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g-Eating Genius Mage Chapter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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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화

9레벨(22)

팔겁의 시련 입구· 안개가 폭풍처럼 흩날리는 관문의 초입·

지금 이 순간에도 상승하는 쿤다라를 따라 관문의 환경 역시 격변한다·

다리가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안개가 거칠게 회전하며 흩날렸다·

쿠오오오!!

자욱한 안개 저편에서 두 사람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장서 걷는 붉은 눈의 소녀와 로브를 뒤집어쓴 남성의 모습·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소녀가 저 멀리 서 있는 거대한 학을 보고 멈춰 섰다·

“칠겁의 관리자구나·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걸·”

“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칠겁의 관리자 허령이 노쇠한 눈동자를 들어 포혈공을 바라보았다·

“팔대용왕 전원에게 소집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포혈공께서 응하지 않으실 리 없겠지요·”

“지학(知鶴)의 일원이니 알고 있는 건 많겠네·”

포혈공이 고개를 까닥였다·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말해봐· 용왕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배천용왕과 철쇄용왕께서 일겁과 육겁 사이를 도맡아 단명종을 찾고 계십니다·”

허령이 조용히 답했다·

“일각용왕과 염천용왕께서 쿤다라 바깥에서 권역을 붙여가며 도시를 잡아두고 계시지요· 수신용왕께서는ㅡ”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닌데·”

포혈공이 고개를 쓱 기울였다·

“전륜이랑 귀백은? 애초에 견뢰와 상대가 될 법한 상성을 가진 건 그 둘 뿐이잖아·”

“····”

허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포혈공의 뒤에 선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림자를 조용히 바라보던 허령이 소녀에게 물었다·

“가시려는군요·”

“내 결정은 아니야·”

포혈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부탁을 받았으니까· 들어줘야지·”

“많이 변하셨군요·”

허령이 끌끌 웃었다·

“제가 알고 있는 포혈공은 그런 분이 아니셨는데·”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은 거면 비켜·”

퉁명스레 대꾸한 포혈공이 말했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관리자의 책무를 다할 생각이야?”

“책무라····”

눈을 감은 학이 조용히 답했다·

“그런 것을 엄격하게 따지기에는 이 늙은이가 너무 오래 살았군요·”

“····”

“요즘 들어 나이를 먹다 보니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도 초점이 잘 안 맞지 뭡니까·”

허령이 조용히 웃었다·

“지금이라면 누군가 이 다리를 지나가도 눈앞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상 어떤 문답이 필요할까·

포혈공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령을 스쳐 지나갔다·

학은 두 사람이 지나가기 쉽게 날개를 열어주었다·

고개를 숙인 그림자가 허령의 날개를 스쳐 지나가던 순간 허령이 조용히 속삭였다·

“말레온 님을 부탁하네·”

“····”

부탁이라는 말은 과연 허령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

말레온이 무사히 쿤다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의 부탁일까·

아니면 말레온이 편안하게 안식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부탁일까·

어느 쪽이든 의미없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그런 모호함조차 결정을 맡긴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지·

결국 말레온의 결말을 정해줄 수 있는 것은 허령이 아니었으니까·

“그러지·”

레녹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소환사와 소환수를 구분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소환사는 달라도 소환수는 영계에서 계약을 맺은 영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견의 이야기일 뿐 계약 그 자체로 갑을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가 소환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계약을 맺은 당사자들뿐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레녹이 포혈공의 소환수로 위장한다는 작전은 지극히 성공적이었다·

“혈영궁의 주인께서 간만에 외출을 나오셨군요·”

“곁에 두신 것은 새로운 애완동물입니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무척 유용한 물건이겠군요·”

“팔대용왕께서 흡혈공의 합류를 크게 반기실 겁니다·”

“····”

오겁과 육겁 칠겁에서 마주친 모두가 포혈공의 옆에 선 레녹의 존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

오히려 포혈공이 끌고 다니는 소환수의 존재가 당연하다는 듯 먼저 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그제야 포혈공이 어째서 이런 작전을 구상했는지 이해한 레녹이 물었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소환수를 끌고 다닌 적이 있었나보군·”

“소환수는 아니고·”

포혈공이 태연하게 답했다·

“성전에서 잡은 교단의 인간들을 이런 식으로 다뤘거든·”

“····”

“신앙을 매개로 한 교단의 술식에 흥미가 있어서 말이야· 죽이는 대신 이런저런 실험을 좀 했었지·”

레녹이 할 말을 잃고 침묵하는 사이 포혈공이 말했다·

“그때 죽여야 할 인간도 살려서 끌고 다니다 보니 이런 망측한 별명도 붙은 거였고·”

“그럼 포혈공이라는 말은····”

교단원을 죽이는 대신 끌고 다닌 포혈공의 행동을 비꼬는 의미였던 건가·

예상치 못한 어원에 레녹이 고개를 젓는 사이 두 사람은 팔겁의 관문 앞에 도착했다·

두 사람을 눈감아주는 허령을 지나 팔겁의 전당 안으로 진입했다·

창립자들을 기리는 조각상들이 좌우로 양립한 거대한 전당· 천장에 뚫린 유리를 통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안개·

그 앞에서 푸른 불꽃을 두른 거대한 순록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로성 최고위원· 팔겁의 관리자· 면록(冕鹿)이라 불리는 진혈 장생종의 하나·

“레그누스·”

“결국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나·”

후욱!!

순록이 거칠게 뿔을 흔드는 것과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푸른 머리칼을 지닌 청년으로 의태한 레그누스가 굳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말레온 어리석은 놈···!”

레녹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숨길 수 없는 감정으로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분명 무모한 일이라 하였는데···!!”

“····”

레그누스는 말레온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며 그를 원로성에 추천한 장본인·

말레온을 막아서기는 했지만 반대로 의식을 도와주기도 한 고대의 장생종이다·

본질적으로 말레온을 아끼는 자였으니 일이 이렇게 된 시점에서 그가 심란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다오·”

감정을 숨기려는 듯 눈을 감은 레그누스가 중얼거렸다·

“말레온은 어떻게 된 것이냐·”

“선종이라 불리는 승천자의 사념에 몸을 빼앗긴 채 폭주하고 있다·”

레녹이 대답했다·

“말레온 그노시스를 한계까지 몰아넣은 여러 인과가 있었고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무너져 버렸지·”

“····”

“하지만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나는 다시 구겁으로 올라가 말레온을 멈출 생각이다·”

투명한 시선으로 레그누스를 바라보며 레녹이 물었다·

“막을 생각인가?”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곳에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청년이 고고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너희들이 팔대용왕의 권역에 숨통이 조여져 가는 것을 마음 편하게 구경하고 있었겠지·”

“····”

그렇게 말한 레그누스가 걸음을 돌려세웠다·

“따라오도록· 승급의 법진이 위치한 구겁의 입구까지는 안내해 주마·”

레그누스는 팔겁에서 레녹과 말레온이 치른 승급 의식을 지켜본 관계자들 중 하나·

그런 만큼 레녹이 말레온을 강제로 폭주시켰다는 소문을 믿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먼저 나서서 레녹을 도와주려 할지는 몰랐다·

잘해도 허령처럼 묵인하는 선에서 그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말레온을 아꼈던 것일까·

“레그누스 아이롬은 말레온 그노시스가 아룡(兒龍)일 때부터 지켜본 대부였지·”

그런 레녹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포혈공이 말했다·

소녀가 셈을 하듯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레온의 비밀을 아는 만큼 그를 아끼면서도 가여워했어· 지금 이 도시에서 협력자를 한 명 구해야 한다면 레그누스가 가장 적합할 거야·”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레이시····”

앞장서 걷던 레그누스가 험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그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말레온의 치부를 함부로 단명종에게 이르는게냐·”

“말레온이 잘못된 시점에서 그의 진체(眞體)가 어떤 모습인지 견뢰도 보았을 테니까·”

서슬퍼런 레그누스의 기세에도 소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견뢰는 그걸 알고도 다시 구겁으로 돌아가려 하는거야· 그에게 모든 것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게 맞지 않겠어?”

“····”

“말레온을 도와 승급 의식을 집도한 견뢰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지금 다시 구겁에 올라가는 시도조차 할 수 없겠지·”

포혈공 레이시가 팔짱을 긴 채 레그누스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난 견뢰에게 그만큼 합당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

레그누스 역시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조용히 두 사람을 앞서 걷던 청년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파우드 올더는 고대의 진혈종 중에서도 유달리 이질적인 존재였다·”

“····”

“대륙 바깥에서 태어난 장생종이자 재귀와 경정의 힘을 관장하는 존재였지· 심유한 식견과 지성을 보유했기에 장생종 중에서도 그를 숭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레그누스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차갑게 변했다·

“하지만 본인의 성정은 다분히 맹목적인 구도자에 가까웠으니· 그는 이 도시를 제물로 삼아 과거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

“···선종이 과거에서 답을 찾았다고?”

“진혈(眞血)이란 세계를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유전형질· 그렇기에 진혈은 사라진 구세계와 이어지는 ‘촉매’로서도 기능하지·”

레녹의 반문에 레그누스가 대답했다·

“파우드 올더는 창립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매개로 삼아 9레벨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진혈을 사용해 자신을 과거와 연결했지·”

“····”

“그 때문에 승천자가 된 선종이 생전과는 꽤나 다른 성정을 지녔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던 거다·”

레그누스가 표정을 숨기듯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승천자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일부를 구겁에 남겨두었던 게야· 그것이 안배가 되어 자신과는 다른 방식의 가능성이 되기를 바랐겠지·”

“····”

“실패했어야 했던 승급 의식이 성공했기에· 너와 말레온이 주어진 것 이상을 해냈기에 그가 깨어났다면·”

전당의 풍경이 레녹의 눈에도 서서히 익숙해진다·

말레온과 함께 도착했던 승급의 법진이 위치한 구겁의 입구·

겁의 시련으로 향하는 관문이 멀지 않았음을 레녹이 깨달은 순간·

레그누스가 결연한 눈빛으로 레녹을 향해 걸음을 돌려세웠다·

“나는ㅡ”

[여기 있었군·]

콰아아아앙!!!!

전당의 벽면이 폭발하듯이 부서지며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포수처럼 쏟아진 물이 사방으로 밀어닥치면서 복도를 가득 채우고 넘실거렸다·

쏴아아아!!!

포혈공과 레녹이 즉시 물길을 피해 움직이고 레그누스가 결계술을 영창했다·

쏟아지는 물길을 막는 레그누스의 뒤로 조각상에 올라탄 레녹이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농도 높은 염분···· 바닷물에 가깝다· 설마?’

평범한 정수가 아니라 염분 농도가 높은 해수의 냄새·

팔겁의 전당에서 이만한 양의 해류를 자유롭게 지배하는 존재라면 단 하나뿐이지 않은가·

[네놈이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우리 용왕의 눈을 피했을 줄 알았지·]

쿵!!

쏟아지는 물길 너머 푸른 비늘을 두른 거대한 수룡(水龍)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면을 짓밟고 몸을 꿈틀거리면서 순식간에 사방을 해수로 채운 용종의 신형·

[나를 농락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용종의 머리 꼭대기에 서 있었음이야·]

“···알로건·”

쿤다라의 모든 해역과 해류를 지배하는 수신용왕 알로건·

심해권역에서 한차례 상대했던 8레벨의 용왕이 팔겁의 전당을 박살 내고 직접 들이닥친 것이다·

용왕의 푸른 눈동자가 섬뜩한 흉성을 품고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 경험과 판단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군·]

“수신용왕· 이게 무슨 짓인가!!”

레그누스가 굳은 표정으로 알로건을 향해 소리쳤다·

“허락도 없이 팔겁을 침범하고 더럽히다니· 관리자로서 이 일을 보아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면록의 수장· 지금 질책을 받아야 하는 것은 본인이 아닐 텐데·]

알로건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레그누스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팔대용왕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팔겁을 봉쇄하고 저 인간을 돕다니· 이것이 원로성의 결정인가?]

“···!!!”

[우리 용종이 쿤다라의 외곽을 수호하고 있는 것은 안개의 우주에서 반영구적인 권역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우리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는 우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이는군·]

레그누스와 알로건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맞부딫혔다·

[용종의 입장을 대변하던 말레온 그노시스가 없는 지금 본인이 원로성의 권고를 따라야 할 이유가 있나?]

“이건 원로성과 팔대용왕의 문제이 아니다· 말레온이 승천자가 된 시점에서 도시의 명운은ㅡ”

쿤다라 내부에서도 원로성과 팔대용왕 사이에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있던 것인가·

하지만 레녹은 두 장생종의 대화를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심해권역에서 나를 상대한 경험을 살려서 바로 팔겁으로 치고 들어온건가·’

레녹이 구겁에서 추락해 쿤다라에 떨어지는 것을 외겁도시 전역의 장생종이 지켜보았다·

그 직후 말레온의 폭주가 알려졌으니 문제의 원인을 레녹에게 찾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레녹을 추살하기 위해 도시를 탐색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알로건은 다르게 판단했다·

그는 레녹이 애초에 포위망에 잡히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처음부터 팔겁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그리고 레녹의 존재를 포착한 순간 팔겁의 전당을 깨부수고 난입해 버린 것이다·

우격다짐에 가까운 발상이나 결과적으로 그 판단이 옳았음을 알로건은 증명해 냈다·

심해권역에서 레녹을 상대하며 그 능력을 체감한 알로건이기에 가능했던 판단·

[관리자의 권한으로 팔겁의 시공을 봉쇄하여 기척을 차단한 모양이지만 상관없다·]

알로건의 말과 동시에 흘러넘치는 물길이 용의 머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싸움이 시작되고 나면 쿤다라 전역에서 이곳의 이변을 눈치채고도 남을 테니·]

“···!!!”

쏟아지는 물길을 전신에 휘감고 거침없이 술식을 영창한다·

물길을 극한까지 압축시킨 뒤 초음속의 속도로 회전시켜 쏘아내는 수신술의 정수·

[천수(穿水)]

콰아아아아!!!

알로건의 입에서 레이저처럼 쏘아진 물줄기가 레녹이 올라탄 조각상을 관통했다·

고개를 비트는 것과 동시에 새파란 수류가 팔겁의 전당을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카가가각!!!

전당에 도열해 있던 창립자들의 조각상 십여개가 절단되어 떨어졌다·

점멸을 사용해 천수를 피해낸 레녹을 알로건이 흉험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팔대용왕의 이름으로 내 직접 네 죄를 벌하리라·]

“생각보다 험악하게 구는군·”

잘려나간 조각상의 단면 위로 착지한 레녹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떠날 때는 나쁘지 않게 끝났던 것 같은데· 혹시 그쪽에게 빼앗은 수명 때문인가?”

[기백년의 수명 따위에 집착하며 응어리를 품을 나이는 지났다·]

알로건이 싸늘한 전성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말레온은 다르지· 그는 팔대용왕을 이끄는 용종의 대변자였으니·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쿤다라의 외곽을 수호하는 고된 일을 받아들였다·]

“····”

[네놈이 구겁에서 말레온에게 삿된 사술을 걸고 쿤다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으려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

입을 다문 레녹을 향해 알로건이 선포했다·

[네놈을 이 자리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여서 말레온의 폭주가 멈추도록 도와주는 것뿐···!!!]

쿠구구구구!!!

잘려나간 조각상 파편이 쏟아지는 물살에 실려 순식간에 떠내려 간다·

쿤다라의 해류를 지배하는 수신용왕· 그가 존재하는 곳이 곧 심해권역이나 다름없으니·

자신의 존재만으로 팔겁을 가득 채울 정도의 수류를 형성하고 지배하는 용왕의 힘·

그러한 용왕 여럿이 모여서 레녹을 상대하면 레녹 역시 전투를 피할 수는 없겠지·

“견뢰·”

촤악!!

그 순간 레녹의 눈앞에 피로 만들어진 장막이 드리우며 소녀가 나타났다·

조각상의 단면 위에 올라탄 그녀가 레녹을 막아서듯이 돌아섰다·

“팔겁의 끝까지 달려·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할 생각인가?”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포혈공이 담담한 표정으로 손목을 꾹 누르면서 말했다·

동시에 그녀의 손목 끝에서 솟구친 혈액이 길쭉한 낫의 형태로 변했다·

허공에서 회전하는 피의 낫을 움켜쥔 소녀가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알로건과 다른 용왕들은 이쪽에서 막고 있을게· 일각(一刻)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을거야·”

“····”

“그 틈에 끝내· 할 수 있겠어?”

포혈공과 레그누스가 아무리 강력한 술사라 해도 여덟 용왕을 상대로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까·

술식 성능을 겨룬다면 모를까 단순한 힘 싸움에서 용왕은 굉장히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다·

그런 용왕 일곱을 더 상대해야 한다면 흘러넘치는 힘의 파도에 휩쓸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

포혈공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서 레녹을 위해 시간을 벌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사실 이유는 알고 있다·

올리비에라가 말했던 것처럼 포혈공 역시 같은 비원을 품고 있음을 알았으니까·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그녀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가며 시도했던 구원에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어주기 위해·

카이세의 계획이 다음으로 향하는 해답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메아리였음을 인정했기에·

그녀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레녹에게 결착을 맡기려고 하는 것이다·

레녹이 구겁에 다시 올라갈 방법이 있다고 말했을때 포혈공은 그 방법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려 할 뿐·

프로젝트에서도 그녀는 틀림없이 아주 유능하고 협조적인 동료였겠지·

포혈공 레이시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 마드리치 오니온·

카이세의 곁에 함께했던 눈이 부실정도로 걸출하고 뒤틀렸던 재능의 소유자들·

그렇기 때문에ㅡ

“···아니·”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와서 시간을 재고 있을 여유는 없겠지·”

“뭐?”

“구겁에 다시 올라가기 위한 방법·”

품 안에 손을 밀어넣은 레녹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하겠다·”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아직 구겁의 입구까지 도착하지도 못했어·”

당황항 포혈공이 양손으로 낫을 부여잡은 채 빠르게 말했다·

“구겁의 시련은 물론이고 승급의 법진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손을 쓰겠다는거야?”

“처음부터 시련이나 승급 의식에 손을 댈 생각은 없었어·”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천천히 손을 꺼내들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조금 더···· 근본적인 것이었으니까·”

딸깍·

손 안에서 흔들리는 자수정을 닮은 약병·

그것의 뚜껑을 열자마자 그 안에서 음습하기 그지없는 사념이 새어나왔다·

[죽어···· 죽여···· 죽어····]

[벌레들을 도축해라····]

쿠오오오!!!!

약병 안에서 들려오는 지독하게 말라비틀어진 무언가의 사념·

온갖 음습하고 타락한 염상으로 점칠된 ‘독액’·

승천에 실패해 죽은 초월자의 내단과 니백스의 진혈을 섞어 만든 승천의 비약·

“미쳤어···!!”

그제야 레녹이 꺼내 든 독약의 정체를 깨달은 포혈공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걸 마시면 죽어· 너 쿤다라의 일을 해결하고 그 자리에서 죽을 생각이야?!!!”

“구겁에 다시 올라간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야·”

레녹이 조용하게 답했다·

“구겁 외곽에서 십관까지 돌파해서 말레온과 선종을 상대하고 카이세의 유해를 회수해야 한다·”

쿠과과과!!!

지금 이 순간에도 레그누스와 알로건이 전당 저편에서 격렬하게 술식을 휘두르고 있다·

레그누스의 결계와 알로건의 수신술이 천변만화하면서 회전하고 물줄기와 결계 파편이 일그러지면서 증발하는 격전·

하지만 주변의 물을 아우르는 전투 속에서 알로건 역시 곧바로 레녹의 이상을 눈치챘다·

약병을 든 레녹을 홱 돌아본 알로건의 살기가 더욱 흉포하게 일렁였다·

[네놈 뭘 하려는 게냐!!!!]

“이 모든 과정을 시간 안에 끝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천천히 약병을 입가에 가져다댄 레녹이 말했다·

“그건 내가 잠깐이나마 승천자와 비슷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뿐이지·”

승천의 비약은 복용자를 진짜 승천자로 만들어주는 물건이 아니다·

다만 승천자와 동일한 ‘상태이상’을 복용자에게 유발하는 극독일 뿐·

하지만 승천자가 된 ‘감각’을 잠시나마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레녹에게는 충분했다·

구겁의 시련을 조건없이 통과하고 구겁 내부에서 영압에 억압받는 일 없이 싸우기 위한 방법·

십관의 끝에서 폭주하는 말레온 그노시스와 다시 한번 마주하기 위한 수단·

“승급 의식을 도울 때도 그랬지만 뭐든지 한번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지·”

[멈춰!!! 가만두지 않겠다!!]

출렁!!

알로건의 노성과 함께 사방에서 일어선 파도가 합쳐지며 거대한 해일로 변한다·

하지만 레녹은 머리 위로 드리운 해일을 보면서 망설임없이 약병을 들이켰다·

“9레벨의 승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꿀꺽·

“지금부터 직접 확인해 보겠다·”

콰아아아아아!!!!

직후 알로건이 터뜨린 해일이 레녹이 서 있던 자리를 엄청난 속도로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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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g-Eating Genius Mage

Drug-Eating Genius Mage

Drug-Eating Genius Mage, Medicine-eating wizard
Score 9
Status: Ongoing Type: Released: 2020 Native Language: Korean
“World”, a game that boasts extreme freedom. In “ver.3.0”, I decided to put everything to increase the magic talent! All stats are all about magic! Instead of enhancing the character’s magic talent, took a huge amount of demerit characteristics. But, it doesn’t matter. I will create the greatest Wizard character, even if the character looks like a corpse. But…. What is this? I became that character– a character with genius talent, but can’t pass a day alive without taking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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