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enius Swordmaster Chapter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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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적백의 세계(4)

#06

반사.

지금 내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단어다.

거울이나 맨질한 대머리에 빛을 비췄을 때 벌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게 아니다.

그게 제일 유명하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반응’ 이다.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거인 특유의 낮게 울려 퍼지는 음성은 나를 반사적으로 흥분하게 만든다.

“하아아아····”

심호흡을 했다.

평행세계의 설명을 들었을 때부터 염두해둔 사태였음에도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고 동공이 수축한다.

전신의 감각이 곤두선 나머지 수염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괜찮아?”

“아마도.”

오죽하면 린이 먼저 내 상태를 걱정했다.

그럴 만 하다.

나를 이 정도로 미치게 만드는 건 네글리제의 끈을 푸는 아데샨 뿐이었으니까.

아 제기랄.

벌써 보고 싶네.

“히익!”

르탄시에가 기겁했다.

그녀 역시 위쪽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챈 기색이다.

불현듯 염력으로 솟구치던 몸이 정지했다.

내 경우처럼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물론 그딴 헛짓거리를 용납할 생각은 없었다.

벽면을 차며 도약한 내가 그녀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 목에 칼날을 들이대며 읊조렸다.

“올라가.”

“다 다 죽을 거에요! 방금 목소리 못 들었어요?! 놈들이 왔다고요!”

“그럼 여기서 죽던가.”

나는 칼자루를 아주 살짝 움직였다.

연약한 피부는 칼날과 닿는 순간 피를 흘렸다.

이대로 슬쩍 당기기만 하면 르탄시에의 모가지는 방금 만든 푸딩처럼 잘려나갈 터였다.

“나 나는 몰라···!”

결단은 빨랐다.

르탄시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네 개만 남은 오른손이 까닥이자 다시금 우리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구멍을 통과하는 순간 환한 볕이 쏟아졌다.

풍경 대부분이 그대로였지만 딱 하나가 달랐다.

삼십 미터 정도 떨어진 상공에서 날개 네 장 달린 거인이 지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아···아아아!”

르탄시에가 패닉에 빠졌다.

흐트러진 염력이 몸을 놓쳤다.

나는 사뿐하게 착지했지만 그녀는 양동이처럼 내동댕이쳐졌다.

파괴된 뿌리를 바라보던 거인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바사기아가 묻는다. 그대가 한 짓인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연합군에게 당했던 놈이다.

자이파 영감이 죽였던가.

날아다니는 콩자반 같은 새끼가 무게를 잡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 용서해 주세요!”

갑자기 르탄시에가 머리를 조아렸다.

이빨이 딱딱 부딫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가쁜 숨을 고르던 그녀가 속사포처럼 외쳤다.

“저는 협박당해서 끌려나온 거에요! 이 자가 제 구속구···아니 작업 도구를 멋대로 끊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아!”

“얌마. 너가 풀어 달라면서.”

기가 막혔다.

아직 귀와 손가락에서 피가 멎지도 않은 주제에 뒤통수를 칠 줄이야.

거인이 어지간히 무섭기는 한가 보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세상을 멸망시키려 한 건지 모르겠네···너 저기 보이는 대머리가 쟤네 종족에서 가장 좆밥에 속하는 건 아냐? 날개 여덟 장 달린 대빵이 뜬 거면 내가 이해라도 하겠는데.”

“요 용서해 주세요···자비를····”

르탄시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바들바들 떨려오는 그녀의 엉덩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 광신도들은 답이 없었다.

자기네들 행동에 책임도 제대로 못 지는 버러지 같으니라고.

불현듯 머리 위에서 바사기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뭐라고 했지?』

“뭐 임마?”

『그대는 감히 신성한 여덟 날개를 입에 담았다. 무언가를 알고 말한 것인가?』

“아하. 난 또 뭐라고.”

왜 쌩뚱맞은 놈이 대답을 하나 했다.

아무래도 내 발언이 심기를 건드린 듯했다.

벌레나 다름없는 존재가 자기네들의 최고존엄을 입에 담았으니 신경쓰일만도 하겠지.

바사기아가 재차 물었다.

『말하라. 바사기아가 명했노라.』

“거 성격도 급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양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턱을 쳐들었다.

말해줄까 했는데 재촉하는 태도가 괘씸했다.

저 특유의 내리 까는 눈빛을 보고 있자면 무한정으로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어리석군. 그대의 방자함은 영원한 고통으로 심판받을지어다.』

바사기아가 팔을 뻗었다.

크고 하얀 손아귀 중심으로 빛의 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기존에 본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이었다.

이 별의 생명을 빨아먹고 성장이라도 한 걸까.

이거 흥미롭군.

“재밌네. 던져 봐.”

“미 미쳤어요?!”

르탄시에가 머리를 쳐들며 기겁했다.

얼마나 세게 박았는지 이마가 발갛게 물든 채였다.

빛의 창이 바사기아의 손을 떠났다.

『바사기아가 형을 집행한다.』

벼락처럼 빠른 쇄도다.

순식간에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르탄시에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얼어 있었다.

“제법.”

추리는 적중했다.

역시 예전보다 강해진 게 맞았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별 상관은 없었다.

나는 묵묵히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긴 수직선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졌다.

백색으로 물들었던 시야가 반으로 갈라지며 다시 하늘이 드러난다.

좌우로 양단된 빛의 창이 바다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두 개의 물기둥이 하늘까지 솟구쳤다.

바사기아의 방어막을 적신 물보라는 붉은 비가 되어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무슨.』

음영 짙은 놈의 면상에 당혹이 깃들었다.

이해한다.

원래 첫 경험이란 다 그런 법이니까.

그건 그렇고 나도 이제 어른이니 정식으로 선전 포고를 해 줘야겠지.

“일단 눈높이부터 맞추자.”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하얀 검신을 타고 선명한 주홍색이 차올랐다.

여러모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색채다.

저녁노을.

우리 가족.

아데샨과 어깨를 맞댄 채 앉아 있던 사계의 언덕.

저무는 해를 닮은 나의 오러.

“내려와라. 콩자반.”

색은 섬광이 되어 퍼져 나갔다.

바사기아의 몸이 노을빛에 휩싸였다.

자석 만난 철가루처럼 끌려온 거구가 내 앞에 추락했다.

『……!』

“꺄아아아악!”

르탄시에가 비명을 내질렀다.

추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는 꼴이 우스웠다.

물론 가장 웃긴 건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부들거리는 대머리였지만.

『무도한 자여. 지금 무슨 짓을 한 거···』

“넌 잠깐 조용히 해봐.”

사라졌던 칼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사기아의 목울대 위로 푸른 선이 그어졌다.

푸확!

여름 하늘처럼 새파란 피가 내 얼굴을 적셨다.

놈은 말을 잇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이. 다들 보이지?”

나는 바사기아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종족 특성인 감각 공유 덕에 아마 모든 대머리가 이 장면을 보고 있을 터였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뗐다.

“어디부터 말해야 하나···으음 내 이름은 로난이다. 지금 이 빡빡이를 메다꽂은 사람이지. 보다시피 나는 니들의 잘난 방어막을 똥휴지처럼 찢어발길 수 있어.”

『이럴···수는····』

바사기아가 탄식했다.

그는 형태를 잃고 소멸하는 별의 가호를 탁 풀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다.

목울대를 벨 때 모든 팔다리의 힘줄을 다 끊어놨으니.

나는 뒤로 걸어가서 검을 몇 차례 휘둘렀다.

쾅!

쾅!

쾅!

중지를 제외한 뿌리의 모든 손가락이 무너져 내렸다.

“세 세상에!”

르탄시에가 헛숨을 들이켰다.

내가 뿌리를 파괴했다는 것을 이제야 믿는 눈치였다.

다섯 줄기던 광선은 이제 중지에서 나오는 하나만이 남아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천박하면서도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나는 너희가 존나게 싫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일 거야. 그런데 내가 니들을 일일히 찾아다니기는 귀찮으니까 그쪽에서 와 줬으면 해. 애꿏은 헛짓거리 하지 말고. 만약 나를 잡는 데 성공한다면···”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나는 목청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실종된 니 새끼들의 선왕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마.”

『뭣이!』

바사기아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었다.

전신의 근육이 부풀며 상처가 벌어졌다.

푸른 피가 한가득 쏟아졌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고꾸라졌다.

애쓰기는.

누가 잘랐는데.

“용건은 끝이다. 이상.”

선전 포고를 마친 내가 검을 휘둘렀다.

파육음이 부드럽다.

바사기아의 머리가 절단면을 따라 미끄러졌다.

『컥.』

놈의 눈에서 빛이 식었다.

머리 잃은 몸뚱어리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깔끔한 절단면 안쪽으로 하얀 뼈가 보였다.

울걱거리며 샘솟는 푸른 피가 붉은 바닷물에 뒤섞이고 있었다.

“침략자를···저렇게 쉽게····”

르탄시에가 뇌까렸다.

그녀는 두려움과 경외가 반반씩 섞인 눈빛으로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담뱃대를 꺼내 물었다.

‘잘 풀리면 좋을 텐데.’

평행세계에 온 이후 첫 흡연이다.

이것으로 거인들의 이목은 모두 내게 쏠릴 터였다.

장담은 못하지만 거의 확실하다.

놈들은 전쟁을 벌이던 그 순간까지도 선왕을 찾아 해메고 있었으니.

세니엘과의 혈투 끝에 추락해서 죽은 고대 빡빡이를.

칼자루가 나를 걱정하듯 징징 울렸다.

“의도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딴 빡빡이들은 천 마리가 몰려와도 이길 수 있어.”

“배고파서 그런 건데.”

“에라이.”

헛웃음이 나오는 대답이었다.

나는 검 끝을 발치에 고인 웅덩이에 담궜다.

푸른 표면 위로 내 얼굴이 엇비치고 있었다.

“남기지 말고 먹어. 귀한 피니까.”

“응. 이건 각별하지.”

푸른 피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거인의 혈액은 린에게 있어 특식과도 같았다.

머금었던 숨을 뱉었다.

뿜어져 나온 연기가 공기 속에 흩어졌다.

“맞아. 그···그러니까···아까는요오····”

르탄시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겠지.

잘도 그따위 배신자 짓거리를 했으니.

담뱃대를 털어낸 내가 입을 뗐다.

“야.”

“네 네에?!”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냐?”

“그 그건····”

르탄시에가 말을 더듬었다.

나는 뿌리듯이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르탄시에의 정수리 위를 스쳐지나간 검기는 하나 남은 중지에 적중했다.쿠우웅!

폭발음과 함께 손가락이 무너졌다.

르탄시에가 기겁하며 손사래쳤다.

“있어욧! 아마 있을 거에요! 불과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저항군의 풍문이 들려왔으니까!!”

“맞아. 그런 게 있다 했지. 저항군이 뭐냐?”

“마지막까지 침략자들과 맞서 싸운 자들이에요! 대부분은 죽었는데 극소수는 살아남아 도망쳤다 들었어요! 그 그러니까···이름이 뭐였지···아!! 나바르도제를 필두로요!”

“뭣.”

하마터면 담뱃대를 놓칠 뻔했다.

너무나도 정겨운 이름이었다.

레드 드래곤 나바르도제.

가장 유명한 별칭은 불의 어머니이자 아마도 이 별에서 가장 강한 생물.

확실히 그녀라면 살아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순간 희망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안내해.”

“···네?”

“안내하라고. 그 저항군이라는 놈들이 있는 곳까지.”

“그 그건 저도 잘 모르는데···허억! 알았어요! 알겠다니까요!”

내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르탄시에가 경기를 일으켰다.

나에 대한 공포가 뼈 깊숙이 새겨진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머리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속삭임 같은 주문과 함께 르탄시에와 내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원래대로라면 토막을 쳤을 거야. 네 목이 왜 붙어있는지를 잊지 마. 너는 지금부터 내 전용 날다람쥐다.”

“흑···흐으윽···네에····”

“너는 뭐라고?”

“날다람쥐···흐윽!”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애처로웠다.

위대한 네뷸라 클라지에의 대주교는 한낱 탈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솔직히 직전의 직장과 비교했을 때도 썩 좋지 않았지만 그녀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따랐다.

‘어쩌겠어. 자기도 살고 싶을 텐데.’

우리는 대머리의 시체를 뒤로 하고 내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뒤를 힐끗거리자 구멍에서 물을 토해내고 있는 뿌리가 눈에 들어왔다.

“오.”

이번에는 붉은 물이 아니었다.

깨끗한 해수가 거대한 구멍 위로 치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송신탑이 사라지며 기능이 상실된 모양이었다.

한참 걸리겠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일대의 바다는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좋네.”

묘한 충만감이 든다.

참 이상하지.

아직 균열을 부순 것도 아카샤를 잡은 것도 아닌데.

비행을 시작한지 머지않아 저 멀리 새하얀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생명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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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s Genius Swordmaster

Academy’s Genius Swordmaster

Score 8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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