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화
서대륙 내곽항로(3)
콰과과과광!!!
탑의 외곽결계가 뚫리면서 떨어지는 미사일이 갑판 위에 그대로 내리꽂힌다·
핏물 섞인 폭발과 동시에 갑판이 쪼개지고 박살 나면서 부서진 잔해 사이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크에에에엑···!!]
[케케케켁!!]
기괴한 웃음을 흘리는 전신이 핏물로 뒤덮인 인간형상의 마물·
마치 구울처럼 온몸이 뒤틀린 마물들이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갑판 위에서 하나둘씩 몸을 일으켜 세운다·
“···후우·”
갑판 위에 남아 결계를 수복하고 미사일을 요격하던 마법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제각기 주문을 영창한 토르번의 마법사들이 다가오는 마물들과 싸울 준비를 마친 순간·
파직!!
허공에서 번뜩인 전격이 마물 사이를 파고들면서 순식간에 그들을 지나쳤다·
새파란 뇌광이 회오리친 그 순간 갑판 위에 올라탄 마물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파삭!!
[끄어어어!!!]
[카학 카하학···!!]
온몸이 불타 증발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는 마물들의 비명소리·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법사들이 뒤늦게 뇌광의 끝에 내려앉은 레녹을 보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갑판 위로 떨어지는 마물들을 부탁하지·”
“···반 님·”
장갑을 잡아당긴 레녹이 전신에 푸른 전류를 휘감은 채로 서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것들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퍼뜩 정신을 차린 마법사 중 누군가가 황급히 말했다·
“저 저희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귀인의 손을 빌리는 건-”
철컥!!
레녹의 등허리에서 거대한 철갑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짓눌리듯이 일그러진다·
철갑날개를 두른 채 가볍게 웅크리는 것만으로 거센 풍압이 사방을 찍어누르면서 밀어내고·
레녹의 신형이 순식간에 밤하늘 위로 솟구쳤다·
파아아앙!!!!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공용마법과 결계술법 4종·
뇌전을 두르고 추진력을 더하는 전격계열 고유마법 5종·
철갑날개의 움직임과 양력을 보조하는 대기계열 고유마법 2종을 순식간에 영창·
“지성 없는 마물들 따위를 잡아 죽이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날개를 두른 채 엄청난 속도로 상승한 레녹이 반고리관을 마비시키는 약을 꺼내 삼키면서 중얼거렸다·
“박살 내주마·”
콰아앙!!
레녹의 뒤에서 날아오는 전투기의 날개를 피해 몸을 돌린다·
허공에서 철갑날개를 펼쳐서 속도를 죽이고 그대로 방향을 들어 수직으로 기동·
발아래 날개를 뻗은 채 엄청난 속도로 전투기의 콕핏 위로 내리찍혔다·
콰지지직!!!
[끄에에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콕핏의 마물이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으스러졌다·
“다음·”
콰앙!!
레녹이 날개를 굽히고 방향을 조절한 순간 으스러진 전투기를 발판삼아 도약·
그대로 밤하늘을 훌쩍 뛰어넘어 멀쩡히 비행하는 다른 전투기 위에 올라탄다·
[백락(白落)]
콰아아아앙!!!
새하얗게 일그러진 낙뢰가 번뜩이며 마물화된 전투기를 두들겨 불태우고·
처절한 비명과 함께 곳곳에서 전투기 몇 대가 동시에 연기를 내뿜으면서 지상으로 추락했다·
으드득!!
[아아아악!!]
콕핏 안쪽에서 발광하는 마물 덩어리를 뇌전으로 불태우고 뜯어낸다·
거인의 손처럼 펼쳐진 철갑날개가 부서진 전투기를 장난감처럼 움켜쥐고 잡아 던진다·
마탑 사이를 비행하던 전투기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뛰어 부수고 짓밟아 격추시키는 레녹의 신형·
밤하늘 위로 번개가 번뜩일 때마다 그 속도를 더해가면서 새파란 충격파를 연이어 터트렸다·
쿠구구구구구!!!!
단신으로 초음속의 전투기를 박살내고 학살하는 그 모습을 갑판 위에서 워메이지들이 멍하니 올려다볼 뿐·
“발칸에서 그렇게 기괴한 악명을 몰고 다니시는 이유가 있었군·”
“···저게 마법사에게 가능한 살상력이 맞긴 한 건가?”
콰아아앙!!!
레녹을 피해 도망치는 전투기 위로 낙뢰를 떨궈서 격추시킨다·
부서진 전투기 위에 올라탄 레녹이 사방에서 비행하는 전투기들의 움직임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편대의 비행궤도가 심상치 않군· 단순히 이쪽과 싸워보려고 모인 게 아닌가?”
레녹과 정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전투기들이 모함 근처로 모여들고 있다·
헤드로 군벌의 장군급 개체와 대형을 이루고 전쟁마탑을 힘으로 찍어누를 생각인가·
표정을 굳힌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철갑날개 위로 내뻗었다·
그 직후 철갑날개 전체가 벼락에 뒤덮인 채 달아오르면서 검푸른 뇌전을 내뿜고·
[청린갑(靑鱗甲)]
푸른 뇌전을 갑옷처럼 두른 레녹의 신형이 전투기의 편대 사이를 그대로 돌파해 한층 더 위로 상승했다·
쿠구구구구!!!
[끼에에에엑!!]
[끄르르르륵!!!]
마물화된 전투기들이 발악하면서 레녹을 막아서지만 접촉하는 순간 새파랗게 불타 증발하며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릴 뿐·
한 바퀴 회전하면서 상승하는 것과 동시에 푸른 불꽃을 밤하늘 위로 둥글게 흩뿌린다·
그때마다 헤드로 군벌의 전투기들이 불타 으스러지면서 지상으로 우수수 추락하고·
공중항공모함의 선체를 바닥에서부터 관통한 레녹이 그대로 모함의 갑판 위로 솟구쳤다·
콰아아앙!!!
[끄어어어어어···!!!]
장군급 개체라고 해도 몸이 관통당하는 고통을 참을 수는 없었는지 크고 느릿한 비명을 내뿜는다·
모함 전체가 크게 요동치면서 덜덜 떨리는 듯한 경련이 느껴졌다·
파직!!
뇌전을 회수한 레녹이 곧바로 모함의 갑판 위에 착지하면서 날개를 접었다·
철갑날개에 전격마법을 둘러 과부하시키면 손상이 심해져서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
하지만 이렇게 무리해가면서 장군급 개체에게 접근해 그 위에 올라탄 이유가 있었다·
“···어 어라·”
갑판 위에 펼쳐진 피로 물든 진득한 마법진의 형상·
그 마법진의 중심에 선 피를 뒤집어쓴 창백한 인상의 여성이 더듬거리면서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 여기는 아무나 하 함부로 들어오면··· 아 안되는 곳인데····”
“너· 헤드로 군벌의 잔당이 아니군·”
레녹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이 정도로 사이한 술식을 다루는 술사라니 누구지?”
“아 저 저··· 말인가요?”
여성이 창백한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여 연맹의··· 시 시귀술주라고 하는데·”
* * *
화아아악!!
수백 미터 상공 위에 떠오른 항공모함의 갑판 위로 거센 바람이 불어닥친다·
공기저항 결계를 장착한 전쟁마탑과는 달리 모함 전체가 마물화된 이 배에는 바람을 걷어낼 안전장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
갑판 위로 불어닥치는 바람이 어찌나 격렬한지 사방에서 구름이 아니라 폭풍이 몰아치는 듯하다·
모함 선수 위로 설치된 낡은 포대가 힘없이 덜컹거리고 나사가 풀린 채 뜯겨나간 외장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쿠과과과과!!!
바람소리와 굉음이 섞여서 요동치는 갑판 위에서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의 모습·
“시귀술주라·”
여성의 말을 들은 레녹이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지금 이 전장에서 헤드로 군벌을 통제하는 것이 주문연맹이었다는 말이었군·”
“아 아니··· 그건 아 아닌데····”
“배후에서 군벌의 마물들을 조종해서 드루이드와 싸우게 만들고 있었나?”
“싸 싸우게 만든 게 아니라··· 이 수 술식이 필요해서····”
시귀술주가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자 장군급 개체가 보유한 마 마물을 조작하는 공능을··· 수 술식화시켜 가져가려고····”
“····”
장군급 개체의 갑판 위에서 흉험한 의식을 벌이고 있던 것 치고는 생각보다 대답을 잘해준다·
철갑날개를 정돈한 레녹이 빠르게 시귀술주의 전신을 훑었다·
‘생명반응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군· 마력과 의념이 멀쩡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구울이나 마찬가지야·’
위계를 완성한 7레벨 이상의 성위급 술사·
그에 걸맞은 강력한 의념과 마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귀술주의 몸에서는 생명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레녹의 마력감지를 통해서 기척만을 확인하면 살아있지 않은 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말을 더듬는 것도 특유의 말버릇이 아니라 혀가 굳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코트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은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마력과 의념을 생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구울이라· 본인이 직접 언급한 시귀술식(屍鬼術式)과 관련되어 있겠군·’
주문연맹의 술주란 자신이 직접 개발하거나 일인전승으로 물려받은 고유술식의 주인을 일컫는 말·
당연하지만 술주 개개인이 뛰어난 술사이자 연맹 내부에서도 상당한 입지를 차지한 간부들이다·
대연결을 직접 구축하는 대술주 정도는 아니더라도 각각의 술주가 뛰어난 무력이나 개성을 지니고 있음은 당연한 일·
문제는 연맹의 술주 정도 되는 고위 간부가 어째서 이러한 전장에 혼자 남아 의식을 벌이고 있었는지 그 이유에 있다·
만약 눈앞의 이 여자가 헤드로 군벌의 장군급 개체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라면-
[아뢰(牙雷)]
파지직!!
레녹의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온 굵직한 전류가 짐승의 이빨처럼 길게 구부러진다·
날카로운 벼락의 어금니를 움켜쥔 레녹이 그것을 술주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의식을 멈추고 헤드로 군벌의 마물들을 후퇴시켜라· 거절한다면 이 모함을 그대로 지상에 떨어뜨리지·”
“우 우아····”
“보아하니 죽은 생명체를 조종하는 술식을 지닌 것 같은데····”
창백한 표정으로 덜덜 떠는 시귀술주를 보며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사령술과는 달리 마물까지도 조종할 수 있다면 귀찮아지겠지· 전쟁마탑이 이 전장을 통과할 때까지 술식의 사용을 금하겠다·”
“그 그건 곤란해요····”
시귀술주가 말을 더듬으면서 양 손을 앞으로 모았다·
피 웅덩이에 잠긴 그녀의 손을 따라 붉은 혈액이 그녀의 발아래 모여들었다·
“저도 하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여기서 자 장군급 개체의 힘을 술식화시켜 가져가야 하니까····”
붉은 선혈에 잠긴 거대한 마법진 위에서 어깨를 떨면서 말을 더듬는 시귀술주의 모습·
하지만 그건 레녹의 말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광경에 취한 것처럼 휘청이면서 어깨를 흔드는 기묘한 떨림·
양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은 시귀술주가 레녹을 보면서 헤헤 웃었다·
“빠 빨리 끝낼게요···· 그 그러면 되죠?”
“···!!”
키이이잉!!
그 순간 시귀술주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붉게 달아올라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생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기묘한 사념이 주변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갑판 위를 타고 넘실거리며 항공모함 전역을 뒤덮은 시귀술주의 사념·
짙게 농축된 잿빛의 사념이 항공모함을 휩싸안고 순식간에 거대한 구체의 형태로 변했다·
그 압도적인 속도와 규모에 레녹이 순간 표정을 굳혔다·
‘사념의 출력이 엄청나다···!’
위계 자체는 7레벨 정도로 보였는데 사념의 출력 자체는 어지간한 8레벨의 대마법사를 가뿐하게 뛰어넘고 있다·
의념이 아니라 사념을 사용하는 것부터 범상치 않았지만 역시 시귀술주 본인도 심상치 않은 술식을 보유한 기인임이 틀림없는 바·
동시에 모함의 갑판 사방에서 온몸이 검게 물든 시체들이 바닥을 뚫고 솟구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죽어 죽는다고···!!”
“사 살고 싶어!!”
마물과는 달리 너덜너덜한 성대를 움직여 육성을 토해내는 시체들의 모습·
그 눈빛은 비할 데 없이 붉게 빛나고 몸에서는 마물과는 다른 인간의 마력과 의념이 느껴진다·
죽은 몸으로 생자의 권리인 의념과 마력을 사용하면서 술주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시귀(屍鬼)·
“마물이 되어 죽은 병사들도 시귀로 만들면 인간 시절의 힘을 부릴 수 있는 건가·”
그제서야 시귀술식의 진가를 이해한 레녹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술식대상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다니 사령술과는 다른 종류의 경계에 서 있는 힘이군· 누구에게 배웠지?”
“따 딱히 누구한테 배우지는 않 않았는데····”
시귀술주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어 어쨌든 빨리 끝내고 가 가볼게요··· 저는 눈에 띄지 않게 수 숨어 있을 테니까····”
“아니·”
번쩍!!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아뢰의 섬광이 시귀술주가 서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새파란 불꽃에 휘감긴 불기둥이 수직으로 솟구치면서 어두운 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콰아아앙!!
한발 늦게 찾아오는 귀가 멀어버릴 듯한 굉음·
시귀술주가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우아아앗!!!”
“누구 마음대로 혼자 의식을 끝내고 도망칠 생각이지?”
파직 파직···!!!
레녹의 손끝에 내려앉은 번개가 회전하며 압축되더니 이윽고 날카로운 드릴처럼 화했다·
순식간에 편뢰를 영창해서 띄워 올린 레녹이 그것을 시귀술주의 미간에 조준하면서 말했다·
“의식을 멈추고 함대를 물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이 모함을 박살 내버리겠다·”
“····”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면 이 자리에서 네 머리도 같이 쪼개버릴 수밖에·”
시귀술주를 바라보는 레녹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아니면 자신의 육신까지 시귀로 만들어 버려서 내 말이 잘 들리지 않는 건가?”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시귀술주의 미소가 순간 기이하게 변했다·
“아하··· 그 그쪽이 누 누구인지 알겠다····”
“····”
“처 천번을 상대로 이겼다는 대마법사··· 무 물론 엄청나게 가 강하겠지만····”
더듬거리며 양손을 모은 시귀술주가 말했다·
“저 저도··· 수 술식··· 잘 써요···!”
콰직!!
그 순간 레녹은 주변에서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시귀술주가 사념을 펼쳐서 모함에 일으켜 세운 장장 수백 체가 넘는 시귀들·
그들이 깨어난 뒤 단 한 명의 시귀도 레녹을 향해 덤비거나 살의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
깨어난 시귀들은 레녹을 포위하거나 혹은 술주를 보호하려고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시귀술주가 만든 법진 위로 차곡차곡 몸을 포개더니 스스로 법진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을 뿐·
키이이이잉!!!
시귀들을 쌓아 겹쳐진 법진이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기묘한 공명음을 내뿜었다·
인신공양을 중첩해 발동할 때 나타나는 법칙을 초월하는 모순의 결과·
“죽은 시체를 이용해서 인신공양을 시도한다고?”
그것을 깨달은 레녹이 표정을 굳힌 채로 시귀술주를 향해 시선을 홱 돌렸다·
“설마 시귀의 진가라는 건···!!”
“제 제 시귀들··· 공양의식에서 살아있는 인간이랑 가 같은 판정···”
레녹의 눈치를 보면서 갑판의 기둥 뒤로 숨은 그녀가 헤헤 웃었다·
“쓰 쓸모 있죠···?”
콰직!!
대답은 없었다·
바닥을 가볍게 쓸어내리듯이 낮게 구부러진 레녹의 손안에서 뇌전이 번뜩이고·
직후 터져 나온 거대한 벼락의 구체가 회전하면서 모함의 갑판 위로 떠올랐다·
[항뢰(恒雷) : 선련(仙練)]
쿠과과과과!!!!
전격의 집속체가 거칠게 회전하며 모함을 찍어누르고 마물화된 장군급 개체가 음울한 비명을 터트렸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시귀술주가 형편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악!!!”
“넌 살아 있으면 안 되는 종류의 금술을 가진 술사였군·”
거대한 벼락의 행성을 띄워 올린 레녹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교단에게 악용당하기 전에 이 자리에서 죽어라·”
인신공양에서 중요한 것은 의식을 주관하는 제사장도 의식에 필요한 법진이나 술식도 아니다·
바로 공양에 필요한 공양물의 질과 양을 맞추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
인신공양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인간의 목숨은 유한한 만큼 남용할 수 없다·
하지만 시귀술식은 그러한 인신공양의 한계를 무색하게 만들 잠재력을 지닌 술식·
물론 시체를 사용하는 만큼 효율 자체는 진짜 인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러한 짓을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지녔다·
이러한 힘이 연맹은 물론이고 만약 교단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질 터·
쩌저저적!!!
갑판 위에 만들어진 인신공양 법진을 항뢰의 열기로 태워 뭉개 버린 레녹이 그대로 술식을 움직여 시귀술주를 짓뭉개려던 찰나·
“마 마물회로 복사···!!”
시귀술주가 더듬거리면서 빠르게 소리쳤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부러진 닻을 붙잡고 고속영창을 시전하는 그녀의 모습·
“사념 전승··· 방어기제 해체··· 무의식 개변···!!”
온몸이 불타 소멸하기 직전에도 해야 할 일은 끝마칠 생각인가·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레녹이 그대로 항뢰의 구체를 휩쓸어 모함 위로 내리찍은 그 순간·
“수 술식 추출 완료···!!”
시귀술주가 아슬아슬하게 영창을 마쳤다·
“저 정원 전송···!!!”
또르륵···!!
순간 거대한 항공모함의 중심에서 무언가 통째로 뽑혀 나오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장군급 개체의 핵심을 이루는 무언가· 생명이자 근원의 정수라고 표현될 힘의 총제·
그것이 모함의 바깥으로 튀어나와 또르르 굴러떨어진다·
꽃잎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처럼 유리방울을 타고 떨어져 정원의 흙더미 사이로 스며든다·
시귀술주가 말한 의식을 마주한 순간 레녹은 술식화를 거친 힘이 어딘가로 ‘전송’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딘가로 전송되기 시작한 술식을 따라 레녹 자신의 의식조차 같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술주가 추출하는 데 성공한 힘이 향하는 장소를 바라본다·
그것이 주문연맹에서 일컫는 대연결이 이뤄지는 시공간으로 향하는 길임을 깨달은 순간·
레녹은 자신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그 풍경을 보고 있음을 비로소 인지했다·
“····”
아름답게 조형된 유리정원·
머리 위로 은하수가 펼쳐진 밤하늘이 비치고 이슬이 맺힌 꽃과 나무들이 고개를 숙인다·
분주히 돌아가는 세계의 속도와 하등 무관한 것처럼 고요한 정적에 빠진 정원의 풍경·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아득한 정원 한복판에 어느새 레녹은 서 있었다·
“여기는····”
삽시간에 변한 풍경 속에서 레녹이 빠르게 이성을 되찾고 상황을 파악했다·
시귀술주가 사용한 술식 추출을 지켜보던 찰나 레녹의 의식이 급격하게 동조를 일으켰고·
주문연맹에서 정의하는 대연결이 이뤄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다·
그 결과로서 레녹은 대연결이 도착하는 장소에 이렇게-
“감응력이 강하다는 건 필멸자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일이지·”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런 힘이나 의지가 담기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
마력의 울림이나 의념을 품지도 않은 평범한 육성·
“보아서는 안 되는 것· 들어서는 안 되는 것· 느껴서는 안 되는 것· 그런 것 따위는 이 세계에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거든·”
“····”
정원의 안쪽 그림자 저편· 짙은 음영이 진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밤하늘의 별빛이 비치는 양지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유달리 짙은 그림자에 포개진 모습·
그림자 너머로 별빛에 비춰진 손가락은 유리처럼 투명했다·
“하지만 의식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 정원에 잠시나마 접속할 만큼 강한 동조가 가능한 술사는 채프먼 이후로 사실상 처음이군·”
“···너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레녹의 의식만이 시간선을 뛰어넘어 이 공간에 동조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눈앞의 투명한 그림자를 상대로는 레녹의 감응력으로도 무엇 하나 느낄 수 없다·
그것이 그간 레녹이 보아온 승천자들과는 궤가 다른 종류의 생사를 뛰어넘는 초월성의 증거임을 자각한 찰나·
맹주가 물었다·
“아니면 네가 그보다 더한 특질계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