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g-Eating Genius Mage Chapter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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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화

별의 그늘(12)

알로건의 분노가 예하술주를 향해 전력으로 쏟아져 내린 순간·

물이 넘실거리는 심해권역의 경계선에서 두 괴물이 동시에 움직였다·

후욱!!

수룡으로 화한 알로건의 거체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꼬리를 휘두른 찰나·

예하술주의 신형이 충격파를 흩뿌리며 파도 저편으로 튕겨 나갔다·

콰아아앙!!!

“큭···!!”

심해권역 한복판에 위치한 물길을 수차례씩 관통하며 무거운 굉음을 터트렸다·

수압이 짓누르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큼 섬찟한 충격파·

하지만 알로건은 몸짓 한번으로 예하술주를 튕겨낸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놓치지 않겠다···!!!]

예하술주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거대한 수룡이 몸을 굽혔다 펼치면서 가속한다·

쿠구구구!!!

몰아치는 파도를 짓밟고 솟구친 수룡이 바다 한복판에서 그 거체를 회전시켰다·

온몸에 뒤덮인 푸른 비늘이 영롱한 광채를 품고 발광하며 거울처럼 바다를 비추었다·

수룡의 몸이 바다 속에서 회전할 때마다 주변의 해류가 따라 가속하며 물길을 진동시키고·

“이거 한방 제대로 먹었군요·”

콰아아아···!!

물과 피에 흠뻑 젖은 예하술주가 넘실거리는 파도 속에 누운 채로 쓰게 웃었다·

“그 잠깐 사이에 팔대용왕을 끌어들일 줄이야· 이건 임기응변의 수준을 한참 넘지 않았습니까?”

예하술주는 장막의 이면에 진입한 직후 끊임없이 레녹이 천체술식을 지녔는지 시험하려 했다·

이면의 시공에서 먼저 모습을 감춘 뒤 레녹이 길을 찾는 방법을 시험해 보려했던 것 역시 그 일환·

하지만 레녹이 팔대용왕의 심해권역을 찾아내 그와 오백로 승부를 벌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물며 알로건과의 대결에서 압승한 것은 물론이고 그의 분노를 술주에게 돌려버릴 줄이야·

일이 이렇게 된 것 자체가 레녹이 의도한 결과였음을 예하술주는 이변이 발생한 직후 깨달았던 것이다·

[장막을 베어 이면의 시공을 어지럽힌 죄를 무고한 자에게 묻고 있었구나·]

쿠구구구!!!

새파란 파충류의 동공으로 예하술주를 내려다본 알로건이 싸늘하게 말했다·

[네 몸에 새겨진 사이한 괴문자만 보아도 네놈이 장막에 손을 댄 범인이라는 사실은 명백했는데·]

“····”

[한낱 지저분한 칼날 따위가 감히 별의 그늘을 훼손시켜?]

콰르르릉!!!

주변의 수압이 한층 더 강해지면서 예하술주의 몸을 무겁게 찍어누른다·

심해권역에 입성하기 전에 따로 조치를 해두지 않았다면 진작에 온 몸이 짓눌려 압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압·

[쿤다라의 해역을 수호하는 자로서 네놈을 나의 심해권역 아래 수장시켜 주마·]

‘팔대용왕을 상대로 한눈을 팔면서 싸울수는 없다· 골치아프게 됐어·’

심해권역을 부유하는 수룡을 바라보는 예하술주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

‘이대로라면 견뢰가 무슨 짓을 해도 이쪽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나?’

쿤다라의 변경을 지키는 팔대용왕은 수백 년을 넘게 살아온 초월적인 장생종·

개개인이 위계를 초월해 권역을 구축하고 외겁도시의 규칙을 수호하는 존재들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들의 권역에서는 필연적으로 불리함을 안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

“어쩔 수 없군요·”

한숨을 내쉰 예하술주가 몰아치는 파도를 밟고 일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알로건이 예하술주를 죽이려는 이유가 명확한 만큼 대화로 지금 상황을 모면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알로건과 이 심해권역에서 싸우고 있으면 예하술주 역시 레녹을 놓쳐버리게 된다·

레녹이 이 틈에 천체술식을 사용해 쿤다라로 진입한다면 지금까지 한 일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맹주의 전언을 받은 그로서는 그 상황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연맹의 다른 유능한 술주들을 두고 제가 맹주의 의사를 대행하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쩌억!!

고대문자를 새긴 팔을 들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허공의 물이 양쪽으로 쩍 갈라진다·

권역 안에서 참격의 위력이 얼마나 반감되는지 확인한 술주가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걸어나왔다·

“제가 맹주께서 주신 ‘공능’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네놈이 장막을 ‘베어’ 이면의 시공을 어지럽힌 것처럼 말이더냐·]

“저는 손잡이 없는 칼날이자 칼날이 없는 칼집입니다·”

예하술주가 웃었다·

“제가 가진 결핍으로 인해 반대로 그분의 힘을 대행할 특혜를 손에 넣었으니·”

해일 위에 올라탄 수룡을 향해 손을 펼친 술주가 말했다·

저 폭급한 용왕을 상대하면서도 레녹을 놓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술주가 고개를 젖혔다·

“오시지요· 잠시나마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

콰과과광!!!

격노한 알로건이 예하술주를 들이받은 직후 심해권역 전체가 거칠게 흔들렸다·

용왕의 선공에 두들겨맞고 날아간 예하술주와 그를 따라 튕기듯이 몸을 가속한 알로건의 모습·

심해권역에 넘실거리는 물길이 권역 경계선 바깥으로 폭발하며 자욱한 안개의 길 사방으로 흘러넘쳤다·

특정한 좌표가 존재하지 않는 이면의 시공·

허수차원에 가까운 안개의 길 위에 강제로 물을 끼얹고 환경을 강제하는 수신용왕의 힘·

“일단 알로건과 예하술주를 싸움 붙이는데 성공했다·”

쏴아아아!!!!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빗줄기와 발 아래 흘러넘치는 물길을 번갈아 바라보던 레녹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는 생각대로 잘 풀렸군· 바로 움직이지·”

[오백로에서 이긴 것 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순순히 심해권역을 벗어난다 싶었더니····]

올리비에라가 기가 막힌 듯이 물었다·

[팔대용왕을 애초에 이런 식으로 써먹을 생각이었군· 처음부터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냐·]

“당신의 설명대로라면 예하술주는 우리가 심해권역에 도착하는 순간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겠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여의주를 챙겨들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가 알로건과 싸우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일이 이렇게 된 시점에서 알로건이 분노할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예하술주는 레녹이 심해권역에 진입하는 것을 지켜보았겠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심해권역처럼 권역 자체가 극한의 환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면 권역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

하지만 돌아가는 정황이나 마력의 흐름을 통해 레녹과 알로건이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했겠지·

만에 하나 알로건이 레녹을 쿤다라로 들여보내준다면 예하술주의 목적과는 크게 어긋나는 일·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예하술주가 심해권역 근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했던 것이다·

“서두르지· 예하술주가 알로건에게 발이 묶인 지금이 기회다·”

레녹이 올리비에라를 향해 눈짓했다·

“지금 바로 천체술식을 사용해 쿤다라로 향하는 길을 뚫는다·”

[심해권역 바깥에서 모형정원을 전개할 생각이군·]

“알로건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해류 전체를 조작하는 수신술의 특성상 심해권역 전체가 요동칠 거다·”

안개의 길 위로 넘실대는 물길을 밟고 걸으면서 레녹이 말했다·

“술주의 감각이 아무리 예민하다 해도 권역 안에서 알로건과 싸우면서 내 술식 운용을 눈치채기는 어렵겠지·”

[····]

“남은 건 천체술식을 전개해 [장막]과 직접 맞닿을만한 장소를 찾는 것 정도인데-”

그렇게 말하던 레녹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철벅!!

흘러넘치는 물을 밟고 돌아선 레녹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유감스럽게도 다른 수신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심해권역의 경계선을 타고 흘러넘치는 물길·

안개의 길에 들어찬 수류를 타고 아가미를 단 어인들이 어느새 레녹을 둘러싸고 있었다·

각자 흉악한 장병기와 아티팩트를 쥔 채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장생종들의 모습·

“알로건이 내 제안을 받아들인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레녹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 부분에 대해 내게 불만이라도 있는건가?”

“알로건 님께서 결정하신 모든 일들이 오롯이 그분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

쿠웅!!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 남성이 터질듯한 근육질의 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답했다·

“때로는 그분의 의사를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을 위해서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손에 들린 삼지창 사이로 수십갈래에 달하는 물줄기가 얽혀 복잡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심해권역의 주인인 알로건의 휘하에 존재하는 수신족의 고위계 장생종들·

오백로 대국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았던 강자들이 뒤늦게 나선 것인가·

알로건의 자존심이 박살내는 중에도 개입하지 않던 그들이 이제 와서 레녹을 쫓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레녹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여의주를 들어 올린 레녹이 물었다

“이걸 돌려받고 싶나?”

“····”

날카롭게 곤두선 분위기·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폭발할 것처럼 진득한 살의가 이쪽을 찌르는 듯하다·

하지만 레녹은 어인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여의주를 향한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너희들의 용왕이 결과에 승복했는데 아직까지 그의 수명에 미련을 두는군·”

레녹이 웃었다·

“정당하게 승부를 냈음에도 내깃돈을 되찾고 싶다니 장생종의 방식이라기엔 꽤 지저분하지 않나?”

“너는 알로건 님과 정면에서 승부를 낼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분을 계속해서 이용하려 했다·”

남자의 시선이 차갑게 변했다·

“장막 바깥에서 드루이드들을 학살한 피에 젖은 손으로 이 심해권역에서는 무엇하나 손대지 않았지·”

“····”

알로건과는 달리 남자는 레녹이 서부전선에서 한 일을 알고 있었다·

쿤다라의 모든 장생종들이 바깥의 소식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나·

그 예상치 못한 대답에 레녹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기울인 그 순간·

“서부전선 바깥에서 이어져온 악명과 불규칙한 언동· 그럼에도 종잡을 수 없을만큼 뛰어난 술식과 기력·”

철컥!!

물줄기를 두른 삼지창을 레녹을 향해 겨눈 남자가 말했다·

“알로건 님께 저 괴한을 떠넘긴 선택이 그것이 진정으로 그분을 위한 길이라 생각되지는 않는군·”

“····”

“단명종에게는 단명종에게 주어진 천명이 있는 법·”

어인들의 눈빛이 순간 냉엄하게 변했다·

“아무리 뛰어난 대술사라 해도 알로건 님의 시간을 훔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그렇군·”

파지직!!

손가락을 들어 올린 레녹이 마력을 회전시키며 픽 웃었다·

“그런 이유라면 굳이 손속을 둘 필요도 없겠어·”

“잡아!!”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수신족들이 달려든다·

각자 날카로운 창날을 쥐고 회전하는 수류를 감은 채 가속하는 어인들의 모습·

물길을 밟고 질주하는 그 속도는 레녹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빨랐지만 전격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손안에서 뇌전을 응축시킨 레녹이 그것을 쥐고 그대로 발 아래 물길에 떨어뜨린 순간·

물속에서 뇌광이 번뜩이며 수백갈래로 퍼져나간 뇌전이 어인들의 온 몸을 감전시켰다·

[감류전역(感流電域)]

빠지지직!!!

“끄아아악!!”

“그르르륵···!!!”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어인들이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두 눈을 까뒤집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얕은 수면에 머리를 처박는 장생종들의 모습·

자욱한 안개의 길 곳곳에서 수신족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단명종의 술사가 심해권역을 공격했다!!”

“수신족 전원 전투 준비!!”

“여의주를 되찾는다· 근방의 시공을 남김없이 포위하라!!”

알로건과 예하술주가 충돌한 직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해류의 격동· 쉴 새 없이 폭발하는 웅혼한 마력의 폭풍·

수백에 이르는 수신족의 초인들이 빠른 속도로 안개의 길 곳곳을 포위하는 것이 느껴진다·

설마 수신족 측에서 여의주를 빼앗기 위해 개입할 줄은 몰랐지만 이대로 무시하고 떠날 수도 없는 일·

천체술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신족을 모두 정리하거나 누군가 시간을 끌어야 한다·

레녹이 올리비에라와 시선을 교환하고 마력을 끌어올린 순간·

그의 어깨에 올라탄 불가사리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참을 수 없는 피와 욕망의 냄새··· 언제 어디서 맡아도 달콤하기만 하군요·

“····”

=역시 오늘 그대를 따라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모로 후회하지 않을 기억이 되겠어요·

그렇게 말한 불가사리가 레녹의 어깨에서 붕 떨어져 나와 물속에 둥둥 떠올랐다·

불가사리의 형상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오르더니 안개의 길 한쪽에 바로섰다·

=먼저 가시지요· 길을 막겠습니다·

“···너·”

=수신족이 그대를 찾지 못하도록 제가 시선을 끌지요·

힐끗 레녹을 돌아본 불가사리가 인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웠습니다·

“알로건과 친분이 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시점에 내 편을 드는 이유가 뭐지?”

펜터렉트를 계기삼아 나타나 레녹의 유전정보를 요구하고 나선 외계의 짐승·

하지만 헤드로 군벌 전체를 마물로 변이시킨 존재답지 않게 꽤 친절하고 정중했다·

마지막에는 몸소 나서서 레녹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겠다고 나서다니 저쪽에서 이렇게까지 레녹에게 호의를 보일 이유가 있을까·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때문이지요·

불가사리가 답했다·

=팔대용왕이 이끄는 수신족 전체보다 아직 얻지 못한 그대의 유전정보가 더욱 가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답을 했을텐데·”

레녹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세포나 유전정보를 넘겨줄 생각은 없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그래도 괜찮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꼭 그대가 살아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불가사리가 웃었다·

=이렇게 인연을 이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대의 허락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도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그건 꽤··· 재미있는 말이로군·”

그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한 레녹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나를 지켜보면서 언젠가 내가 죽는 순간까지 기다리겠다?”

=이런· 그렇게 말하자니 너무 야만스럽게 들리지 않습니까·

불가사리가 능청을 떨었다·

=서로의 타협점을 존중하는 선에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투자방식을 선택한 거지요·

“····”

=하지만 오늘 그대가 장막의 이면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저희도 그대의 유전형질을 채취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요?

대상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상관없기에 애초에 레녹의 허락을 구할 생각도 없다·

애초에 레녹을 지금 도와주는 이유조차 레녹이 혹시나 이면의 시공에서 죽는다면 유전정보를 채취하기 어렵기 때문·

이 기괴하고 친절한 불가사리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레녹이 다시금 실감한 찰나·

=그러니 사망하실 때는 장막 바깥에서 되도록 시신을 온전히 남기는 형태로 부탁드리지요·

일곱개의 손가락으로 이뤄진 불가사리가 레녹을 향해 경례하는 것처럼 검지를 들어 올렸다·

=다음 기회에는 그대의 죽음과 더 가까워진 곳에서 뵐 수 있기를·

“····”

그 말과 함께 스스로의 몸을 부풀려 안개의 길 저편으로 사라지는 불가사리의 모습·

[네 악명과도 꽤나 잘 어울리는 이형종이었건만 매정하게 구는구나·]

올리비에라가 레녹의 옆에서 냉소했다·

[잘만 구슬렸으면 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애완동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외계의 짐승이 시간을 끌어준다고 말했으니 수신족을 더 상대할 이유는 없겠지·”

올리비에라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레녹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일단 심해권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근처에 보아둔 자리가 있다·”

예하술주와 알로건이 싸우는 심해권역과 안개의 길이 겹치는 경계를 벗어난다·

자욱한 안개가 희미해지는 협곡까지 도착한 레녹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막의 이면 안쪽에 위치한 시공·

안개 낀 산맥과 그 사이에 위치해 있는 절벽과 협곡들이 자리한 험준한 환경·

하지만 이곳이라면 장막의 이면 안쪽에서도 다시 장막과 직접 접촉할 수 있다·

장막을 직접 비틀어서 쿤다라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 레녹에게는 가장 적합한 환경·

“후우····”

지금 이 순간에도 알로건과 예하술주가 충돌하며 권역이 흔들리는 어지러운 상황·

부산스럽기 그지없지만 레녹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차분하게 심호흡을 했다·

“올리비에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도포를 정리하며 돌아선 올리비에라가 팔짱을 낀 채 시선을 들어올렸다·

[호법을 서지· 시작해라·]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양손을 맞잡은 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간단한 수인조차 맺지 않고 최대한 온몸에 힘을 뺀 자세로 정신을 집중할 뿐·

고오오···!!

구세계의 승천자 치천의 천체술식은 말 그대로 하늘의 움직임을 다루는 힘·

하지만 천체술식은 하늘이 보이지 않거나 하늘이 없는 공간에서 무력화되는 술식이 아니다·

하늘이 없으면 하늘을 만들고 하늘 아래 세계가 없다면 그 세계마저도 모형으로 구현한다·

술자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구체화하여 현실에 직접 구현하는 자성영역의 원류에 가까운 [모형정원]·

체내의 마력을 의념과 함께 조립해 내면에서 확고한 이미지와 함께 현현해 낸 그 순간·

“술식 개시·”

쩌어어엉!!!

레녹을 중심으로 하늘에 깔린 안개가 훅 밀려나며 공간을 새롭게 개편하기 시작했다·

이면 안에 자욱한 안개 사이로 틈을 내고 새로운 공간을 그 사이에 끼워넣는다·

물과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진공상태의 모형정원이 레녹의 발아래 펼쳐진 순간·

파스스슷···!!

발 아래 수풀이 자라나고 머리 위로는 별빛이 빛나는 밤하늘이 떠올랐다·

발칸에서 클라리스 리첼렌과 함께 연습을 거쳐왔던 천체술식·

중앙전선 경계지대의 환경을 모방한 모형정원이 둥글게 회전하며 방대한 천구를 펼쳐냈다·

쿠오오오!!!!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한 협곡의 하늘 위로 밤하늘과 초원이 펼쳐진 위화감 어린 풍경·

“후우···!!”

힘겹게 한숨을 토해낸 레녹이 지체 없이 품 안에서 장막의 파편을 꺼내 들었다·

첫번째 관문에서 가져온 모형정원의 장막을 현실의 장막과 동기화시키기 위한 촉매·

별가루처럼 빛나는 장막의 파편을 꺼내 모형정원 위로 흩뿌린다·

파아아아앗!!!

그 순간 모형정원의 천구 위로 눈부신 은빛의 베일이 떠올라 나풀거리기 시작했다·

장막의 촉매를 모형정원에 뿌리는 순간 현실의 장막와 모형정원의 장막이 동화되기 시작한 것·

“···간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 레녹이 맞잡은 양손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느릿하게 손을 붙였다 떼면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킨 순간·

끼기기긱···!!!

양손이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모형정원의 천구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형정원의 밤하늘이 회전할 때마다 그 위에 펼쳐진 장막의 모형이 같이 회전한다·

모형장막이 회전할 때마다 협곡의 하늘 위로 드리운 안개의 시공 역시 느릿하게 흔들렸다·

마치 공간이 비틀리며 삐걱대는 듯한 거친 소음이 울려 퍼지면서 심해권역이 거세게 진동했다·

모형장막과 현실의 장막 그리고 장막과 직접 맞닿은 이면의 시공이 순차적으로 비틀리면서·

클리리스가 ‘조정’해 둔 특정한 공전주기에 따라 장막을 비틀어 젖힌 그 순간·

파아아아앗!!!!

모형정원과 현실이 겹쳐지는 경계선 끝에서 새하얀 광채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장엄한 협곡· 용의 머리처럼 솟아난 거대한 바위·

새하얀 공간균열 너머에 펼쳐진 인간의 감각으로는 체감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도시의 형상·

외겁도시 쿤다라·

멸망을 피해 숨어든 장생종들의 도시·

레녹이 마침내 그 도시의 풍경을 두 눈으로 마주했음을 깨닫고 숨을 죽였다·

즉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천체술식을 회수하고 모형정원을 닫아버리려던 그 순간·

안개 저편에서 거대한 수룡이 엄청난 속도로 추락해 레녹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

[크르르릉···!!!!]

거센 포효를 터트리며 울부짖은 수룡이 사방의 물길을 폭발적으로 회전시키며 안개를 걷어낸다·

레녹이 수신술의 요령과 안개를 사용해 숨겨둔 모형정원의 존재·

그것이 찰나의 순간 협곡 위로 모습을 드러냈음을 레녹이 깨달은 직후·

“아 드디어 찾았다·”

예하술주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

전신이 칼에 베인 것처럼 피투성이가 된 예하술주가 이쪽을 바라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기어코 쿤다라로 가는 길을 직접 여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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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g-Eating Genius Mage

Drug-Eating Genius Mage

Drug-Eating Genius Mage, Medicine-eating wizard
Score 9
Status: Ongoing Type: Released: 2020 Native Language: Korean
“World”, a game that boasts extreme freedom. In “ver.3.0”, I decided to put everything to increase the magic talent! All stats are all about magic! Instead of enhancing the character’s magic talent, took a huge amount of demerit characteristics. But, it doesn’t matter. I will create the greatest Wizard character, even if the character looks like a corpse. But…. What is this? I became that character– a character with genius talent, but can’t pass a day alive without taking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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