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enius Swordmaster Chapter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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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적백의 세계(1)

#S03

균열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공간 이동을 할 때보다 일곱 배 정도 거지 같은 감각이 나를 덮쳤다.

유령이 달팽이관을 애무하는 듯한 어지럼증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우욱.”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내가 들어온 것과 똑같이 생긴 균열이 보였다.

나머지 공간은 모두 백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나는 사란테가 왜 다른 사람은 균열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는지 깨달았다.

“에잇 씨발 뭐야?”

맨몸으로 심해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몸에 가해지는 압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좁히자 먼지보다 미세한 입자들이 공간을 배회하고 있는 게 보였다.

새빨간 코피가 인중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법인데.”

염력 마법에 당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마 저 입자들이 마법의 촉매인 듯했다.

뼈와 관절이 삐걱거리고 있었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균열에 발을 들이는 즉시 해파리처럼 짜부러졌을 터였다.

본인이 자리에 없는데도 이만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니 아카샤라는 놈이 걸물이기는 한가 보다.

“그래봤자 마법이지.”

나는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칼날이 호를 긋는 순간 액체처럼 유동적인 검기가 회오리치며 쏘아졌다.

입자들이 소멸하며 균열까지의 길이 시원하게 뚫렸다.

마치 피의 터널이 생긴 듯한 광경이다.

“흐읍!”

더 이상 귀찮아지는 건 사양이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허벅지가 부풀었다.

뒤꿈치가 노면을 거칠게 박찼다.

총알처럼 쏘아진 몸은 순식간에 균열 앞에 다다랐다.

뒤를 힐긋거리자 내가 들어온 균열이 보였다.

깨진 공간 너머로 심야의 숲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러는 와중에도 의심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사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내게 미래를 맡긴 사란테는 못된 유령이 변신한 게 아닐까?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갑자기 나타나서는 미래가 어쩌고 평행세계가 저쩌고.

‘하긴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그래도 결심을 다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즘 들어 자주 깜빡하고는 한다.

내가 두 번째 삶을 사는 중이라는 것을.내게 입을 맞추던 대장군의 숨소리를 메마른 입술이 비벼지던 감촉을 구슬과 함께 넘어오던 알싸한 혈향과 눈을 떴을 때 펼쳐진 님버튼의 정경을.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명운을 떠맡은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 난 귀관에게 걸어 보기로 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최근 들어 망상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버려진 자들에 대해서.

아데샨이 사라지고 남은 있는지도 모르는 세계의 존망에 대해서.

헌데 알고 보니 그게 망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 세계에 관여할 권리가 주어졌다.

오히려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었다.

보통 이런 증세를 겪는 사람들의 말로는 구속복을 입혀진 채 수감당하거나 죽을 때까지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었으니.

“그래.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알지.”

짧으면서도 긴 고민이 끝났다.

나는 검을 박아넣으며 제동을 거는 대신 눈을 감았다.

균열을 통과하며 터져 나온 섬광이 시야를 가렸다.

****

빛은 금새 잦아들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새하얀 모래사장이 배 아래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뭐야 이거.”

놀랍게도 나는 아직 날고 있었다.

속도가 굉장한 걸 봐서 어지간히도 땅을 세게 박찬 듯했다.

안정적인 착지를 하고 싶었지만 지면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고도도 점점 낮아지는 것이 꼭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는 글라이더 같았다.

음.

망했군.

모래알 하나하나의 형태를 관측할 수 있게 될 무렵이었다.

“크아악!”

안면이 모래사장에 처박혔다.

균형이 무너진 몸이 거칠게 튀어올랐다.

나는 스물세 바퀴를 굴러간 뒤에야 관성을 잃고 정지했다.

“퉷! 퉤엣! 재수가 없으려니까!”

나는 튕겨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침을 뱉거나 코를 풀 때마다 모래가 섞여 나왔다.

하얗게 반짝거리는 것이 보석 같아 예쁘기는 개뿔 다 녹여서 유리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잠깐. 이거····”

코트 주머니를 뒤집어서 털던 와중이었다.

기시감이 뇌리를 스쳤다.

이 모래는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흡혈귀가 먹고 남은 시체처럼 창백한 알갱이들.

바로 옆에서는 파도 철썩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내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허. 씨발.”

피처럼 붉은 바다가 모래사장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과 맞닿는 하늘은 모래사장과 같은 백색이었다.

새빨간 바다는 기분 나쁠 정도로 투명해서 어지간히 깊지 않은 수심까지는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왜 아무것도 없어?’

바로 그 점이 섬뜩함을 더했다.

생명이 넘쳐야 할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고기와 산호 그 흔해빠진 어패류도 보이지 않았다.

희멀건 암초 몇 개만 남아 지박령처럼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몸이 굳은 와중에도 손은 열심히 움직이며 코트를 털어대고 있었다.

더욱 짙어진 기시감이 확신을 더한다.

나는 이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이미 끝난 건가.”

으득.

입 안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이 광경을 본 것은 아벨과 결착을 짓던 날이었다.

우리는 차원의 균열 속에서 뒤엉키며 싸우던 끝에 어떤 이름 모를 별에 떨어졌다.

여기처럼 바다가 붉고 땅은 하얀 곳에.

아벨은 그 별을 두고 거인 종족에게 당한 행성의 말로라 칭했다.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상황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사란테는 평행세계가 대장군이 죽은 이후의 세계라고만 했지 얼마나 이후인지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풍경으로 미루어 보아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계획이 완전히 성공하고 결말까지 다다른.

“개밥 같은 결말이군.”

심호흡을 하니 좀 나아졌다.

어서 행동에 착수해야 했다.

내 목표는 세계 각지에 나 있는 균열을 파괴하고 아카샤를 척살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부숴야 할 균열은 정해져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화려한 착지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목뼈가 안 부러진 게 용하네.”

모래가 파인 자리에 그대로 농작물을 심어도 될 것 같았다.

고랑의 끝에는 내가 들어온 균열이 하얀 빛을 뿌리며 점멸하고 있었다.

나는 검을 쥔 채 균열로 다가갔다.

모든 것을 꿈으로 치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참격이 허공을 그었다.

마력의 입자가 붕괴되며 균열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별 거 없구만.”

몇 초 걸리지 않았다.

공간에 났던 상처는 흔적도 없이 아물어 버렸다.

나는 확인차 균열이 있던 자리에 손을 휘적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로 더는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나저나 균열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지?’

이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평행세계의 넓이가 얼마나 되느냐는 둘째치고 어디에 균열이 생겼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친구들이 있었다면 일이 훨씬 쉬워졌겠지만 불행하게도 여기에는 나 뿐이었다.

“시타나 아셀만 있었어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원시적인 방법을 써야할 듯했다.

균열이 보일 때까지 걷기.

그래도 아주 막연한 작업은 아니었다.

아카샤의 목적은 거인과 네뷸라 클라지에를 불러오는 것이었으니 그 쌍놈새끼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에 균열이 존재할 가능성이 컸다.

일단 어디 한 군데만 잡아 족쳐도 다른 균열의 위치는 얼추 알아낼 수 있을 테고.

“좋아. 시작하자.”

짝!

나는 손뼉을 치면서 의지를 다졌다.

호응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조금 외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영웅의 길은 고독한 법이니까.

내가 해안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였다.

“서쪽에 뭐가 있는 거 같은데.”

“아이씨발깜짝이야!!”

갑자기 웬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 놀라서 여자아이 같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염색에 실패한 바다와 땅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빠진 호흡을 고르던 와중이었다.

“뭘 그렇게 놀래? 계속 같이 있어놓고.”

같은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아주 가까웠다.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본 내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뽑혀 나온 검신이 징징 떨려오고 있었다.

“린···!”

“드디어 흑심을 드러낸 거네. 이런 한적한 곳에 단 둘이라니. 역시 연상이 좋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아닌 내 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칼에 세들어 살고 있는 귀신(이렇게 부르면 엄청 삐진다).

성검의 정령 린.

“너 아무렇지도 않냐?”

“배고파. 뭐라도 썰어 줘.”

“아니 그런 거 말고. 몸이 막 분해될 거 같다거나···의식이 흐릿하다거나····”

“응. 괜찮은데.”

린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태연했다.

불현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거 다행이네. 진짜 더럽게 반갑다 야.”

“···오늘따라 태도가 마음에 드네. 평소에도 이렇게 소중히 대하도록 해.”

실없는 웃음이 계속 나왔다.

칼자루를 쓰다듬는 내내 린은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그릉거렸다.

문득 아까의 대화를 떠올린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참 서쪽에 뭐가 있다고?”

“응.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불쾌해. 당장 베어 버리고 싶어.”

“대머리 새끼들인가? 좋아. 당장 가 보자.”

린이 적극적으로 살의를 내비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래도 이 기특한 성검이 무언가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나는 검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여긴 원래 세상으로 따지면 어디쯤이려나. 감이 안 잡히네.”

“몰라. 마음에 안 들어.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 거야?”

“설명하자면 긴데 음···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말해주지 뭐.”

나는 린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해주었다.

현재로서 내 유일한 친구는 연신 ‘응’을 연발하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지면을 박찰 때마다 하얀 모래가 경쾌하게 튀어올랐다.

한번씩 뒤를 힐긋거리면 바닷물이 고여서 붉게 변한 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십 번의 ‘응’이 반복되던 차였다.

“찾았다.”

“응?”

처음으로 다른 대답이 나왔다.

거의 동시에 익숙하면서 엿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바다로 옮겨진 시선이 그대로 고정되었다.

“저건 또 뭐야.”

미간이 구겨졌다.

린은 이제 굶주린 야수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붉은 지평선 가운데서 새하얀 해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뭉게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광경.

내부가 별싸라기처럼 반짝이는 것이 틀림없는 네뷸라 클라지에의 흔적이었다.

“손?”

다만 나와 린의 이목을 끄는 것은 놈들의 마나가 아니었다.

짙은 안개 속에 거대한 무언가 희끗희끗 엇비쳤다.

나는 머지않아 그것이 누군가의 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대한 손이 바다를 뚫고 솟아 있었다.

“살아 있는 건가?”

린이 갸웃거렸다.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한 형체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워낙 멀리 있어서 이 위치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가서 보면 알겠지.”

이럴 때는 직접 가 보는게 최고였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어찌어찌 될 것 같았다.

콰아아앙!

다리에 힘을 끌어모은 내가 바다를 향해 뛰어올랐다.

“힘이 더 좋아졌네.”

“뭘 새삼스럽게.”

린이 감탄했다.

해변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모든 저주를 해주한 나는 마음만 먹는다면 자이파와 비슷한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하긴 최근에는 이 정도로 힘을 쓸 일이 없기는 했다.

복구 작업이 바쁘긴 해도 일단 평화를 되찾은 시대였으니.

‘섬뜩하군.’

발 아래로는 붉은 바다가 물결치고 있었다.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는 불투명한 적색을 띠었다.

아마 아무것도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비주얼만 보면 거대한 촉수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머지않아 안개가 나를 집어삼켰다.

“내가 이런 걸 다시 봐야 하다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해무의 안쪽은 플라네타리움을 작동시킨 암실 같았다.

사방에서 네뷸라 클라지에의 마나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뭐야. 베려고?”

나는 칼자루를 더 강하게 쥐는 것으로 린의 질문에 답했다.

악취가 나거나 유독성은 아니었지만 그냥 꼴뵈기가 싫었다.

“좋아. 하자.”

린이 키득거렸다.

붉은 꼬리를 끌며 쏘아진 칼날이 거대한 원을 그렸다.

검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악-!

자욱하던 안개가 좌우로 양단됐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반경이 1km에 이르는 기체 뭉텅이는 상하로 나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가까웠는지 거의 근처까지 도달한 채였다.

문득 내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제단?”

거대한 손은 생물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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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y’s Genius Swordmaster

Academy’s Genius Swordmaster

Score 8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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