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7화
별의 그늘(3)
쿠르르릉!!!
드루이드들이 만든 거대한 자연통로가 수십 킬로미터를 훌쩍 뛰어넘어 장막을 비춘다·
[장막]에 달라붙어 기생하고 있는 오버마인드와 그 주변을 빼곡하게 뒤덮은 마물들의 군세·
전선 한쪽을 완전히 장악한 채로 외부의 침입을 철저하게 경계하는 헤드로 군벌의 주전력·
레녹은 통로 저편에 비친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후욱!!
선 하나를 밟고 지나왔을 뿐인데 느껴지는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진다·
서늘하던 숲의 바람이 후끈한 열기로 달아오른다· 청량한 풀 냄새가 질척한 혈향으로 변했다·
발아래 밟고 있는 수풀의 색깔마저 샛노랗게 썩어간다·
마물들이 장악한 채 실시간으로 오염되어가는 서부전선·
“현재 장막 바깥에 주둔중인 헤드로 군벌의 군단은 모두 셋·”
발굽소리와 함께 통로에서 걸어나온 사슴인간 아젤란이 말했다·
“중앙의 특수변이군단· 우측의 기갑포화군단· 좌측의 생체강습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
쿵!!
나뭇가지를 엮어만든 창을 땅에서 끌어내 쥔 아젤란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양측의 포화군단과 강습군단은 이쪽에서 맡겠다· 네게는 중앙의 변이군단의 저지를 부탁하지·”
“저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겠나?”
“현재 오버마인드를 지키고 있는 것은 중앙의 변이군단과 영관급 개체로 이뤄진 최정예 마물들이다·”
아젤란이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앙의 가장 견고한 전력을 뚫어내느니 상대적으로 취약한 양쪽을 돌아 오버마인드를 노리는 것이 좋겠지·”
“····”
“네게는 중앙의 전력이 양 옆으로 분산되는 것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기고 싶다· 길을 뚫는 것은 이쪽이 맡지·”
중앙에서 시선을 끌면서 전선이 확장되는 것을 저지하고 드루이드들이 양쪽으로 길을 뚫는다·
화력이 필요한 일은 마법사인 레녹에게 넘기면서도 위험부담이 높은 돌파는 드루이드들이 맡는 작전지시·
바글바글한 마물들의 군세를 바라보며 레녹이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치익!!
품안에서 연초를 꺼내 불을 붙이고 주사기를 팔뚝에 꽂아 넣는다·
연기를 내뿜으면서 품 안에서 단환을 꺼내 씹어 삼킨다·
“이 이상한 걸 많이 주워 먹네요····”
레녹의 뒤에서 통로를 타고 걸어 나온 시귀술주가 이쪽을 힐끔거리면서 물었다·
“그 그런 걸 많이 투약하면 오히려 몸에 안 좋을 텐데····”
“배합을 거쳐서 복용하는 물건이니 걱정하지 마라·”
레녹이 그렇게 대꾸하면서 힐끗 시선을 돌렸다·
“엘더 드루이드·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좌측에서 생체강습 군단을 뚫고 길을 열겠다· 아울러 좌측에서 주둔중인 예하술주의 난입 역시 동시에 견제해야겠지·”
아젤란이 대답했다·
“단신으로 전선을 구축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인간종이다· 요 며칠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던 모양이나 최악의 사태를 대비할 필요가 있겠지·”
“····”
투구 너머로 아젤란의 무거운 시선이 레녹을 향했다·
“오버마인드를 상대하는 일은 내가 맡지· 그가 오염시킨 장막을 정화시킬 방법이 있다·”
“정화라····”
고개를 살짝 숙인 레녹이 중얼거렸다·
파지직···!!
언덕 위에 발을 걸치고 지상을 굽어보는 레녹의 등허리에서 푸른 전격이 피어오른다·
새파란 광채가 번뜩이며 밀도를 높이고 이내 끊기는 일 없이 레녹의 전신을 두르고 터져 나왔다·
쩌저저저정!!!
눈앞의 시야가 새하얗게 일그러져 빛나는 듯하다·
두 눈을 멀게 만들어버릴 듯한 격한 섬광에 지켜보던 드루이드들이 무심코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충전 완료·”
키이이잉···!!!
양옆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온 수백 발의 뇌전이 둥글게 구부러져 레녹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수백 수천 발에 달하는 전격입자가 레녹의 손끝에 급격하게 모여들어 집속한다·
하늘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을 끌어모아 장전하는 듯한 섬뜩하고도 신비로운 풍경·
검지와 중지를 모은 레녹이 마력을 끌어당기며 마물들이 들끓는 지상을 가리켰다·
“일단 한발 먹이고 시작해 볼까?”
[중진화(重震華)]
[뇌격공성포(雷擊攻城砲)]
레녹의 손끝에서 터져 나온 뇌격공성포의 광채가 거대한 삼각형을 그리며 지상을 휩쓸었다·
쏟아지는 뇌광의 열기에 바글거리던 마물의 군세가 반응할 새도 없이 휩쓸려 증발했다·
뻐어어어어어엉!!!!!
[캬아아아악!!!]
[끄에에에에에!!]
한발 늦게 마법사의 존재를 알아차린 마물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면서 사념을 터트렸다·
군단이 습격받았다는 사실을 군체의식으로 전송하고 그 자리에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철컥 철컥!!
드르르르륵!!
온몸에 기괴한 방향으로 꽂힌 총기를 장전하고 핏줄이 돋아난 포대를 돌려세운다·
마력의 진원지를 향해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저주와 원념이 뒤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가자·”
영창 한 번으로 전방의 마물을 휩쓸어버린 화력에 경악하면서도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드루이드들이 움직였다·
콰드드득!!
늙은 드루이드가 주문을 영창하자 살아 있는 나무들이 급격하게 자라나 마물들을 옭아맨다·
거대한 곰으로 변한 드루이드가 발톱을 휘둘러 포대를 부러뜨리고 그 위로 얽힌 핏줄을 터트렸다·
하늘에서 잎사귀의 폭풍이 흩날리면서 예리한 칼날로 마물들의 피부를 찢어발겼다·
양옆으로 전력을 나누어서 움직이며 자연술식을 영창하는 드루이드들의 모습·
그 모습을 확인한 레녹이 중앙에서 몰려드는 마물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욱!!
절벽 위에서 떨어지듯 추락한 레녹의 신형이 지상에 발이 닿기 직전에 사라진다·
사선으로 튀어오르는 번갯불과 함께 땅에 균열이 일고 새파란 벼락이 솟구쳤다·
콰아아아앙!!!
땅에서 하늘로 거꾸로 튀어 오르는 벼락을 타고 레녹이 움직였다·
[끄어어어!!]
마물들이 서로 결합해 만들어진 뚱뚱한 마인이 레녹을 향해 토사물을 흠뻑 토해냈다·
산성용액으로 이뤄진 토사물이 파도처럼 몰아치며 다른 마물들까지 녹여 없애 버렸다·
타앙!!
발아래 뇌전의 창을 때려넣고 걷어차 올라탄다·
산성용액에 전격을 던져 널리 퍼트리면서 점멸을 사용해 마인에게 접근·
왼손으로 뚱뚱한 마인의 얼굴을 그대로 쓸어내렸다·
[편뢰(翩雷)]
퍼어어엉!!
마인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지면서 그 자리에서 뇌수를 흩뿌렸다·
자기가 토해낸 토사물에 몸을 처박고 녹아 증발하는 마인의 시체·
[뇌광정(雷光井)]
빠지지지직!!!
흘러넘치는 벼락을 전신에서 뽑아내면서 시체를 밟고 앞으로 향한다·
방향과 속도도 없이 피어났다 사라지는 굵직한 전격을 그대로 손으로 잡아채 휘둘렀다·
[효번(嚆燔)]
허공에서 불타는 전격이 산산조각 나 산탄처럼 폭발했다·
[충천(衝天)]
레녹의 손에 잡힌 뇌전이 날카롭게 일그러져 달려드는 마물 수십 마리를 꿰뚫고 밀어냈다·
[번환제인(飜煥製引)]
드르르르륵!!!
의미없이 번뜩이며 사라지는 뇌전에 의념과 영창을 불어넣고 실재하는 마법으로 뒤틀었다·
벼락의 우물에서 솟구치는 전격이 레녹의 손에 쥐여진 순간 전격마법이 되어 공간을 난자하고·
[끼아아아악!!!]
[끄륵 그르르륵!!!]
목숨이 두렵지 않은 것처럼 몸을 던져가던 마물들의 공세가 조금씩 뒤로 밀려난다·
포탄을 쏘아올리던 전차포구가 녹아내리고 하늘에서 비행하던 전투기들이 떨어지는 낙뢰에 맞아 추락했다·
두두두두두!!!!
추락해 폭발하는 전투기의 잔해와 마물들의 시체가 번갯불에 짓눌려 소멸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수백 수천의 마물들을 단신으로 갈아 버리는 레녹의 모습·
홀로 쉴새없이 뇌광을 터트리면서 전진하는 마법사의 신형에 양쪽에서 응전하던 드루이드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앙의 변이군단을 혼자 돌파하고 있다···!!”
“이럴 수가· 전선을 저지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레녹에게 중앙의 변이군단을 맡긴 것은 오버마인드를 호위하는 중앙의 전력이 가장 견고하기 때문·
그렇기에 레녹에게 군단의 전력이 분산되지 않도록 저지한 뒤 양옆에서 길을 뚫을 생각이었지만·
레녹은 그런 드루이드들의 작전 지시를 무시하고 홀로 중앙을 직접 돌파해 길을 뚫기 시작한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서 구도가 바뀌어가는 전장의 상황·
아젤란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강렬한 전성을 터트리면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드루이드 전원 중앙으로 합류하라!!]
손에 쥔 녹창을 휘두르면서 마물들을 짓밟은 엘더 드루이드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사방에서 나무들이 자라나면서 벽을 치고 중앙으로 길을 잇기 시작했다·
[견뢰가 길을 뚫는다· 가장 강한 사냥꾼의 뒤를 따르라!!]
두두두두!!!!
전격마법을 난사하면서 전진하는 레녹의 뒤로 드루이드들이 하나둘씩 집결한다·
마물 군단이 길을 끊기 위해서 파고들었지만 떨어지는 낙뢰를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나갔다·
오염된 장막 아래 바글거리는 마물들의 군단 중앙에 송곳처럼 뾰족하게 길이 트였다·
콰과과광!!!
앞으로 향할 때마다 저항이 거세지고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오염된 포탄의 숫자가 늘어난다·
상공에서 비행하는 또 다른 항공모함에서 마물 전투기가 연달아 출격하고 하늘에서 피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큭···!!!”
드루이드들이 나무를 자라게 해 우산처럼 머리 위에 씌웠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린다·
동시에 사방에서 괴물보다는 인간의 형상에 가까운 검붉은 피부의 마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관급 개체···!!”
마물들 중에서도 강한 마력을 보유한 최정예 개체들이 중앙이 뚫리자 나서기 시작한 것·
마물로 타락한 뒤에도 지성을 유지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군벌에 복종하는 괴물들·
스르릉···!!
피에 물든 총검과 굵직한 도끼· 우둘투둘한 혈관이 솟아오른 대전차포·
그 밖에 온갖 흉험한 전쟁병기들과 결합한 마인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온 순간·
“시간이 됐군·”
레녹이 품 안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약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키이이잉···!!!
[···!!!!]
약병 안에서 회오리치는 아름다운 황금빛의 액체를 인지한 순간 수백에 달하는 마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지성을 잃은 괴물과 마인을 가리지 않고 그 눈에 떠오른 강렬한 탐욕의 감정·
마치 저것이 얼마나 귀중한 재보인지 아무런 설명조차 없이 직감적으로 이해한 듯하다·
하지만 레녹은 마물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거침없이 약병을 따고 그것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아리스 리첼렌이 레녹에게 선물해 준 엘릭서· 그것을 몇 배로 희석시킨 ‘엘릭서’의 희석액·
대략 3·98초 동안 레녹이 지닌 최대마력량을 강제로 ‘고정’시켜 주는 능력을 지닌 기적의 산물·
마력소모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단 4초·
하지만 그 정도면 레녹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와라·”
약병을 입안에 털어넣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 손을 뻗어 움켜쥔다·
[천뢰건(穿雷鍵)]
콰아아앙!!!
공간이 갈라지면서 레녹의 손에 눈부신 벼락의 열쇠가 잡히고 이윽고 수십 배로 부풀어 오르며 지상에 꽂혔다·
수십 미터 크기의 거대한 열쇠가 벼락의 창처럼 사선으로 전장에 꽂히면서 발광한다·
“···!!!”
레녹의 뒤를 따르던 드루이드들조차 순간 멈칫거릴 만큼 압도적인 크기로 전장에 내리꽂힌 열쇠의 형상·
[벌레같은 것들·]
뇌제의 싸늘한 전언과 동시에 그 무게에 수백에 달하는 마물들이 깔려 죽었다·
열쇠를 타고 흐르는 전격의 소용돌이에 살점과 눈알이 불타고 신경줄기가 뽑혀 으깨졌다·
[끼게게게겍!!]
[으그그극···!!]
발작하면서 어떻게든 천뢰건을 피해 레녹을 향해 달려들려는 마인들의 모습·
하지만 레녹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벼락을 휘두르는 대신 그대로 양손을 합장했다·
이 시점에 천뢰건을 꺼내든 것은 레녹의 전격마법이나 영역을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
엘릭서의 마력보조까지 받아가면서 레녹이 지금 이 자리에서 사용하려는 술식은 바로-
“소환술·”
쩌저저적···!!
붉게 물든 하늘 위로 거대한 벼락의 눈동자가 새겨진다·
거인이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 것처럼 피구름 사이로 눈을 뜨면서 개안하는 눈동자의 모습·
직후 그 저편에서 공간을 깨부수고 벼락에 휩싸인 전쟁마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아아!!!
“소환술식으로 토르번 전쟁마탑을 이 자리에 소환한 건가···!!!”
양옆에서 달려드는 마물을 발굽으로 짓밟던 아젤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군·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마력소모량이 아닐 텐데···!!!”
소환술에 필요한 마력의 소모량은 소환대상이 위치한 거리와 대상의 마력보유량에 비례한다·
지금 이 전장에서 족히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을 토르번 전쟁마탑·
그것도 수백에 달하는 워메이지들이 탑승해 있는 마탑을 소환계약도 없이 불러내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이 필요할까·
필요한 마력량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그만한 마력을 일시에 소모해 버리면 그 반동으로 혼절해 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이 시점에 불러야 시간이 딱 맞겠지·”
레녹이 양손을 떼어내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은 일은 부탁한다·”
위이이이이잉!!!!
그 말에 답하듯 뇌전을 휘감은 전쟁마탑이 선체 후미에 달린 추진장치를 전력으로 작동시킨다·
귀청이 터질세라 엔진을 울리면서 탑의 모든 동력을 담아서 지상을 스치듯이 저공비행한 순간·
그것만으로 지상에서 날뛰던 마물들이 먼지처럼 쓸려나가면서 모조리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과과!!!
[끄르르르르륵!!!]
[꺄아아악!!! 우웨에에엑!!!]
전쟁마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시커먼 핏물만이 남아 서부전선을 덧칠했다·
마물의 군세를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것처럼 움직이는 길목마다 마물들을 학살하며 불태우고 길을 연다·
일시적으로 정체상태에 접어든 중앙의 전선을 한 번에 관통하듯이 밀고 쓸어버리는 토르번 전쟁마탑의 화력·
콰아아아아!!!!
중앙의 군세가 뚫리면서 마물들의 시체 위로 길이 열린다·
사선으로 내리꽂힌 천뢰건의 광채 너머 장막에 달라붙은 오버마인드가 경련하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머리를 장막에 바짝 붙인 채 입을 벌리고 필사적으로 마물을 토해내는 모습·
“길이 열렸군· 일단 오버마인드를 확보해야-”
탁 트인 전장의 길목 저편· 레녹이 오버마인드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뒤에서 회전한 묵직한 창날이 그대로 레녹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콰직!!
“···!!!”
반응할 새도 없이 꿰뚫린 레녹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으로 들어올려진다·
두 발을 땅에 붙이지도 못한 채 심장을 관통한 창날을 보며 고개를 숙인 레녹의 모습·
“장막에 볼일이 있다고 말했으면서 오버마인드를 죽이는 게 아니라 확보하는 일에 계속 신경을 쓴다라····”
창대를 단단하게 쥐고 있던 아젤란이 무표정한 얼굴로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너는 오버마인드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군·”
“····”
“지나치게 위험한 직관을 지녔어· 아니 그건 오히려 예지에 가까운 감응력이라 해야 할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창대를 비튼 아젤란이 말했다·
“전쟁마탑이 멀어진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는 없겠지· 협조해준 것은 고맙지만 인간-”
레녹을 바라보는 아젤란의 눈빛은 지극히 무심했다·
“누구도 세계수의 비밀에 대해 알아서는 안 된다·”
“그렇겠지·”
레녹이 대답했다·
“오버마인드가 품고 있는 세계수의 잎사귀는 본래 너희들의 것이 아니니까·”
“···뭐?”
“중앙도시 아르스노바에 바쳐진 공물·”
천천히 고개를 들고 아젤란과 시선을 맞춘 레녹이 웃었다·
“따지자면 저건 라라벨리가 아닌 아르스노바의 물건이잖나·”
자연술식을 사용해 숲을 뛰어넘을 수 있으면서 굳이 장막 밖에서 작전을 시작한 이유·
일부러 중앙의 군단 저지를 맡겨 레녹과 오버마인드를 멀리 떨어뜨려놓으려 한 이유·
오버마인드의 안에 숨겨진 것을 언급하면서도 그 정체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하지 않던 이유·
그건 애초에 서부전선 장막에 숨겨진 세계수의 잎사귀가 더 이상 라라벨리의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드루이드들은 그 사실을 숨기고 그것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되찾으려 했고
레녹이 그것을 알고 있음을 직감하자마자 즉시 그를 죽여서 입을 막으려 했던 것·
“···인간·”
레녹을 바라보는 아젤란의 표정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를 악문 그가 창대를 거세게 비틀어 레녹의 상처 부위를 거세게 쑤신 그 순간·
파아앙!!!
레녹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나 흩어지며 새파란 뇌전의 파편으로 변했다·
“분신···!!”
아젤란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떴다·
“불가능해· 드루이드인 내 눈을 속일 정도로 정교한 형체를···!!”
“잎사귀에 대해 숨기고 있을 때부터 속내가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
어느새 레녹은 전쟁마탑이 뚫어준 길을 넘어 오버마인드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구니 오히려 화도 나지 않는군·”
“안 돼!!!”
아젤란이 거세게 소리 지르고 다른 드루이드들이 레녹을 향해 마력을 끌어올린 순간·
레녹이 웃으면서 오버마인드의 목구멍 안에 손을 밀어 넣었다·
쩌저적!!
전격에 휩싸인 레녹의 손이 목구멍을 찢어발기고 그 안을 휘젓는다·
[끄아아아악!!!]
오버마인드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처절한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그 피부 가죽은 마력사에 꿰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쩍 벌린 입술을 마력사로 꿰어 다물지 못하도록 고정한 채 입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움켜쥔다·
콰직!!
투명한 빛으로 물든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잎사귀의 형상·
하지만 그것이 레녹의 손에 쥐여진 순간 약물의 반동으로 쳐져 있던 레녹의 몸에 급격하게 활력이 차올랐다·
잎사귀를 쥐는 것만으로 끝을 모르는 생명력을 보유자의 몸에 강제로 불어넣는 듯한 어마어마한 힘·
이것이 바로 별의 배꼽이라 불리는 세계수의 잎사귀가 지닌 힘 그 자체인가·
오버마인드가 어째서 이것을 가지기 위해서 장막까지 기어 나와 있었는지 손에 넣는 순간 알 수 있을 것 같다·
“견뢰!!!!!”
격노한 아젤란이 저 멀리서 거칠게 발굽을 두들기고 엄청난 속도로 가속했다·
하지만 레녹은 세계수의 잎사귀를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시귀술주·”
“주 준비됐어요···!!”
창백한 안색의 시귀술주가 대천사의 연민을 타고 오버마인드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양손에 술법진을 띄워 올린 채 떨어진 그녀가 있는 힘껏 법진을 오버마인드에 밀어 넣은 찰나·
시귀술주가 장군급 개체에게 추출했던 마물 조작 술식이 발동·
오버마인드의 존재를 매개체로 삼아 전장에 남은 모든 마물들의 정신을 통째로 덮어씌웠다·
파아아아앗!!
정적·
마물들의 괴성이 뚝 그치고 거칠게 날뛰던 헤드로 군벌의 군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장막 주변에 산개해 있던 수천 마리 마물들이 느릿하게 드루이드들을 향해 돌아선다·
그 시선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던 드루이드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삼키고·
“뭐 기존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상관없나·”
그제서야 레녹이 아젤란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자신의 통제에 들어온 마물의 군세를 바라보던 레녹이 드루이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