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8화
이정표(35)
레녹의 왼팔을 선뢰지체로 재구성해 육체를 개변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
하지만 뇌해술식까지 빌려 가면서 시도한 결과물은 레녹의 예상조차 뛰어넘고 있었다·
마력을 강제로 마모시키고 이미 완성된 술식이나 마법을 해체하는 디스펠의 공능·
사실상 레녹이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힘이 왼팔에 새겨지게 된 것·
우우우웅···!!!
어두운 자색으로 뒤덮인 레녹의 왼팔이 고요하게 진동하면서 발광한다·
보라색 빛무리 속에 무수한 별빛을 담은 것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풍경·
마치 우주의 일부를 떼어 레녹의 팔에 이식해 놓은 듯한 섬뜩한 위화감·
인간의 형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그 독특한 외견에 충격을 받은 것은 레녹만이 아니었다·
[접촉하는 순간 마력의 공백을 강제하고 그를 통해 존재하는 술식을 해체해 버리는군·]
뇌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전성을 울렸다·
[살아 있는 육신을 재료로 삼아 공능에 준하는 힘을 얻었으니 말 그대로 자신의 팔을 금기병장으로 개조한 것인가·]
“····”
[내게 보여주겠다던 시행착오가 이런 괴악한 발상의 집체일 줄은 몰랐는데·]
팔에 마력을 주입하는 것만으로 접촉한 대상에게 마력의 손실을 강제한다·
사실상 술식이나 마법을 해체하는 디스펠의 효과를 상대에게 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뇌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레녹의 왼팔이 사실상 아티팩트가 되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육신을 재료로 삼은 그 결과물이 금기병장 그 자체라고 단언했던 것이다·
“본노의 뇌전에 개입할 정도라면 사실상 손대지 못하는 마법이나 술식은 없다고 보아야겠구나·”
탑주가 황당한 기색으로 물었다·
“네 안에 대체 얼마나 위험한 것이 잠들어 있기에 그런 공능이 튀어나오는 게냐?”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줏빛으로 물든 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건지는 알 것 같다·”
[알 것 같다고?]
팔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도와준 탑주도 레녹의 만화경을 마주한 뇌제도 연원을 짐작하지 못하는 기괴한 결과·
하지만 레녹은 탑주의 뇌전을 해체한 순간 이 힘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미 완성된 것을 억지로 찢어버리고 연결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옭아매는 불쾌함·
원인과 결과가 이어지는 것을 막고 오히려 더욱 강한 힘을 더해가는 모순·
레녹은 이미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힘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던가·
이 세계에서 눈을 뜨기 전부터 자각하고 있던 구속과 속박·
육체와 생애에 저주를 내리는 대가로 하늘 끝까지 끌어올렸던 재능의 반동·
지금 이 왼팔에 담긴 것이 레녹을 옭아매는 페널티 그 자체라는 사실을 레녹은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육신에 손을 댄 반동으로 페널티의 힘이 더욱 강해진 건가·’
팔을 바라보는 레녹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페널티의 구체화·’
레녹이 편법을 써서 육체에 손을 댄 대가로 페널티의 힘이 더욱 강해지면서·
그 결과물로서 왼팔 자체가 술식이나 마법을 통하지 않게 하는 일종의 절연체가 되어버린 것·
그렇게 강해진 페널티의 제약이 레녹이 아닌 레녹의 육신이 접촉한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면·
“사질의 말대로 이것 자체가 마냥 긍정적인 결과라고는 할 수 없겠구나·”
생각에 잠긴 레녹을 바라보던 탑주가 입을 열었다·
“디스펠의 공능에 엄청난 가치가 있음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네 왼팔에 달려 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지·”
“····”
“그 힘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너 자신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을 터·”
탑주가 굳은 표정으로 레녹의 왼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네 술식역량이나 주문능력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도 있겠구나·”
“마력조작이나 마법사용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천천히 왼팔을 주무르며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문제가 되는 건 왼팔에 아예 마력을 순환시킬 수 없다는 점이군·”
레녹의 초월적인 재능이나 직관은 애초에 육체에 얽매이지 않는 힘·
마력을 조작하거나 감응하는 재능은 신체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완벽하게 작동한다·
문제는 왼팔에 마력을 주입하는 순간 마력 자체가 소모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
우로보로스 마법체계나 사상신뢰의 탈각을 통한 불변성의 구현처럼·
술식 자체를 해체하거나 완성되지 못하도록 무위로 돌리는 힘 자체는 레녹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완성된 술식이나 마법을 해체할 정도로 강력한 디스펠을 왼팔에 달고 있다면 레녹의 전투능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바·
디스펠의 힘을 왼팔에 새기는 것을 대가로 앞으로의 전투에서 왼손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면 이득일까 손해일까·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과정을 되돌리자꾸나·”
후욱!!
레녹이 고민에 잠긴 사이 탑주가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입을 열었다·
“네가 언급한 봉황전이라는 유물의 백업을 이용해 생체정보를 불러오고 팔을 원래대로 수복하겠다·”
“····”
“본노의 오판이었군· 이런 힘이 네 안에 잠들어 있다면 선뢰지체의 개변은 처음부터 재고해야만-”
“아니·”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굳이 팔을 다시 구성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상태로도 팔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있어·”
“뭐라?”
“편법을 사용해서 팔에 손을 댔으니 되돌릴 때도 편법을 사용하면 그만이지·”
파앗!!
그 순간 벽력비고에 내리꽂힌 거대한 황금의 열쇠가 번뜩이면서 크기를 줄였다·
순식간에 팔뚝만 한 형상으로 크기를 줄인 열쇠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레녹의 오른손에 내려앉았다·
철컥!!
뇌제의 열쇠를 역수로 움켜쥔 레녹이 그것을 자신의 왼쪽 손등에 대고 꽂아 넣은 순간·
날카로운 황금빛의 광채가 폭발하며 자물쇠가 잠기는 듯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파아아아앙!!!
손등 위로 황금빛의 동심원이 새겨지면서 자색으로 물든 레녹의 팔을 덮어나간다·
보랏빛의 광채를 황금빛의 동심원이 덧칠하면서 개변한 순간 레녹의 왼팔이 이내 평범한 원래의 형상으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뇌해술식으로 육체를 풀어헤쳤다면 탈각을 통해 그 반대도 가능하겠지·”
한 손으로 뇌제의 열쇠를 들어 올린 레녹이 말했다·
“금기병장으로 개조된 왼팔을 ‘잠가’ 봉인했다· 뇌제의 힘을 빌려 풀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겠지·”
“····”
“이 힘이 아직 얼마나 가치 있는 건지 모르겠으니 일단 스위치를 만들어두는 정도로 정리하려 한다·”
[탈각을 역으로 이용해 뇌해술식을 반전시켜 금기병장의 능력을 잠가버린 건가·]
그제서야 레녹이 한 일을 이해한 뇌제가 기가 찬 전성으로 물었다·
[술식의 응용에 있어 차원이 다른 경지에 이르렀군· 어떻게 처음 보는 이능을 그렇게까지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거냐?]
뇌해술식은 뇌전을 동력으로 삼아 만물을 풀어헤치는 힘·
탈각을 사용하면 한번 풀어헤친 것을 다시 잠가버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레녹은 왼팔에 열쇠를 박아넣고 탈각을 일으켜 페널티가 강하게 발현된 팔을 봉인해버 린 것이다·
페널티의 힘 자체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페널티가 강하게 발현된 원인 자체를 잠가 묶어버리는 방식·
뇌제의 열쇠를 사용해 팔의 봉인을 풀지 않는다면 레녹의 왼팔은 예전과 같은 형태로서 기능하겠지·
사실상 뇌해술식을 사용해 일종의 스위치를 달아버렸다는 사실을 뇌제는 곧바로 이해했던 것이다·
“마력은 잘 통하는군· 생체전기의 조작도 조금만 더 해보면 감을 잡을 것 같아·”
원래대로 돌아온 왼팔을 쥐었다 펴면서 레녹이 말했다·
“다만 전신을 선뢰지체로 바꾸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쿤다라로 가기 전에 한 번에 시술을 끝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올리비에라와 약속한 시간도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일단 외겁도시에 다녀온 다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든 해야할 터·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도움을 받고 싶은데 괜찮겠지?”
* * *
“모형정원을 이용한 장막의 조정도 슬슬 마무리 단계군요·”
[남은 건 장막과 모형정원의 동화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의 여부겠군·]
“실제 장막이 없는 이상 여기서는 불가능해요· 현장에서 직접 데이터를 쌓아야하는 영역이겠죠·”
[시간낭비구나· 발칸과 전선을 오가면서 데이터를 수집할 여유가 없다·]
“알아요· 기껏 공전주기에 맞춰둔 모형정원의 조정이 어그러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밤하늘에 펼쳐진 천구를 바라보며 기록에 열중하던 클라리스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견뢰 언제까지 쉬고 있을 생각인가요?”
“····”
모형정원에 놓인 푹신한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레녹의 모습·
한 손을 눈가에 덮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혀 표정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피로감을 숨기지 못하는 레녹을 보며 클라리스가 물었다·
“조정 작업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지만 마무리 과정은 직접 지켜보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정원 안에서 진행되는 작업과정은 모두 내 의식에 남아 있다·”
레녹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대답했다·
“직접 지켜보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저 무도한 마법사가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 어디 하루이틀 있는 일이더냐·]
올리비에라가 싸늘한 냉소를 흘렸다·
[이상한 수련에 몰두하느라 탑이 조용할 날이 없다더니 못본 사이에 더욱 한심한 몰골이 되었구나·]
“···미안하군·”
그제서야 레녹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세우며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피로감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다가온 레녹이 말했다·
“토르번 마탑주에게 술식을 전수받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
“그 벼락숭배자가 기어코 당신의 탑에 적을 들인 모양이군요·”
클라리스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경우가 다르지만··· 탑주를 아는 모양이군· 하기야 출신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인가·”
“성격이든 능력이든 아르스노바의 귀족들 중에서도 굉장히 유별난 사람이었으니까요·”
레녹의 질문에 클라리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중앙도시 출신 중에서 그만큼 태생보다 위업으로 인정받는 사람도 많지 않죠· 애초에 귀족 자체가 얼마 남아 있지 않기는 하지만····”
“····”
“그래서 이번에는 그 귀족과 같이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건가요?”
“연구라기보다는 전격마법을 사용한 대련만 반복하고 있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실제로 소기의 목적도 어느 정도는 달성했고· 하지만····”
전격마법을 사용해 대련을 치르고 그 과정에서 탑주가 지닌 깨달음을 넘겨받는 것·
일전에 해봤던 일인 만큼 어째서 탑주가 그러한 전승방식을 선호하는지는 이해하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영감을 비교적 순수한 형태로 넘겨주기 위해서는 술식을 부딪히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
실제로 레녹 역시 선뢰지체의 개변에 필요한 구결과 정보를 대련 도중 착실하게 넘겨받고 있었다·
뛰어난 마법사인 탑주와의 대련에서 레녹의 교전과 수싸움 능력이 날카롭게 다듬어지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이득·
하지만-
“나보다는 탑주에게 보람찬 일을 시켜주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즐거워한단 말이지····”
“····”
“가뜩이나 마탑에 도는 흉흉한 소문도 슬슬 관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하루가 멀다하고 마탑에서 울려퍼지는 격렬한 천둥소리·
서로 한 차례 싸운 뒤로도 마탑에서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까지·
전격마법사들은 다들 싸움에 미친 광인이라는 소문이 벌써 발칸 전역에 자자하다·
[그러한 소문을 신경 쓰고 싶었다면 족히 몇 년은 늦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군·]
올리비에라가 비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모두 네놈의 자업자득이거늘 이제 와서 수습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 내가 아니라 탑의 평판을··· 됐다· 본론으로 넘어가지·”
견뢰의 이름과 마탑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진 시점에서 무의미한 고민·
고개를 흔들면서 정신을 차린 레녹이 모형정원의 풍경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저것이 조정 작업이 끝난 장막의 파편인가?”
차르르릉···!!
푸른 초원이 펼쳐진 벌판 위로 밤하늘이 그려진 천구가 펼쳐져 있다·
지상의 정원과 하늘의 천구 사이로 은은한 별빛을 그리면서 회전하는 빛의 베일·
올리비에라와 클라리스는 장막의 파편을 촉매로 삼아 모형정원에 장막을 흉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파아아앗···!!
별의 그늘을 매개로 삼아 만들어진 성식예장·
파편을 촉매로 삼아 만든 장막의 [모형]이라 할지라도 이 모형정원 안에서는 엄연히 진짜나 다름없다·
“형상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군····”
말없이 별빛으로 빛나는 [모형장막]을 바라보던 레녹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천번의 신분으로 첫 번째 관문에서 보았던 진짜 장막과 눈앞의 장막에서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이 정도면 거의 원본과 비교해도 거의 다르지 않겠어·”
[진짜 장막의 파편을 재료 삼아 만든 모형이니 당연한 일이구나·]
올리비에라가 레녹의 뒤에서 모형 장막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히려 이 정도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면 천번의 솜씨를 의심해야 했을게야·]
“그래서 이대로 정원의 천구를 비틀어서 모형 장막을 열어젖히면 되는 건가?”
외겁도시 쿤다라는 장막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비처·
장막의 이면을 들추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별의 공전주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
허나 실제로 행성의 궤도를 비튼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모형정원을 통해 그 현상을 대신하는 것·
모형정원의 천구를 비틀어 정원의 공전주기를 바꾸면 모형 장막 역시 뒤틀리면서 이면을 내보인다·
중요한 것은 정원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현실과 동화시켜서 현실에서도 그 결괏값이 발생케 하는 것·
어둠의 서고에서 천체술식을 대여해 모형정원을 구축하고·
첫 번째 관문에서 장막의 파편을 구해 촉매로 삼아·
모형장막을 만들어 현실의 공전주기에 맞게 조정한다·
조정한 모형장막을 현실에 동화시켜 공전주기를 비틀고 쿤다라로 가는 길을 열어젖히는 것·
“아뇨 잠깐·”
레녹이 천구를 비틀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자 클라리스가 화들짝 놀라 레녹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번 분기의 공전주기에 맞게 장막을 조정하는데 일주일이 걸렸어요· 여기서 천구를 비틀면 기껏 맞춰둔 모형장막이 같이 비틀릴 거예요·”
“그러니까 그 기능을 실험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실전에서 써먹으라는거지?”
“장막의 파편은 촉매로서 강도가 약해서 두 번이나 조정에 사용할 수는 없어요·”
클라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천번에게 다시 장막의 파편을 구해오라고 부탁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
침묵·
클라리스의 말을 이해한 레녹이 눈을 깜박였다·
“그럼 실제로 이 기능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건 실전에서 단 한 번뿐이라는 말이군·”
“실패하면 바로 쿤다라 측에서 이변을 눈치채고 장막을 닫아버리겠죠·”
“····”
[실제로 외겁도시 측에서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지·]
레녹이 순식간에 피곤해진 표정으로 미간을 짚는 사이 올리비에라가 차가운 전성으로 말했다·
[최악의 경우 외겁도시의 장생종 전체가 우리를 배제하려 들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건····”
[지금까지는 진입 가능 여부만을 놓고 생각하느라 제쳐두었지만 그다음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때가 된 게지·]
베일 너머로 안광을 번뜩인 올리비에라의 목소리에 희미한 웃음기가 섞였다·
[네놈은 이 모든 수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더라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각오?”
레녹이 쓴웃음을 지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망설일 거였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
카이세 바쥬르가 주도했던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의 결말·
이 세상의 결말에 대해 억지를 부리기 위한 실패자들의 발악·
그리고 프로젝트의 실패에 직접 개입했다는 알카이드의 존재까지·
그 모든 인과 속에 자신이 엮여 있음을 자신이었던 누군가가 자리했음을 알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보고자 더 많은 실패를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끝나는 바람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 은밀하고 추악한 비밀이 프로젝트의 실패 끝에 버려져 있음을 알고 있기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필요한 술식과 장비들을 정리하고 돌아오지·”
파앗!
가볍게 의식을 거두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모형정원을 회수한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쿤다라로 출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