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g-Eating Genius Mage Chapter 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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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4화

쿤다라(7)

“올리비에라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영민한 아이였군·”

널찍한 단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레녹과 새하얀 뱀의 거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새하얀 뱀의 비늘이 보석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게 번쩍인다·

그 자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주변의 광원이 일그러지는 듯한 기이한 위화감·

파충류의 동공으로 레녹을 내려보던 뱀이 노쇠한 여인의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

“겁의 시련을 통과하지 않고도 이 도시에서 스스로를 증명케 할 방법을 찾아내다니 그 발상에 감탄을 금할 수 없음이야·”

“쿤다라의 규칙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라면-”

“아니· 나는 쿤다라에서 세운 규칙을 우회한 네 현명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뱀이 레녹의 말을 끊고 답했다·

“이 도시가 아홉 개의 겁을 기준으로 살아갈 방법을 제시하였으나 장생종이 아니라면 반드시 그 길을 따를 이유는 없지·”

“····”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겁의 시련에 집착하지 않은 네 판단은 지극히 옳다· 아니 옳다기보다는 훨씬 더 본질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혓바닥을 날름거린 뱀이 말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보는 이들은 기행을 일삼는 법이지· 흥미롭고도 재미있는 재능을 지녔구나·”

레녹이 겁의 시련을 통과하지 않은 것을 외려 높게 평가하는 것인가·

굳이 집착하지 않으려 했다기보다는 오백로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을 골랐을 뿐이지만·

올리비에라의 지인을 자청하는 이 뱀은 그 사실이 오히려 더욱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였다·

‘굉장히 특이한 술식계통을 가지고 있군·’

새하얗고 깔끔한 외견과는 달리 뱀의 주변에서 풍기는 공기는 실로 매캐하기 그지없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 동식물을 죽이고 말라 붙이며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조차 독성을 띠고 물들어가는 수준·

‘아주 강력한 극독··· 마력 자체를 태워서 독으로 변환시키는 계열의 술사인가?’

“올리비에라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내 둥지에서 몸을 치료하고 있지·”

“···치료?”

“구태여 숨기지 않았으니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극독을 다루는 술사다·”

뱀이 말했다·

“독이란 그 양을 조절하는 방법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는 법· 그 극단적인 성질을 적재적소에 쓰면 생명이 아니라 질병을 죽이고 해로운 기운을 씻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뱀의 동공이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그 아이는 스스로의 계통을 변질시키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불순물을 몸에 품고 있더구나· 그래서 그 위계를 한번 세척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올리비에라가 레녹의 제안을 받아들여 쿤다라로 향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뱀의 도움을 빌려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을까·

정보를 수집하는 대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는 건 어이가 없지만 그 부분을 충당하기 위해 이 뱀을 보냈다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말한 시점에서 이 뱀이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틀림없을 터·

거기까지 생각한 레녹이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면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좋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의 말을 믿기로 하지·”

“후후··· 이제야 조금 솔직해졌구나·”

레녹의 말에 뱀이 외려 기분이 좋아진 듯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침착하다 못해 오만해 보일 정도의 대술사라 들었는데 지금 보니 올리비에라의 평가가 딱 맞아 보이는군·”

“올리비에라와 오랫동안 안면을 트고 지낼 정도라면 당신 역시 선량한 장생종 따위는 아니겠지·”

레녹이 대꾸했다·

“내가 자리를 잡은 시점에 나타나 이런 말을 던진 것부터 내 반응을 떠보려는 수작이었을 테고·”

“····”

“그래서 구겁에 들어갈 방법이라는 건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거지?”

차가운 시선으로 뱀을 올려다본 레녹이 물었다·

“잠시나마 승천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 말· 지금 내 고민에 대해 알고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제안일 텐데·”

카이세의 시신이 구겁에 숨겨져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시점에서 레녹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는 하나·

구겁(九劫)이 바로 9레벨의 승천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레녹 자신이 정공법으로 구겁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얻고 승천자가 되어야겠지만·

만반의 준비를 거친 뒤 도전해도 모자랄 ‘승급’을 여기서 시도한다는 것은 자살에 가까운 행위·

‘기적적으로 성공해서 9레벨에 오른다고 해도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지·’

천운이 따라 자격을 얻고 승천자가 된다 해도 쿤다라의 고위 장생종들이라면 틀림없이 그 사실을 눈치챌 터·

최악의 경우 쿤다라의 변경을 수호하는 다른 팔대용왕들이 레녹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다·

레녹 역시 갓 승천자가 된 불안정한 상태로는 그 사실을 숨길 여유도 싸울 힘도 남아 있지 않겠지·

그렇기에 레녹은 자신이 직접 9레벨에 올라 구겁을 통과한다는 선택지는 완전히 배제해둔 상태였다·

결국 구겁을 통과해 카이세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는 정공법이 아니라 편법을 사용해야 할 터·

올리비에라의 지인을 자청하는 이 뱀이 레녹에게 그러한 수단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뜻일까·

“승천의 비약이라는 물건이 있다·”

뱀이 말했다·

“비약?”

“말 그대로 복용한 존재를 일시적으로 승천자와 유사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물건이지·”

“····”

“결론부터 말해주마· 그 비약을 먹으면 구겁의 시련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레녹의 반응을 살피듯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뱀이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구겁의 성소 안에 진입하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지금 나와 승천의 의미에 대해 말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그 말을 듣자마자 레녹이 표정을 확 찌푸렸다·

차갑게 표정을 굳힌 레녹이 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9레벨에 도달한다는 건 말 그대로 승천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다는 뜻이지· 그건 한낱 비약 따위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야·”

“····”

“자기 자신을 통째로 고쳐 쓰고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도박이다· 그걸 타인의 도움으로 고작 약 하나 복용한다고 성공할 수 있다고?”

세 번째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9레벨에 도달한 승천자는 고작해야 열 명 내외·

그리고 승천자를 만나본 레녹은 9레벨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위업의 결과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태운 뒤에도 도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무모한 도박·

자격을 얻고 9레벨에 도달한 뒤에도 끊임없이 망가져 가며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 예정된 존재들이다·

결말에 대한 답을 내놓을 자격을 얻는 대신 스스로의 대답에 잡아먹히는 것으로서 초월성을 얻은 괴물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깊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깊게 잠식된 다음에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레녹이 아는 한 타인을 그렇게 만들 수 있던 존재는 모든 세계를 통틀어서 오직 교주 한 사람뿐이었다·

과연 승천의 비약이라는 것이 교주보다도 뛰어난 ‘우연’을 흉내 낼 수 있단 말인가·

레녹은 뱀의 말을 듣자마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뱀은 레녹의 회의 어린 말을 들은 뒤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대답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듯 빠르게 혓바닥을 날름거렸을 뿐·

“너는 이미 승천이라는 것이 어떠한 개념인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구나·”

“····”

“어쩌면 자격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입을 다문 레녹을 향해 뱀이 눈을 번뜩였다·

“그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기에 그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너야말로 언젠가 초월성을 밟고 올라설 존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승천의 비약이란 복용자를 승천자로 만들어주는 물건이 아니다·”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다만 복용자에게 승천자와 유사한 ‘상태이상’을 강제로 유발하는 것에 가깝지·”

“····”

“중요한 것은 승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구겁에 도달하는 것·”

뱀이 씩 웃었다·

“어찌 됐든 구겁의 시련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원하던 목적을 이루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비약의 능력 자체가 복용자에게 승천자와 같은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레녹이 턱을 짚고 고민에 빠졌다·

“납득하기 어렵군· 애초에 그런 건 약이 아니라····”

승천자와 같은 상태이상이라니 9레벨의 초월자들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증상이 존재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애초에 그러한 상태이상을 인위적으로 복용자에게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약의 효능이 아닐 터·

“그렇다· 승천의 비약이란 인위적으로 제조된 약물 따위가 아니지·”

레녹의 생각을 눈치챈 것처럼 뱀이 말했다·

“그건 죽은 승천자의 내단을 썩혀 만든 극독이다· 네게 권유하는 것 역시 바로 극독의 부작용에 가까운 효과이니·”

“승천자의 내단을 썩혀 만들었다니 그건-”

“어째서 다른 장생종도 아닌 내가 승천의 비약을 설명하고 소개하고 있다 생각하느냐?”

전혀 예상치 못한 뱀의 설명에 놀란 레녹의 반문에 뱀이 씩 웃었다·

“그건 애초에 내가 독술사로서 그 독의 제조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오늘 네게 이러한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

“이해했다면 이야기를 계속하자꾸나· 현재 승천의 비약은 특정한 장생종이나 초인의 손에 들어가 있지 않다·”

고요한 장원의 바깥에서 뱀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대신 이틀 뒤에 육겁에서 열릴 오백로 대회의 상품 중 하나로 제시가 될 예정이지·”

“···오백로 대회의 상품이라고?”

“쿤다라 역사상 가장 재능 있는 대술사로 손꼽히는 장생종이 오백로를 굉장히 좋아하거든·”

레녹이 그 뜬금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찰나 뱀이 웃으면서 말했다·

“도시 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대술사인데 워낙 오백로를 좋아하는 탓에 정기적으로 대회를 열어서 사람을 모으곤 하지·”

“····”

“그가 지닌 위상과 권한이 워낙에 커서 대회의 우승상품으로 원로성의 비고를 직접 열어줄 수 있을 정도다·”

침묵하는 레녹을 향해 뱀이 동공을 번득였다·

“승천의 비약은 바로 그 원로성의 비고 안에 있다·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손에 넣어야 할 물건이지·”

“···그렇군·”

그제서야 뱀이 던진 제안의 의미를 깨달은 레녹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젖혔다·

왜 오백로를 잘 두는 것이 조건인지· 올리비에라의 말을 듣고 그를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직접 오백로 대회에 참가해서 승천의 비약을 손에 넣어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권한이나 절차는 이쪽에서 준비해 줄 수 있네· 필요한 건 네 동의뿐이지·”

뱀이 느긋하게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어떤가 이 늙은이의 헛소리라 생각하고 한번 도전해 볼 텐가?”

* * *

[그럼 지금부터 쿤다라 원로성 배 오백로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래된 고목을 재료 삼아 만들어진 화려한 누각·

벚꽃잎이 흩날리는 드넓은 안뜰에 레녹은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다·

단상 위에서 곱슬머리 소년이 부채를 들고 입을 열자 그 목소리가 누각 반대편까지 울려 퍼졌다·

[아아 오늘 열린 오백로 대회는 늘 그렇듯이 쿤다라 전역에서 뛰어난 오백로 기사를 가리기 위함으로-]

[겁의 시련을 통과하는 어르신들의 도전을 장려하기 위해 원로성에서 다방면으로 힘을 쓰신 결과-]

[최근 화예종의 앙그론 님께서 성취를 보인 것처럼 뛰어난 실력의 기사를 골라 포상을 내릴 예정이니···]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가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공치사들·

바글거리는 인파 사이에 서서 설명을 듣고 있자니 벌써부터 진이 빠지는 것 같다·

하지만 레녹은 피곤한 표정을 추스르면서도 소년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대회에서 우승한 기사에게는 특별히 팔겁에 위치한 원로성의 보고를 열어드릴 예정이니 최선을 다해 힘써주시기를 바라며-]

[대진표를 공개하겠습니다!]

파앗!!

소년의 말과 함께 단상 뒤쪽에 거대한 두루마리가 펼쳐지더니 수백 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대진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전에 참가 신청을 마치고 신원이 등록된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엮어서 토너먼트 형식으로 짜놓은 대진표의 모습·

그 안에서 [반]이라 등록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레녹이 실소를 흘렸다·

‘그 뱀이 일을 잘 처리해 둔 모양이군·’

대진표를 따라 지정석으로 향하며 레녹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상하긴 했지만 고위 장생종의 숫자가 상당하다· 대회 자체가 모여서 오백로를 둘 명분을 제공하는 용도인 건가·’

겁의 시련을 오백로를 통해서 통과할 수 있다면 장생종들이 오백로를 두며 실력향상을 도모하는 것은 쿤다라 측에서 반길 일·

그렇기에 대회를 열고 보상을 걸어 장생종들에게 오백로를 둘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뛰어난 술사일수록 오백로를 잘 둘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고위 장생종이 대회에 참가한 것도 당연한 일·

대진표를 보고 자리를 찾아낸 레녹이 먼저 와 있는 상대를 발견하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

장기판을 앞에 둔 채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장년 남성·

레녹의 인사에 답하기는커녕 고개를 끄덕거리지도 않는다·

레녹이 뺨을 긁적이면서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쓸데없는 말은 사치에 불과할 뿐·”

“····”

“서로 말을 섞어봤자 장기판에 무의미한 감정이 깃들 뿐이라네·”

눈을 번쩍 뜬 남자가 근엄한 표정으로 흑돌을 움켜쥐었다·

“시작하지· 난 준비됐네·”

“····”

이 남자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지껄인 주제에 자연스럽게 선수를 잡았다·

레녹조차 그 기묘한 화법에 잠시 정신이 팔려 위화감을 눈치채기 어려웠을 정도·

황당한 표정으로 백돌을 쥔 레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 편에 앉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죠·”

“젊은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빨리 끝내도록 하지·”

탁!!

거침없이 흑돌을 내려놓은 남자가 말했다·

“이제부터 겨뤄야 할 상대 모두에게 동정을 보내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 테니!”

* * *

“도합 집계 80집 차이로 백의 승리입니다·”

“····”

혼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장기판을 내려다보는 장년 남성의 모습·

“좋은 승부였습니다· 그럼 다음에·”

레녹은 그런 남자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대국에 열중하는 기사들을 지나쳐 단상 위에서 따분한 기색으로 부채를 흔드는 소년을 찾았다·

“저기·”

“아 예에· 뭡니까?”

소년이 귀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레녹이 소년을 향해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대국에서 승리했습니다만 이제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예? 벌써 끝났다구요?”

소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목을 쭉 빼고 레녹이 대국을 두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침통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인 남자의 뒷모습을 본 소년이 웃는 얼굴로 표정을 바꾸며 양손을 비볐다·

“아하~ 실력 좋은 기사님이셨군요· 그렇다면 저를 잘 찾아오셨습니다·”

촤악!!

붓을 꺼내든 소년이 발아래 놓인 먹에 적시더니 두루마리 위에 새겨진 대진표에 크게 X자를 그렸다·

순식간에 이긴 대국을 대진표에서 지워버린 소년이 붓으로 직접 대진표를 이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실시간 반영 끝났습니다· 다음 대국을 바로 진행하시면 돼요~”

“····”

웬 두루마리에 대진표를 그릴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더니 철저하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회였나·

하기야 지금 이 대회에 참가한 장생종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저야 상관은 없지만 그렇게 대진표를 마음대로 연결해도 문제는 없는 겁니까?”

“아 이번에 대회에 처음 참가하신 분이시구나·”

소년이 뺨을 긁적였다·

“다 알고 계시는 줄 알고 대충 생략했는데 그럼 진행방식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드릴게요·”

“····”

“흠흠 기본적으로 쌓은 승수에 따라 상대를 정해드리는 방식입니다· 한번 패배했다고 바로 탈락하는 건 아니지만 승수가 많을수록 빠르게 높은 라운드로 진출하게 되지요·”

“대회 참가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대국을 치르도록 하기 위해서군요·”

“맞습니다· 애초에 대회에 참가한 어르신들의 목적이 다 그거 아니겠어요?”

소년이 부채를 흔들면서 말했다·

“한번 패배했던 상대와 다시 만나서 설욕을 하거나 반대로 이겼던 상대에게 패배할 수도 있어서 선호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 수백 년을 사신 장생종 분들이 다들 뒤끝이 심하잖아요?”

“····”

이 소년은 아무래도 이런 대회를 도맡아 진행할만한 인재는 아닌 것 같았다·

레녹의 반응이 어딘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소년이 뒤늦게 어색한 표정으로 붓을 흔들었다·

“어 어쨌든 대국을 끝낼 때마다 경과를 말씀해 주시면 승수가 비슷한 상대와 연결해드립니다· 이래 봬도 제가 이 일을 20년 넘게 해왔다구요~”

“···20년 말입니까?”

도시 어디를 가도 시간의 스케일이 다른 식으로 느껴지는 것은 며칠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고개를 저은 레녹이 두루마리에 새겨진 대진표에 먹물이 칠해지는 것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점수 계산에 일일이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면 좀 더 빨리 움직여야겠군·’

처음 상대는 집계 차이로 압살하기 위해 조금 시간을 들였지만 보아하니 대국의 내용보다 단순 승수가 더 중요한 듯하다·

80집 차이로 이기나 반집 차이로 이기나 결과가 똑같다면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바·

“이겼습니다·”

“예· 빨리 오셨네요· 다음으로 갑니다~”

“대진표 갱신을 부탁드립니다·”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 대국은?”

“···예· 마침 대진표에 빈 상대가 있네요·”

“다음·”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단상 위에 올라온 레녹을 바라보던 소년이 물었다·

“참가자님· 대진을 다시 정해 달라고 단상에 올라온 게 5번째 아니신가요?”

“예·”

“···대회가 시작한 지 아직 1시간밖에 안 지났을 텐데·”

“오래 대국을 이어갈 필요가 없는 상대들뿐이더군요·”

레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빨리 끝내드렸습니다·”

“····”

이번에야말로 장난기 넘치던 소년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죄송하지만 참가자님이 대국을 두신 상대와 잠깐 만나고 올게요·”

“부당한 방법을 썼는지 의심하시는 겁니까?”

“···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분이시라니까 간단하게 확인만·”

“알겠습니다·”

레녹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년이 누각을 쭉 돌면서 대국 상대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무언가 질문하다 귀를 막고 찔끔거리다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소년의 모습·

떨떠름한 표정으로 레녹을 올려다본 소년이 말했다·

“그 참가자님과 대국을 진행한 상대 5명 모두가 참가자님이 사술을 썼다고 말하는데요···?”

“···예?”

“지금 당장 참가자님을 실격처리해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는데····”

“····”

레녹이 그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찰나·

“그자는 대국에 있어 사술을 쓴 것이 아니야·”

소년의 등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대의 공세를 유도해 진행속도를 높인 뒤 최소한의 집계가 가능해진 시점에 적당히 점수를 이길 정도로만 맞추었을 뿐이지·”

“···예?”

“실제로 그가 둔 대국을 보면 모든 대국이 반집 차이에서 승부가 나 있을걸세· 그렇지 않나?”

당황한 소년이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은빛으로 빛나는 두꺼운 손이 소년의 어깨를 턱 짚었다·

어느새 소년의 뒤에 서 있던 훤칠한 체격을 지닌 용인(龍人)이 이빨을 씩 드러내며 말했다·

“다시 말해 아주아주아주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오백로 기사라는 뜻이겠군·”

“····”

전신이 눈부신 은빛의 비늘로 뒤덮인 용의 머리를 지닌 훤칠한 체격의 남자·

온갖 장생종들이 모인 이 대회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운 외견·

뒤늦게 용인을 확인한 소년이 화들짝 놀라 남자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마 말레온 님···!!”

대회에 모인 온갖 고위 장생종들에게는 무례를 일삼던 소년이 기겁해서 예의를 갖출 정도의 귀인·

뒤늦게 소년의 반응을 확인한 다른 장생종들 역시 이 은빛의 용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말레온 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불탁의 조르주가 은성(銀星)을 뵙습니다!!”

“현오의 르메이가 군주께 인사를 올립니다·”

느껴지는 기세로나 주변의 대우로나 역시 평범한 장생종은 아니다·

레녹이 이 도시에서 마주한 모든 장생종을 통틀어 단연코 가장 고귀한 생물이라 불리우는 용종(龍種)·

그중에서도 정점에 위치한 쿤다라의 권력가들 중 한 명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말레온이라 불린 용인은 그런 주변의 인사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옆에서 고개를 숙인 소년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고 앞으로 걸어 나왔을 뿐·

그 친근한 손짓에 레녹이 시선을 돌린 찰나 히죽 웃은 용인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들었겠지만 말레온이라고 하네· 나와 오백로 한판 두겠나?”

“····”

“한 사내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그와 직접 승부를 겨루어봐야 하는 법이지·”

말레온이라 스스로를 칭한 남자가 기분 좋은 듯이 미소지었다·

“어차피 이 대회에 모인 어르신들은 자네의 상대가 아닌 듯한데· 내가 직접 상대해 주지·”

“그건····”

레녹이 어떤 식으로 그간의 대국을 빨리 끝냈는지 알면서도 서슴없이 승부를 제안한다·

본인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 상대를 알아보고도 인정하는 드높은 안목·

대회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상대를 정하는 기묘한 태도·

‘···설마?’

“죄송하지만 대진표에 등록되지 않은 상대라면 사양하겠습니다·”

레녹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대회 우승을 위해 참가한 만큼 쓸데없이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군요·”

“흠 자네의 실력을 보면 그런 부분을 일일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말레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와의 대국에서 자네가 이긴다면 이후의 대진과는 상관없이 우승상품을 지급하도록 하지·”

“····”

“팔겁에 위치한 원로성의 보물창고를 직접 열어주겠네· 그 정도는 내 권한으로 가능하거든·”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질 법한 괴상한 제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옆에서 듣고 있던 소년이 그 말에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레녹의 눈앞에서 우승상품을 언급하는 이 용인의 말이 허언 따위가 아니라는 방증·

“평범한 참가자는 아니셨군요·”

그것을 깨달은 레녹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누구십니까?”

“나 말인가?”

레녹의 반문에 말레온이 웃었다·

“팔대용왕을 이끄는 지도자· 팔겁의 원로성 소속 최고위원·”

“····”

“그리고 이 대회를 연 주최자이자····”

말레온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자네와 같이 구겁에 들어가려는 존재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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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g-Eating Genius Mage

Drug-Eating Genius Mage

Drug-Eating Genius Mage, Medicine-eating wizard
Score 9
Status: Ongoing Type: Released: 2020 Native Language: Korean
“World”, a game that boasts extreme freedom. In “ver.3.0”, I decided to put everything to increase the magic talent! All stats are all about magic! Instead of enhancing the character’s magic talent, took a huge amount of demerit characteristics. But, it doesn’t matter. I will create the greatest Wizard character, even if the character looks like a corpse. But…. What is this? I became that character– a character with genius talent, but can’t pass a day alive without taking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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