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화
9레벨(19)
타앙!!
허공에서 터져 나온 황금빛의 정광이 격렬한 엔진처럼 회전하면서 공명한다·
구세계의 마총 테레메르의 종언이 지닌 여섯 번째 형태 [용의 노래]·
사용자의 부분심상을 탄환 삼아 쏘아내는 이 능력은 말 그대로 드래곤 브레스를 모방하는 힘이다·
용종의 가장 강력한 특권이라 불리는 용명권능· 심상을 ‘소모’해 쏘아내는 심의·
마총의 방아쇠를 당긴 레녹이 타락해가는 말레온의 본체에 탄환을 쏘아낸 그 순간·
[오오오오오오!!!!]
흉험한 포효를 터트린 보석룡이 앞발을 들어 엄청난 속도로 레녹이 쏘아낸 탄환을 후려쳤다·
으지지직-!!!!!
모든 것이 억압당하고 붕괴하는 구겁의 시공에서도 만화경은 그 빛을 잃지 않는다·
말레온의 오른쪽 앞발부터 어깨와 등허리 부근이 으깨지면서 소멸하고·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공명음과 동시에 거대한 용의 우반신을 꿰뚫고 지나갔다·
파아아아앙!!!!
[···!!!]
거대한 용의 어깨 위로 황금빛의 파문이 회전하고 맞닿은 육체가 지워지듯 소멸했다·
직격· 그것도 보석룡의 오른쪽 상반신 반절 가까이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격이다·
하지만 레녹은 말레온의 반신이 깎여나간 것을 보자마자 전력으로 몸을 옆으로 내던졌다·
스팟-
동시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둘러진 말레온의 꼬리가 레녹이 서 있던 자리를 후려갈겼다·
쩌어어어엉!!!!
공간 자체가 쪼개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굉음·
충격파를 따라 뒤로 밀려난 레녹이 무릎을 꿇고 힘겹게 기침을 터트렸다·
“쿨럭···!!!”
마력사나 점멸을 사용해 움직임을 보조해야 했지만 마력 고갈로 충격파를 피하지 못했다·
그것만으로 몸에 두르고 있던 실드가 모조리 박살 나고 앞섶 셔츠마저 피로 흥건했다·
“설마 했는데 용명권능을 탄환의 형태로 쏘아내는 마총이었나·”
슈우우···!!
천천히 앞발을 내린 말레온의 거체에서 선종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 탄환에 담긴 ‘심상’· 정체는 모르겠지만 보통 능력은 아니로군· 존재론적으로 상성의 우위에 서는 힘인 건가?”
“····”
“용종의 신체조작능력을 사용하고도 이 정도 피해라· 마력이 고갈 난 것이 아니었다면 사단이 났을지도 모르겠어·”
말레온은 레녹이 쏘아낸 마탄을 피하거나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버틴 것이 아니다·
마탄의 격발을 감지한 순간 몸을 회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혈관과 신경 장기 같은 신체기관을 좌반신으로 이동·
살점과 근육만이 남은 우반신을 방패 삼아서 마탄을 받아내고 그대로 잘라내듯이 버렸던 것·
온몸의 혈관과 신체기관의 위치를 마음대로 조작 가능한 축복받은 용종에게만 허락되는 기예·
제 자리에 주저앉아 피를 흘리는 레녹을 선종이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력이 고갈된 채로 이 정도 출력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대마법사답군·”
“····”
그건 틀렸다·
레녹이 용의 노래를 사용해 일격에 전투를 끝내려 한 건 애초에 여력이 없기 때문이었으니까·
팔겁에서 진행된 승급 의식· 진둔이 남긴 법진 조작과 구겁의 진입·
구겁의 끝까지 돌파하면서 남아 있는 마력과 기력을 바닥까지 긁어낸 상황·
도핑으로 끌어낸 마력을 모조리 마총에 밀어 넣고도 결국 제대로 된 출력을 내지 못했다·
그 결과 레녹의 심상 일부를 탄환으로 삼아 말레온을 맞추고도 그를 무력화시키는 데 실패해 버렸던 것·
“안타까운 일이군· 너 정도 되는 대술사의 도움을 빌려야 이 머리의 ‘절삭’과 ‘접합’을 맡길 수 있었을 텐데·”
쿵!!
거대한 용종의 앞발을 내디딘 말레온의 몸을 빌려 선종이 말했다·
“인간종과 용종의 혈관을 잇는 정교한 작업은 아무 뜨내기에게나 맡길 수 없단 말이다·”
“····”
절삭과 접합이라·
레녹은 그 와중에도 그 두 가지 술식을 특기로 삼는 두 술사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독특한 술식을 지닌 술사들이 모두 연맹 소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 과연 우연일까·
의식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레녹이 그런 무의미한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좋게 풀어가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뚜둑 뚜두둑···!!!
그 순간 근육과 뼈가 파열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용의 형태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보석룡의 몸이 그 자리에서 압축되면서 쭈그러드는 듯한 기묘한 모습·
그 안에서 선종의 머리가 천천히 사라지면서 느긋하게 속삭였다·
“지금부터는 말레온 그노시스 본인에게 맡겨둘까·”
우드드득···!!!
의태가 끝나고 용의 머리를 지닌 거인의 모습이 다시 내려섰다·
처음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레온 본연의 모습·
그가 승천자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까지 유지하고자 했던 어설픈 의태·
하지만 레녹을 바라보는 그 눈에는 더 이상 온화한 호의가 보이지 않았다·
동공을 뒤덮은 안광을 거칠게 번뜩이며 초점 없는 눈으로 레녹을 응시했을 뿐·
쿠구구구!!!!
그것을 보자마자 레녹은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레녹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말레온이면서도 말레온이 아니다·
외해 저편에서 들려오는 선율에 몸을 맡기고 폭주한 채로 정신을 잃고 9레벨에 도달한 술식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별빛의 지배자·
쿤다라 전역을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도 위험한 초월자·
부아아아아앙!!!
말레온의 손짓과 함께 허공에서 강렬한 별빛이 떠올라 거칠게 회전했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떠오른 ‘별빛’이 섬뜩한 회전음과 함께 열기를 더하고 발광한다·
그 심상치 않은 마력을 응시하던 레녹이 표정을 찌푸렸다·
“출력이····”
구겁을 넘는 동안 계속해서 떨어지던 말레온의 술식출력이 어느새 완벽하게 회복되어 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조차 쉴 새 없이 펌핑되고 있는 상황·
“여기까지 오면서 십관을 봉인한 ‘피의 계약’을 활성화시켰지?”
그런 레녹의 의문에 답하듯이 선종이 말했다·
“열 가지 진혈을 조합해 만든 피의 계약은 진혈종이 구겁에서 받는 억압을 반감시켜 주지·”
“····”
십관 안으로 들어온 뒤로 말레온의 상태가 급격하게 호전된 것이 그것 때문이었나·
“말레온 그노시스와 내가 동시에 이 육신에 가해지는 구겁의 영압을 반감시키고 있으니·”
선종이 속삭였다·
“이 순간 오직 나와 은성만이 외해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존재다·”
키유우우웅···!!!!
말레온과 알고 지낸 이후 단 한 번도 레녹을 향한 적 없던 원시마법 성련팔극식·
무수한 미라와 격벽을 찢어발긴 별빛이 처음으로 레녹을 향해 흉성을 품고 번뜩인 찰나·
쩌어어어어엉!!!
엄청난 속도로 내리찍힌 별빛이 정확하게 레녹이 서 있던 자리를 관통하고 폭발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귀가 먹먹해지는 폭발·
순간적으로 몸이 붕 떠올라서 밀려나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전신을 두들겼다·
쿠과과과과!!!
직전에 몸을 뒤로 던지고 마력사로 방향을 조절했음에도 피할 수 없는 여파·
마른 기침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다 연달아 배를 두들기는 충격이 턱 멈춰 선다·
숨조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처참하게 십관의 내벽 사이를 나뒹굴었다·
“큭···!!!”
“용종의 육체가 아무리 강대하다고 해도 승천자가 직접 사용하는 고유술식에 비견될 수는 없지·”
자신이 만들어낸 파괴의 참상을 눈앞에 두고 저 멀리 쓰러진 레녹을 내려다보는 말레온의 신형·
창백한 안광을 번뜩이는 말레온의 내면에서 선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이 몸을 직접 다루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말레온 본인이 아니라면 원시마법을 쓸 수 없을 테니까·”
“····”
성련팔극식으로 확실하게 레녹을 죽이기 위해 폭주하는 말레온에게 통제권을 넘겨준 것인가·
말레온은 이미 외해의 선율에 모든 감각이 잠식당한 채 폭주하고 있는 상황·
이제 와서 말레온이 레녹을 알아보기를 기대하면서 지켜볼 수는 없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런 선종의 말을 듣고 오히려 희미한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라이프 베슬에 대해 모른다·’
팔겁의 전당에서 말레온의 도움을 받아 획득한 라이프 베슬·
레녹에게 예비 목숨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성물의 존재를 선종의 사념체는 모르고 있다·
그걸 알고 있다면 적어도 이런 식으로 레녹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을 터·
구겁의 여정에서 레녹이 말레온의 배신을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라이프 베슬의 존재를 뻔히 알면서도 말레온이 레녹을 배신하려 할지 그 경우의 수를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
결과적으로 말레온은 배신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폭주하고 타락하며 레녹을 적대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말레온의 기억을 모두 읽고 있는 건 아니야· 소실된 부분이 있는 게 틀림없어·’
힘겹게 숨을 고르면서 일어선 레녹이 눈을 빛냈다·
‘그럼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 있다·’
파앗!!
마력을 회복시키는 영약을 입안에 던져놓고 씹어 삼키면서 몸을 옆으로 던졌다·
[점멸]
말레온의 등 뒤에서 회전하는 별빛이 레녹이 쓰러진 자리를 터트리고 그 옆으로 미끄러졌다·
쿠과과과과!!
거대한 은빛의 기둥이 수평으로 십관의 내부를 휩쓸고 터트린다·
별빛의 광선이 이어지는 자리를 따라 국소규모의 폭발이 수십 번씩 이어지면서 장대한 별구름을 그렸다·
화아아악!!
닿는 것만으로 증발해 버릴 것 같은 뜨거운 성운 사이를 헤치고 미끄러진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전신에 이어붙여 마력사로 묶고 방향을 조정하면서 회전·
지상을 낮게 스치듯이 비행한 레녹의 신형이 순식간에 십관 바깥으로 이어지는 혈문으로 향했다·
“이런 도망칠 생각인가?”
선종의 목소리와 함께 말레온이 시선을 홱 돌려세웠다·
초점이 없는 안광을 빛내면서 팔을 휘두르자 그 손짓을 따라 다섯 개의 ‘별’이 떠올라 휘어지고·
혈문이 서 있는 곳을 향해 폭격처럼 쏟아져 내렸다·
퍼버버버벙!!!
사방에서 거세게 흔들리는 유리외벽· 주변에 자욱하게 깔린 별구름·
말레온의 마력이 어지럽게 뒤섞이면서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구름 낀 전장·
하지만 승천자는 자신이 터트린 별구름 속에서도 모든 것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폭주해서 이성을 잃고 있다고 해도 승천자의 감각과 직관은 그런 범주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아주 자그마한 기척이나 마력이라 해도 감각에 잡히는 즉시 포착하고 지워버릴 수 있는 바·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화악!!
그 판단을 통째로 부정하듯 레녹의 신형이 말레온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네 마력이나 기척에는 반응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힘겹게 웃는 레녹의 한쪽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여의주가 들려 있었다·
말레온이 구겁 외곽에서 레녹에게 선물해 주었던 여의주·
말레온 본인의 생명력을 채워 넣었기에 레녹이 여의주로 기척을 숨긴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말레온이 거칠게 포효하며 입안에 별빛을 담고 몸을 홱 돌려세웠다·
용명권능(龍命權能) : 엘드리치 브레스
말레온의 목구멍에서 회전하는 별빛이 거침없이 레녹을 향해 쏟아지기 직전·
[역(逆): 백락(白落)]
레녹의 손끝에서 솟구친 새하얀 번개가 말레온의 턱을 후려치고 브레스를 취소시켰다·
뻐어어어엉!!!
“···!!!!”
지금까지 레녹에게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강렬한 술식운용·
그 섬뜩하기 그지없는 뇌전의 파문에 말레온이 거칠게 포효한 그 순간·
레녹이 반대편 손으로 깔끔하게 비워낸 엘릭서 희석액 약병을 떨어뜨렸다·
딸깍!!
“간다·”
엘릭서를 복용한 직후 주어지는 대략 4초간의 현재마력량 고정·
막대한 마력소모를 강요당하는 구겁에서 레녹이 처음으로 제한 없이 운용하는 술식전개·
키이이이잉···!!!
머리 뒤에서 팔괘법진이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시간이 느려진다·
팔뚝을 타고 회전하는 새파란 번개가 사방을 저릿하게 물들였다·
극한까지 느려진 시간 속에서 레녹과 말레온이 동시에 서로의 간극으로 한 발을 내딛고·
승천자의 별빛과 마법사의 벼락이 거의 동시에 휘둘러졌다·
[무진(舞震)]
[천붕뇌락(穿崩雷烙)]
칠종(七種) – 외법(外法)
[성라운포(星羅雲布)]
쩌저저저저저저저정!!!
말레온의 손안에서 회전하는 일곱 갈래 별빛과 레녹이 휘두르는 뇌전이 충돌하면서 춤을 추고·
두 사람을 중심으로 거대한 빛의 폭풍을 그리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쿠과과과과과!!!!!
파열음과 충격음이 이어지지 못하고 연달아 터지는 폭발에 뒤덮여 겹쳐진다·
손짓 한 번에 수십 번의 영창이 동시에 사출되고 호흡과 사선을 스쳐 지나간다·
레녹과 말레온의 등 뒤로 별과 벼락의 빛이 교차하고 십관을 둥글게 회전하면서 모든 것을 불태웠다·
‘하지만···!!!’
레녹이 말레온의 원시마법을 본 것은 그가 승천자가 되고 난 뒤의 일·
하지만 반대로 말레온 역시 레녹의 전격마법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 사소한 경험의 부재를 이 4초의 시간 안에 극한까지 녹여 균형을 무너뜨린다·
빠직!!
극한까지 느려진 시간 속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것은 레녹이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말레온의 별빛을 돌파해 날카로운 뇌전이 용인의 어깨에 내려앉고·
말레온의 왼쪽 쇄골 근처가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비늘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괴벽(怪霹)]
뻐어어어엉!!!
“···!!!”
폭주하는 말레온의 얼굴에 본능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놀라움·
승천자로 다시 태어난 뒤 구겁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렀을까·
그 모든 전투경험이 말레온의 몸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움직이게 한다·
이미 말레온의 무력은 본신의 정신과는 별개의 영역에서 완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말레온은 단 4초의 공방에서 눈앞의 인간에게 순간적으로 밀리고 말았던 것이다·
타고난 용종의 본능과 승천자로서 손에 넣은 직관이 그 이해할 수 없는 결과 앞에 멈춰선 찰나·
파직!!
날카로운 뇌전을 움켜쥔 레녹이 말레온의 품을 파고들었다·
마탄으로 오른쪽 어깨를 벼락으로 왼쪽 어깨를 무력화시킨 지금·
말레온의 양팔을 순간적으로 못 쓰게 만들어 버린 이 순간에야말로 접근을 시도한다·
어깨가 박살 나며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승천자의 지근거리로 한 발을 내디딘 순간
화악!!
엘릭서를 복용해 얻은 4초의 시간이 끝나면서 모든 것이 제 속도를 되찾았다·
팔괘법진을 돌리며 느려진 시간과 사방에서 날뛰던 벼락·
레녹의 몸을 보호하던 간이결계와 실드가 거짓말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하지만 레녹의 손에 들린 뇌전 한줄기만큼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빠지직!!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틀어서 파고들고 움켜쥔 벼락을 말레온의 명치에 밀어 넣었다·
레녹이 역수로 움켜쥔 벼락이 말레온에게 닿는 순간 눈부신 벼락의 열쇠로 화하고·
[천뢰건(穿雷鍵)]
벼락의 열쇠가 비늘 위로 내리찍히는 것과 동시에 말레온의 등 뒤로 뇌전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쩌어어엉!!!!
“····”
열쇠를 꽂아 넣는 것과 동시에 모든 반응을 중단하고 멈춰 선 말레온의 거체·
하지만 레녹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말레온· 정신이 든다면 대답해라·”
레녹이 마지막으로 꺼낸 천뢰건은 토르번 마탑에서 손에 넣은 뇌신전의 유물·
1세계의 초월자였던 뇌제의 뇌해술식(雷解術式)을 담은 아티팩트다·
삼라만상을 벼락으로 풀어헤치고 반대로 잠가 버릴 수도 있는 초월급의 보구·
그렇기에 레녹은 천뢰건을 사용해 말레온의 폭주를 강제로 잠재울 생각이었다·
“감각 일부를 봉인하고 의식을 강제로 각성시킬 거다· 듣고 있나?”
“····”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어· 네 몸은-”
“경이롭군·”
“···!!!!”
와작!!
그 순간 말레온의 의태가 부분적으로 풀리면서 선종의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입을 쩍 벌려서 뇌전의 열쇠에 대신 목구멍까지 관통당한 처참한 모습·
“보구와 술식의 운용· 교전 개시능력과 마무리를 짓는 판단까지·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선종은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레녹에게 말을 건넸다·
“전력을 되찾은 승천자를 상대로 마력을 바닥낸 마법사가 여기까지 해낼 수 있는 건가·”
“····”
“내가 살아 있던 시대의 대마법사들은 대부분 이렇지 않았는데· 단순히 네가 특별한 것뿐인가?”
“열쇠를-”
콰아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어올린 말레온이 레녹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원형의 파문과 함께 레녹의 몸이 내벽 사이로 장난감처럼 처박혀 나뒹굴었다·
“···하···!!”
신음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레녹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내장기능을 마력으로 대체하는 신격결계가 아니었다면 방금 그 반격 한 번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접합술주와의 전투에서 도움이 되던 결계조차 이제는 마력 부족으로 유지조차 불가능한 상황·
앞으로 한 번만 더 공격을 허용하면 이제는 정말 죽음에 다다르게 될 터·
하지만 선종은 그런 레녹의 상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4초? 아니 그것보다 조금 짧군· 정확하게 3·9831초 선에서 마력 운용을 끊었어· 그렇지?”
“····”
“그 안에 88번의 영창과 시전을 끝내고 교전을 우위로 돌린 뒤 말레오 그노시스의 폭주를 봉쇄할 수단까지 마련한 건가·”
웃음을 터트린 선종이 말했다·
“놀라운데· 이건 정말··· 놀라워· 인간종 따위가 어떻게 이런 판단과 수행능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거지?”
쿠웅!!
형형한 안광을 빛낸 말레온이 레녹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초월적인 재능에 충분한 시간이 더해진다면 이런 느낌인가· 말레온이 너를 보고 흔들린 이유를 알 것 같군·”
그런 말레온의 가슴에서 천천히 천뢰건을 뱉어내면서 선종이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말레온을 죽이지 못한 네 패착이다· 알고 있겠지?”
“····”
레녹도 알고 있었다·
천뢰건의 능력을 사용해도 말레온의 폭주를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남은 마력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방법이 그것이었을 뿐·
엘릭서의 약효가 사라진 상황에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다만 선종 역시 레녹의 수단은 몰라도 의도는 읽고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 반응했던 것이다·
천뢰건을 맞은 만큼 폐해는 크겠지만 그 역시 말레온이 정신을 되찾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겠지·
“완벽한 협력자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뭐든지 마음대로 되지는 않아·”
쿵!!
선종이 혀를 차는 사이 레녹의 멱살을 움켜쥔 말레온이 걸음을 옮겼다·
옥좌 뒤쪽으로 비춰 보이는 외해의 어둠 저편을 등지고 선다·
“너같은 마법사를 오래 살려둬서 여지를 줄 이유는 없겠지·”
키이이잉!!!
말레온의 손 안에서 뜨겁게 집약되기 시작하는 별빛의 형상·
선종이 그런 말레온의 가슴에 매달린 채로 말했다·
“고통은 없을 거다· 단번에 머리를 터트려 주지·”
“····”
‘써야 하나?’
아직 선택할 수 있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라이프 베슬에 기댈지 아니면 다른 아티팩트를 사용해 이 순간을 모면할 것인지·
하지만 여기서 억지로 버틴다고 해서 지금의 말레온에게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승산이 없다 해도 낮은 확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해도 필요한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겠지만·
레녹이 여기까지 온 것은 말레온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
옥좌에 앉은 카이세 바쥬르의 시체를 응시하던 레녹의 눈동자에 순간 빛이 돌아왔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의 존재를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처럼·
“···진짜 선종은 죽음을 겪고 승천자가 되었다고 했었지·”
레녹이 힘겹게 말했다·
“내가 이 죽음으로 비슷한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을 텐데·”
“····”
설마 레녹이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유감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침묵하던 선종이 한발 늦게 대답했다·
“파우드 올더··· 죽은 ‘내’가 겪은 승급이란 애초에 이 세계의 법칙으로 이뤄진 일이 아니었으니까·”
“이··· 세계의 법칙?”
“동전의 양면을 새것과 헌것으로 각자 다르게 채운다고 생각해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목소리로 선종이 조용하게 말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동전을 뒤집을 때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겠지·”
“····”
“이 세계의 존재인 너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실제로 ‘나’는 사라진 과거에서 같은 비원을 품은 존재를 찾았고····”
선종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변했다·
“그 결과로서 내가 여기에 남게 된 것이다·”
“···그렇군·”
우우우우웅!!!
그 말을 끝으로 말레온의 손안에서 격렬하게 번뜩이는 별빛의 열기·
이대로 레녹의 머리를 쥐는 순간 레녹의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증발해 버리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걸 알면서도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
“잠깐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로는 충분했나?”
“···뭐라고?”
말레온의 등 뒤에서 아름다운 빛의 광채가 번뜩였다·
광요계열 고유마법
일중포사(一中砲射)
키이이잉···!!!
주변의 빛을 그러모아 쏘아내는 듯한 광자의 약동·
빛의 속성을 다루는 그 술식을 분명 레녹이 어디선가 보았다고 느낀 그 순간·
감각에 잡히지도 않는 초속으로 날아온 광선이 말레온의 손목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휘천(輝穿)]
파아아아앙!!!!!
“···!!!!”
사각에서 날아왔다고는 하나 술식을 운용하고 있는 승천자를 저격해낼 만큼 빠른 속도·
레녹은 이 술식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순수술식계 원소마법· 그 중에서도 최속의 속도를 자랑하는 광요계통·
빛을 다루는 이 마법이야말로 한때는 8레벨의 대마법사를 상징했던-
[끝까지 손이 많이 가는 동업자로군·]
피로 만들어진 문 너머에서 싸늘한 전성이 울려 퍼졌다·
[누차 말했지만 네놈과 함께하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없는 수준이구나·]
구겁의 여정 도중에 잠시 이탈했던 8레벨의 마안술사·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가 전장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