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화
주문연맹주(2)
대연결의 재구축을 진행하는 동시에 연맹의 숙적을 처리하겠다는 맹주의 제안·
하지만 맹주가 언급한 대상은 레녹조차 듣고도 믿기 어려운 괴물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군·”
아무런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고요한 유리정원·
침묵하던 레녹이 입을 열었다·
“주문연맹에서··· 2사도를 끌어내리기 위해 계획을 짜고 있다는 말인가?”
“····”
“애초에 그걸 제대로 된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는데·”
레녹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2사도를 잡아보겠다고? 내가 아는 교단의 그 괴물을?”
귀도교단 산하 제 2사도·
교단의 두 번째 사도이자 모든 사도들의 필두라고 불리는 우두머리·
사도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광증에도 얽매이지 않는 초월자·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말과 이명이 혼재하지만 레녹이 그에 대해 갖고 있는 감상은 단 하나뿐이었다·
가장 완벽한 사도·
그 말보다 2사도의 존재를 더 완벽하게 표현하고 경계하는 말이 따로 있을 수 있을까·
“연맹의 대술주들이 직접 나선다 해도 승산을 점칠 수 없는 강자다· 무엇을 대가로 삼는다 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 계획이군·”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섬기는 외신이 누구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자를 어떻게 죽이겠다는 말이지?”
2사도와 직접 만나본 레녹은 그가 얼마나 강하면서도 미지의 힘을 품은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레녹의 직관이나 감응력을 전력으로 끌어올려도 그 저력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괴물이다·
그가 사용하는 공능· 광증에서 자유로운 이유· 일선에서 활동하는 목적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가 초월적인 강자라는 사실 하나만이 분명하다·
아직 승천에 도전하지 않은 존재 중에서 2사도와 비견될 만한 초인이 이 세계에 몇 명이나 될까·
“스스로 원하는 전장을 고를 수 있는 괴물이다· 애초에 그런 상황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기 어렵군·”
“네 말대로 2사도는 일대일로 싸워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맹주가 의자에 기대면서 답했다·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것은 그를 사도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교주의 곁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다·”
“이탈시킨다고?”
“원래라면 토르번 마탑주에게 이 일을 부탁할 생각이었으나 그는 중앙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 선언하고 내 제안을 거절했지····”
토르번 마탑주와 이미 한차례 이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것인가·
벼락에 미쳐 있는 탑주가 2사도의 일을 두고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질 지경·
“다른 대술주들은 대연결의 재구축에 참여해야 하는 만큼 이번 일에 나설 수 없다·”
투명한 맹주의 손이 느릿하게 팔걸이를 두들겼다·
“그나마 접합술주가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해낼 역량을 갖추었으나 그는 지금 첫 번째 관문의 패배로 생사가 불명한 상황·”
“····”
“채프먼을 죽인 천번은 연맹과 적대한 만큼 그 대쪽같은 성격을 감안하면 협조하지 않을 테고·”
자신의 뇌를 둘로 쪼갠 접합술주라면 대연결의 재구축에 참여하면서 2사도를 억제하는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접합술주가 레녹에게 패배하면서 계획이 어그러졌고 맹주는 이 시점에서 계획에 필요한 억제력을 다시 찾고 있던 것이다·
“명분이든 위상이든 교단의 2사도와 비견될 만큼 실력 있는 강자가 필요하다·”
맹주가 그림자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거대도시가 세워진 이래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대마법사라면 좋겠지·”
“····”
“필요한 것은 잠깐의 시간 뿐이다· 조건이 갖춰진 환경에 2사도를 묶어둘 수 있는 초인의 존재·”
맹주가 말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대연결에 새겨진 어떠한 술식이라 해도 네 손에 쥐여줄 수 있지·”
“시간만 있다면 2사도를 반드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레녹이 표정을 찡그렸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맹주의 설명에서 유일하게 느껴지는 담담한 확신·
그것이 2사도를 실제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상황과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반드시 그 괴물을 사냥할 수 있다·
맹주가 레녹에게 제안하는 거래가 그러한 확신에서 나온 결과라면·
“무슨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필두사도를 특정한 영역 안에 끌어들여 현실의 물리법칙을 고쳐쓴다·”
맹주가 답했다·
“나의 정원처럼 세계의 경계선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면 법칙을 강제할 수 있겠지·”
“2사도가 상대라면 그것조차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텐데·”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영역이나 권역의 힘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에게 특정한 환경을 강제하는 건 불가능하지·”
듀리스 공방에서 2사도와 만난 당시 레녹은 그를 상대하기 위해 자성영역을 전개한 뒤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영역의 능력이나 효과를 무시한다기보다는 현실의 시공간에 포착되지 않는 듯한 기묘한 느낌·
특정한 현상이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것 자체가 2사도가 지닌 기원이자 힘의 정체·
그가 진정으로 사도에게 찾아오는 광증에서 자유로운 이유이기도 했던 것·
목숨을 걸고 2사도와 싸우고자 해도 그는 스스로 원하는 전장을 선택해 싸움에 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본신의 무력만큼이나 2사도가 사용하는 사도술식의 존재 역시 상대하기 까다로운 힘·
“2사도에게 법칙을 강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맹주는 레녹의 말을 듣고도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애초에 환경을 바꾸는 것조차 그를 위해서는 아니지·”
“그렇다면?”
“나의 정원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개념이 뒤섞이며 혼재하는 시공이 필요하기에·”
맹주가 답했다·
“대연결을 재구축하는 찰나의 순간에만 허락되는 기적이 있기 때문이다·”
“···설마·”
순간 맹주의 말을 이해한 레녹의 안색이 미묘하게 굳었다·
맹주가 2사도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영역은 맹주 자신의 유리정원과 유사한 환경·
그것이 2사도에게 정원의 규칙을 강제하거나 그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맹주· 당신이 직접 움직여서 2사도를 상대할 생각이었던 건가?”
“생사의 개념이 뒤섞이는 때가 오면 내가 직접 그를 상대하기 위해 강림한다·”
맹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필요한 것은 두 가지· 무대가 준비되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줄 억제력과 무대가 되어줄 술식의 존재지·”
“····”
그제서야 레녹은 어째서 맹주가 2사도를 처리할 수 있다 확신하는 것인지 이해했다·
맹주는 연맹을 이끄는 강대한 초월자이나 유리정원에 기거하며 현실에 개입하지 못하는 존재·
하지만 대연결이 재구축을 거치는 동안에는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 움직일 수 있다·
그건 애초에 맹주가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 이유가 대연결의 존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그렇기에 대연결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순간에 한해 2사도와 같은 극대전력을 처리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설 생각이었나·
애초에 지금 이 모든 계획 자체가 맹주 본인이 직접 2사도와 대면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맹주 당신이 강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2사도를 그 안에 묶어두어야 한다는 말인가····”
확실히 맹주 정도 초월자라면 2사도 같은 괴물을 상대로도 분명 높은 승산을 점칠 수 있겠지·
레녹 역시 2사도와 단신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맹주가 강림하기 전까지 시간을 버는 일이라면 재고할 여지가 있다·
주문연맹은 중앙전선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거대세력인 만큼 보유하고 있는 술식 역시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방대하겠지·
이번 일에 참여하는 대가로 대연결의 술식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가질 수 있다면 진지하게 손익을 가늠해 볼 수 있을 터·
‘돌아가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연결의 재구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접합술주를 대신하는 차기 대술주나 다른 대술주들의 면면 역시 확인할 수 있겠지·’
주문연맹의 편에 서서 교단을 적대하는 일이지만 연맹 역시 레녹의 우군은 아니다·
연맹에서 그토록 필사적으로 유지하는 대연결이 대체 무엇인지 레녹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대술주들과 맹주의 전력을 견식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될 터·
결정적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교단을 상대하는 데 있어 2사도라는 위험요소를 배제할 수 있다·
당장 맹주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가늠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이득이 여럿 존재하는 바·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현실성이 없는 계획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 해도 바로 수락하기는 어려운 제안이군·”
“····”
“계획이 실패할 경우 무조건 2사도와 적대하게 될 거다· 기계도시를 홀로 반파시킨 괴물을 적으로 돌리는 셈이지·”
“사도살해자의 이명을 손에 넣은 마법사치고는 굉장히 신중하군·”
레녹의 대답에 맹주가 그림자 저편에서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도 선을 긋는 레녹의 반응이 흥미로운 듯한 모습·
“아나테마를 직접 죽였으면서 아직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당신의 말대로 2사도는 다른 사도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니까·”
“····”
“계획의 시기와 장소· 참가하는 술주들의 면면· 대연결의 재구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레녹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무엇보다 2사도가 연맹의 계획대로 움직일 이유에 대해 듣기 전까지는 무엇하나 결정하지 않겠다·”
레녹의 무력을 빌리기 위해 부탁하는 입장인 만큼 어디까지나 주도권은 레녹에게 있다·
2사도를 상대하기 위해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대연결의 재구축이 어떤 원리로 이뤄지는지 미리 전해 듣는다 해도 충분할 터·
맹주 역시 일견 수긍하는 듯 그림자 너머에서 느릿하게 팔걸이를 두들겼다·
“설명이 불가능한 사안은 아니지만··· 시간이 됐군·”
“시간?”
쩌저적···!!!
그 순간 유리정원의 사방에 피어난 꽃이 일제히 만개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방울이 꽃잎을 타고 떨어지면서 꽃들이 서서히 고개를 치켜든다·
어두운 밤하늘의 풍경이 갈라지면서 레녹이 머무르고 있던 현실을 비추기 시작했다·
세계의 경계선과 가까웠던 유리정원의 시공이 현실로 기울어지고 있던 것·
레녹 역시 언제든 의식을 끊고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설마 맹주 측에서 먼저 시간을 언급할 줄은 몰랐다·
외부인이 이 유리정원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던 것일까·
키리리릭····!!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밤하늘의 풍경이 바뀌면서 레녹의 머리 위로 균열이 피어올랐다·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차후 다른 술주를 통해 전하도록 하지·”
그런 레녹을 바라보며 맹주가 말했다·
“아울러 계획의 참가 여부와는 별개로 이번 일에 대해서도 보상하도록 하겠다·”
“보상이라고?”
“말했듯이 네가 내 정원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엄연히 내 책임도 있으니·”
맹주가 웃었다·
“그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나누는 의미라고 생각해도 좋다·”
“····”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맹주는 역시 다른 초월자들과는 다르다·
단순히 그 기척과 목소리가 평범한 인간의 것을 띄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의 구도에 미친 것이 아니라 상대와 멀쩡하게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듯한 반응·
레녹이 만난 초월자들 대부분이 일방적으로 뒤틀려 있던 것을 생각하면 맹주의 성격은 반대로 특이하게 느껴질 정도·
유리정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기거하면서 연맹을 이끄는 그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서부전선 근처에····”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맹주가 말했다·
“곧 예하술주(刈荷術主)가 도착할 거다· 그에게 일러 전장을 정리하고 쿤다라로 가는 길에 협조케 하지·”
“····”
“연맹에서도 꽤 유능한 술주이니 도움이 될 거다·”
그림자 저편에서 맹주가 레녹을 향해 미소짓는 듯했지만·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그림자 저편을 응시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쿤다라로 가는 길을 언급하며 협조하겠다는 맹주의 전언·
그가 처음부터 현실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 말 한마디에 모조리 담겨 있었으니까·
하지만 레녹은 맹주의 말에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하지·”
쩌저적···!!
유리정원의 하늘 위로 갈라진 균열이 레녹이 서 있는 자리를 향해 내려온다·
저것에 접촉하는 순간 이 만남은 끝나고 레녹 역시 현실로 복귀하겠지·
“아 그러고 보니 강림에 대해 한 가지 묻는 것을 잊었는데·”
눈앞에서 흐릿하게 일그러지는 정원을 바라보던 레녹이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맹주가 레녹에게 방법을 설명하며 언급했던 두 가지 조건·
그중 후자에 대해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
“당신의 강림을 위해 시간을 끌어줄 억제력과 한 가지 술식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나의 정원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술식이다·”
맹주가 차분한 음색으로 대답했다·
“말 그대로 특정한 구역을 정해 물리법칙을 바꿔 쓸 수 있는 힘이지·”
“필요하다는 건 아직 그 술식이 연맹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시귀술주가 헤드로 군벌의 장군급 개체에게 행하던 술식 추출처럼·
이번 계획을 위해 연맹의 술주들이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술식을 찾아 모으고 있는 것일까·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그 부분에 대해서 맹주에게 연맹이 움직이는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다면 좋을 터·
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 술식은 현재 주문연맹에 존재하지 않는다· 계획을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조건인 셈이지·”
“그 술식이 없다면 계획이 성립할 수 없는 수준이겠군·”
“그래서 연맹에서도 그 술식의 보유자를 대륙 전역에서 수색하고 있지·”
맹주가 답했다·
“그 술식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술식의 주인을 찾아 반드시 ‘죽이고’ 술식을 추출해야겠지·”
“술식의 이름은?”
“기억하기 어렵지 않을거다· 말 그대로 하늘을 떼어내 자신의 일부로 삼는 이치를 띄우니-”
맹주의 목소리가 순간 한없이 묘하고도 차갑게 변했다·
“천체술식(天體術式)이라고 한다·”
쩌적···!!
그 말에 무어라 반응할 시간도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유리정원의 하늘이 꽃잎처럼 피었다 접힌 순간·
레녹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시귀술주의 앞에 눈앞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