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0화
9레벨(8)
빠직 빠직!!!!
안개의 우주까지 솟구친 승급의 법진이 사방에서 거칠게 갈라지며 폭발했다·
그때마다 법진이 새카맣게 물들면서 서서히 말레온의 몸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카칵 카카칵!!
비틀리고 갈라지고 갉아 먹히면서 무너지는 듯한 소음·
듣는 것만으로 끔찍한 결과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만드는 파멸의 전조·
안개의 우주 저편에서 내리찍히는 불길한 검은 빛의 번개·
그것이 승급의 법진 위로 떨어지면서 법진을 망가뜨리고 오염시키고 있다·
그때마다 말레온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비틀리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변해간다·
[아아아아악!!!!]
처참하게 일그러진 말레온의 비명소리가 소름 끼치는 전성이 되어 팔겁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파아아앙!!
그 비명만으로 전당 사방의 유리창이 모조리 박살 나고 지축이 뒤흔들렸다·
말레온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 사실을 깨달은 레녹이 마력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 말레온 님!!!”
“안 돼 안 돼!!!!”
“제발···!!!!”
이변을 눈치챈 장생종들이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치며 절규했다·
수백 년을 산 이들이 어린아이처럼 소리 지르면서 눈을 감고 덜덜 떠는 모습·
창백해진 안색으로 연신 몸을 떨면서 존재하지 않는 신과 하늘에게 기도하기 바쁘다·
“마 말레온 님을 도와주게····”
허령을 부축하던 장생종 중 하나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레녹을 붙잡았다·
“내 내 목숨이라도 공양해도 좋아· 제발!!”
“····”
“자네밖에 없어··· 이렇게 부탁하겠네···!!!”
“그러지 않아도 손을 쓸 생각이니 기다려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레녹이 하늘에 떠오른 말레온의 그림자를 보면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레녹의 눈동자가 강렬한 보랏빛으로 발광하면서 말레온을 비추기 시작했다·
가능성의 마안과 계시의 공능을 동시에 운용해 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꿰뚫어 본다·
‘법진 내부의 마력흐름이 입자 단위로 계속해서 어긋나고 있다·’
표정을 굳힌 레녹이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사소한 오차나 불운은 아니야· 의식 과정에서 무언가 이물질이 끼어들었군·’
말레온의 존재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창조와 파괴·
원인과 결과를 무한히 잇고 끊어가면서 그 기적을 생명의 본능 단계에 각인시키는 작업·
하지만 방금 전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던 의식이 순식간에 뒤틀리면서 최악의 결과로 치닫고 있었다·
의식의 공정이나 순서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의식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외부요인의 존재·
‘검은 번개가 원인이라는 건 분명해· 하지만 저 힘의 근원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찰나 올리비에라가 레녹의 어깨를 잡아챘다·
[견뢰· 뭔가 보이는군·]
후욱!
레녹의 어깨를 기울여 자신과 같은 높이로 시선을 맞춘 올리비에라가 말했다·
[위를 봐라· 네 마안으로 확인할 수 있겠느냐?]
“···올리비에라·”
[네 마안 일부는 나의 것을 모방한 만큼 어설프게나마 같은 곳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차가운 전성을 속삭인 올리비에라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네놈이 운용하던 승급의 법진보다 더 위· 안개의 우주보다 더 위쪽이다·]
“···저건·”
레녹은 그제서야 올리비에라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 숨을 삼켰다·
찌지지지직···!!!
안개의 우주 저편에서 내리찍히는 불길한 검은 빛의 번개·
그것이 승급의 법진 위로 떨어지면서 법진을 망가뜨리고 오염시키고 있다·
쿤다라가 위치한 안개의 우주보다 더 위쪽에서·
안개의 우주를 형성하는 [장막]보다도 더 멀리·
레녹이 서 있는 이 세계보다도 더 먼 곳에서 찾아온·
“외해에서··· 말레온의 승급을 방해하고 있는 건가?”
암흑의 바다 저편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말레온의 도전을 망가뜨리고 있다·
원념보다도 더 지독하고 사념보다도 더 불길한 강력하면서도 형태 없는 의지·
그것이 검은 번개처럼 내려와 승급의 법진을 찢어발기며 말레온의 승급을 방해하고 있던 것·
[승급 의식을 개시하면서 안개의 우주 바깥까지 그 빛이 비쳤군·]
올리비에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때문에 외해 바깥에서 ‘무언가’가 이 순간을 눈치챈 모양이다·]
“구겁의 시련을 가리고 있던 외해의 어둠··· 그것을 매개로 삼아 개입해 왔군·”
승천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 과정이기에 반대로 그 순간이 세계를 넘어 외해 바깥까지 전해진 건가·
승천자가 태어난다는 것이 그만한 여파를 동반하는 거야 납득할 수 있지만 설마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외해 바깥에서 개입해 올 줄은·
‘하지만 저 번개는-’
외해 저편에서 떨어지는 새카만 번개·
의지 자체를 마안을 통해 시각화한 힘이라 해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레녹 자신의 기억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흑뢰(黑雷)·
[아무래도 외해 저편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자는 보석룡의 승급을 바라지 않는 모양이군·]
올리비에라가 물었다·
[이대로라면 계획은 실패한다· 어떻게 하겠느냐?]
“···”
지금 이 순간에도 안개의 우주 저편에서 검은 번개가 내려와 법진을 옭아맨다·
기이하게 뒤틀린 흑뢰가 법진을 스칠 때마다 안개의 우주에 떠오른 법진이 지워지면서 뭉개지고·
그때마다 법진 너머에서 비치는 말레온의 그림자가 거칠게 일그러지며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끄아아··· 아아아악!!!]
말레온에게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처절하다 못해 원념이 어린 비명·
저 법진 안에서 말레온이 어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대로라면 승급의 법진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말레온의 집중마저 깨져 의식은 실패로 돌아갈 터·
그건 이 자리에서 말레온이 승급에 실패해 죽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외해 바깥에서 쏟아지는 검은 번개라····”
레녹이 굳은 표정으로 법진을 향해 쏟아지는 흑뢰를 바라보며 물었다·
“법진을 조정해 의식을 복구하면서 저 번개를 제거할 수는 없겠지?”
[지금 그 상태로 외해 바깥까지 여행이라도 떠나겠다는 말이더냐?]
“···법진의 앞을 막아서서 흑뢰를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하겠군·”
지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 번개는 외해 바깥에서 법진을 향해 쏟아지는 의지의 발로·
레녹이 흑뢰를 막기 위해 술식을 사용하면 그것만으로 승급 의식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대로 방관한다 해도 흑뢰의 힘에 법진이 망가지며 그대로 의식이 실패해 버리겠지·
승천자로 다시 태어나려는 말레온의 기원에 외해의 염상이 뒤섞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질 터·
그럼에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와서 계획이 실패하는 걸 손 놓고 바라볼 수는 없지·”
말레온이 실패하면 레녹이 그를 따라 함께 구겁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굳은 얼굴로 돌아선 레녹이 승급의 법진 아래쪽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털썩!
양손을 법진 위에 맞댄 채로 마력을 끌어올린 레녹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말했다·
“한가지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협조해 줄 수 있겠나?”
[무엇을 할 생각이지?]
“단순하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
우우우우웅···!!!
마력을 끌어올려 승급의 법진에 밀어 넣고 말레온에게 넘겨주었던 법진의 조작권한을 되찾은 레녹이 말했다·
“말레온의 승급 의식을 내가 직접 보조해서 성공까지 유도하겠다·”
* * *
승급의 법진 안으로 마력을 밀어 넣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감각이 법진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레녹에게 있어 마력이란 육체의 오감보다도 훨씬 더 예민하고 직관적인 또 다른 감각기관·
법진 안에 마력을 물어넣고 의식을 흘려보내면 새로운 신체기관처럼 느껴진다·
법진에 감각을 밀어 넣은 레녹은 그제서야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깨달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공정이 엉망진창으로 무너졌군·’
승급 의식을 구성하는 모든 단계와 공정이 끊어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져 있다·
이 와중에 아직까지 의식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의식의 핵심이 되는 말레온의 강인한 의지 덕분·
외해에서 쏟아지는 흑뢰에 난자당하면서도 어떻게든 의식이 실패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붙잡아두고 있다·
그건 말레온 자신이 아니라 법진 바깥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를 그만큼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바깥에서 방법을 찾아낼 거라 믿고 있기에·
[집중하거라·]
탁!!
레녹의 어깨를 짚은 올리비에라가 한 손으로 베일을 젖히고 눈가를 쓸어내린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칠채보의 마안이 번뜩이면서 레녹의 손이 닿은 법진을 노려본 순간·
[칠색칠법(七色七法) : 마안상동(魔眼相瞳)]
[불변불능(不變佛能) : 인과고정]
[진정(眞停)]
키이이이잉!!!
기묘한 공명음과 동시에 법진의 마력흐름이 안정되면서 흐름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칠채보의 마안에 존재하는 일곱 가지 칠색의 공능·
그중에서도 관측한 인과 자체를 그 자리에 고정하고 변치 않게 만드는 진정의 공능·
[네놈이 안정화시킨 법진의 마력흐름을 고정해 변치 않게 만들었으니·]
올리비에라가 한 손으로 눈가를 누르면서 말했다·
[안정화 작업은 나의 마안으로 강제하겠다· 너는 말레온의 의식에 신경 쓰도록·]
“···괜찮겠나?”
칠채보의 마안은 분명 강력한 힘이지만 사용할 때마다 몸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선천이능이다·
올리비에라 역시 그렇기에 결정적인 순간까지 스스로 마안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 왔던 바·
니백스의 둥지에서 불순물을 씻어냈다고 해도 벌써부터 이렇게 마안을 남발해도 괜찮은 것일까·
하지만 올리비에라와 그 사실에 대해 일일이 논의하고 만류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칠게 번뜩이는 흑뢰· 지금 이 순간에도 울려 퍼지는 말레온의 비명·
빠르게 상념을 정리한 레녹이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시작하지·”
우우웅···!!
마력을 흘려보내 법진의 끊어진 연결 부위를 이어붙인다·
망가진 부분은 새롭게 고쳐 쓰고 회복 불가능한 부분은 과감하게 버린다·
진둔이 남겨준 결계술식을 운용하며 버릴 곳과 고칠 곳을 골라가면서 법진을 손본다·
승급 의식이 유지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선까지 성능을 끌어내리고 반동이 터져 나오지 않도록 부분을 손보면서 수복했다·
위이이이잉!!!!
동시에 말레온을 둘러싼 법진이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법진 내부를 구성하는 복잡한 수열과 문자 기호들이 배치를 바꿔가면서 엄청난 속도로 위치를 바꿔 나갔다·
간절하게 기도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장생종들이 당황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지?”
“무얼 하려는 겐가?”
“버 법진의 위치를 함부로 바꾸면 아니되네· 의식이 말레온 님의 통제를 벗어나면···!!”
[시끄럽기 짝이 없군·]
레녹의 뒤에 서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던 올리비에라가 섬뜩한 시선을 보냈다·
[닥치고 지켜봐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놈에게도 쉽지 않을 일이 될 테니·]
“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이기에····”
올리비에라는 그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녀를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린 장생종들이 저 멀리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번쩍!!
하늘에서 검은 번개가 떨어져서 승급의 법진을 거침없이 짓뭉갠다·
본래라면 피격당한 법진의 일부가 소멸하면서 그 피해가 말레온에게까지 이어져야 했을 터·
하지만 흑뢰가 떨어져 법진을 지져버렸음에도 말레온이 비명을 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외해 저편에서 검은 번개가 번뜩인 직후 레녹이 승급의 법진을 조작·
법진 내부를 구성하는 문자와 수열을 모조리 옮겨서 흑뢰가 떨어지는 피격지점을 비워 버렸기 때문·
빠직!!
검은 번개가 법진을 타격하지만 아무것도 지우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진다·
외해 저편에서 흑뢰가 번뜩일 때마다 법진을 조작해 공간을 비우고 피해를 최소화한다·
그때마다 승급의 법진이 다시 완성되어가며 찬란한 광채를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앗!!!
“서 설마····”
그제서야 레녹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깨달은 장생종들이 경악 어린 목소리를 터트렸다·
“법진을 일일이 고쳐 쓰면서 흑뢰를 피해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건가!!!”
“말도 안 돼· 그런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좌표를 계산하기 전에 법진을 고쳐 써도 시간이 맞지 않을 텐데···!!!”
승급의 법진을 구성하는 기호와 문자 수열을 실시간으로 재배치해 가면서 흑뢰를 피해낸다·
결계술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이해할 수 있는 바·
“제정신이 아니군· 머리가 터져서 죽고 싶은 거냐?!”
레그누스가 아연실색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어찌나 경악했는지 인간으로 의태한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뛰어난 결계술사인 그로서는 레녹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시도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진둔조차 그런 식으로는 결계술을 다루지 못해· 넌 지금 결계술의 묘리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방식으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게다!”
아주 복잡한 기계장치의 부품을 실시간으로 수백 개씩 갈아치우면서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작동하게 한다·
수만 가지 방정식의 숫자와 기호를 바꿔가면서 매 순간 똑같은 결괏값이 나오게 만드는 것과도 같았다·
하물며 결계술은 기호의 상징이나 순서 배열에도 큰 의미가 있는 바·
계산이나 예측의 영역에서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철저하게 감각적인 영역에서 직관에 의존하여 논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과정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
뚝 뚝···!!
그런 레그누스의 말을 방증하듯 레녹의 코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가능성의 마안· 계시의 공능· 다비의 연산능력· 항하사미궁의 조작권한·
그 모든 이능을 한계까지 끌어다 사용하고도 부족해 레녹의 뇌까지 부담이 미치고 있다·
“그만둬라· 너까지 같이 휘말려 죽게 될 거다!!”
“아니·”
한 팔로 코피를 훔친 레녹이 대답했다·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다·”
“···뭐?”
“타인의 운명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오만에 가깝지·”
“····”
“하지만 선택할 기회가 필요하다면 내가 만들어줄 수 있다·”
언젠가 이것과 비슷한 말을 누군가에게 들려준 기억이 있다·
폐쇄구역의 끝에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기억을 상대로·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들에게 레녹 자신이 기준이 되어줄 수 있다면·
닫힌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구도자들을 출발선에 세워주는 정도라면·
“할 수 있어·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려는 존재라면·”
승급의 법진을 올려다보며 레녹이 말했다·
“말레온의 도전이 그렇듯이 언젠가-”
레녹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파아아아아아앗!!!
하늘에서 떨어지는 흑뢰의 속도가 빨라진다·
하지만 레녹이 조작한 법진의 재배열 속도는 그보다도 더 빨라지고 있었다·
외해 바깥에서 떨어지는 불길한 의지가 허무하게 법진의 공백을 타격하고 소멸하지만·
반대로 말레온을 둘러싼 승급의 법진은 더욱 찬란하게 타오르면서 스스로 완성되어 간다·
레녹 자신의 감각과 직관으로 의식을 조작해 법진의 중앙에서 잠든 말레온을 깨워 나간다·
“일어나라 말레온·”
이를 악물고 손을 들어 올린 레녹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네가 성공할 자격이 있는 도전자인지 마지막에는 스스로 증명해 봐라···!!!”
콰아앙!!!
법진의 끝단을 강하게 내리찍는 것과 동시에 눈부신 마력광이 법진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수만 갈래로 갈라진 방대한 회로 전역을 남김없이 채우고 이제는 스스로 배열을 바꿔가며 흑뢰를 피해낸다·
허무하게 공백을 가르고 사라지는 번개를 지나 무한한 변화 속에서 완성된 의식이 말레온을 품고 회전했다·
끼리리리리릭···!!
둥글게 회전하던 법진이 나비의 고치처럼 서서히 갈라지며 펼쳐졌다·
그 안에서 두 눈으로는 담을 수 없는 찬연한 광채가 터져 나와 안개의 우주를 환하게 밝혔다·
쿤다라의 밤이 낮이 되고 장막의 이면 너머에서 새어 나온 빛이 별의 그늘을 지워 없앤다·
중앙도시 아르스노바를 가리듯이 펼쳐진 장막이 순간적으로 깜박이다 사라지고·
그 공백을 잊게 만들 만큼 강대하고 폭발적인 의지가 세계의 시공간을 둥글게 메운 그 순간·
번쩍!!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세상이 투명한 은빛으로 가득 찼다·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은빛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흑뢰를 밀어내고 세계의 경계선을 넘어 외해 바깥을 향한다·
쿠과과과과과과!!!!!
하늘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은빛의 기둥이 쿤다라 전역으로 뻗어나가며 그 광채를 따스하게 비추었다·
그 초월적인 의지와 심상의 범람에 쿤다라 전역의 모든 생명종이 압도당하고 직후 그 의미를 깨닫고 환호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영혼의 외침· 생명의 함성· 탄생의 축포·
이 세계에 또 다른 기적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탄생의 나팔소리·
귀청이 멀어버릴 듯한 소리 없는 함성에 레녹이 조용히 손을 떼고 시선을 들어 올린 순간·
“····”
오오오오!!!!
팔겁의 전당 전역을 휘감은 은빛의 기둥 중심에 말레온 그노시스가 서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 눈을 감은 채 양손을 옆으로 펼치고 몸을 뉘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전신에 새겨진 보석 같은 비늘을 빛내면서·
숨조차도 쉬지 않고 모든 것을 남김없이 음미했다·
호흡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을 가졌다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매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는 듯·
그 존재만으로 자신을 세계에 아로새기면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웅혼한 기척과 함께·
말레온 그노시스가 눈을 떴다·
“마침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스스로의 손을 쥐었다 편 초월자가 말했다·
“이루었군·”
운명을 바꾼다는 것· 자격을 얻는다는 것·
아홉 번째 위계에 도달해 결말 앞에 바로 서는 것·
그 모든 것을 막연하게 동경하면서도 이룰 수 있는 꿈이라 믿고 도전하는 것·
원래라면 실패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살아온 생애 전체를 걸고 도전하는 무모한 도박·
추잡하게 영락하고 비참하게 실패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무한한 순간의 연속·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는 자신이 합당한 결과를 낸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외겁도시 쿤다라· 팔겁의 전당·
구겁의 시련 앞에서 승급 의식을 시작한 이후 헤아릴 수 없는 미답과 번민의 끝에서·
본래라면 실패할 운명이었던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던 미래를 거스르고·
쿤다라에 새로운 승천자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