레온이 레녹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사상전역·”
동시에 구겁이 멈춰선 이유를 깨달은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세계를 반영구적으로 개변하는 권능으로 구겁을 멈춰 세운 건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시공간에 걸려 있던 물리법칙을 나의 것으로 고쳐 쓰는 것일세·”
팔짱을 끼고 있던 말레온이 말했다·
레녹을 바라보는 은룡의 눈동자는 전에 비할 바 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상전역은 승천자의 대답을 세계에 각인하는 힘· 이곳 구겁을 사상전역으로 둘러싼 순간 여기 존재하는 모든 물리법칙은 나의 것으로 대체되지·”
“···구겁에 걸려 있던 부하와 가속도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진작 넘었을 텐데·”
현재 레녹과 말레온이 서 있는 구겁의 시공은 수천 킬로미터 상공에서 추락하는 운석 그 자체·
이곳에 걸린 부하와 가속도는 이미 생명종의 힘으로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말레온 그노시스는 사상전역을 펼치는 것만으로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던 것·
구겁에 걸려 있던 물리법칙을 지우고 그 자리를 사상전역으로 뒤덮는다·
사상전역은 승천자의 대답을 구현하는 힘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와도 같기에·
그 안에 포함된 구겁 역시 사상전역의 물리법칙을 따라 강제로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전장을 뒤덮은 광라무해궁의 영역· 그 영역마저 망라하며 펼쳐진 사상전역 은하용성군·
어두운 하늘 위로 무수히 수놓아진 아름다운 유성우를 바라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구겁을 멈춰세울 생각으로 사상전역을 펼쳤군·”
“내 의지였지만 내 의지가 아니기도 하네·”
말레온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자네와 대화할 시간이 생긴 것은 감사할 수밖에 없군·”
“말레온·”
“마지막이 오기 전에··· 자네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어·”
전에 비할 데 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말레온의 목소리·
레녹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에 서 있는 승천자를 바라보았다·
사상전역과 자성영역이 충돌한 직후· 의식공간에 나타난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것이 선종의 사념이 아니라 말레온 그노시스 본인이라는 사실을·
“선종이 네 원시마법을 다루고 있는 걸 본 순간 알고 있었지·”
침묵하던 레녹이 말했다·
“그가 네 육신만이 아니라 술식마저 온전한 형태로 손에 넣었다는 걸· 그것이 너 자신의 의지라는 것도·”
“····”
원시마법 성련팔극식은 오직 말레온 그노시스 본인의 심상으로만 다룰 수 있는 힘·
에르몽의 의식전이처럼 술식 자체가 그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면 육체를 빼앗는 것으로 술식까지 빼앗을수는 없다·
선종 정도의 초월자라 해도 원 주인의 영혼과 심상을 완전히 부수어 흡수한 뒤에야 가능한 일·
하나 선종이 원시마법을 다루고 있는 것 자체가 말레온이 자의로 선종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방증·
자신의 육체를 빼앗은 사념체에게 스스로 힘을 빌려주고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미안하네 반·”
말레온이 말했다·
“자네에게 거짓말을 했어· 그 사실을 억지로 외면하려 했지·”
“····”
“승급 의식에서 자네의 도움을 받아 9레벨에 도달한 뒤로 나는 의문을 품어버렸네·”
말레온이 눈을 감았다·
“내가 추구하는 방식이 정녕 옳은 것인지 더 나은 대답이 이미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버렸지·”
“····”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지· 의심하지 않으려 한순간 이미 의심하고 있었어·”
은룡의 표정이 서글프게 변했다·
“그리 생각한 시점에서 실패해야 했던 의식이 성공한 순간 나는 이미 그 생각을 저버릴 수 없게 된 거야·”
“···말레온·”
자신보다 타인의 대답이 더 옳다고 생각한 순간 구도자는 더 나아갈 수 없다·
본래라면 그 시점에서 승급 의식은 종료· 말레온은 실패해서 사망했어야 할 터·
하지만 레녹이 개입해 말레온을 살리고 의식을 성공시킨 순간 말레온은 이해하고 말았다·
의식의 결과로 9레벨에 도달한 자신보다 과정에 개입한 레녹이 보다 먼 곳을 보고 있음을·
그가 바라보는 결말이 자신보다도 더 아득한 다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사실을 말레온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들은 레녹의 표정이 아주 잠시 흐릿하게 변했다·
차라리 방관해야 했을까·
말레온이 죽고 의식이 실패하게 방조하고 구겁에 올라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말레온 그노시스를 위한 유일한 안식이었을지 모르지·
하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레녹이 시선을 내린 채 대답했다·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뿐이다· 해낼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 도전하지· 결과를 알고 있기에 과정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
“····”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만큼 거창하지 않다· 나는 단지-”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어떤 말로 설명해야 이 불완전한 승천자에게 자신의 대답을 전할 수 있을까·
결착을 앞두고 자신의 변절을 고백하려 한 말레온에게 무슨 말로 답해주어야 할지·
레녹의 답을 묻는 이들에게 몇 번이고 답해왔음에도 매번 이렇게 고뇌하고 만다·
말이라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마음이란 것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기에·
그럼에도 언제나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답하고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너와 내가 대화하는 지금 이 순간조차 다음 속에 남기고 싶을 뿐이야·”
“···반·”
“우리가 한 모든 일이 저 바다의 물거품 속에 사라지지 않기를· 언제나 그렇게···”
모든 것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살아서 내일을 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처음과 같다·
거창하고 원대한 이유가 아니라 보다 더 솔직하고 근본적인 소망·
레녹을 결말까지 움직이게 하는 과정이 그곳에 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말레온은 눈을 감은 채 레녹의 대답을 듣고 있었다·
레녹이 심경을 고하는 이 순간을 마지막까지 기억하겠다는 것처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를 대답으로 삼는 시점에서 자네는 누구보다 진실된 사람이야·”
말없이 침묵하던 말레온이 조용히 말했다·
“자네의 대답이 타고난 재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나는 그에 홀려 버렸네·”
“····”
“그 사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적어도 나는····”
눈을 뜬 승천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자네가 옳다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말레온·”
“은하용성군은 외은하의 용과 별을 무리 지어 나 자신을 별과 일체화시키는 힘일세·”
말레온이 천천히 돌아서며 말했다·
“사상전역을 구축하는 모든 별이 나 자신이자 나 자신이 곧 별이니 이는 용성(龍星)이라· 별이 빛나는 한 불멸이나 다름없지·”
“····”
“하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세· 내가 자네의 답에 홀린 채로 승천자에 도달했기에 나의 구도를 담은 은하용성군은 아직 불완전하거든·”
말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자네에게 이것을 말해줄 수 있는 이 찰나의 순간을 위해 나는 그에게 나의 심상을 온전히 내주었네·”
“····”
“나의 도움으로 사상전역을 다루는 감각을 손에 넣었으니 그는 이제부터 내 의식을 가라앉히고 두 번 다시 깨어날 수 없게 하겠지·”
레녹과 시선을 맞춘 말레온의 눈빛에 강인한 의지가 깃들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망설이지 말게· 알고 있겠지?”
“말레온·”
레녹이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부터 이걸 위해 기다리고 있었나?”
외해의 선율에 홀려 폭주하는 말레온의 정신은 오래 버틸 수 없는 상황·
조만간 말레온의 정신이 완전히 망가지면 선종은 곧바로 그의 영혼과 심상을 흡수해 술식을 빼앗았겠지·
하지만 말레온은 자신의 의지로 선종에게 술식을 내어주고 레녹과 대화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을 벌어냈다·
지금 구겁을 멈춰 세운 은하용성군의 사상전역이 불안정한 권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나아가 말레온 자신을 망설이지 말고 죽여 달라는 약속을 남겨두기 위해·
“쿤다라의 명운을 짊어지고 실패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살아 내일을 볼 수 있겠나·”
말레온이 웃었다·
“자신의 구도조차 지켜내지 못한 내가 나를 믿고 따르던 이들의 얼굴을 어찌 마주할 수 있을까·”
“····”
“나의 여정이 한 줌의 메아리에 불과하다면 하다못해 자네의 손으로 끝을 맺어주기를 바랄 뿐이야·”
키이이이잉!!!
극한까지 확장되며 느려져 있던 의식이 서서히 가속한다·
레녹과 말레온을 둘러싼 채 멈춰 있던 시간이 제 속도를 되찾는다·
말레온 그노시스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
찰나에 가까웠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감상을 주고받을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상대는 삶과 죽음을 나눠 가진 괴물이야· 말처럼 잘되지는 않을 거다·”
“····”
“네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네 결말은 내가 직접 정해주겠다·”
“자네가 원하는 방식이라면 무엇이든·”
말레온이 웃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빛이 휘몰아쳤다·
의식이 극한까지 가속하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몸이 뒤로 밀려나고·
튕겨나듯이 현실로 부상하면서 시계가 일그러졌다·
쿠과과과과과!!!!!
거대한 은빛의 천구 아래 내리찍힌 흑색의 기둥·
어두운 하늘 위로 떨어져 내리는 무수한 용성(龍星)·
저 모든 별빛이 용을 품은 말레온 자신이자 사상전역을 이루는 부품 그 자체·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선 그 순간 찬란한 빛을 두른 은룡의 거체가 서서히 하강했다·
고오오오오!!!
9레벨에 도달한 승천자가 자신의 대답을 세계에 현현하는 사상전역·
그 시공의 중심에서 승천자가 얼마나 절대적인 의미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화르르륵!!!!
말레온의 전신을 뒤덮은 비늘이 녹아내리며 은의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눈부신 은염(銀炎)을 두른 채 안광을 번뜩이는 말레온 그노시스의 신형·
[느껴지는군·]
우우우웅!!!!
자격을 얻은 은룡의 입에서 공허한 선종의 전성이 폭발적으로 메아리쳤다·
[말레온 그노시스가 마침내 완전히 이 육체를 내게 넘겨주었음이 느껴진다·]
“····”
[마지막에 그는 어땠지?]
선종이 물었다·
[위대한 용종답게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였나 아니면 추하게 살려달라 울부짖었나?]
“글쎄·”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등 뒤에서 헤일로가 거칠게 회전했다·
사방으로 검은 뇌전이 폭발적으로 퍼져나오며 허공을 부수고 범람했다·
빠지지지지직!!!!
사방에서 극한까지 압축된 흑뢰가 검은 선으로 변해 뻗어나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흑선(黑線)을 맨손으로 움켜쥔 레녹이 말했다·
“말레온의 사상전역까지 손에 넣고도 그런 것이 궁금한가?”
[그렇지· 이 용종의 육체는 근본적으로 내가 원했던 그릇이 아니니까·]
슈우우우···!!
선종이 손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우의 빛이 기울어진다·
장엄한 반원의 궤적을 그리면서 광라무해궁의 영역을 향해 쏟아지는 용성군·
[말레온 그노시스가 추구한 대답과 술식에도 의미는 있지만 그건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도달점이 아니야·]
“····”
[내가 지닌 재귀(再歸)와 경정(更正)의 힘을 카이세 바쥬르의 역천(逆天)과 합해 완성되는 삼위일체의 기적이 있으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의 비를 등진 채 선종이 말했다·
[나는 그를 통해 죽은 나 자신조차 얻지 못한 기회를 손에 넣으리라·]
“···기회라·”
많은 것을 이해했음에도 레녹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것이 옳고 그른지를 두고 논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스스로 답을 정한 이상 나아가는 길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지 않던가·
다만-
“말레온의 결말을 내 손으로 정해주기로 약속했지·”
고개를 숙인 채로 양손을 맞잡은 레녹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구겁이 떨어지기 전에 그 목숨을 가져가겠다·”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봐라·]
선종이 웃었다·
[나는 이 묘지 안에 카이세 바쥬르를 대신하여 네 죽음을 놓아두리라·]
찌유우우우웅!!!!
검은 헤일로가 뒤틀리는 것과 동시에 짙은 어둠이 날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형태 없는 검은 마력이 헤일로를 중심으로 세차게 레녹의 몸을 밀어 올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 발의 유성우를 거슬러 엄청난 속도로 솟구쳤다·
원시마법(原始魔法) : 성련팔극식(星聯捌極式)
구종(八種) – 외법(外法)
[천추(天墜)]
쿠과과과과!!!!!!
수백 발의 별빛이 사선으로 가속하며 포탄처럼 떨어져 내렸다·
광라무해궁의 영역 위로 수십 미터 빛의 기둥이 솟구치면서 공간을 소멸시켰다·
팟!
시공을 도약한 레녹이 무해궁의 영역을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가로질렀다·
좌우로 솟구친 검은 기둥이 사선으로 기울어지고 무해궁의 중심에서 검은 구체가 솟구쳤다·
창조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천저(天低)
[흑해(黑解) : 극번(極燔)]
쿠구구구구!!!
무해궁의 영역에 떨어진 별빛의 폭격이 검은 구체로 빨려 들어가며 왜곡된다·
극번을 중심으로 광대한 나선을 그리며 회전한 용성군이 서로 충돌해 소멸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말레온과 레녹의 신형이 영역의 상공에서 격돌했다·
[타락(墮落) : 육천(戮穿)]
[흑혼(黑昏)]
[은라만상(銀喇萬狀)]
[용화(龍禍)]
날카로운 뇌광과 육중한 성광이 영역과 전역의 시공을 가로지르고 폭발했다·
흑뢰를 흩뿌리는 레녹과 은염을 두른 말레온의 거체가 허공에서 교차한 순간·
무수한 흑선이 천구를 쪼개고 부수듯이 일렁이고 방대한 흑뢰의 해일이 범람했다·
콰과과과과과!!!!!
수천 미터 반경에 달하는 은하용성군의 광대한 경계선을 둥글게 쥐어 박살 내듯·
만상을 해체하는 흑뢰의 난무 속에서 별빛이 떨어지며 폭발하고 분쇄된다·
검은 피로 물든 레녹과 불꽃으로 일렁이는 선종의 손이 서로를 향해 휘어진 찰나·
흑색의 헤일로와 은빛의 유성우가 수백 번씩 터져 나와 소멸하며 세계를 불태웠다·
쩌저저저정!!!
우로보로스를 영창하는 순간마다 수십 개의 검은 헤일로가 동시에 펼쳐진다·
레녹에게 남아 있는 마력과 시간을 극한까지 불태우는 천저술식(天低術式)의 난사·
새하얀 은염으로 이뤄진 용의 전신에 흑색의 파문이 수백 번 떠올랐다 사라지고·
그 모든 피격지점마다 흑선과 흑뢰가 점철되며 말레온의 육신을 지워 없앤다·
콰지지지직-!!!!
우로보로스 마법체계· 성질변화 천저(天低)·
섭리의 가장 낮은 곳에서 해석을 포기한 타락의 공능이 쏟아지는 모든 반동을 ‘해체’하고·
그 이상의 파멸을 담아 말레온의 육체를 넘어 선종의 영혼까지 넘보기 시작한 순간·
[어림없다!!!!!]
선종이 섬뜩한 포효와 함께 회전하는 검은 헤일로를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으직!!!
헤일로와 접촉한 승천자의 팔이 그 자리에서 분쇄되어 흩날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해체되는 왼팔을 뻗어 헤일로를 뚫고 레녹의 목줄을 움켜쥔 찰나·
[마법사!!!!!]
선종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팔을 휘둘러 레녹을 영역 저편에 처박아버렸다·
뻐어어엉!!!
“···!!”
타격과 반동을 해체해 없앴음에도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
소리없이 검은 피를 토해낸 레녹이 공허한 눈으로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 순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말레온의 거체가 인지의 속도를 넘어 레녹을 찍어눌렀다·
콰아아아앙!!!!
“큭···!!!”
[상대하기 어렵다 못해 역겹게까지 느껴지는 공능이로군·]
사라진 왼팔 대신 오른팔로 레녹의 목을 짓누른 선종이 섬뜩하게 말했다·
[술식을 맞댈수록 네게 힘을 보태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싸울수록 손해를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음이라·]
해석을 빼고 해체를 더한 우로보로스의 천저술식·
해체하며 분쇄한 모든 것은 고스란히 우로보로스를 돌리는 동력이 된다·
선종은 레녹과 술식을 맞댄 직후 그것을 깨닫고 잠깐의 손해를 감수하고 억지로 공방을 끝내 버렸던 것·
[하나 이 몸과 영혼을 해체하여도 이 사상전역 안에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화르르륵!!!
하늘에서 떨어진 별빛이 말레온의 왼팔에 내려앉으며 은염으로 화한다·
은의 불꽃이 말레온의 왼팔을 새롭게 형성하면서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네 술식이 섭리를 거스르는 힘을 지녔다 해도 이 싸움의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왼손으로 레녹의 머리를 겨눈 선종이 섬뜩한 눈길로 말했다·
[여지조차 남지 않게 단번에 머리를 터트려 주마·]
키이이이이잉···!!!
사상전역을 구성하는 수십 갈래 유성우가 선종의 손안에 모여든다·
빛을 극한까지 집속시켜서 술식대상을 소멸시키는 9레벨의 주문·
구종(九種) – 외법(外法)
[멸요(滅曜)]
우로보로스의 위험함을 확인한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레녹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술식을 완성· 그대로 멸요의 빛을 떨어뜨린 순간·
무해궁의 영역 위로 장엄한 은색의 별빛이 해일처럼 넘실거렸다·
콰아아아아앙!!!!
하지만 그 빛의 중심에서 레녹은 여전히 쓰러진 채 선종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그을리긴 했지만 선종이 터트린 멸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듯한 모습·
[술식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육신을 보존해냈다고···?]
처음으로 선종의 공허한 눈동자가 혼란의 빛으로 물들었다·
[불가능하다· 구종 외법의 출력은 어떤 초월자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원시마법 멸요(滅曜)는 별빛을 터트려 그 반동으로 대상을 소멸시키는 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레녹이라 해도 전력으로 술식을 해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기에 선종 역시 레녹이 해체에 집중하는 사이 의식의 간극을 파고들어 육신을 찢어발길 생각이었으나-
[너 자신이 나의 술식을 완벽하게 해체한 것이 아니군·]
선종의 공허한 눈동자가 싸늘한 살기를 머금었다·
[나의 술식성능 자체에 문제가 생긴 건가·]
“은은 독과 반응하여 변색되고 변성되지····”
레녹이 그걸 보며 미약한 기침을 토해냈다·
“순수한 은에서 멀어질수록 마력의 전도율과 변환율 역시 떨어진다····”
[···설마·]
치이이익···!!!
레녹의 몸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던 말레온의 오른팔·
그 위로 검게 물든 레녹의 피가 맞닿아 말레온의 몸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아주 지독한 독액이 은과 맞닿아 반응하고 있는 듯한 모습·
원시마법 성련팔극식은 용종의 고유마력을 강력한 열원으로 변환하는 힘·
은의 강력한 열과 마력 전도율을 은룡으로 태어난 말레온이 갖고 있었기에 허락되는 술식이다·
하지만 은룡의 몸에 독을 섞어 은의 변성을 유발하면 마력을 열원으로 변환하는 효율이 떨어진다·
올리비에라가 레녹에게 조언해 주었던 은의 성질을 지니고 태어난 말레온의 약점 아닌 약점·
레녹은 그것을 기억하고 독에 물든 자신의 피를 교전 도중 말레온에게 끊임없이 흘려 넣었고·
마침내 말레온의 술식출력이 떨어지는 수준까지 변성을 유발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육체의 특성을 변질시켰다 해도 사상전역 안에서 나의 술식출력에 개입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해· 애초에-]
선종이 무언가 깨닫고 퍼뜩 시선을 들어 올렸다·
[설마 이 영역의 능력은-!!!!]
신이 없는 세계를 꿈꾸는 무해의 사도·
존재하는 모든 것을 현실의 법칙 아래 끌어내는 죽지 않는 것을 죽이는 처형대·
그렇기에 광라무해궁은 은하용성군 안에서도 말레온의 육신을 현실의 법칙 아래 되돌릴 수 있다·
처음부터 전부 여기까지 의도된 것인가·
서로의 술식을 부딪히며 레녹의 피를 전신에 묻히고·
우로보로스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억지로 육탄전을 강제하고·
스스로 광라무해궁의 영역까지 내려와 레녹과 거리를 좁힌 지금·
“당연히 처음부터 여기까지 생각해 두었지·”
키이이잉!!!
레녹의 손안에서 극한까지 작게 압축된 검은 헤일로가 회전했다·
리볼버의 탄환처럼 압축된 헤일로를 쥐고 말레온의 심장에 겨눈다·
자성영역 전개· 광라무해궁의 영역 해방·
영역의 고정된 형태를 해방하여 무해궁의 능력을 영역 전체가 아닌 일점에 담아 압축하는 것·
그리고 두 초월자 사이에 떨어진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이 순간만이·
“네 위계를 직접 ‘해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순간일 테니까·”
철컥!!
무해궁의 심상과 우로보로스가 뒤섞인 헤일로가 이중의 나선을 그리며 일그러진다·
손가락을 기울이는 것과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헤일로를 튕기듯이 쏘아내며 레녹이 속삭였다·
“떨어져라 승천자·”
빠직!!
나선으로 뒤틀린 흑광이 승천자의 심장을 관통한 그 순간·
말레온의 내면에서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